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29화 (29/200)

29화. 출격하다

‘거 참! 이런 거 싫은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잖아. 이렇게 빨리 주목 받으면 생활에 불편도 생길 거고···’

타킷 필드의 바람이 시원··· 하지는 않다. 이 지역이 얼마 전까지 선선하더니 요 며칠 사이에 더워졌다. 절대로 긴장했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미네소타가 미 대륙 한복판에 있어서 기후 변동이 심하다고. 이런 걸··· 그래. 대륙성 기후라고 하지.’

10회 초 시작과 함께 올라오는 거라서 주자도 없고 마음이 더없이 편안하다.

빰. 빰. 빠-암. 빰. 빰. 빠-암.

얼마 전 구단 직원이 등장곡으로 무엇을 쓰겠냐고 물어 와서 이 곡을 택했다. 베토벤의 운명 그 일 악장 첫 부분을 무한 반복한다.

‘타의에 의해 비틀어진 운명을 딛고 내 의지가 주도하는 새로운 운명을··· 하아! 마이 민망하네.’

심하게 오글거리지만, 아무튼 생각은 그랬었다.

클래식은 등장 음악계의 주류가 아니다. 보통 마무리 투수들은 락이나 메탈을 선호한다.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의 등장 음악 ‘Enter sandman’이나 트레버 호프먼의 ‘Hells bells’는 잘 알려져 있다.

‘메탈리카와 AC/DC는 그렇거니 했는데 뜻밖에도 등장 음악으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락밴드가 레드 제플린이라고 하더라고···’

등장 음악도 유행을 탔다. 8, 90년대 생들이 메이저리그의 주류 세력이 되면서 힙합과 랩이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보다 선수들은 등장 음악을 선택하는 것에 신중하다. 타자들은 타석에서 그것을 통해 타격을 위한 리듬감을 유지하기도 하고 기분 전환의 기점을 삼기도 한다. 때때로 강력한 투수들의 등장 음악은 타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파블로프의 멍멍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렇게 길들여지는 거야.’

선수에 따라 커리어 내내 자신의 시그니처처럼 한 음악을 고수하기도 하고, 슬럼프에서 음악을 바꿔 슬럼프 극복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는데 나는 어느 쪽일지 모르겠다.

나의 선택은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한 면도 있었다. 스몰마켓에 돈도 없는 팀을 생각해 준 것이다. 웬만한 노래는 다 사용 비용을 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된 클래식은 저작료가 없다.

‘상대의 운명을 내 손안에 쥐고··· 그만하자.’

싱숭생숭해지려고 한다. 관중석이 절반밖에 차지 않았지만 내 소개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환호가 원망 섞인 비명이 되지 않도록 잘 해내야 한다.

나의 홈구장 타킷 필드는 좌우 펜스도 길고 중앙도 깊은 상당히 넓은 구장이지만. 파크 팩터(구장의 성향을 나타내는 지표, 1을 초과하면 타자 유리 그 이하는 투수 유리)는 매년 기준점에서 위아래 변동이 크지 않은 중립에 가까운 구장이다. 홈런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깊은 외야 때문인지 점수가 적게 나지는 않는다.

‘외야가 넓으면 플라이볼 투수에 유리하고···’

이렇게 저절로 수많은 정보가 떠오르는 걸 보면 등판을 기다리던 며칠 동안의 공부가 부족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외야로 공 보낼 일이 있겠어?’

나를 배려해서인지 포수도 베그웰로 교체되었다. 이 시점에서 투구를 잘해 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은 다 갖추어졌고 연습구도 다 던졌다.

“스트라익.”

시작되었다.

***

“상당히 보기 드문 스타일이군요. 트윈스가 언더스로우의 루키를 내세워 승부를 걸었습니다. 오늘 꼭 마지막 고비를 넘겨 이 지긋지긋한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지역 방송국의 스포츠 캐스터인 조나단은 억지스럽지 않게 말을 이어갔지만 내심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고 있었다.

‘이런 미친··· 감독을 잘라야 해. 이런 순간에 루키라니 이게 무슨 짓이야. 투수가 없어? 시리즈 전체 투수 운용이 엉망이었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그래도 이런 장면이라면 내일 투수라도 당겨 써야지. 투수 아껴서 내일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하지만 방송에서 이런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무난한 편파 중계, 이것이 지역 방송국이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토미. So Young-su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조나단은 비극으로 끝나게 될 것 같은 트윈스의 전술적 선택을 도저히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어조로 소개할 수 없을 것 같아 슬쩍 해설자에게 발언의 순서를 토스했다.

해설자 토미는 참고자료를 입력해 놓은 태블릿의 화면을 만지작거리다 허둥지둥 말을 이어받았다.

“이 선수는··· 작년 말쯤 국제 유망주 계약으로 입단했습니다. 계약금은 20만 달러였구요. 원래 트윈스가 그런 식의 선수 영입을 하는 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팀의 뜻밖의 행보이기도 했고 높지 않은 계약금은 로터리(복권)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었지요.”

‘어? 알고 있는 선수였어?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하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자신도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류의 영입을 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잊혀진 기억이었다.

“이렇게 빨리 콜업이 되었다는 건 마이너에서 특별한 성과를 보여 줬다는 의미인데 그동안 왜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유망주 순위에서 그의 이름을 본 기억은 없네요.”

“승급이 너무 빨라서 미처 그런 통계에 올라갈 시간이 없었죠. 이 선수 A+에서는 단 두 게임만 뛰었고 AA에 있었던 기간도 채 두 달이 안 돼요.”

그럴 법한 말이었다. 조나단은 방송 관계자가 아닌 트윈스를 응원하는 팬의 입장에서 정말 저 So라는 투수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스탯을 보였길래 그런 승급 속도가 나오나요? 근래에는 거의 없었던 경우 같군요.”

마이너 리그 승급에는 기본적 원칙이 있다. 승급에 서둘지 마라. 가급적 한 리그에서 전체 시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라. 전체 시즌 경험을 통해 컨디션의 상승과 하강을 관리할 수 있게 하라. 등등이다.

승급을 위해서는 그 선수가 해당 리그를 지배해 더 이상의 도전 상황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되어야 한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리그를 완전히 씹어 먹을 정도가 되어야 승급시킨다는 뜻이다.

‘레이팅(평가)을 보고 승급시키지 말라는 것도 있지. 레이팅보다는 스탯(통계, 성적)을 봐야 한다는 게 기본인데···’

“이 선수가 마이너에서 보여준 스탯은 단기간이었지만 이런 기록도 나올 수 있구나라고 감탄을 하게 만들죠.”

“이제 막 열 번째 이닝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구는 아웃 코스의 스트라이크입니다. 큰 낙차의 느린 브레이킹 볼로 경기를 시작합니다. 커맨드에 자신이 있는 듯 초구부터 변화구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중계를 해야 했다.

“공은 상당히 느린 편이네요. 저 변화구는··· 이 구도 스트라이크입니다. 90마일의 투심이 인코스 낮은 쪽을 파고들었습니다.”

숨 돌릴 틈 없는 투구 간격이었다. 모두 이 투수만 같으면 경기 촉진 룰을 도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빨라··· 해설을 할 시간은···’

“아! 삼진입니다. So가 첫 타자를 솟아오르는 느낌을 주는 패스트볼로··· 아! 죄송합니다. 토미. 저 볼이 패스트볼이 맞나요?”

패스트볼이라고 말을 하고 나서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타자가 들어설 때까지 시간이 조금 주어져 미심쩍은 부분을 토미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 타자 소개도 못 했네.’

잠시의 여유가 조나단의 머리 회전을 정상에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한때 저런 걸 업슛이라고 불렀죠. 저걸 던졌던 투수로 기억나는 건 예전 백스에 CK라는 투수가 있었는데···”

“그렇군요. 데뷔전의 첫 타자를 깔끔한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었습니다. 다음 타자는···”

다행히 이제 타자 쪽에서 투수의 투구 리듬을 흩뜨리려 들었다. 방송을 위해서는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아!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저건 스트라이크를 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존을 박하게 적용하는군요. 트랙맨(Trackman, 투구추적시스템) 상으로도 분명히 존에 걸치는 것으로 나오는데 아깝습니다.”

다행스럽게 다음 투구에 2루수 쪽 땅볼이 나왔다. 루키가 심판의 잘못된 판정 하나로 흔들리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저 So라는 투수는 평범치 않게 그런 장면에서 가벼운 웃음을 보이더니 씩씩하게 같은 코스에 느린 변화구를 던져 타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커맨드가 아주 좋은데 저는 멘탈에 점수를 더 주고 싶네요. 저런 상황이 되면···”

해설자 토미는 아주 감탄한 듯했다. 들뜬 어조의 해설이 이어졌다.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많은 표현이 있다. 그런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객관화시키기에는 어려운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투수가 던진 공이 그가 기대했던 곳에 도착했는지는 공을 던진 투수만 안다.

투수의 공이 어느 정도의 속도를 가졌으며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는 관찰을 통해 측정할 수 있지만, 의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그래서 객관화시킬 수 없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기준 몇 가지가 나오게 되었다.

로케이션(Location)은 투수의 의도를 배제하고 던진 공이 어디에 도착했는지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수가 경기 내내 꾸준히 낮게 공을 던졌다고 말하면 그건 로케이션의 문제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의도대로 공이 가지 않았다고 해서 꼭 나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즉, 실투를 배제한 개념이 된다.

컨트롤(Control)은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을 말한다. 투구 중 스트라이크와 볼의 비율은 측정이 가능하며 볼넷 허용 등의 스탯을 통해 객관화가 된다. 스트라이크를 더 자주 던지는 투수를 컨트롤이 좋은 투수라고 한다. 이건 세이버메트릭스적인 개념이다.

커맨드(command)는 타자가 치기 어려운 좋은 스트라이크 또는 존 바깥의 원하는 곳에 원하는 구질의 공을 던지는 능력을 의미한다. 커맨드는 넓은 의미에서 컨트롤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좀 더 수준 높은 능력이다. 좋은 컨트롤을 가진 투수는 비교적 적은 볼넷을 허용하지만, 커맨드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타자에게 정타를 허용하게 된다.

투구추적시스템이 나오며 투수의 공이 존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세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커맨드가 측정 가능해진 것이다. 대개 존의 구석으로 히트맵(공의 탄착군)이 형성되는 투수가 좋은 커맨드를 가졌다라고 한다.

토미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통산 130승을 거둔 레전드라 불릴만한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최상급의 칭찬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조나단은 갑자기 고함을 치고 싶어졌다.

‘트윈스! 이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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