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이게 무슨 일이고
아저씨들 이십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년 만에 첫 구를 가볍게 던졌다. 그리고 이상함을 바로 알아챘다.
‘응? 이게 뭐야?’
“소영수. 폼은 그대로네. 쟤가 대학 때···”
그래도 가까이서 보겠다고 마운드 근처에 투수 하는 몇 명이 붙어 서 있었다. 진수 형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어이! 강 사장 정신 차리자. 세게 던지지도 않는데 못 잡으면 어떻게 제대로 공을 던지겠어?”
포수 잘못이 아니다. 그건 분명했다. 구속은 높지 않았지만, 공의 낙폭이···
‘헉! 내가 뭘 던진 거야?’
내 속구가 투심성의 테일링을 가지기는 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대학 리그에서 계투로는 제법 잘한 축에 들었었다. 하지만 내 공은 맞춰 잡는 공이었지 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의 변화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게 되었다면 나는···
“허헛! 선출 공이 확실히 다르네. 소 코치. 편하게 던져 이번엔 내가 어떻게든 받아 볼게.”
포수를 해주시는 강 사장이란 분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내 귀에 그 말은 들어오지도 않는다.
‘어떻게 던진 거지? 우연이겠지. 하나 더 던져보면···’
투구 시범은 곧 끝났다.
열 개 정도를 던졌는데 포수가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다. 아저씨들의 감탄 어린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당황하고 말았다.
몇 구를 던지고 나서야 뭐가 달라졌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감이 변했다. 원래는 쓰리쿼터를 낮게 던진다는 느낌으로 던졌는데 지금은 언더스로우를 높게 던진다는 느낌이었다. 미묘한 변화인데 공이 확 변했다.
“이럴 수가 있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그건가?”
저절로 방언 같은 혼잣말이 터져 나온다.
‘아니야. 이건 제구가 개판이던 강속구 투수가 어느 날 갑자기 감 잡는 정도가 아니잖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머리는 멍하고 가슴만 두근거린다. 내 패스트볼이 마치 종슬라이더처럼 움직였다. 그것도 역방향으로···
‘구속은 120 후반 정도 나온 거 같은데··· 그거야 몸도 덜 풀리고 오랜만에 던진 거라서 그럴 테고···’
정식으로 투구 훈련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운동은 꾸준히 했었다. 야구를 쉬었다고는 하지만 큰 근손실은 없었을 것이다.
‘체중이 줄어서 오히려 밸런스가 좋아졌을까?’
입대 전 늘어지던 뱃살이 지금은 없다. 아마 그 때문에 미묘하게 투구폼 자체가 변했을 수도 있다. 이 년 동안 공을 던지지 않아서 예전의 폼 비슷하게 던지기는 했지만 다르긴 달랐을 것 같다.
‘리셋된 투구폼이 지금 몸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변한 건가? 아! 그리고 손목···’
다쳤던 손목이 많이 풀어졌지만 아직은 부자연스럽다.
‘아마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나 공을 챌 때 손목의 각도 같은 것들이 분명히 달라졌겠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런 공을 던질 수 있었으리라. 이 생각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 말고는 그 공 설명이 안 된다.
맹렬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이것이라면 한 번 더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나게 열심히 할 때는 죽어라고 안 되더니 다 늦게 이게 무슨···’
“진수 형. 고마워요. 잘되어서 꼭 보답할게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만 다시 야구 하고 싶어진 거야? 그럼 좋은 일이고··· 히힛. 잘돼서 보답하지 말고 평소에 잘해라. 우리 아버지 말씀이 나중에 보자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말이라고 하더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무래도 내 얼굴에서 생각이 다 드러나는 모양이다. 투수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아직도 오전이다. 바로 대학 때 감독을 찾아갔다. 그 양반이라면 이것저것 안 따지고 정확한 답을 해줄 것 같았다.
감이란 것은 왔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없어질 수 있다. 마음이 급했다. 빨리 공을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이 감각을 몸에 새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 어쩐 일이냐? 뭐? 벌써 제대했어? 하긴 나 때는 30개월이었는데 지금이야 20개월 아니냐. 그거야 금방이지. 짧게나마 고생했네. 나 때는···”
정말 저 말투는 그나마 조금 있던 정도 떨어지게 만든다.
“저기 아시안 게임 금메달 따서 군 면제 받으셨던 걸로 아는데··· 맨날 자랑하셨잖아요. 군 면제자에게 그런 말 들으니까 위화감이 장난 아니네요.”
“야! 내가 본의 아니게 면제는 받았지만, 훈련소는 똑같이 갔어. 4주씩이나 훈련받았다고. 그리고 면제라는 말보다는 군필자라는 더 듣기 좋은 말이 있는데··· 같은 뜻이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 나 때는···”
진짜 짜증스러웠지만 부탁할 놈이 굽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을 겨우 다물 수 있었다.
“근데 어쩐 일이냐? 진짜 제대했다고 인사하러 온 거야? 정말 군대에서 사람 되어 왔구나. 너 같이 잔정 없고 싸가지도 없던 녀석이 정말 많이 변했어. 나 때는···”
“아니, 제가 사람 아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적어도 예의 바르긴 했었잖아요.”
웬만하면 말대꾸 안 하려고 했는데 싸가지 없다니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그건 그랬지. 싸가지는 없는데 착하긴 했어.”
감독의 얼굴에 예전부터 질색했던 느물느물한 그 미소가 나타났다.
‘하아! 정말 어떻게··· 이 양반은 변하질 않아.’
“공 좀 봐주세요.”
이 양반에게는 말을 돌리고 할 필요가 없다라는 좋은 점이 있다.
“공? 너 군대에서 야구 했냐?”
“최전방에서 소총수로 빡빡 굴렀어요. 거기서 야구는 안 해요. 축구나 족구는 몰라도··· 아마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셨나 보네요.”
“아! 일빵빵 그거··· 나 때는···”
누가 들으면 월남전 참전 용사쯤 되는 줄 알겠다.
“일빵빵이라니요. 주특기 번호 세 자리 때 분이 아직 생존하고 계시네요. 전 그게 네 자리였을 때 분도 못 뵈었는데··· 흐흐흣. 지금 쓰는 여섯 자리가 된 지도 한참 전이라고 하던데··· 도대체 언제 적···”
“그래? 나 때는 그랬는데 세상 많이 바뀌었네. 그런데 무슨 공을 봐 달라고 그래? 제대하더니 쓸데없는 헛바람이 들어갔나 보구나.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감독이 얼렁뚱땅 말을 돌리며 공세로 전환했다. 꼰대처럼 말을 하긴 해도 사실 이 정도면 운동판에서는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양반이다. 그냥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뭐라고? 슬라이더 같은 움직임에다 그게 역방향으로 꺾였다고? 그럼. 싱커겠네.”
“싱커요?”
“그래 싱킹 패스트볼. 너같이 손가락 감각이 둔한 녀석이 그립을 변형해 던지지는 않았을 거잖아. 넌 투수를 몇 년을 했는데 그런 것도 모르냐?”
모르진 않는다. 다만 포심 그립으로 던졌는데 낙차 큰 싱커처럼 움직인다고 그걸 싱커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말이 된다면 그 공을 체인지업 혹은 스크류볼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실 회전 방향이 어떻게 되어서 그런 움직임을 갖는지 생각도 안 해봤다.
“원래 네가 던지던 그 투심도 일종의 하드 싱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움직임은 좀 작았지만··· 그립이야 사람마다 좀 다르잖아. 네가 던졌다던 그 공 보나마나 구속은 많이 느렸지?”
그건 그랬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양반이 그래도 언더스로우에 대해서는 국내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가? 투수 쪽에서 봐서 이상하게 보였던 건가? 단순히 볼 스피드가 떨어져서 움직임이 큰 것처럼 보였고 일반 아마추어 포수의 포구 실력 때문에···’
갑자기 기분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물어보러 왔으니 공은 한번 봐줄게. 내일 아침에 와. 오늘 공 던졌다며 푹 쉬고 내일 마음껏 던져봐.”
인심 쓰듯이 말하는데도 실망스런 기분 때문인지 무덤덤했다.
“예.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나 혼자서 급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의심과 확신이 번갈아 가며 밤새 나를 괴롭혔다.
“야! 그거 뭐냐?”
“뭐가요?”
감독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 많이 변했네. 요새 군대도 힘들긴 하나 보구나?”
마땅하게 입을 옷이 없어 군 체육복을 가지고 와 갈아입었더니 그러는 것 같았다.
“어휴! 명품족 소영수가 이런 촌빨 날리는 패션이라니···”
“이게 어때서 그래요. 이 년을 줄기차게 입었고 편하기만 하구만.”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르는 척 오랜만에 후배들과 뛰면서 몸을 풀었다. 나도 운동복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하나 사야겠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었다.
‘나 이제 변했다고. 쓸데없는 데 돈은 안 써.’
“이제 됐냐? 한번 던져봐.”
그라운드 옆 불펜에 자리가 마련되고, 이 학년 포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정도면 감독은 성의를 보여준 것이다.
휙-
퍼-엉.
셋 포지션에서부터 가볍게 시작했다. 투구 감은 어제 그대로다. 포수는 일부러 소리가 크게 나게 잡아준다.
가볍게 다섯 개쯤 던지고 나니까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와이드업은 정확하게··· 최대한 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휙-
툭-
포구 미스가 나왔다, 다섯 개를 더 던졌는데 시원한 포구음을 들을 수 없었다. 포수가 깔끔하게 잡아내질 못한다.
점점 공에 힘을 붙여 가는데 감독이 그만하라며 끼어들었다.
“오호!”
감독이 흥미가 올라오는 모양이다. 특유의 감탄사가 나왔다.
“경호야 그만하면 됐다. 태경이 하고 수민이 좀 오라고 해라. 태경이는 장비 갖추라고 하고 아! 그리고 스피드 건도 가져와라. 영수야 마운드로 가자.”
감독이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괜찮은 건가?’
태경이는 4학년 포수다. 수민이는 예전부터 1번을 쳤었다.
“시뮬레이션 피칭을 하라는 건가요?”
“내 눈으로 보기엔 괜찮은데 타자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 마운드에서 한 열 개쯤 더 던져봐.”
“예.”
감독에게서 긍정적 신호가 왔다.
통통통에서 퉁퉁퉁으로 심장의 울림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
“그게 전력 피칭이었냐?”
“아뇨. 한 80%쯤으로 던졌어요. 더 세게 던질까요?”
“음. 그래? 일단은 그대로 던져보자.”
이동하면서 감독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슴은 쿵쾅거린다.
‘감독이 이렇게 반응한다는 건···’
이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