35화. 나 없이도 세상은 돌아가더라
“안녕하세요. 김재수의 GOGO 베이스볼입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의 윤곽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죠. 우리의 최 선배. 최필승 선수가 나와 주셨습니다.”
“선수는 무슨··· 그냥 현직 백수. 전직 선수지.”
겸연쩍은 듯 얼버무린다. 아주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코멘트다. 아직까지는 순한 맛 최 선배다.
김재수에게 최필승은 양날의 칼이었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는 가감 없는 입담으로 오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출연하는 날이면 라이브 방송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메워졌고 후원도 쏟아진다.
‘정말 세상은 희한해.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해도 그게 솔직함으로 포장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다니···’
하지만 그가 좀 오버하면 일반 구독자가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또 소수이긴 하지만 유료인 정기 구독자는 늘어났다. 그는 김재수의 딜레마였다. 위험한 것 같은데 버리기에는 아까운 카드.
PD 말로는 최 선배의 말투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김재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호불호가 너무 뚜렷하지만 어쩔 수 없이 라이브 방송에는 가끔 출연시키고 있다. PD까지 고용하며 외연 확장에 투자한 이상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겠다는 결심이었다.
현실적으로 수익은 중요한 문제다. 라이브 방송에 최 선배가 출연하면 후원금 단위에 0이 하나 더 붙는다.
PD가 아이디어를 냈다. 최 선배가 사고 치면 김재수가 전전긍긍하며 모르는 척 무마시키려고 애쓰는 것에 웃음 포인트를 두는 걸로 컨셉을 잡아 그럭저럭해나가고 있다. 확실히 투자를 늘리면 성과가 따라오긴 한다. 아직 승패는 모르겠지만.
‘소비자가 원하면 당장 조금 손해가 있더라도 공급자는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지. 자본주의의 시장 질서가 그런 거야. 굳이 내가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지. 이것도 투자의 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빛 볼 날이 있을 거야.’
긍정적인 부분만을 애써 떠올리며 김재수는 그렇게 자위하고 있었다.
“아직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포스트 시즌 전망에 대한 예측이랄까···”
오늘의 주제에 대한 서론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최 선배가 끼어들며 말을 잘랐다.
“소영수가 8월 이달의 신인 후보에 올랐더라. 못 받아서 좀 아쉽긴 한데 불펜이 그런 상을 받기에는 포지션상 어려움이 있지. 내가 일본전 때부터 알아봤어. 그런 애를···”
시작부터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온다.
‘헉!’
PD가 연신 두 손을 교차시키며 끊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허헛. 최 선배. 우린 국내 야구 전문 방송이야. 미쿡 이야기는 주제가 안 맞아요. 전문 분야가 다르잖아. 우리 최 선배가 요즘 미국 야구를 보시나 봐요. 그건 다음 언제 특집으로 다루기로 하고···”
국내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근래 몇 년간 한 시절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지난날의 우람한 좌완 투수만큼 임펙트를 주는 선수가 없었다. 특별히 실시간으로 주목할 수 있는 스타가 없다 보니 일반 야구팬들의 MLB에 대한 열기는 과거에 비해 많이 식었다.
“우린 순대국밥 전문이라 돼지국밥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어차피 재료도 비슷하고 같은 국밥인데 메뉴가 추가되면 좋지 뭘 그래?”
김재수는 야구 방송에서 국밥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이라면 국밥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대화창의 댓글들이 소영수가 누구임에서 국밥충 이야기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다.
“전문점 특성이 없어지잖아요. 돼지국밥 하나 메뉴에 추가되는 거야 그렇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수육, 족발, 보쌈 등등 메뉴가 계속 늘어나게 된다구요. 우리 순대국밥 하나 특색 있고 맛깔나게 잘 만들면 돼요. 잘하는 거 하나만 합시다. 선배.”
소영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 아닌 금기였다.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일이다. 특히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 같은 곳은 대중의 의지에 반한 독자적 의견을 내기 어렵다.
대중에게 외면받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위험하다. 민심이 어떤 쪽으로 튈지 예상이 안 된다. 조금 삐끗하면 그를 옹호한다고 몰려 그와 같이 조리 돌림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채널로 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위험한 건 피해야지.’
일 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공중파에서도 그에 대한 언급은 아직 전혀 없다. 대중은 그를 잊었고 방송은 여전히 외면 중이다. 김재수에게는 굳이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앞장서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방송도 작년 그에게 돌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초창기 때 출연자 중에서 소영수를 씹어댔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구.’
소영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작년 시류에 맞춰 학원 야구의 문제를 다루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놈이 난 놈은 난 놈이잖아. 안 그래? 그 와중에 미국까지 가서 그렇게 자리를 잡아내는 걸 보면··· 공 하나는 뽕빨나게 던졌지.”
‘악! 제발 좀···’
대화창의 댓글 내용이 ‘그놈이 누구임.’으로 다시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김재수는 넋이 빠져 이렇다 할 대꾸도 못한 채 대화창만 멍하니 주시할 뿐이다.
‘하아! 그냥 국밥 이야기나 계속할걸.’
『ㅇㅇ :그거 소영수 이야기인 것 같은데···
ㅇㅇ : 소영수가 누구?
ㅇㅇ : 작년에 그 부정입학 금수저 야구선수 있었잖아.
ㅇㅇ : 걔가 미국 갔어?
ㅇㅇ : 양아치 이야기는 왜 하냐?
ㅇㅇ : 어느 팀인데?
ㅇㅇ : 야구 잘하면 뭐하나? 인성이 먼저지.
ㅇㅇ : 국뽕 싫어.
ㅇㅇ : 빨아주는 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독극물 극혐.
······ 』
대화창이 터져 나갔다. 차마 계속 볼 수 없어 고개를 든 김재수의 눈에 PD가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비친다. 어쩌면 방송을 접고 국밥이나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안녕하세요. 소영수 선수.”
낮 경기를 마치고 천천히 홈을 빠져 나가려는데 마주친 누군가 대뜸 인사를 한다. 무실점 경기를 해서 업 되던 기분이 팍 가라앉는다.
‘응? 이게 뭐야?’
“예, 안녕하세요.”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가려다 마음을 돌려 인사는 했다. 언론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이 기자와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누군지 알지도 못한다. 피하는 게 더 어색해 보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약한 놈이 피하는 거다. 이젠 당당해지고 싶었다.
메이저 리그에 한국 선수가 몇 있다 보니 그들을 취재하는 한국 기자를 가끔 보기는 했었다. 그들 중 한 명으로 어디선가 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철저하게 서로 소 닭 보듯 해왔는데 새삼스럽게 왜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리그 내 한국 선수들과도 전혀 교류가 없었다. 일단 마주칠 일이 별로 없고 만난다고 해도 경기 중이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왠지 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기가 꺼려졌다.
언젠가 고 감독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에서 프로 선수는 본질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지만 엔터테이너 같은 면을 가지고 있지.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쁜 쪽으로 논란이 있는 선수와 가깝다는 오해를 받을만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지.”
미지의 존재에게 평탄한 삶이 위협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해 줄만 했다. 사람이니까. 이처럼 나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너무도 인간적인···
“우린 병균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어. 어쩌겠니. 사람들에게 면역이 생길 때까지는 이렇게 사는 수밖에··· 하지만 네가 특별해지면 마냥 외면하지만은 못할 거야.”
주로 지내고 있는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지역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날 만나 그들이 멈칫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건 사양하고 싶다.
정말 기자가 싫다. 인사말 한마디 한 걸로 이렇게나 머리가 복잡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그 자체가 싫다. 그냥 지나쳐 가려다 갑자기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그동안 홈경기에서 한국 기자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여기에 왜··· 설마 나를 만나러 온 거야?’
내가 멈칫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실수였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약하게 보였나 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새끼와 병든 놈이 가장 먼저 노림을 당한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약하지 않다.
“기자분이셨나요? 인터뷰는 구단을 통해 먼저 연락을 주세요.”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식 인터뷰는 아닙니다. 개인적인 질문 몇 가지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간단한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대화를 할 사이였나요? 전 기자 분을 처음 뵙습니다만. 다른 선수와 착각하신 것 아니신가요?”
“하하. 객지에서 만나면 다 친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인연이 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겠죠. 어떻습니까? 제가 악당은 아니거든요.”
질척질척한 인간이다. 정말 이런 인간형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이 그때는 아닌 것 같네요. 비켜 주시죠.”
“가시겠다는데 제가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전 기자이기도 하지만 개인 블로그도 운영하거든요. 어느 포털에서든 야사라고 치면 바로 연결이 됩니다. 정식명칭은 야사 막전막후인데 그냥 야사만 검색해도 됩니다. 심심할 때 오셔서 한번 둘러보세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쪽지 하나 남겨 주시면 언제든 달려오지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지요. 살펴 가세요.”
마지막까지 정중함을 유지했다. 다시는 얕보이지 않겠다.
기자는 순순히 물러났다. 예상 밖이긴 했지만 어쨌든 상관없다.
‘무슨 일이지 일단 좀 알아봐야겠네.’
한국 사이트에는 그동안 전혀 접속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참 좋아할 일이지만 SNS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고 감독은 없다. 며칠 서부 지역 어딜 좀 다녀온다고 하더니 없어졌다. 그 양반도 그동안 이 시골 동네에 갇혀서 고생했다. 인구 60만의 도시지만, 서울 살던 우리에게는 너무 협소하다.
잘 들어가지도 않던 한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건 너무 어색할 것 같았다. 무엇을 검색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와 가끔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한국에 있는 유이(有二)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