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200화 (200/204)

200화 산을 만들자

찬웅은 APS 플레이어들과 함께 게임에 접속했다.

먼저 테라퓨타 마탑 게이트를 통해.

“어?”

“와!”

“착륙했어?”

“쏙 들어갔구나.”

“딱 맞네.”

이제 지상도시가 된 테라퓨타.

‘이놈은 어디 있지?’

그때였다.

슈슛! 슛! 슛! 슈슈슈슛!

워프 마법으로 마탑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마법사들.

“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브랜달이 왔다.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흔들며 찬웅에게 달려오더니.

“케이 형님!”

“무사하게 돌아왔구나. 근데 넌 어디서 죽었어?”

“흐흐, 주신의 부름을 받기 직전에 몸을 태워 버렸습니다. 그냥 깨끗하게 사라진 거죠. 참! 마탑 제어 권한이…….”

“나도 알아. 돌아갈 사람에게 돌아간 거지.”

찬웅은 브랜달이 데리고 온 마법사들을 보면서 물었다.

“여기서 다 같이 살려고?”

“네, 마법 왕국 부활해야죠.”

“그래, 열심히 해.”

어차피 잘 왔는지 확인차 온 거였다.

긴말 필요 없이 얼굴만 보면 되는 거니까.

다음은 데우스칩.

사람들과 함께 마키나 공화국으로.

그런데 이게 무슨 말?

데우스칩이 오지 않았다고?

연구원 마리가 힘주어 말했다.

“정말이라니까요! 선임 연구원님이 왔으면 내가 바로 알아봤지. 뭐, 자기가 데우스칩이라며 사칭한 놈은 있긴 했지만.”

“…사칭?”

“네, 하지만 골렘이 아니라 인간이었어요. 참 나, 어디서 굴러먹다 온 사기꾼인지.”

조금 이상한 기분.

사칭이라.

마키나에서 자신을 감히 데우스칩이라 사칭하는 놈이 과연 있을까?

“그 사람은 어디 있어요?”

“감옥에 가둬 놨죠.”

“잠깐 만나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미친놈이니까, 미리 알고는 계세요.”

찬웅은 사람들과 함께 마리의 안내를 받아 감옥으로 들어갔다.

철창 너머로 보이는 한 젊은 남자 NPC,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앉아 있었다.

찬웅이 들어오자.

“오! 케이! 날 구해 주러 온 건가?”

“아니, 나도 잡혔… 그게 아니라. 저 아세요?”

“당연히 알지. 내 집사 골렘은 땅에다 잘 묻어 줬나? 저기 딸기, 여은이도 왔군. 최 팀장! 오랜만이야. 우리 민도연 배우님도, 모두 바쁠 텐데.”

“…….”

데우스칩이 아니라면 모를 정보들, 그가 맞았다.

“박사님?”

“어, 나야, 대우석.”

“그 몸은 어떻게 된 겁니까?”

“몰라. 돌아오니 이 몸이더라고, 주신께서 보상을 내리셨나 봐.”

“오! 축하드려요.”

찬웅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연구원 마리.

“…저, 정말 저 인간이 우리 선임 연구원님 맞아요?”

“네.”

“와! 저 잘생긴 얼굴이 데우스칩이라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에 따로 정보 확인해 보세요.”

“아니, 케이 님이 확인해 주셨으면 그걸로 끝났지만. 흑마법을 썼나? 어떻게 인간의 몸에 들어갔어?”

철창 안에서 데우스칩이 마리에게 소리쳤다.

“됐지? 마리, 빨리 문이나 열라고.”

“어음, 아, 알았어요. 진작에 말을 하지!”

“했잖아!”

“…왜 저래 잘생겨졌대?”

그렇게 서로의 오해를 풀어 주고, 회포도 풀고.

다음은 로그드라실.

저 멀리 세계수가 보인다.

‘스승님은 어디…….’

순간!

“뭐니? 우르르 떼로 몰려와서는.”

뒤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장로님!”

“보고 싶었어요!”

또각또각.

에루인이 엉덩이를 빼뚤거리며 모델처럼 걸어왔다.

“어머? 그 옷은?”

“와! 남다른 패션 감각!”

짙은 마스카라에 빨간 립스틱의 얼굴 화장, 옷은 검정 스타킹의 현대식 오피스 룩, 역시 붉은색 하이힐을 신고, 등에는 엘프 레인저의 상징인 커다란 활과 양손엔 시퍼렇게 날 선 마체테.

언밸런스하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상큼한 딸기와 민도연이 그녀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장례식 한답시고 질질 짤 때는 언제고.

오랜만에 만난 쇼핑 친구들.

“옷과 구두, 이거 많이 보던… 상표까지 똑같아요. 짝퉁 아닌가?”

“닥쳐! 이년아! 누구한테 선물받은 건데! 너 그러다 큰일 난다.”

“멋있어요.”

“그치?”

찬웅은 세계수에 용무가 있었다.

바깥에서 물어봐도 되지만 겸사겸사 에루인의 얼굴도 볼 겸, 그 전에 데우스칩의 근황부터 알려 주고.

“진짜? 데우스칩이 인간이 되었다고?”

“네, 스승님.”

“…어떤 모습인데?”

“흐음, 굉장히 잘생겨지셨더라고요. 남자가 봐도 인정할 만큼.”

에루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딸기와 민도연을 보면서.

“너희들이 보기에도 그래?”

“맞아요. 박사님, 엄청 훈남으로 변했어요.”

“인정! 웬만한 배우 쌈 싸 먹을 정도로.”

“그럼 몰래 찍어 와 봐, 촬영용 수정구로.”

“네!”

찬웅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내버려 두고 홀로 세계수 앞으로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플레이어 케이, 드래곤 하트는 잘 복용하셨죠?]

“네, 잘 먹었습니다.”

[차원 창고는 마음에 드나요?]

“너무 큰 거라서 부담스러울 정도네요.”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뭐, 많이 노력하긴 했지.

이제 공치사는 접어 두고, 본격적인 용건.

“밖으로 탈출한 씨앗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잘 오셨습니다. 다행히 알려 드릴 것이 많아요.]

탈출한 영혼을 찾아낸 모양.

[패치를 수행하는 동안 우린 나뉘어 있던 두 개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지도…….”

[네, 알고 있습니다.]

“오!”

확실히 시스템이 정상화되니 세상 다스리는 권능을 회복하긴 했나 보다.

“누군데요?”

[아시다시피 씨앗의 기운이 미미하다지만 그래도 침식의 근원입니다.]

[그 씨앗을 품은 채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보통 인간의 영혼으론 견딜 수 없는 일이죠.]

“인간이 아니라면…….”

[강대한 영혼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지를 잃지 않고 버티다가, 기회가 오면 씨앗의 싹을 틔워 줄 수 있는 존재.]

‘설마?’

[드래곤 말고는 없습니다. 골드는 바깥으로 해방됐고, 레드와 블랙은 5백 년 전 소멸하였으며, 그린은 열대우림에서, 블루는 제국의 황도에서, 그래서 남은 건…….]

“실버.”

[맞습니다. 실버 드래곤 메르카베인. 놈의 영혼이 넘어갔습니다. 현재 인간의 영혼에 빙의하고 있겠죠.]

‘또 드래곤? 돌아 버리겠네.’

[하지만 드래곤은 마나를 먹고 사는 존재, 마나가 없다면 놈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그 욕망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포스는?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물론 포스가 있다면 대체가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포스도 없습니다. 시스템 패치를 단행하면서 포스가 흘러나오는 통로를 막아 버렸습니다.]

“아!”

[제아무리 강대한 드래곤의 영혼이라 해도 지속적인 마나 혹은 포스의 공급이 없다면 스스로 붕괴하고 말 겁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 충족시키는 거 말고는.]

하긴 레지키쓰론도 그랬다.

편법으로 사도들을 시켜 드래곤 하트를 간접적으로 섭취했고.

“브랜달처럼 자체적으로 마나를 조달하면?”

[브랜달은 경지에 올랐던 9서클 대마법사의 영혼, 그러나 그조차도 캡슐을 이용해 세상 안과 밖을 연결해서 마나를 흡수했지요. 이런 경우라면 가능합니다.]

“그게 다른 방법인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린 그렇게 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드래곤의 영혼을 가진 인간이 캡슐에 접속하면 우리에게 발각되거든요.]

놈은 마나 흡수를 위해 캡슐을 사용하지 못할 거란 의미다.

[하지만 씨앗도 바보는 아닙니다. 마나 혹은 포스를 공급받을 방법이 하나가 더 있지요. 그건 바로…….]

“마정석.”

[네, 현재 지구에 퍼져 있는 마정석 에너지, 아마 씨앗은 그걸 염두에 두고 드래곤의 영혼에 기생했을 겁니다. 그리고 마정석을 소유한 사람은 그대뿐이죠.]

“절 노릴 거란 의미인가요?”

[지금 당장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천천히 힘을 키우면서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빼앗으려 하겠죠. 그것 말고는 답이 없으니까요.]

‘이거 재밌네.’

마나에 굶주린 드래곤이 자신을 노릴지도 모른단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예전에 봤던 괴수 영화가 떠올랐다.

원래는 일본의 창작물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

‘고질라, 드래곤을 고질라라고 가정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드래곤을 지혜로운 용, 마법의 종주,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존재다.

‘드래곤의 탐욕을 이용한다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빨리 끝내자.

* * *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브랜달은 다시 마탑의 관리 권한을, 데우스칩은 인간의 몸을. 에루인은… 뭐, 여전히 달라진 것 없고.

최기병 팀장은 로그아웃하고 캡슐 밖으로 나왔다.

밀린 업무를 마저 처리해야지.

각성 플레이어들과는 모두 계약을 해지했다. 물론 케이와도.

조직을 존속할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마정석 유통 조직.

‘이걸 어떻게 한다?’

케이가 계약을 해지한 이상 그와 정부와의 관계도 끊어졌다.

이 상황에서 APS가 마정석 유통을 계속 담당할 명분이 있을까?

케이도 며칠 전에 내비친 바 있다.

앞으로 마정석 유통은 게임 회사에서 관리하게 될 거라고, 그래서 인력이 필요하다고.

자신에게 그 말을 한 이유가 뭐겠나?

일종의 스카우트인 셈.

‘때가 왔네.’

최기병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냈다.

시스템 패치 전에 미리 써 둔 것.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공직을 떠날 생각 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최기병은 스스로를 능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APS를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케이의 존재 덕분인데.

‘하지만 반영률 삭제로 인해 버팀목이 사라졌으니…….’

그때 공원묘지 전동 킥보드 충돌 사고도 우연이 아니었을 터, 케이가 정말 힘을 잃었는지 확인해 보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여기저기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부터는 전쟁터야.’

순간!

똑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

“강찬웅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십시오.”

찬웅은 방으로 들어와 최기병의 손을 힐끗 보며 물었다.

“그건 뭐죠? 사직서……?”

“아, 네.”

“결심하셨군요. 우리 잘해 봅시다.”

하지만 최기병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별별 하이에나들이 숟가락 하나 얹어 보겠다고 달려들 텐데.”

“이해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찬웅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뭘 말입니까?”

순간!

스르륵!

사라지는 찬웅의 몸.

“어?”

잘못 봤나?

치짓.

다시 나타나더니.

스슷!

어느새 찬웅의 손에 들린 쌍도끼.

우우웅!

짙은 강기의 도끼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아아아…….”

최기병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그러면 그렇지.

왜 케이를 믿지 못했을까?

“힘을 되찾으셨군요.”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혼자만 알고 계세요.”

“제 입술을 꿰매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계획하는 일이 있는데…….”

“뭐든 말씀만 하세요.”

지금 최기병은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든든한 뒷배가 있는데, 이제부터는 그냥 막 나가도 된다.

“마정석 창고를 개방해서…….”

찬웅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기병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야심한 밤.

APS 접속 센터와 가까운 곳.

외곽 넓은 부지에 커다란 물류 창고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정석 저장 창고.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과 경찰의 경비 병력이 삼엄하게 지키는 지역, 곳곳에 CCTV가 달렸고.

그곳에 마치 유령처럼 스며드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없지? CCTV도 멈춰 놨고.’

은신막을 발현해 창고 안으로 들어간 찬웅은 인벤토리 안에 보관된 마정석 아공간 상자를 꺼냈다.

무려 100개의 상자.

하나를 까자 끝도 없이 쏟아지는 마정석.

후두두둑!

‘한꺼번에…….’

100개 까는 것도 일.

모조리 열어 버렸다.

마정석이 쌓인다.

계속 쌓인다.

산처럼 쌓인다.

후둑, 후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두…….

금세 커다란 물류 창고를 꽉 채운 마정석.

그것도 모자라 창고 벽, 천장을 뚫고 계속 쌓였다.

마정석 창고를 지키는 경비 병력이 알아차린 시점은 이때.

“허억!”

“뭐, 뭐야?”

“…피해! 도망쳐!”

우지끈, 뿌드득! 뚜둑!

창고 안에서 밖으로 삐져나오는 마정석.

경비 요원이 급하게 무전을 날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마정석이, 마, 마정석이…….”

후둑, 후둑, 와르르르르륵.

부지 전체로 쏟아졌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아니야. 부족해.’

찬웅은 아예 차원 창고를 열어 버렸다.

안에 있는 마정석 산맥, 그중의 적당한 봉우리 하나를 옮겨 버리면?

두두둑, 두두두두두두두…….

산이 된다.

높디높은 마정석의 산.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경비 경찰들은 그저 입만 떡 벌렸다.

환각인가?

압도적인 규모, 웬만한 동네 작은 산 정도는 씹어 버릴 듯한 크기.

애애애애앵!

때마침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연락을 받고 마정석을 지키러 온 추가 병력이었다.

이 마정석의 산은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정말이지 먹음직하게 쌓였다.

누구라도 눈이 돌아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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