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미끼
날이 밝았다.
그러나 밤새 일어난 기적적인 현상은 이미 전 세계로 알려졌다.
압도적인 크기의 마정석 산.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투타타타타타타!
아침부터 헬기들이 현장에 떴다.
전 세계 모든 방송에서 속보로 흘러나왔다.
저 높은 상공에서 헬기에 탄 채 생방송을 진행하는 기자.
- 보이십니까? 간밤에 거대한 산 하나가 생겼습니다. 높이가 구름을 찌를 정도입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카메라로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저게 다 마정석이라니, 여러분은 믿기십니까? -
웅성웅성.
사람들도 구경 나왔다.
어젯밤에 지진이라도 났나 했더니.
사람들이 마정석 산에 접근 못 하게 하기 위해 경찰, 의경, 공익 요원, 심지어 군부대까지 출동해 주위를 에워쌌다.
방송국에선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별 방송을 편성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글쎄요, 이것도 시스템 패치의 영향이 아닐까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포스가 사라져서 마정석 아공간 박스에 오류가 발생해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걸로 추측됩니다.”
“아! 신빙성이 있어 보이네요.”
세상이 난리였다.
모두가 TV 앞에서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 마정석 주우러 갈 사람?
└ 손!
└ 나도.
└ 총 맞아 뒈질 일 있나?
└ 혹시 겉만 마정석으로 덮어 놓은 거 아닌가?
└ 어? 저거 좀 봐 봐. 들썩들썩하는데?
생방송 도중에 다시 산 전체가 흔들렸다.
우르르르르, 쿠쿠쿠쿠쿵!
산사태처럼 흘러내리는 마정석.
그럼에도 산의 높이가 쑥쑥 올라갔다.
└ 미친!
└ 커졌어?
└ 커지고 심지어 더 높아졌다.
└ 저 많은 마정석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 와! 유전에서 기름 캐내는 것 같아.
└ 같은 게 아니라 딱 그건데?
마정석의 산.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2년 전이었다면 그저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반짝이는 돌, 마정석.
지금은 완전 다르다.
대우석 박사, 데우스칩이 마도 공학을 퍼뜨린 후, 모든 것이 변했다.
마정석 하나하나가 다 황금이었다.
다시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
HTS 그룹 이복동 회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허허, 저럴 수가. 우리가 추정하는 양보다 훨씬 많아요.”
처음 이복동이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케이와 민도연에 대한 복수, 자신의 아들 이홍종이 사도 빌런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죽은 아들 따윈 생각나지도 않았다.
마정석의 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다면? 절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저, 저 귀한 걸 바깥에다 방치하다니, 당장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요. 제가 적당한 장소를 제공할 테니…….”
“이 회장님, 진정하세요. 뭔가 수작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6선의 여당 대표 박도창은 신중한 성격.
각성 플레이어 등장 후, 폭삭 망해 버린 정치 권력을 부활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이미 탐욕에 젖은 상태.
“허허, 멍청한 개돼지들이 수작을 부려 봐야 거기서 거기지요.”
“맞습니다. 그저 실수였을 뿐이죠. 시스템 패치로 포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
“네, 제가 따로 알아보니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입니다.”
그러자 이번에 총대를 메기로 한 검찰총장 임세열이 말했다.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닙니까? 마침 최기병을 어떤 방식으로 엮어 보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만…….”
“기회라면?”
“마정석은 국가의 재산인데, 관리를 소홀하게 했으니까요. 크나큰 중죄입니다.”
“오! 그렇군. 역시 검찰총장다우십니다.”
언론사를 대표해서 나온 대한일보 사주 복성훈이 반색했다.
“임 총장님, 우리 언론사들이 지원사격을 해 드릴 테니까 뒷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뜻을 펼치세요.”
“하하하, 늘 의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정석이 국가 재산이란 말은 틀렸다.
온전히 케이 소유.
국가기관인 APS는 그것을 유통, 판매하는 대행 역할로서 일정 부분 대가를 받는 것.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엮으면 엮이는 거지.
“이참에 케이도…….”
“안 됩니다.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그래요.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또한 지금 케이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디로 숨었는지 파악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럼 최기병 신병부터 빨리 확보합시다.”
* * *
최기병은 이필동과 함께 현장에 나와 있었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목격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참 나, 저것도 극히 일부라니…….’
옆에 있던 이필동이 최기병을 빤히 쳐다보면서.
“최 팀장님, 바른 대로 말해 보세요.”
“네?”
“뭔가 있죠?”
“있기는 뭐가 있습니까. 저도 놀란 거 안 보여요?”
“아닌데, 감이 오는데?”
“아! 전화 왔습니다. 잠시만요.”
최기병은 이필동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마이클? 네, 최기병입니다. 글쎄요, 저라고 알겠습니까? 에이, 왜 이러실까! 진짜 모른다고요. 케이요? 지금 요양 중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마이클이라면 미국인가?
하긴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눈으로 직접 봐도 믿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정석, 대체 왜 저런 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터.
이필동은 통화를 끝낸 최기병에게 다시 물었다.
“어떡할 겁니까?”
“뭘요?”
“저 마정석 말입니다. 저대로 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내 것도 아닌데.”
“혹시 케이가…….”
그때였다.
“최기병 씨?”
검정색 양복을 입고 그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네, 접니다만, 누구십니까?”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체포 영장입니다.”
체포 영장이라고?
“혐의는요?”
“마정석 관리 소홀 및 직무유기, 배임, 공공 기물 파손…….”
“아! 됐습니다. 가시죠.”
덕지덕지 많이도 갖다 붙였다.
최기병은 피식 미소 한번 짓고는, 휘적휘적 앞장서서 주차된 검찰 승합차를 향해 걸어갔다.
묘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필동.
검찰이 와서 체포영장 들이밀면 누구나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기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뭔가 있구나.’
확실하다.
네까짓 것들이 날 체포해 봐야 뭘 하겠느냐는 듯한 최 팀장의 표정.
‘검찰을 무서워하지 않아?’
그렇다면…….
이필동도 스마트폰을 들었다.
국정원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보 빨대가 꽤 많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는 봐야지.
* * *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긴급회의.
시스템 패치가 이루어지고 난 뒤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리는 안보 회의였다.
함께 모여 한국의 TV 뉴스 생방송을 지켜보는 조셉 라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관리들.
“엄청나군.”
“이로써 결정되었네요, 석유회사 줄도산이.”
“쯧! 그건 벌써 예정된 거 아니었나?”
모니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있음에도 저 거대한 마정석의 산은 너무나 황홀했다.
“그런데 저 산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 말이야, 대체 뭘 거 같나?”
“매우 논리적인 가설이 있습니다.”
“뭔가? 나도 궁금하군.”
“아시다시피 케이는 현실 인벤토리 능력자입니다.”
“그렇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실.
인벤토리에서 꺼낸 도끼가 양손에 스르륵 나타나면 누구라도 오줌을 지리게 된다.
“마정석은 전용 아공간 상자에 담겨서 배달됩니다. 크기와 용량도 다양하죠. 케이는 그걸 다시 자신의 인벤토리에 보관했고.”
흥미로운 표정의 조셉 라이든.
“계속해 보게.”
“그런데 시스템 패치로 포스가 사라졌습니다. 포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케이가 인벤토리를 제어하지 못해 그 안에 들어 있던 모든 물건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을 가능성이…….”
“흐음.”
가설이란 게 인벤토리 폭발?
“실제로 전기차 회사 CEO, 앨런 메사크 또한 게임 안에서 그런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SNS에 올리면서 길길이 날뛰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나는군. 마법사들에게 속았다면서 난리를 피웠지.”
“게임 속에서 일어났다면 바깥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네 말대로 인벤토리가 폭발했다 치고, 그럼 저 마정석 산 아래에 케이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아닌가?”
“네, 전 그렇게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케이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그가 어디 있을까요?”
“어으음…….”
떨떠름한 조셉 라이든.
케이가 마정석 산에 깔려서 죽었다고?
순간!
옆에서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백악관 안보 참모 마이클 피트였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마이클, 자넨 생각이 다른가 보군.”
“네.”
“근거는?”
대통령의 물음에 답하는 마이클 피트.
“좀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 APS 최기병 팀장이 한국 검찰에 체포를 당했다고.”
“응? 갑자기……? 참 한국인들은 빠르기도 하지.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그런데… 이 사안과 무슨 상관인가?”
“최기병의 태도가 남달랐습니다. 너무나 당당해서 거대한 뒷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데.”
“그래서?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봐.”
마이클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최기병이 왜 저렇게 나올까요? 케이가 죽었다면, 아니 힘이 사라졌어도 끈 떨어진 일개 하급 공무원일 뿐인데.”
그리고는.
“케이는 살아 있습니다. 게다가 힘을 잃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는 건재합니다.”
“…확신할 수 있나?”
“네! 제 명예를 걸고!”
“그런데 왜 저 마정석을 쌓아 올려서…….”
“그건 천천히 알아봐야죠.”
조셉 라이든은 잠시 고민했다.
이건 중대한 문제.
케이가 힘을 잃었느냐, 아니면 여전히 건재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응이 달라진다.
어떻게 할까?
고민은 길어졌다.
* * *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최기병 팀장이 체포되었답니다.”
“음? 잘됐군. 케이는……?”
“아직은 그쪽으로 치고 들어갈 담력은 없어 보입니다.”
“쯧쯧, 하여간 조센징 놈들은 기개가 없어.”
아오키 토시로 일본 총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동안 케이 때문에 되는 일이 없었다.
일본이 얼마나 칼을 갈아 왔나?
최근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 때문에 당한 수모도 그렇다.
그야말로 개망신이었다.
급기야 일개 기업 따위에게 창피를 당했다.
뭐? 일본은 없다고?
사람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를 얻어 내 보려 했던 계획도 완전하게 무산됐다.
TV에 나와 고개를 조아리며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읍소했던 노인의 정체가 탄로 나 버린 것.
‘집을 잃고 땅을 잃어버린 노인의 일상’이란 제목으로 올라온 너튜브 동영상.
그 불쌍한 노인이 파파카츠, 원조 교제로 만난 교복 입은 젊은 여자애와 최고급 중형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
다급하게 영상을 내려 달라고 너튜브 본사에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전 세계 국가들의 싸늘한 반응.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용을 썼지만 다 허사였다.
그 와중에 들린 기막힌 소식.
시스템 패치?
각성 플레이어의 반영률이 한꺼번에 삭제됐다고?
신이 일본을 도우셨다.
그리하여 청소가 시작됐다.
일본 국적의 각성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체포 구속.
국가에 협조적이었던 자들도 예외가 없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집어넣었다.
남은 건 복수.
포스가 사라진 케이는 평범한 조센징일 뿐이다.
“지금부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미국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고요.”
아오키 토시로 일본 총리도 내각 각료들과 같은 생각.
“케이를 죽이고 놈이 가진 모든 걸 빼앗는다. 계획을 짜 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이제 일본의 것이 될 것이다.
저 거대한 마정석의 산도.
화정 그룹이 보유한 마도 공학의 신기술도.
* * *
오랜만에 모인 중국 정치인들의 표정도 무척 밝았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시스템 패치.
그로 인해 각성 플레이어들의 포스는 모조리 사라졌다.
그럼 중화영웅 덩차오는?
당연히 평범한 놈으로 돌아갔을 터, 그게 바로 놈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터진 한국의 상황.
중국 지도부도 마정석의 산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걸 소유한 국가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가 한국이라니.
그렇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 되어야 한다.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하는 리정푸 비상위원회 위원장.
“속이 후련합니다.”
“하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잠시 길을 잘못 들었지만 어차피 세상만사 순리대로 흐르는 법이지요.”
“맞아요. 이제 중국은 덩차오 이전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땅에 떨어진 중국의 위신을 다시 세워야지.
“이제 응징의 시간이군.”
“응징이라면…….”
“포스도 사라졌으니 덩차오를 찾아서 죽여야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원장님. 우리 공안들 실력이라면 이미 놈을 찾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더불어 한국의 그 지긋지긋한 케이 놈을 척살…….”
그때였다.
“어…….”
갑자기 안색이 굳어지는 리정푸 위원장.
“끅?”
리정푸의 몸이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포스가 사라졌잖아!
그럼 포스의 힘으로 행해지는 맹약의 계약서도 당연히 무효… 설마?
“아, 안 돼!”
퍼퍽! 퍼퍼퍼퍽!
리정푸의 몸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헉!”
“으아아아!”
“마, 맙소사!”
“미친…….”
회의장 안에 흩뿌려지는 리정푸의 선혈 그리고 조각난 살점.
덜덜덜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중국 고위급 정치인들.
그제야 깨달았다.
맹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기면 몸이 터져 죽는다.
“빠, 빨리 위원장을 새로 뽑읍시다.”
“지도자 직선제 당장 시행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소수 민족 분리 독립은? 정부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해 줄 테니 정부부터 세우라고 하세요!”
“한국 쪽은 쳐다도 보면 안 됩니다.”
브랜달에 의해 맹약 스크롤을 찢은 사람은 아직 엄청나게 많다.
이름 있는 정치인이라면 모두 맹세했다고 보면 되니까.
마정석? 복수? 그게 뭐가 중요한데?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저런 식으로 버리고 싶진 않았다.
*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서 깊은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보스 세르게이 하라노프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마정석 산을 보며 참기 힘든 탐욕에 불타올랐다.
‘저거라면…….’
용언 마법을 되찾을 수 있다.
영혼만 건너와서 지금은 무기력해진 실버 드래곤 메르카베인의 힘을 말이다.
하지만!
지끈!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
“강요하지 마라! 결정은 내가 한다.”
이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새끼가.
물론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감히 자신의 영혼에 기생하는 씨앗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