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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34화 (34/200)

34화. 각자의 사정은 다르다

9월이 되면서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요한슨은 이제 감성을 거두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의 눈은 계속 창밖 풍경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머릿속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도 거의 다 지나가는군요, 우리가 가을 준비를 해야 할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을 것 같고···”

리빌딩을 준비하면서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자조 섞인 GM의 말에 회의 참석자들 모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고 아직은 이른 감이 있지만, 내년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빌딩을 시작한 첫 시즌이었다. 트윈스의 단장 요한슨에게는 옥석 가리기가 시즌 운영의 주요 목표였었다. 구단주의 고집 때문에 시즌 초반 예기치 않게 돌출된 감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됐다.

뜻하지 않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코칭 스탭들이 분발하는 계기로 작용한 듯하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가지고 시즌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시동은 걸었고 본격적인 리빌딩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확대 회의가 아니라 핵심 부서의 책임자들만 모인 간부 회의였다. 내밀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적당한 인원이다.

“치프 존슨이 시작해 주시겠습니까?”

“예. 일단 이것 한 장씩 받으시죠. 이 서류는 회의 후 회수하겠습니다.”

참석자 모두에게 서류 한 장씩이 나누어졌다.

“최근 5시즌을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포지션별로 필요한 선수 목록을 뽑아냈습니다.”

스카우트 팀장이 나눠준 서류에는 당장 처분을 해야 하는 선수들과 점진적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 등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외비라 이거구만. 음. 이거···”

참석자들의 눈이 바쁘게 돌아갔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웃거리기도 하면서 모두들 종이 한 장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다.

“안드레는 잡지 않겠다. 이건 곤란하지 않겠어요?”

“So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참석자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는 것 같았다.

“이건 말이 안 돼. 불펜에 제일 사람 같은 선수 두 명을 이렇게 한 번에 정리해 버리면 내년 시즌은 어쩌라고. 아무리 리빌딩이라지만, 기본적인 성적은 나와 줘야 경기장 수입이 유지된다고.”

재정 부분 담당 CEO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종이에는 몇 명의 이름이 더 적혀 있었지만 금방 초점이 안드레와 So 두 명에게 맞춰졌다.

“치프. 설명이 좀 필요하겠군요.”

요한슨도 이런 반응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도 작년에 트레이드를 주저했었다. 결국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자 그와 맞는 트레이드 카드를 구할 수 없어 두 명만 처분에 성공하고 끝내 안드레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스카우터진의 조언에 따랐다면 지금 상당한 유망주 한둘은 더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FA가 되는 안드레를 잡을 수도 없다. 요한슨은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아냈다. 안드레를 남겨서 그나마 이번 시즌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고 애써 합리화를 해봐도 별 위로가 되진 않는다.

그때 받아본 스카우터 부서의 보고서는 그의 올 시즌 상대적 기량 저하를 예고했었다. 그것이 실제로 올 시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스카우터들은 유능한데 우리는 왜 긴 시간 동안 실패를 거듭했던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답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개선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다른 지표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이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어떤 투수든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타자들에게 익숙해집니다. 이 지표의 계속된 하락은 선수의 기량 성장 속도가 타자가 익숙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생긴 겁니다. 즉 이게 실링(포텐의 최대치)의 끝이라는 뜻이지요.”

존슨 팀장의 긴 설명이 끝나자 심문과 같은 질문이 시작되었다.

“다른 요인은 검토하지 않았습니까?”

운영팀장은 못 내 아쉬운 것 같았다.

“충분히 검토했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깨끗합니다. 에이징 커브가 오기엔 아직 이르고 구속 저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죠.”

존슨은 단호했다.

“그래도 그의 재계약 조건이 3년 2,000만이면 너무 하잖아요. 금액도 그저 그렇고 장기 계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그가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연간 1,000만 이상에 다년 계약을 보장하는 팀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럴 거 같으면 작년이라도 트레이드해서 유망주 확보라도 했었어야죠.”

재정 담당자로서 답답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건 스카우트 팀장 능력 밖의 이야기였다. 존슨은 어쩔 수 없었다란 말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분석을 우리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상보다 시장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연봉은 그 정도로 하고 기간이라도 늘려서 묶어두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 정도 돈으로 누굴 사 온다고 그보다 잘할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미련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존재했다.

“우리 팀에서는 그렇지만 다른 리그로 가면 타자들이 익숙해지는 속도가 달라지겠죠. 다른 팀들의 기준은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내셔널 리그 팀들이 배팅을 높일 동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을 이렇게 했지만, 그것보다 그들의 운영 자금 규모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란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었다. 스몰마켓 팀의 한계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존슨은 참아내었다.

GM은 불구경하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우리 사정이··· 음. 그런데 여기 이 명단에 So는 왜 올라 있는 겁니까? 지금까지 말씀하신 논리대로라면 이제 1년 차라 기량 저하를 비교할 수 있는 통계 자체가 없고, 첫 시즌에 이 정도 성적이면 지금 상태로도 상위권의 불펜 투수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전 리빌딩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재정 담당자가 다소 수그러지자 다시 운영 팀장이 참전했다.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는 좀 다른 기준 적용이 필요합니다.”

스카우트 팀장과 운영 팀장의 논쟁을 지켜보던 GM이 끼어들었다.

“7월에 들어왔던 트레이드 제의 중에서 검토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치프 존슨, 경과를 말씀 주시죠.”

GM의 눈짓에 존슨이 옆의 가방에서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So는 다음 시즌 후 정도가 트레이드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플로어(포텐이 터지지 않았을 때의 최저 기대치)가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여간해선 잘 망하지 않겠다는 점이 그를 영입한 결정의 근거였죠.”

“그건 훌륭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일과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상대를 향해 존슨 팀장은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강하게 맞서기보다 달래려는 듯 부드러운 어조였다.

“아직 서비스 타임도 많이 남아 있고 낮은 확률이긴 합니다만, 경험이 쌓이면 피홈런 제어가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된다면 몇 년간 마무리 걱정은 없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지금 이 리스트에 So를 올린 겁니까?”

운영 팀장에게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있었다. 강경함을 숨기지 않고 되물었다.

“그런 가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요? 희망으로 가득한 미래를 그리려면 부정적 전망도 함께 안고 가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그럴 거까지야··· 음. 나도 들을 만큼은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하다라는 말씀을 하실 거라면 그것에는 동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투자란 게 그런 거 아닙니까? 그에게 들인 돈도 크지 않고···”

힘이 빠졌음이 확연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불확실함을 제거할 방법이 생겼다면 그것에 따라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존슨 팀장은 운영 팀장에게 새로 꺼낸 종이를 건넸다.

“거기 불확실함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서류는 짐 해리거 운영 팀장이 받았지만, 모두의 눈길이 쏠리고 있었다.

“참석 인원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읽어주시죠.”

“앤서니 휘태커, 칼 모리스, 필립 스플링. 이게 답니다..”

운영팀장이 받은 종이에는 단 세 명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음. 혹시 이게 So의 트레이드 상대입니까?”

조금 전의 어조와는 많이 달라진 목소리가 질문을 한다. 그도 빛을 갈구하고 있었다.

“일단 그렇게 제의받았습니다. 앤서니는 지난 3년간 연평균 6승을 한 4년 차 선발 투수이고 칼은 내야 자원인데 그쪽 팀 내야 뎁스가 워낙 두꺼워 출장 기회를 못 얻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 팀에 온다면 2루를 맡길 수 있는 선수죠. 필립은 AA에 있는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불펜 자원인데 팀 유망주 순위가 6위입니다.”

“자이언츠군요.”

누군가에게서 팀명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 같으면 7월에 왜 응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이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칼이 빠져 있었죠. 인터리그 경기 때 그 팀의 누군가가 인상 깊게 보았나 봅니다. 즉전감 둘을 주겠다니 일반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조건이죠. 그쪽은 윈나우인데도 이번 시즌에 죽을 쓰다 보니 그 원인을 불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거야 우리가 고려해 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조건이 끝인가요? 추가적인···”

회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었다. 현재 페이롤을 초과하지 않고 전력 보강의 기회가 생겼다. 물론 지금 잘 나가는 불펜 투수를 하나 주어야 하지만 특급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아직은 미흡한 자원이었다.

“시즌 끝나면 바로 할 생각이십니까?”

질문의 대상자가 존슨 팀장에서 GM으로 바뀌었다.

“아닙니다. 좀 더 끌어 볼 생각입니다. 급할 건 없습니다. 아직 이 제의도 공식적인 건 아닙니다. 이 정도까지 줄 마음이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그쪽 단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한슨은 서둘 생각이 없었다. 미끼에 현혹된 고기가 앞뒤 가리지 않고 다시 더 후한 제의를 해올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그런 순간적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 독단적 결정을 했니 하는 뒷말이 나오는 걸 피하려 이 회의를 열었다.

미리 간부들에게 동의를 구해 놓는다면 쓸데없는 말이 깁 구단주에게 옮겨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소한 악의적 비방은 예방될 것이다.

지난겨울 20만 불의 작은 투자가 이렇게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요한슨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훗날 자신의 최고 성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 현재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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