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팔자소관
준비가 다시 갖춰졌다. 가벼운 연습구를 몇 개 더 던졌다. 감독은 한쪽으로 물러나고 수비진 없는 시뮬레이션 피칭이 시작되었다.
“영수 형. 잘 잡아줄 테니까 편하게 던져요.”
태경이가 미트를 정중앙에 크게 펼쳤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인은 없다. 대학 때 나는 참 포구가 쉽고도 어려운 투수였다.
실전에서 던지는 구종이 하나밖에 없었고 제구가 안 되어 공이 어디로 갈지 나도 몰랐다. 포수로서는 어디로 올지 모르는 볼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잡아내야 했었다. 그나마 구속이 빠르지 않고 변화하는 각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예전의 포수 경철이는 곧잘 잡아냈었다.
“헛!”
툭-
어정쩡한 헛스윙과 포구 미스가 동시에 나왔다. 이번에 회전이 좋았다. 손끝에서 시작된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아이 참! 형. 쏘리. 이거 장난 아니네.”
포수 태경은 자신의 실수에 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이게 뭐야!”
타자 수민은 투덜거렸다.
“야! 니들 똑바로 안 할래?”
감독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몹시 흐뭇하다.
‘헛스윙을 해? 교타자로 이름 높은 박수민이가··· 흐흣. 확실히 각이 커지긴 했네.’
난 땅볼을 유도하던 투수였다. 헛스윙을 만들어 낼 만큼의 구위는 없었다.
‘진정하자고 타자가 첫 구라서 생소해서 그랬을 거야. 곧··· 음. 다른 걸 한번 던져볼까?’
갑자기 변화구를 하나 던져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주저하지 않았다. 이젠 잃을 것이 없다.
“앗!”
“엇!”
다시 포구 미스가 나왔다. 포수는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아웃코스로 좀 많이 벗어났지만 통상적으로 못 잡을 코스는 아니었다.
“아! 진짜··· 니들 뭐 하는 거야? 지금 장난 하냐?”
감독이 목소리가 더 커졌다. 포수보다 타자의 엉거주춤한 모습에 짜증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그는 성질을 잘 내지는 않았지만, 한 번 폭발하면 곡소리가 났다. 평소에 실실거린다고 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감독님 그게 아니고 각이···”
“죄송합니다. 그런데 몸에 맞을 것 같았습니다.”
후배들은 엄청나게 억울할 것 같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감독의 위치가 그라운드 오른 쪽에 치우쳐 있어서 그 각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봤다.
‘하아! 이게 뭐야? 내가 뭘 던진 거야.’
충동적으로 슬라이더를 던졌었다. 타자의 인코스에서 아웃코스를 가로지르는 휭 슬라이더의 형태가 분명하게 나타났었다. 변화하는 각이 얼마나 컸는지 아웃코스도 많이 벗어났다.
내가 던지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마운드에서 오른손을 들어 물끄러미 바라봤다.
감독은 성질을 부리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소영수. 다른 거 던졌어?”
“저기··· 슬라이더 던졌는데요.”
그게 슬라이더였는지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립은 그랬었다.
“야! 말도 없이 변화구를 던지면··· 뭐? 니가 변화구를 던져?”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어쩌다가 이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그거 하나 더 던져봐.”
“저기 감독님. 프로텍터라도 걸치셔야···”
“야! 괜찮아.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가슴 쪽은 니가 막아줄 거잖아. 일단 공만 한두 개 볼 거니까 상관없어. 굳이 그거 가지러 갈 필요 없어.”
궁금증이 솟아올랐는지 감독이 마스크만 얼굴에 대고 심판 자리에 서서 공을 빨리 던지길 재촉하고 있다. 태경이에게 예비 마스크는 하나 더 있었다.
‘음. 타자가 스윙 안 할 거니까 상관없겠지.’
파울 팁이 아니라면 그렇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소영수. 빨리 던져봐. 어떤 공인지 한번 보자. 니들 헛소리한 거면 각오해라.”
감독은 예전처럼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다.
“아! 실수···”
텅-
감독의 마스크가 날아갔다. 감독의 무릎이 꺾어지며 몸이 포수의 어깨 위로 걸치듯 무너져 내렸다.
“헉!”
하도 재촉해대는 통에 서둘러 던진다는 것이 그만 커브 그립을 잡고 던져버렸다.
“감독님!”
마스크 위인 것 같지만 감독이 공에 직격 당했다. 제대로 쓰지도 않고 아래를 잡고 얼굴에 대고만 있던 마스크였다.
미친 듯이 홈 플레이트를 향해 뛰었다.
“흐··· 업 슛··· 이었어. 환상적···으로··· 치솟았어. 흐흐흐.”
감독의 곁에 이르렀을 때 희미한 웅얼거림이 들렸다. 순간 감독이 마스크 위가 아니라 머리를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내가 던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이고 그래도 다행이다. 헛소리라도 하는 걸 보니 죽지는 않겠네.’
“말씀하시지 말고 심호흡 좀 해보세요.”
“머리가 좀 울리긴 하는데 괜찮아. 나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아마 급작스런 충격으로 인해 길항작용을 해야 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군대에서 배웠던 응급처치 요령을 실행해야 할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이런 어려운 용어들이 막 떠오르고 나도 제정신은 아닌가 봐.’
“다른 건 뭘 더 던질 수 있지?”
“네? 지금 그런 말씀 하실 때가···”
머리에 맞은 것이 확실한 것 같다. 큰일이다.
‘아이고! 사람이 반병신이 되어버렸으니 피해보상 규모가··· 어쩌지? 이제 부자도 아닌데··· 그런데 이런 경우에 내가 피해보상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내가 던진 공에 맞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내 탓이 아니잖아.’
감독이 불쑥 몸을 일으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머리가 조금 울리지만 이제 괜찮아. 영수야 뭐 하니. 공 던져야지.”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후유증은 심각할 듯싶다. 스스로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휴! 할 수 없네. 아무리 내 처지가 이렇게 되었지만, 요양소 정도는 보내 드려야···’
“태경아 프로텍터··· 그거 하나 가져와야겠다.”
태경이가 주저주저하며 대답을 한다.
“저··· 감독님. 지금 일단 안정을 취하시고 병원을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아! 말 많네, 주장. 시키면 시키는 대로 좀 해.”
갑자기 고함이 터져 나온다. 평소 잘 나타나지 않던 꼰대 티가 이런 데서 드러난다.
“아··· 옙.”
감독은 큰 소리를 내서 머리가 울리는지 어느새 한 손을 머리에 대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휴! 일단 공을 봐야지. 병원은 나중에 가도 되고··· 우리 때 이 정도는 침만 바르고 시합도 뛰었는데 요새 애들은 결기가 없어서··· 영수야. 안 그러냐?”
“네? 아··· 예. 허헛. 뭐··· 그렇죠.”
진짜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다. 하는 말이 평소 레퍼토리와 똑같다.
감독의 재촉에 못 이겨 다시 마운드에 섰다.
“패스트볼부터 던져봐. 다섯 개는 지금처럼 부드럽게, 뒤에 다섯 개는 제구에 신경 쓰지 말고 100% 힘으로 세게 던져.”
“넵.”
이제 타자는 없다. 수민이는 타석에서 물러나 스피드 건을 들고 서 있다.
“박수민. 하나 던질 때마다 속도 불러라.”
“예.”
감독의 저런 모습은 재학 중에도 본 적이 없었다.
퍽-
“128”
퍽-
“127”
포수 태경이가 이제 적응되었는지 능숙하게 공을 잡는다.
퍽-
“131”
퍽-
“130”
퍽-
“132”
속도가 그저 그렇다.
‘세게 던지면 얼마나 나올까?’
80% 힘으로 이 정도라면 140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하게는 나올 것 같다.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구속이 기대에 못 미쳤나 보다.
‘좀만 기다려 봐요. 제가 뭔가를 보여 드리···’
“소영수. 어떻게 된 거야?”
‘아! 저 꼰대. 성질도 급하시지. 자기가 부드럽게 5개 던지라며··· 그래 놓고 이렇게 말을 하면 곤란하지.’
말을 자꾸 바꿔서 짜증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감독은 왕과 같은 존재다.
“이제 세게 던질게요.”
“그게 아니라 너 지금 어디 보고 던지고 있어?”
‘아! 진짜··· 말하는 대로 다 하고 있잖아요. 뭐가 불만이에요? 저 양반 예전보다 더 심해졌네. 무슨 변덕이 죽 끓듯이··· 응?’
분명히 무엇인가 이상한데 뭐가 그런지 얼핏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감독 말에 대답은 해야 한다.
“어딜 보긴요. 원래 가운데··· 헐! 이럴 수가···”
마음속 말이 나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 나왔다. 제구 문제 때문에 나는 대학 시절 내내 가운데만 보고 던져왔었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던졌는데 지금 다섯 개가 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내 제구 능력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쩐지 포수가 너무 잘 잡더니만···’
다시 계획이 변했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인코스, 아숫코스, 높게, 낮게···
‘이거 4분할도 아니고 6분할··· 아니야. 더 세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수야. 어떻게 된 거냐?”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냥 던지고 싶은 곳으로 공이 가네요. 허허허.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이것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특출한 선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고 하더니 왜 그런지 비로소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것저것 감독의 주문대로 던지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많이 던졌다. 거의 백 구는 던진 것 같은데 별로 무리한 느낌이 없다. 이렇게 많이 던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만하자. 나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되네. 며칠 후에 다시 한번 보자꾸나. 그리고 아이싱··· 태경이는 영수 아이싱 좀 도와주고··· 영수 너 내일부터 훈련 나와라.”
“예? 여기요?”
감독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졸업한 지가 언젠데···”
“졸업생이건 재학생이건 무슨 상관이야. 내가 부르고 싶으면 부르는 거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나와.”
“아··· 예. 그런데 저 야구 그만둔 지가···”
“아! 오늘 이놈이나 저놈이나 말 많네. 네가 잘했으면 그만뒀겠냐? 지금 잘하잖아. 그럼 다시 하면 되지. 긴말하게 만들지 말고 나와.”
“예.”
감독의 꼰대질과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만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히 야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작은 기대로 공을 봐 달라고 감독에게 부탁한 것이다. 막연한 기대가 최상의 결과로 나타났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감독은 언더스로우 피처로 KBO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레전드였다. 그는 일반적인 가능성 정도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 말씀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상당한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생활비도 있고 그리고···’
오늘 던진 공을 꾸준히 던질 수만 있다면 뭐가 돼도 될 것 같다.
‘이 정도가 끝일까?’
투구 연습을 따로 해왔던 것도 아니다. 훈련하기 따라서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가 되면··· 그래. 감독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육성 선수라도 넣어 준다면···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