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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0화 (10/200)

10화. 워밍업 (1)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야구밖에는 없다. 야구만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 정도 세파에 주저앉는다면 의지박약이다. 어스름한 새벽부터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학교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주변에 관심을 끊으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끊었다. 내 삶은 오직 훈련뿐이었다. 뜨거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영수 형, 같이 가요.”

태경이가 뒤뚱거리면서 계단을 올라왔다. 포수는 짐이 많다. 그는 큰 가방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가방 하나는 들어준다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형이 들긴 뭘 들겠다는 겁니까? 어깨 생각하세요.”

“왼쪽으로 들면 괜찮다니까.”

“그러다 밸런스에 이상이 생기면··· 진짜 그렇지 않더라도 형이 가방을 어깨에 올리는 순간부터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냥 내가 다 들어야 마음이 편해요.”

우리 학교 재학생 중에서는 유일하게 태경이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얘도 예전부터 야구 잘한다고 소문난 녀석이다.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에 뽑혔지만, 순번이 너무 뒤라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었다. 며칠 뒤 있을 2차 드래프트에서 앞쪽 순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감독이 제일 믿는 녀석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계속 그와 호흡을 맞춰 훈련을 했었다. 현재로선 내 공을 가장 많이 받아본 포수였다.

‘감독이 태경이까지 뽑은 걸 보면 정말 올인하긴 하나 보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내 손을 빌리지 않고 방에 들어갈 때까지 그 큰 가방 두 개를 직접 메고 날랐다.

“어이구!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좀 잡지. 무슨 이런 곳을··· 그래도 방은 호텔보다 넓네요.”

대표팀 소집 훈련 장소로 모 회사 연수원을 빌려 쓰게 되었다. 그룹 산하 프로팀이 이곳에서 가끔 훈련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엘리베이터만 있으면 딱인데··· 이곳은 너무 포수 차별적인 마인드로 지어진 곳이야.”

“네가 나중에 이 팀에서 스타가 되면 네 전용 엘리베이터 하나 만들어 주지 않겠어?”

“하핫.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이 팀에서 날 뽑으려나 모르겠네요. 삼 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 요구하려면 아주 많이 잘해야겠어요.”

태경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 팀도 널 선택할 가능성 있지 않니? 포수 자원이 그렇게 넉넉한 팀이 아니라서 괜찮지 않을까?”

“그거야 모르죠. 전 어디나 괜찮아요. 계약금이나 한 이억 주면 어떤 팀이라도 충성심을 끌어낼 수 있어요. 형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예요? 감독이 뭐라고 언질 준 거 없어요?”

“감독이 이번에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만 해도 나한테는 큰 은혜를 베푼 거야. 일단 이번 대회에서 잘해야지. 그래야 누구든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 일단 그러고 나서 생각하려고.”

아무리 직속 후배라지만 모든 것을 오픈할 수는 없다.

“그건 걱정도 안 돼요. 누구든 형 던지는 것 잠깐만 보면 눈이 뒤집힐 텐데요.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형은 메이저리그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메이저리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나도 미국 가고 싶다. 그건 야구를 시작하면서 선수 누구나 가지는 꿈이다. 나도 한때는 꿈꿨다.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상상···

‘그게 중딩 때는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뀌고 고딩 때는 국내 드래프트라도 뽑혔으면 좋겠다가 되었었지. 대학 때?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왔는데 다시 내게 메이저리그를 이야기하는 후배가 생겼다.

“꿈은 꿈이라서 아름다운 거야. 지금 내 현실을 보라구. 메이저리그? 하핫. 고맙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줘서··· 잘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네.”

“그게 아닌데··· 형 진짜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가능성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나도 감독에게 내 공으로 메이저는 어렵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아!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 본 것도 아니고··· 어쩌면 통할지도 모르지. 나도 네가 고졸에 이 정도 공을 던졌다면 한번 도전해보기를 권유했을 것 같기는 해.”

“그럼 나이 때문에···”

“그 이유가 가장 크지. 젊음이 영원하지는 않잖아. 확실한 곳에서 전성기를 보내는 게 낫지 않겠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는 니 공이 국내 리그에서 통할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

그 말은 내 공이 애매하다는 뜻인 것 같다.

“메이저 꿈 좋지. 넌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이 지긋지긋하지 않니? 넌 먼 길을 돌아왔잖아. 이제 확실한 길이 눈앞에 있는데 또 돌아갈래? 어쩌면 니가 일본전에서 잘 던지면 이놈 저놈 다 찔러볼 거야. 중심을 잡아야 해.”

확실히 공감한다. 아직 품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행운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걸 확실히 움켜쥐고 싶었다.

“괜히 갔다가 마이너에서 몇 년 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솔직히 언더스로우가 내구성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잖아.”

과학적으로 정확히 증명된 건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롱런한 언더는 드물다. 나도 이제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언질을 주고 교감을 주고받은 곳이 있다. 내가 레전드 대접을 받는 곳이야. 거기면 너도 괜찮지 않니? 네 할 일은 일본전에서 뭔가를 보여주면 된다. 뒷일은 내가 다 책임지마.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되는 거야.”

감독이 은근히 알려주는 남부 지방의 그곳이라면 내가 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상당한 보상을 해줄 만한 곳이다. 감독의 말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과거에는 주어졌던 기회를 내 스스로 걷어찼지만, 다시 찾아온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다. 후배가 선배 기 세우려 하는 말에 흔들리기에는 짧은 시간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맨날 똥볼만 찼지. 이번엔 다를 거야.’

일단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해야 한다.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현실주의자 우리 감독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최선의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인간성에 대해 신뢰를 가져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의 욕망은 믿을 수 있다. 내 직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태경아 지금은 일단 시합에만 신경 쓰고 싶어. 거기서 못하면 지금 이런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우습게 되지 않겠니?”

“그건 그렇겠네요. 형은 잘될 거예요.”

곧 훈련이 시작되고 가끔 연습 게임도 잡혔지만 난 개점 휴업이었다. 감독은 철저히 날 감추었다.

“이놈 저놈 끼어들면 말만 많아져. 그럼 잘될 일도 이상해져. 넌 신경 쓰지 말고 태경이 하고 정해진 스케줄 대로 훈련만 소화해. 여기서 네가 제일 선배잖아. 귀찮게 구는 놈이 있더라도 무시하면 되겠지.”

이번 대표팀은 젊은 팀을 표방하는 팀이었다. 내가 고졸로 프로가 되었으면 지금 칠 년 차는 될 것이다. 나를 제외한 제일 고참은 고졸 5년 차였다. 태경이도 여기서는 앞에서 세는 게 빠르다.

‘빠돌이, 느림보 또 뭐였더라. 이름도 기억 안 나네. 아! 고등학교 후배라는 놈. 지렁이 뭐라는 그놈. 그놈은 색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휴! 여기서 티 내봐야 나만 바보 되지. 관두자 관둬. 찾길 뭘 찾아.’

지금도 무수한 뒷말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들과 별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표팀에서 과묵한 선배를 연기했다. 형식적인 인사 이외의 대화는 태경이 하고만 한다. 코치들에게 감독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그들도 난 노터치였다.

대회 전 프로 2군을 상대한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1이닝을 던졌다. 패스트볼 10개로 한 회를 마무리했지만 겉돌고 있다는 느낌만을 받았을 뿐 무덤덤했다.

“애새끼들 너무하네.”

숙소에 오자마자 태경이가 발끈했다.

“뭐가?”

“몰라서 물어요? 내야수들이 공을 쫓아가지 않잖아요. 수비 범위가 좁아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닌 게 뻔히···”

시합 중에 아무 말 안 하고 공만 열심히 잡더니 내심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투수가 인플레이 된 공에 관여할 수는 없잖아. 투구 점검 차원이었으니까 괜찮아.”

“참! 형은 마음 편해서 좋겠어요. 하긴 이게 별 의미는 없겠죠. 형이 전력으로 던진 것도 아니고···”

딱 대학 때처럼 던졌다. 결과도 대학 때처럼 나왔다. 계속된 내야 땅볼의 생산. 그때와 다른 것은 내 마음이었다.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무성의한 수비의 탓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안타가 두 개 나왔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사실은 십구가 아니라 5구 정도에 이닝이 끝났어야 했다.

“정면으로 오는 것만 잘 잡아주면 돼. 계속 애매한 곳으로 날아가는 거야 운수소관이지. 그것까지야 어쩌겠어. 니 눈에 보일 정도면 감독이나 코치 눈에 안 보이겠니? 애들이 아닌데 정식 시합에서 자기 무덤 파는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그만하자. 내가 더 잘하면 돼.”

“알았어요. 형. 학교만 같으면 내가 다 모아서···”

“너 프로 가야지. 거기 가면 걔들이 니 프로 선배잖아. 평소에 잘해 줘라.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건 진짜 그렇다. 내가 이렇게 될지 나도 몰랐었다.

“2군에서 오래 있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 이번에 사오 년 차들 어떻게 대접받는지 잘 봤어요. 전 그럴 꼴 나지는 않을 거예요.”

2군의 일이 년 차들은 연차가 오래될수록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좋게 말하면 일이 년 차가 가장 활기차고 나쁘게 말하면 겉멋만 들어 건방졌다.

‘아무려면 어때. 이 대회가 끝나면 나도 입단하게 될 거야. 나 역시 2군에는 가고 싶지도 않아.’

베이스볼 클래식은 4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계승한 대회다. 초창기에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도 간간이 출전하는 대회였지만 부상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주로 투수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시즌 시작 전 피칭을 위해 몸을 만드는 과정 중에 실전 피칭을 하게 되면서 실제로 여러 선수들이 대회 참가 후 후 시즌을 망치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속출했다.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리그가 활성화된 각국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고액 연봉자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 명문팀들은 소속 선수의 대회 참가를 금지시키는 등 대회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서 요즘은 더블A 중심으로 구성되는 미국보다 어쩌면 나름 정예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이 더 전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쪽도 투수는 그저 그렇지. 내가 잘 막아내기만 하면 아무리 우리 팀 전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최소한의 점수는 뽑아주지 않을까?’

이번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완전히 1군 선수가 제외된 것은 처음 있는 경우라고 한다.

이제 실전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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