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1화 (11/200)

11화. 워밍업 (2)

“이번에 대만은 메이저리거 없지?”

“메이저는 없는데 트리블A랑 더블A는 하나씩 있다고 하던데···”

“포지션이 어떻게 돼?”

“그럼 대만도 만만치는 않겠네. 더군다나 걔네들 홈이잖아.”

2027년 월드 클래식의 1라운드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네 나라가 풀리그 방식으로 겨룬 후 조 1, 2위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형식이다.

전력이 많이 떨어지는 중국은 논외로 하고 대만전의 결과가 다음 라운드 진출의 열쇠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대회 개최가 다가올수록 훈련 중 휴식시간의 잡담 소재마저 시합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네. 일본전은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력 차이가 확연한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른바 자이언트 킬링은 찬사를 받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면 세상에 약팀은 없다. 하지만 야구에서는 그 빈도가 잦은 편이다.

역사가 오래되고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뚜렷한 메이저리그도 우승팀의 승률은 70%가 되기 힘들고 꼴찌팀도 승률 30% 이하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월등한 한 명이 경기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다른 종목에 비해 크다는 방증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 이런 말 못 들어봤어? 투수들이 이딴 소리나 하고··· 이것들을 그냥···’

쉬고 있는 투수조를 둘러봤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내 편 들 놈이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 후배 녀석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 녀석은 아무래도 찝찝하다.

‘저놈은 지렁이의 유력 용의자라서···’

지금은 군대 말년이랑 비슷하다. 곧 새 세상을 얻기 일보 직전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 하는 데 앞장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쫄아서 이러는 건 아니다.

첫 게임은 중국, 두 번째 게임이 일본이다. 어제 대만으로 왔다. 첫 게임은 3일 뒤다. 난 4일 뒤 출격 예정이다.

***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영수는 계투로 데려온 거 아니었어요? 선발이라니···”

투수 코치는 무척 당황한 듯 되물었다.

“내가 몇 달 데리고 있으면서 선발로 훈련시켰어. 어차피 투구수 제한이 있어서 투수 한 명으로는 안 될 거잖아. 오프너로 생각하면 되지. 잘 던지면 계속 쓰면 되고···”

오프너는 선발 투수 대신 1~2회를 막아주는 불펜 투수를 선발처럼 제일 먼저 내보내는 전략이다. 2018 시즌 정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투수 운용 방법으로 시도되었다. 시작된 지는 좀 되었지만, 아직 대세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고 감독은 전형적인 올드 스쿨의 야구관을 가졌었다. 선발을 중시하고 웬만하면 교체 없이 경기 후반까지 끌고 간다. 오프너는 통계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활용성을 중시한 투수 분업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허헛.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나 보네요. 감독님에게 오프너 얘기가 다 나오는 걸 보니···”

타격 코치가 웃는다.

고 감독은 직설적인 이야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같이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날렸다.

“크큿. 야! 빳따쟁이가 어딜 끼어드냐? 우리 때만 해도 감독님이 한 말씀 하시면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고 박수 치기 바빴는데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어서···”

“참! 이 년씩이나 선배 되는 분 앞에서 요즘 애가 죽을죄를 지었네요. 이론은 신삥인데 생각이 노인네가 다 되셨구려.”

“야! 이 년이면 니가 기저귀 차고 돌아다닐 때 나는 동네 골목에서 놀았고 니가 우유 마실 때 음주 가무가 가능했던 나이 차이야. 어디서 하늘 같은···”

고 감독은 화제를 돌리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소영수 볼이 나름 괜찮은 건 걔가 대학 다닐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걔는 약점이 너무 뚜렷해 길게 끌고 갈 수가 없어요. 프로에서 선택받지 못한 것도 그것 때문 아닙니까?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는 최상급이라고 생각해 걔 발탁에 다들 반대할 때 저는 찬성했었습니다. 그런데···”

친목질로 화기애애해진 회의 분위기를 투수 코치가 정색을 하며 깨고 나섰다. 모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져 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감독의 부드럽던 어투가 뾰족해졌다. 투수 코치는 감독과 프로 때 같은 팀의 선발과 마무리를 맡아 팀을 정상권으로 이끌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친분보다 상당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과거 팀의 간판이 누구냐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던 사이였다.

“감독님. 아니 선배. 소영수가 그렇게 자신 있습니까? 걔를 선배가 신경 써서 투수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알겠고 대학 졸업하고 데려가는 데 없어 군으로 빠지게 된 것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애정 있고 키워주고 싶어도 여긴 국가대표팀 아닙니까?”

“넌 내가 사심으로 걔를 쓴다고 생각하는 거냐?”

고 감독에게 사심은 있었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일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가장 이길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팀을 이끌어 갈 것이다.

소영수를 감춰두고 있었던 건 자신의 성과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싫어서였다. 소영수는 온전히 자신이 발견했고 자신이 키워온 선수다. 그것에 투수 코치 같은 사람이 숟가락을 얹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자신의 프로팀 입성에 경쟁자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름 생각이 있으시겠죠. 하지만 그 생각이란 게 객관성을 잃어버렸어요. 제자 사랑, 후배 사랑도 좋지만 그렇게 애정이 일방적으로 흐르면 곤란하지요.”

“그러니까 투수 코치 생각은 내가 개인적 관계를 공적으로 연결시키려 한다는 거네. 내가 4년을 가르쳤으니 가장 잘 알아서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드나?”

이건 하늘이 두 쪽이 난다고 해도 진실이다. 물론 졸업 후 군 생활을 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연한 계기로 투구감을 잡은 것 같지만, 자신이 습득시켜 놓은 4년간의 기본기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감독님. 제발 이성을 챙기세요. 소영수에게 원 포인트 릴리프 이상의 역할을 맡기는 건 곤란합니다. 한 이닝도 위험해요. 위기상황에 한두 타자 쓰는 것에는 적극 추천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랬다간 우리 안목까지 의심받습니다.”

고 감독의 머릿속에서 징글벨이 울린다. 술잔에 얼음을 채우고 짤랑(Jingle)거리는 소리,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를 모두 징글(Jingle)이라고 한다 들었었다. 오늘은 축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경쟁자는 자연 도태될 것이다.

“이 팀을 이끄는 책임자는 감독이야. 난 내 책임을 코치들에게 미루지 않아. 소영수는 일본전에 오프너로 쓸 거야. 오프너지만 난 그 녀석이 최소 5회는 감당할 것으로 믿네. 이 전략을 시합 전 인터뷰에서 공개하지. 코치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독단으로 한 일이라고.”

일본전이란 말에 투수 코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의했다. 모두 내심 일본전은 승산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일본 프로 1군을 상대로 2군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수를 선발한 팀이 이긴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 감독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영수 잘할 것 같아요.”

감독의 쫄리면 뒈지시던가 신공 시전에 반대대열에서 벌써 이탈자가 생겼다.

“다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말들을 하세요? 정상적으로 이기기 힘든 상대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쓰자는 거잖습니까? 영수를 가장 잘 파악하시는 분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무엇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전 감독님 눈을 믿습니다.”

난세에 충신 난다라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감독의 직감은 이것이 물타기라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주장 앞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수비코치는 난 중간이 좋아를 외치고 있다.

“그래 한번 해보자고. 일본전은 내 똥고집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좀 넘어가 줘. 그것과 상관없이 최종전만 이겨내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이 마냥 희망만은 아니잖아.”

감독은 극한 대립은 피하려는 듯 슬쩍 자신을 낮춰 화해할 뜻을 내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전 투수 소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영수에게 오프너를 맡기는 건 굳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하십시오. 하지만 그 게임에 셋 이상의 투수를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투수코치는 냉정히 그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하지. 일본전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겠지 소영수 포함 투수 셋 그거면 돼.”

수비코치의 너스레로 풀어지려 하던 회의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일전불사다. 감독은 이번 기회에 투수코치를 완전히 도태시켜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건방지게 끝까지 맞서려는 후배에게 위아래를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

“지금 누가 몸 풀고 있어?”

“형태하고 준열이가 즉시 투입 가능합니다.”

“일단 타임 불러!”

벤치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국과의 첫 경기는 3회까지만 하더라도 순조로웠었다.

첫 회 2득점을 시작으로 매 이닝 점수를 냈다. 잘 맞은 타구들이 야수 정면으로 향하는 불운 아닌 불운 속에서도 4점을 만들어 냈다.

상대 투수는 만만했고 타자들은 허약해 보였다. 우리 선수들은 여유가 넘쳤다. 그랬었는데···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나서부터 우리 투수의 공이 맞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 급하네. 급해.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저렇게 성급하게 승부를 들어가면 어쩌자는 거야.’

이런 생각이 맞을 때 맞더라도 주자를 모아선 곤란하다고 바뀌는 데 한 회도 걸리지 않았다.

터지기 시작한 상대 타선은 좀처럼 그 위력이 줄지 않았다.

“저거··· 저거··· 1루로··· 타자 주자 잡아.”

이제는 내야수들까지 냉정을 잃었다. 야수 선택으로 다시 주자 1, 2루다.

바뀐 투수가 어떻게 투아웃을 잡아내더니 또 주자가 쌓이기 시작한다. 현재 스코어는 4:5로 오히려 한 점 뒤졌다.

‘잘 맞은 우리 타구는 정면으로 날아가고 저것들은 다 빗맞는데··· 이상한 데로 날아가서 안타가 되고···’

다시 투수가 바뀌었다. 이번 회에만 세 번째 투수다. 내가 주로 이런 상황에서 투입되던 원 포인트 릴리프여서 그런지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첫 구로 뭘 던져야 하지? 직구, 변화구? 어디로?’

상대도 우리 데이터가 없겠지만 우리도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커맨드보다 구위가 뛰어난 투수가 필요하다.

바뀐 투수는 이준열. 볼 빠르고 제구는 별로인 아직은 가능성만 넘치는 신예다.

‘나라면 어떻게···’

생각하다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가운데만 보고 던지던 투수였다. 볼 배합을 생각해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 몰라 어떻게든 막아. 자~알 던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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