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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한 이레귤러의 커브가 드러남-1화 (프롤로그) (1/200)

1화. 엄마가 그립다

프롤로그

각자의 인생에는 오르내림이 있다.

완만한 굴곡의 순탄한 인생. 이건 보통의 부모님이 자식에게 바라는 평범한 희망사항이다.

‘아닌가? 보통이 아닌 우리 엄마도 원했었잖아.’

나는 급격한 상승과 날카로운 꺾임을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내 인생의 커브는 남달랐다.

『에이징 커브. 나이(age)와 꺾이는 곡선을 말하는 커브(curve)를 합친 말로 운동선수가 나이가 들면서 신체 능력의 저하로 운동 능력과 기량이 하락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은 30대 중반부터 에이징 커브가 시작된다.』

백과사전 같은 곳을 찾아보면 보통 이와 비슷하게 나온다. 대개 그렇다.

문제는 내가 그 일반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30대 중반에 찾아온다는 에이징 커브가 난 10대 중반부터 문제가 되었다.

수없이 묻고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하느님, 부처님, 감독님, 부모님, 의사 선생님···’

이외에도 많다.

‘아! 중요한 걸 잊었네. 선녀 보살 아줌마. 왜 중요하냐면 가장 비용이 많이 들었거든···’

인생은 드라마라지만, 드라마 같은 인생은 몹시 피곤하다.

***

우리 집은 좀 살았다. 이야기하려면 복잡한데 오래전에 우리 엄마가 외국에서 우연히 뭘 좀 샀었다고 한다. 그 사연에 선대의 선녀 보살 할머니가 얽혀있다. 내가 보았던 보살 아줌마는 신딸이었단다. 아마 후계자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뒷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길다. 이쯤 되면 안 해도 대충 알 거라 생각한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우리 엄마가 한 번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면 이박삼일은 걸렸다. 스토리 진행을 위해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 때문에 재벌은 아니지만 졸부 비슷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우리 엄마는 선녀 무당을 맹신했다.

‘나중에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사는 건 쉬워도 파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 존버의 승리라나 뭐라나.’

어쩌다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개 우리 엄마를 무식한 아줌마쯤으로 생각하던데 사투리가 좀 심해서 그렇지 좋은 학교도 나오고 한때는 멀쩡한 회사도 다니던 나름 스마트했던 사람이다. 우리 엄마 무시하지 마라.

이렇게 마음이 허할 줄 알았으면 묘라도 만들어 모셔야 하는 거였는데 세상에 흔적 남기기 싫다는 무슨 도사 같은 유언을 남기는 바람에 화장해서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던 강가에 유골을 뿌렸었다.

이런 날은 묘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

‘엄마. 아빠가 연락이 안 돼. 아! 정말···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었지? 한 삼 개월쯤 됐나?’

제대하고 집에 갔더니 붉은 종이만 가득 붙어있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 우리 집 망했다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수백억을 3년도 안 되는 사이에 탕진할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하겠다. 우린 사업하던 집안이 아니다. 시쳇말로 조물주보다 낫다는 건물주였다. 서울 요처에 이십 층 빌딩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엄마가 아빠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 현명하신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 나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엄마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그래서 엄마 유골을 뿌렸던 이곳까지 와서 넋 놓고 있다.

빈속에 마신 소주가 슬슬 올라오는지 나른하고 몽롱하다.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암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데 바로 얼마 전까지 좀 많이 부자였었지. 그 덕분에 난 고생 없이 자랐으니 복 받은 인생이었어.’

과거의 일과 내 감상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에이징 커브. 내가 넋이 빠졌나 봐. 시작도 하기 전에 이야기가 옆으로 새 버렸네. 어쨌든 그건 그렇게 되었고 에이징 커브 이야기를 해야겠지.’

내 인생이 꼬인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핑곗거리를 거기서 찾으려 하는 것일지도.

‘아! 몰라. 술 취한 놈 회상에 논리가 어디 있겠어. 대충 그런 거지.’

엄마가 부자가 된 덕분인지 늦둥이 아들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유아기와 아동기에 과다한 영양을 투여 당하고 막대한 양의 보약을 섭취했다.

···‘벌모세수(伐毛洗髓) 이거 알아? 골수를 세척해서 정신을 수련한다는 뜻이래. 내가 환골탈태(換骨奪胎)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약물에 힘입어 성장이 무척 빨랐지. 어려운 말 썼더니 좀 어질어질하네. 내가 군에서 독서를 좀 했어.’

그야말로 최단기 고속 성장을 했었다.

‘초딩 저학년 때 170을 가뿐히 넘더니 고학년이 되자 거의 180에 육박해. 그 나이에 그 정도 몸이 어디 흔하냐고 사방에서 운동시켜야 한다고 난리였지.’

엄마는 꿈쩍도 안 하셨다.

“운동선수만 선수가 아인기라. 우리 아는 공부 선숩니다. 공부에 무슨 선수냐꼬요? 일테면 그렇타는 겁니다. 비유 모르는교? 내가 쫌 알아보니까 무슨 종목이든지 몇천 명 운동해서 성인이 되믄 수십 명만 직업선수로 살아남는다 카던데 그거에 비하면 공부가 훨씬 확률 높고 안전한 길인 거 같습미더.”

엄마가 이렇게 완강하게 반대해서 운동선수는 꿈도 못 꾸고 학원 몇 군데를 다니면서 선행 학습이라는 것만 열심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물으셨다.

“니 운동할래?”

“운동? 수영은 매일 하잖아? 살 빼야 한다고 그래놓고선···”

“그거 말고··· 진짜 운동선수. 수영도 괜찮키는 한데 그거 일 년을 넘게 배았는데 아직도 허우적대는 거 보므는 니가 수영 쪽은 아닌갑다”.

수영은 재미도 없고 겁나게 힘들었다. 엄마가 시켜서 할 수 없이 다녔는데 잘됐다 싶었다.

“엄마가 공부해야 한다고 해놓고선, 난 공부 선수라며··· 왜 그래? 엄마.”

“선녀 보살한테 물어봤는데 도구 쓰는 걸 해야 한다 카데··· 그래서 엄마가 생각을 좀 해봤다. 보통 공은 도구라고 안 카는 것 같드라. 그래서 공 말고 도구를 더 쓰는 운동을 생각해 보니까 테니스, 야구, 아이스하키, 필드하키, 골프, 당구 등등이 있더라고. 야구를 함 해보자.”

엄마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이럴 땐 말려도 소용없다. 야구는 TV에서 좀 본 적이 있었다. 그거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그림의 떡이었는데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왜? 공부해야 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왜 야구를 하래?”

한 번 튕겼더니 엄마가 순간 많이 곤란한 표정을 하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음. 그기 말이다. 아이구야. 아무리 내 새끼라도 아닌 건 아닌 거지.”

알 수 없는 혼잣말 후 한숨을 푹 내쉬시더니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타고난 기 다른 기다. 니는 엄마가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 줄라고 캐도 공부머리는 아잉기라. 대기만성이라꼬 늦머리가 터지기도 하는데···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믄 되고 마! 지금 잘 되지도 않는 거 한다꼬 시간 내삐리지 말자. 그냥 운동 함 해보자. 와? 야구 하라는 거냐믄···”

혹시 섭섭하게 들리는 말이 있더라도 다 내 장래를 위한 것이고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로 한참 서두를 장식하더니 이윽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주변 환경이··· 뭐라 해야 하노. 음. 암튼 1등을 안 해도 된다 안 카나. 개인 종목은 1등이··· 아! 설명할라카이 어렵네. 일단은 단체종목부터 해보자. 좀 해보다가 아잉 거 같으믄 딴 거 해보고 그카믄 된다. 어떻노?”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한참 나중에야 단체종목을 해야 설혹 잘못하더라도 얹혀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해 주셨다. 그래야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지금이야 내가 그 정도로 공부는 안 될 거 같았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우리 엄마가 얼마나 속이 탔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그때 나는 해맑은 초딩이었다.

“응. 할게. 엄마.”

다음 날 엄마 손에 이끌려 XX구 리틀 야구단에 입단했다. 초등학교 5학년. 그렇게 내 야구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뭔가 잘되어가는 것 같았다. 잘될 수밖에 없었다. 또래들보다 한참 큰 키에 좀 살집이 있는 통통한 체형. 일 년 이상 수영을 해서 그런지 유연성도 괜찮았고 기본 체력도 받쳐줬다.

잠깐의 기본기 훈련 기간이 지난 후 투타에서 그야말로 리틀 야구를 씹어 먹었었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었지만,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하고 그러니까 어깨도 으쓱하고 일단 재미가 있었지. 열심히 하기도 했고 몸도 받쳐주고··· 거칠 것이 없었어.’

좋은 시절이었다. 내가 야구에서 아주 잘 나가자 다른 종목 이야기는 나올 일이 없었고, 우리 부모님도 어느새 점점 야구 전문가의 포스를 풍기게 되셨다.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여전히 잘했다. 리틀 야구처럼 리그를 씹어 먹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독들 사이에서 유망주 이야기가 나오면 서너 번째 안에는 꼭 내 이름이 거론되었었다고 한다.

나름 전국구로 중학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나의 키는 180을 넘기지 못했고 겨울 방학을 지나 고등학교에 합류한 아이들은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중학교 때 130km대를 찍었던 내 공의 구속은 그대로였지만 고교리그에 140 이상은 그리 드물지 않았고 150 이상도 몇몇은 있었다.

‘그래, 나 투수다. 원래 초딩 때는 제일 잘하는 애가 투수하는 거다. 그래서 투수로 초지일관(初志一貫)··· 아! 또 어려운 말을··· 독서의 긍정적 영향인가 봐. 어쨌든 내가 강속구로 리틀리그와 중학리그에서···’

내 나이 16세.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다만 통통했던 체형이 퉁퉁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교 리그에서 신체 능력의 우위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대부분 눈 아래로 한참 깔아 보던 타자 눈의 위치를 급격히 상향 조정해야 했다.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이 저하된 에이징 커브는 아니었지만, 비교 상대들의 신체적 성장이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릴 때 내가 그대로라면 그게 그거다.

‘일 학년 때까지는 투수로 어떻게 비벼볼 수는 있었는데··· 구속이···’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접었어야 하는 건데 일 학년 때는 제구라도 다듬어 적응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했다. 엄마도 답답했는지 프로에서 어쩌구 하는 상당한 이력의 개인 코치도 붙여줬다.

병원을 다니고 키 크는 데 좋다는 주사제를 정기적으로 맞았다.

이 학년이 되자 격차는 더 벌어졌다. 억지로 버텨오던 것들이 더 이상은 통하지 않았다. 야구 명문고인 팀은 잘 나갔지만, 개인적으로는 경기 출장이 일 학년 때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키는 요지부동(搖之不動)··· 음음. 이해 좀 해줘. 내가 말년 스트레스가 심해서 독서에 좀 몰두했더니··· 그거 있잖아. 전형적 주인공이 권선징악적인 활약을 하는 그거··· 생각하는 그거 맞을 거야.’

그때부터 비과학이 과학을 압도했다. 엄마는 무속의 힘을 빌리려 했고 다수의 민간요법이 동원되었다.

‘지네 등껍질 맛 알아? 난 알아. 왜 아는지 묻지는 말아줘.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보다 더 구역질 나는 것도 많았으니까 이 정도로 할게.’

그것이 효과가 있어서 그랬는지 2학년 겨울 방학 때 키가 자랐다.

‘무려 1cm나 컸지 뭐야. 0.1, 0.2 이런 변화만 몇 년을 보다가 1.0 이라니··· 거기에 나까지 헤까닥해 가지고 그 짓을 일 년을 더하고 말았지. 하아!’

고3. 내 키가 마침내 180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179.7cm였지만 그 정도는 이해범위 아니겠어? 반올림이야. 그리고 나 이상한 놈 아니다. 초딩 때 178 정도였는데 수년간 0.Xcm가 자라다가 일 년 만에 1.0cm면··· 눈 뒤집히는 게 당연하잖아.’

내 성장의 기억은 그게 마지막이다. 그리고, 내 구속은 140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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