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94화 (194/204)

194화 일본은 없다

일본 도쿄 수상 관저.

에루인의 기습 공격으로 총리와 내각 대신들이 사망한 후, 공석이 된 자리에 새로운 총리가 선출됐다.

내각제라 집권당 내부에서 적당한 사람 뽑아서 올리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을 움직이는 막후 권력자들의 선택은?

어떤 성향의 사람을 총리로 올릴 것이냐?

케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친한파?

아니면 일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극우 강경파?

이전과 변함없이 막후 권력자들은 자존심을 선택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되니까.

결과는 참혹했다.

한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일본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마도 공학 산업 연구 평가회.

일본은 참가하지도 못했다.

마정석이 하나도 공급되지 않아 마도 공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 물론 뒷거래를 통해 어렵게 마정석을 조달하고는 있었지만.

그러던 중.

한국의 화정 그룹에서 발표한 보고서.

방사능 오염을 정화할 수 있을 거라는 마도 공학의 신기술.

일본 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저거라면 가능하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할 때마다 타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신임 총리가 된 아오키 토시로는 즉시 화정 그룹에 은밀히 사람을 보냈다.

기술을 공유해 달라고.

그 대가로 돈이든, 특혜든,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그러나 불발되고 말았다.

아오키 토시로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

당연히 내각을 구성하는 관료들도 비슷한 성향이었고.

그것이 화정 그룹 회장 정규광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

용건을 꺼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정규광이 오히려 우리 측으로 사과를 요구해 왔습니다. 어떡할까요……?”

“시건방진 조센징 따위가!”

케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껄끄러운 판에, 일개 장사치에게 사과해?

절대 안 된다.

그러나 후쿠시마를 정화할 수 있는 신기술은 너무나 간절했다.

“방법을 찾아봐? 청와대는?”

“거긴 힘이 없습니다.”

“미국은?”

“거기도 마찬가지라…….”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던 친일 정치인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있던 사람도 등을 돌렸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오키 토시로 일본 총리.

“진짜 방법이 없나?”

그러자 신임 내각정보실장이 손을 들고 말했다.

“시도해 볼 한 수가 있긴 한데…….”

“뭔가? 빨리 말해 봐.”

“인정에 호소하는 겁니다. 후쿠시마에 살던 주민 하나를 물색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설명하는 일본 내각정보실장.

괜찮은 방법인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오키 토시로 일본 총리.

그리고 이틀 후.

일본 국영방송에서 추레하고 불쌍한 노인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후쿠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가 10년이 넘었어요. 방사능에 오염되어 집도 잃고 열심히 농사짓던 땅도 잃었습니다. 이젠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아나운서 기자가.

“한국에서 방사능 오염을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이 발명되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그래요? 전 몰랐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요. 화정 그룹 회장님께 부탁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노인은 흙바닥에 머리를 대고 납작 엎드렸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훌쩍거리는 아나운서.

“불쌍한 노인분에게 응답을 내려 주실 분은 어디에 있나요? 간절하게 호소드립니다.”

실로 없던 동정심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 * *

기존의 경로에서 벗어난 침식지는 모두 공략을 끝냈다.

역시 혼자서 놀면 재미도 없고 빨리 지친다.

침식지 정화하는 기계도 아니고.

찬웅은 지친 몸을 이끌고 APS 접속 센터의 캡슐실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최기병이 들어오더니.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뭔데요? 또 중국?”

“아닙니다. 어, 이번엔 일본입니다.”

“…….”

그래서 확인한 방송 인터뷰 보도.

한국 방송국에서 나온 뉴스였다.

일본에서 방영된 내용에 자막까지 달았다.

‘서쪽이 잠잠해지니 이젠 동쪽에서 달라붙는구나.’

참 열심히들 산다.

‘동아시아 이 동네는 바람 잘 날이 없네.’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한 협박.

동북 지방 방사능 오염을 해결해 달라!

잘못은 지들이 저질러 놓고 해결은 한국에다가 떠넘기는 식.

피해자 코스프레 오지게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파가 크다.

사람들의 동정심이 일본으로 향했다.

불쌍한 노인네가 TV에 나와 저렇게 애절하게 엎드려 부탁하니, 반일 불매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도 순간 친일로 돌아설 지경.

“화정 그룹 반응은요?”

“정규광 회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답니다. 이딴 쇼에 절대 혹하지 않겠다며, 기술을 공유해 주지 않겠다고.”

하긴,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먼저 확인해 보자.

일본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참에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의 성능도 시험해 볼 겸.

찬웅은 데우스칩을 찾아가 흡수기 하나를 받아왔다.

그리고 방사능 측정기도 챙기고.

조금 더 휴식을 취한 후, 밖으로 나와 땅에다 손을 대고.

“푸히히잉!”

왜 이렇게 안 불렀냐는 듯 찬웅에게 머리를 부비며 투정하는 유령마 부키.

“미안, 앞으로 자주 불러 줄게.”

쐐애액!

유령마 부키가 하늘을 활강했다.

목적지는 일본 동북 지방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

일본 지진 역사당 최대 규모의 지진.

초대형 쓰나미가 덮쳐 엄청난 피해와 함께 급기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파 사고까지 일어났다.

아예 원자로가 녹아 버린 사상 초유의 사태.

세슘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그 지역의 땅과 바다를 오염시켰고.

특히 피해가 극심한 후쿠시마 지역.

옛 자위대 특수 초인 각성대가 비밀리에 인체 각성 실험까지 자행하던 곳이었다.

케이에 의해 부대 자체가 해체됐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도 확실한 피해 규모를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방사능 오염이 완전하게 해결되었다며, 먹어서 응원하자니, 관광을 오라니, 후쿠시마산(産) 수산물을 수입해 달라고 압력까지 넣고.

정말 그렇다면 계속 살면 되지.

불쌍한 노인 한 명을 TV로 내보내 뻔뻔하게 언론 플레이를 해?

‘진짜 불쌍한 노인 맞나?’

이것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랜만에 시스템 도움 좀 받아 보자.

허리띠에 포스를 불어넣고.

‘일본 방송에서 인터뷰한 후쿠시마 노인네, 그 이름이 뭐더라?’

그러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이름 노무라 켄, 올해 나이 73세, 현재 살고 있는 거주지는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市)입니다.]

“오! ”

된다.

역시 시스템이 정상화되니 좋다.

그런데 거주지가 후쿠시마라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가 10년이 넘었다면서.

‘그 노인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해 줘. 이상한 점이 있는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일본 내각정보실 코인 계좌에서 노무라 켄의 코인 계좌로 1만 코인이 입금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이순신 장군의 말이 맞았다.

왜(倭)라는 족속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고언.

어느덧 유령마 부키는 후쿠시마현 상공으로 접어들었다.

은신막을 발현해 모습을 감추고 낮게 활강하여 관찰하니.

‘뭐야? 잘살고 있네.’

평범했다.

방사능 유출 사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고가 난 원전 쪽으로 가까이 가 볼까?’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

들판에서 자라는 벼 이삭도 푸르렀다.

그런데 논 옆에 가득가득 쌓인, 검정색 비닐로 덮인 이상한 덩어리들.

찬웅은 잠시 내려서 방사능 측정기를 가져다 대 보았다.

순간.

삑! 삐비비빅!

무섭게 올라가는 수치.

바로 옆에 오염 물질을 쌓아 놓다니.

‘쯧! 이런 데서 농사를 지어?’

할 거 다 하고 있었으면서 다 잃었다고?

다시 이동하는 찬웅.

그런데 사고가 난 원전 근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랬다.

‘여기가 적당하겠네.’

찬웅은 부키를 역소환하고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를 땅에 꽂아 작동시켰다.

우우우우웅.

크기가 작아 유효 흡수 범위는 반경 25m 정도.

동시에 방사능 측정기의 전원을 켜 보니.

삐비비비비비비빅!

엄청나게 시끄럽다.

디지털 숫자판이 요동을 친다.

그런데 그때!

삐빅! 삐비빅! 삑! 삑! 삑!

“음?”

점점 내려가는 오염도 수치.

삑! 삑! 삑…….

‘효과 확실한데?’

역시 데우스칩.

제대로 흡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흡수기 막대에 방사능 측정기를 대어 보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미 흡수한 방사능은 이 막대기에 압축되어 완벽하게 차폐되었고.

‘성능은 확인했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 수작질을 그대로 갚아 줘야지.

* * *

한국 방송국에서도 방사능 오염 해결 관련 특별 뉴스가 방영되었다.

뉴스 전에 화정 그룹 광고가 덕지덕지 붙었다.

정규광 회장이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

물론 찬웅이 따로 찾아가 일러둔 결과였지만.

심층 취재 뉴스.

눈에 딱 들어오는 자막과 함께 방송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마도 공학 기술, 어디까지 왔나?>

방사선 방호복을 단단히 껴입은 아나운서 기자.

“저는 지금 방사능 오염 폐기물을 보관하는 처리장 안에 나와 있습니다. 방폐물 드럼통 하나를 열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방사능 측정기를 꺼냈다.

삐비비비비비비빅!

“수치를 보십시오.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비록 드럼통 안에 보관되어 평상시엔 누출될 위험이 없지만 불의의 사고로 드럼통이 파손되면 어떻게 될까요?”

기자는 천천히 걸어 뚜껑이 열린 또 하나의 드럼통으로 다가갔다.

마찬가지로 측정기를 대니.

“보십시오. 여긴 숫자가 0입니다. 저 통과 이 통의 차이점은 뭘까요?”

카메라의 클로즈업.

“바로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죠.”

그 뒤로 흡수기에 대한 찬양이 쭉 이어졌다.

방사능 오염의 완전한 해결, 마도 공학의 신기원!

화면이 전환되고, 직접 인터뷰에 나온 정규광 회장.

“이 흡수기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도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정규광은 기자의 질문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관심도가 폭발해서 전화기를 꺼 둘 정도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양산에 성공하면 각국으로 수출할 겁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일본은 언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도 나왔는데.

다음 뉴스도 마찬가지.

세계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 폐기장, 체르노빌, 주요 핵실험 지역, 방사능 오염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들이 쭉 나열되었지만 일본의 후쿠시마는 단 한 장면도 없었다.

철저하게 일본을 소외하겠다는 의도.

인터뷰하는 기자도 일본이란 단어를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그런 나라가 있냐는 듯.

종이 언론에서도.

인터넷 신문에도.

공식 너튜브에도.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를 소개하는 매체에 공통적으로 드러난 한 가지.

일본은 없다.

일본도 알았다.

혹시라도 후쿠시마에 대한 내용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저게 뭔가?

노골적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기막힌 물건 만들었는데, 너희들 건 없어.

실망, 분노, 치욕… 갖가지 복잡한 감정이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 * *

위이이잉!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떠 있던 테라퓨타 마탑이 마침내 기동을 시작했다.

침식지 원정의 재시작.

드디어 결말을 볼 때.

테라퓨타에 올라와 있는 수천 명의 플레이어.

모두가 긴장된 표정이었다.

찬웅은 마탑 내부, 브랜달의 본체가 잠자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게임에서도 연락을 주고받은 지 오래됐다.

흑막 놀이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나?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본체에 아무 일 없다면 바깥에서도 괜찮겠지.

그런데?

“…너 뭐냐?”

브랜달의 본체는 여전히 가사 상태.

하지만 그 옆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이미 오래전에 와 있었던 모양.

머리 위에 뜬 이름표.

[중화영웅]

“놀라지도 않나? 형은 저 죽었다는 소식 못 들었어요?”

“그래, 들었어. 근데 귀신이 말도 하네.”

“흐흐흐, 조금 아쉽다. 형이 놀라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흑막 놀이 재미있냐?”

“에이, 그럴 리가요, 어쩔 수 없이 한 거예요. 걔들 가만히 두면 안 되겠더라고요.”

“왜? 또 날 죽이려고 계획이라도 세웠대?”

“어? 어떻게 아셨어요?”

“…….”

징글징글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어? 막 원정 떠나려던 참인데.”

“벌써 SNS에서 떠들썩한데 그걸 모를까요? 저도 참가해야죠.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접속은 어디서?”

“안전한 곳에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넌 죽은 놈이잖아. 여기 보는 눈이 많은데 밖으로 나올 수나 있겠어?”

“폴리모프로 얼굴을 바꾸면…….”

“이름표는?”

“아! 맞다. 그걸 생각 못 했네.”

손이 많이 가는 놈이다.

“이거 차라.”

찬웅은 자신의 귀에서 귀걸이를 빼내 브랜달에게 건넸다.

“귀걸이? 이건 뭔데요?”

“아바타 이름 가려 주는 아이템.”

“오! 이런 아이템도 있었구나!”

브랜달까지 왔으니 드림 팀 결성.

침식지는 이미 정화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