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27화 (27/200)

27화. 나의 팀

“감독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투수코치 윌리엄은 말을 하면서도 무표정했다.

“내가 보기엔 좋아 보이는데 구속이 좀 아쉽네. 음. 왜 자네는 생각이 좀 다른가?”

트윈스의 감독 제이크 마우어는 본인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투수 코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글쎄요. 나쁘진 않은데 들었던 것보다는 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말하기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투수 코치로서는 잘 모르는 것을 섣부르게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굳이 물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감독은 마음을 돌려먹었다. 코치가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 것 같은가?”

타격코치는 싱글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확실히 까다로운 공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것이 실링(ceiling, 포텐 성장의 최대한계)의 끝이라면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익숙해지면 공략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다들 좀 헤매긴 할 것 같군요.”

“실링은 높지 않은 것 같은데 플로어(floor, 포텐이 다 터지지 않았을 경우의 최저기대치)는 높을 것 같다는 뜻인가?”

“말이 그렇게 되는가요? 하핫.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런 유형을 잘 보지를 못해서···”

다들 자기 의견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긍정과 부정 양자가 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자네, 현역 때 채드 브래드포드를 상대한 적이 좀 있지 않았나?”

“그러긴 했었는데 So는 그와 좀 다르네요. 채드는 저것보다 투구폼이 훨씬 더 낮았어요. So는 채드에 비해 구속은 좀 더 빠르군요. 그리고 많이 작네요. 채드는 6피트 5인치(196cm)쯤 되었지요.”

“저도 메이저에서 언더 유형으로 좀 길게 간 투수는 채드 브래드포드 말고는 생각나는 사람이··· 아, 백스의 CK가 있었네요. 하지만 그는 폼이 급격하게 떨어져 롱런하지는 못했죠.”

투수 코치가 다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건 채드도 아주 길진 않았잖아. 메이저에서 열 시즌 정도 보낸 걸로 아는데··· 맞지?”

“맞아. 열두 시즌인가 그럴 거야. 그 정도면 길게 간 거지. 36살인가에 은퇴한 걸로 아는데 그 정도면 훌륭한 커리어를 보냈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지.”

이제 막 콜업된 투수를 보면서 이미 은퇴한 투수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건 흔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자리의 코치들 모두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So가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풍기고 있었다.

“대충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알았으니까 그만들 하지. 일단 왔으니 등판은 시켜봐야 할 텐데 보직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감독은 코치들의 이야기를 잘랐다.

“AA 때 기록을 좀 살펴봤는데 막 굴렸더군요. 분류는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해 놓고 위기 상황이면 이닝을 가리지 않고 마구 등판을 시켰더라구요. 여기서 그럴 수는 없고 일단은 채드처럼 써보면 어떨까요?”

채드 브래드포드는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투수였다. 그의 강점은 정상 컨디션이었을 때 우타자 상대의 피안타율이 1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커리어 초반 주로 우타자 상대를 위한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을 하곤 했었다. 약점은 좌타자였다. 그의 최고 구속은 83마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 그도 채드처럼 우타자에 강점이 있나?”

“그건 그런데··· 사실은 기록만 보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투수코치가 묘하게 말을 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기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다는 거지?”

감독의 멘탈은 한동안 이어진 연패에 조각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연히 갓 콜업된 불펜투수의 기록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도 오랜 원정 뒤 하루 주어진 휴식 시간을 이용해 팀을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다. 그에게는 연패 저지라는 절대적 임무가 존재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여기 나와 있는 것도 그것을 위한 새로운 자원 점검이 목적이었다.

“분석하기엔 표본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는 국제 유망주로 올해 계약한 선수입니다.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지도 못했고 A+에서 첫 마이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지금 아직 유월 초다. 시즌 시작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시점인데 아무리 유망하다고 해도 콜업은 너무 빠르다. 프런트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감독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휴! 미친··· 흠흠. 그래도 최소 몇 경기는 했을 거 아닌가. 그런 사정이라면 표본이 작은 건 어쩔 수 없지.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감안하고 듣겠네. 솔직한 자네 의견을 말해주겠나?”

감독으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프런트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분란의 씨앗이 된다. 투수코치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몇 장을 뒤적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A+의 등판 기록은 단 두 경기입니다. 두 번 다 선발 등판했고 8이닝 4안타 1실점과 두 번째 경기는 퍼펙트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구 수가 굉장히 적었습니다. 퍼펙트가 나온 경기도 90개를 채 던지지 않았습니다. 무수한 땅볼을 양산했죠. 하지만 리그의 수준을 생각할 때 기록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그렇지.”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다. 그 정도 임펙트를 주지 못했다면 이런 속도의 콜업이 이루어졌을 리가 없다.

“AA에서는 어땠나?”

“여기부터 좀 이상해지는데 갑자기 선발을 포기하고 불펜투수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쪽 감독에게 물어봤는데 본인의 의지였다고 합니다. 프런트에서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결과가 괜찮았나 보군 이렇게 콜업된 걸 보면···”

터무니없이 이루어진 일은 아닌 것 같아 감독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투구 스타일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불펜 전향 후 갑자기 K/9(9이닝당 삼진)가 치솟았습니다.”

“그거야 보통 그렇잖아.”

“통상적인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선발일 때 K/9은 6.5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게 AA에서는 18이 넘습니다. 두 배도 아니고 거의 세 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감독은 이제야 투수 코치가 말한 표본이 적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 맞았다.

“그런 건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래도 AA에서는 기간이 좀 있었으니까 등판이 제법 있었을 게 아닌가.”

“첫 등판이 4월 21일, 마지막 등판이 6월 9일이었습니다. 49일간 모두 22이닝을 던졌습니다. 다만 이 기간 중의 기록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실점도 없고 안타도 없고 심지어 볼넷도 없습니다.”

“뭐라고?”

이건 좀 놀랐다. 과연 프런트에서 선물상자를 빨리 열어보고 싶어 할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처음의 놀람이 지나고 나자 곧 이성적 판단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비슷한 기록을 어디서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전혀 없었던 일은 아니잖아.”

“그렇죠. 그래서 판단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 AA 타자들은 패스트볼에 대한 타격은 어느 정도 되지만 변화구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죠. 그것의 극복이 메이저 콜업의 기준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AA에서 커리어가 끝나는 게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거기에서 운명이 갈린다. 약점이 있으면 버틸 수 없는 게 메이저리그다.

“So의 싱커는 플러스 플러스 등급이라고 판단합니다. 의도적으로 각 조절이 될 정도니까요. 생소한 궤적에서 나오는 리그 수준을 뛰어넘는 변화구라면 어쩌면 나올 법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것이 그런 약점을 극복한 선수들에게까지 통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구속이 느리니 정타는 어렵더라도 컨택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변 코치들은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들로서도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에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열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거로군.”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 일지 모른다는 점이죠.”

마우어 감독의 가슴에 아직은 막연한 불꽃 하나가 피어났다.

***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콜업이 되고 나니까 언제나 가슴 한쪽이 눌린 듯하던 느낌이 사라졌다.

“좋아. 하나 더···”

공 받는 포수가 베그웰이라는 백업이라고 들었는데 거침없이 공을 받아낸다. 그에 비하면 이제까지 봐왔던 포수들은···

‘아! 욕하지 말아야지. 걔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잖아. 그 정도밖에 못하니까 거기 있는 거지. 생각해보면 나름 불쌍한 애들이야.’

한창 흥이 오르고 있는데 그만 던지란다. 오랜만에 이틀 쉬어 힘이 넘치는데 너무 아쉽다.

원정 나간 팀을 따라가서 합류하지 않고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에서 이틀을 기다렸다 오늘 훈련에 나오면서 정식 합류했다.

감독과 코치들이 한참을 지켜보고 있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볼 거 다 보셨어요? 그래서 내 보직은 무엇인가요?’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지금이 무엇을 가릴 시기는 아니다. 시키면 패전 처리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어이! 루키 공 좋은데··· 타자들 머리 좀 아프겠어.”

투구를 마치고 조용히 돌아서려는 내게 포수 베그웰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가요? 어떤 면이 그렇다는 거죠? 혹시 개선했으면 하는 것은 없었나요?”

예전 마이너에서는 누가 이렇게 말을 걸어오면 ‘감사합니다.’ 정도로 답했었다. 그러면 대개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계속 지내야 할 곳이다. 그런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너에서는 선수들과 별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 팀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내게 그 팀은 빨리 떠나야 할 곳이었고 선수들은 가급적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하는 존재였다.

‘메이저에서 다시 만나면 좋을 소수의 선수들이 있긴 했을 테지만 그게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잖아.’

마이너는 평범한 사회생활의 범주에 넣기에는 너무 특별한 곳이었다. 긴장을 늦추면 금방 그들과 같아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오래 머물렀다면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 한둘 정도는 생겼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거기 머무른 기간이 너무 짧았다.

‘하핫. 콜업된 지 이제 삼 일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나도 참···’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안정감이란 게 생겼다. 절대로 다시 밑으로 내려가지 않을 거다.

군에서도 고참과의 관계는 무척 중요했다. 내 팀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꺼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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