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흑막
마정석은 그리 싼 가격이 아니다.
같은 무게의 석유과 비교했을 때 거의 10배 이상의 가격.
반면 에너지 효율은 그보다 훨씬 높다.
마도 공학 제품을 생산할 때도 그리 많은 양이 들어가지 않고.
평가회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문이 쏟아졌다.
엄청난 양이었다.
대체 감당할 수나 있을까?
그러나 문제없다.
찬웅은 엘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케이] : 엘리 씨, 마정석이 필요한데.
칼같이 날아오는 답장.
띠링!
[엘리] : 얼마나요?
[케이] : 저번에 주신 것보다 더 많이.
[엘리] : 알았어요. 마정석 전용 아공간 박스, 바로 보내 드릴게요. 10상자면 되죠?
10상자라.
기가 막힌 양이다.
마정석 전용 아공간 박스 하나면 웬만한 택배 물류 창고 두 채를 가득 채운다.
그럼 혹시?
[케이] : 100상자는?
[엘리] : 하아, 담기 힘든데… 어쩔 수 없죠. 오랜만에 야근해야죠.
양은 문제가 아니었다.
마정석을 박스에 담는 데 드는 수고가 문제라는 말.
사실 100상자까진 없어도 되지만.
일단은 받아 두자.
[케이] : 부탁드릴게요.
[엘리] : 네, 하루에 10상자씩 열흘 동안 APS 센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물량은 확보됐고.
데우스칩이 고개를 갸웃하며 찬웅에게 물었다.
“마정석 대금 비율에서 코인 가격을 30%로 잡은 이유가 뭔가? 비율을 높게 잡는 게 낫지 않아?”
“간단해요. 코인 가격을 떨어뜨리려고요.”
“음? 자네 재산 대부분이 코인인데, 그럼 손해잖아.”
“현재 코인 가격이 너무 높아요. 타 직업 플레이어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그렇긴 해. 용병 플레이어 말고는 코인을 벌기 힘드니까.”
지금도 치솟는 코인 가격에 플레이어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오죽하면 현실에서도 흙수저면 게임에서도 거지라는 말이 나돌까? 그걸 극복하려면 용병 플레이어를 택하면 되지만, 그건 쉽지 않다.
어차피 자신이 소유하게 될 회사.
미래를 위해선 코인 가격을 하락시켜 신규 플레이어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
적정한 선에서.
그리고 코인 말고도 찬웅의 재산은 엄청나다.
실제로 그 마정석 공급 대금 결정이 있고 난 뒤, 코인 시세는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었다.
아직도 부족하다.
이보다 더 떨어뜨려야지.
매일매일 배송되는 마정석 전용 아공간 박스 10개.
그에 따라 활발해지는 마도 공학 연구.
특히 데우스칩에게 찬사를 받은 화정 그룹은 주가가 폭등하고 있었다.
방사능을 특정해서 그것을 흡수, 압축, 차폐 문양으로 가두는 방식. 데우스칩의 조언으로 보다 더 완성됐다.
그 덕분에 일본 정부에서 비밀리에 화정 그룹으로 특사를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거라면 후쿠시마 지역의 방사능 오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자! 이제 털어놔 보시죠.”
갑작스러운 찬웅의 추궁에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데우스칩.
“뭘?”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기, 이거 짜고 친 고스톱이잖아요.”
“…무, 무슨?”
“화정 그룹이 어떤 곳인지 뻔히 아는데, 거기서 방사능 오염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살펴보니까 땅에다 꽂는 안테나 방식이었고. 누굴 바보로 보세요?”
“아… 으음. 그, 그게.”
정곡을 찔린 듯한 데우스칩의 표정.
찬웅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명백한 부정입니다.”
“나, 난 지구인도 아닌데, 지구 법에 적용되지 않아.”
“주민등록번호까지 만들었으면서… 안 그래요, 대우석 박사님?”
“…….”
화정 그룹은 원자력 분야와는 그 어떤 관련성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방사능 오염 흡수 마도 공학 연구가 툭 튀어나와?
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화정 백화점에서 정규광과 데우스칩이 만나고 난 후일 터.
데우스칩에게 잘못을 따지는 마음은 결코 없다.
오히려 감사해야지.
그냥 호기심 차원에서.
그 음흉한 정규광 영감이 어떻게 데우스칩을 구워삶았는지 궁금해서.
만약 허튼수작하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
물론 정규광 말이다.
어렵게 열리는 데우스칩의 입.
“…평가회 준비로 각국에서 메일이 왔을 때, 방사능 오염 연구에 대한 내용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이런 짓을 안 했을 거야.”
그건 찬웅도 알고 있다.
“마정석 발전소가 곳곳에 만들어져 상업 발전을 시작하면 원자력 발전은 쓸모가 없을 게 아닌가? 다 폐기해야지. 다른 발전소야 지구의 과학으로 안전하게 폐기 가능하겠지만 원자력은?”
방사능 오염 물질의 어마어마한 반감기.
결국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어 보관해야 한다.
후대에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올 테고.
“그런데 그쪽으로 연구하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어. 그저 당장 상품화할 수 있는 연구에만 눈이 벌게져서 달려드는 꼴이 너무 한심해서. 그래서정규광한테 지시를 내린 거야, 하나 만들라고.”
아아아.
찬웅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구인보다 더 지구를 걱정하는 저쪽 세상의 영혼이라니.
“…효과는 있었어요?”
“끝내주지. 누가 만든 건데?”
“시제품은?”
“여기.”
책상 서랍을 열어 주섬주섬 막대기 2개를 꺼내는 데우스칩.
“작네요.”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거야.”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미안해요, 데우스칩.”
“응? 자네가 왜 사과를?”
“선한 의도를 몰라보고 부정이니, 이딴 말을 꺼내서.”
“내가 더 미안하지. 자네에게 미리 말을 해야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어.”
“적극 연구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건 말만 하세요.”
“하하하, 고맙네. 맡겨 두게.”
이 시점에서 찬웅이 할 일은?
보답해야 한다.
게임 속 남은 침식지를 정화함으로써.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최기병.
“…저, 주, 중국에서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가, 같습니다.”
심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진짜 골치 아픈 동네다.
* * *
처음엔 평범한 빌런 소탕 작전으로 인지했다.
아마 베이징 시민들도 그렇게 알았겠지.
빌런 대테러 특수부대가 투입됐고, 공격용 헬기가 출격해 발칸포와 미사일을 발사해 스위트룸이 있는 호텔 최상층을 초토화해 버린 사건.
하지만 그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하고 있던 고객의 명단이 유출된 후, 중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중화영웅, 덩차오 사망! 중국 정부 공식 확인.>
<대체 누가? 일부 급진파 군부 세력의 단독 범행으로 알려져.>
<중국 정부 덩차오 사망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
중화영웅이 죽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각성 플레이어가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
중국인들도 경악했다.
그의 사망이 확실시되자 희한하게도 여론이 둘로 갈렸다.
애도하는 자와 욕을 하는 자.
아마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한 것일 터.
└ 진짜야? 어쩐지 며칠 동안 안 보였어.
└ 정부가 죽인 거 아냐?
└ 낄낄낄, 꼴 좋다. 설치고 다니더니.
└ 하아, 이것 좀 봐라. 애도하지는 못할망정, 우린 영웅을 품을 그릇이 못 돼.
└ 영웅은 무슨. 사상이 불순하니 천벌받은 거지.
└ 가만히 있을 거야? 천안문에서 보자!
└ 그래, 가라. 넌 내가 신고한다.
└ 이 새끼가, 언제는 영웅이라고 찬양하더니.
└ 내가 언제?
한국도 기사를 쏟아 냈다.
케이와 함께 침식지를 공략한 중화영웅 덩차오이기에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았으니까.
“…네? 지금 그게 무슨 말? 덩차오가 죽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입니다. 미심쩍긴 합니다만…….”
사실 덩차오가 브랜달이라는 사실은 찬웅을 비롯해 최기병, 데우스칩, 에루인만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정작 데우스칩과 에루인은 태연하다.
“그러니까 9서클 마법사가 고작 헬기 미사일 몇 대에 뒈졌다고? 참 나! 유치원 원생이 고릴라 척추 꺾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액션 유치원생이면 가능해, 고릴라 척추 접는 거.”
“액션 유치원? 거긴 또 어딘데?”
“그런 유치원 있어.”
하긴!
9서클 마법사면 현대로 치면 전략 병기나 마찬가지.
혼자서 국가 하나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꼬맹이 마법사는 무슨 수작이지? 왜 말도 안 하고 혼자 처죽고 난리야?”
“글쎄, 중국을 먹니, 쪼개니 하면서 큰소리 뻥뻥 치더니만.”
“찬웅아! 따로 연락 안 왔어?”
“아직은…….”
찬웅도 브랜달이 죽었다는 사실은 절대 믿지 않았다.
아마도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데 곧 밝혀졌다.
중국발 후속 기사를 통해서.
<중국 비상위원회 위원장 이정푸, 덩차오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해.>
<영웅이 죽었다. 그가 못다 이루었던 유지를 이어 가겠다고 밝혀.>
<국가 지도자 직선제 선거, 반드시 시행하겠다고 다짐.>
그리고.
<이정푸 위원장, 하나의 중국 포기 선언.>
<한족만을 위한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매진하겠다고 말해.>
<중국 내 각 소수민족 자치구 독립 허용.>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아니, 전 세계가 그랬다.
중국 지도부가 단체로 돌아 버렸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 이게 실화냐?
└ 뭔가 떨떠름하네.
└ 하아, 진짜 모르겠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 안타깝게 떠난 영웅의 뜻을 받들자!
└ 이 새끼 전엔 욕하던 놈 아니야?
└ 내가 언제?
중국인들은 혼란스러웠다.
정부가 죽인 게 진짜 아닌가?
처음 덩차오가 신중화주의니, 지도자 직선제니 떠들 때,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 올까?
후속 보도를 접하며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의 에루인과 데우스칩.
“브랜달, 이놈, 지금 흑막 놀이 하고 있었어. 와! 넌 내가 인정한다.”
“소설 좀 읽었나 보군. 배후에 걔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귀여운 흑막 새끼. 나보다 낫네. 난 죽이기만 했는데.”
겉으론 안타깝게 죽은 중화의 영웅.
그러나 실체는 중국을 움직이는 흑막.
그런 것 같다.
아니면 중국 지도부가 저렇게 나올 리 없다.
“이쁜 그림이군. 중화의 젊은 영웅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사람들은 그를 추모하면서 생전 그가 못다 이룬, 새로운 중국 건설이라는 유지를 이어받고.”
“하긴! 보통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니까.”
하지만 심각한 표정의 최기병.
“중국은 쪼개질지도 모릅니다. 반대파들도 만만치 않아요.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거칠 거고요.”
“그래. 중국 내전이 발발할 여지도 있어.”
찬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중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중국은 브랜달에게 맡겨 두죠,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그럼 전 이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찬웅을 보며 질문하는 최기병.
“어디 가십니까?”
“접속하러 갑니다. 처리할 일이 있어서.”
“플레이어들 소집할까요?”
“아뇨. 쉬게 내버려 두세요. 마탑 경로 조정만 하면 돼요.”
* * *
찬웅은 게임에 접속했다.
옛 헤스티아 성국 상공에 머무르고 있는 테라퓨타 마탑.
플레이어들은 휴가 중이라 여길 지키는 사람이라곤 당직을 서는 APS 소속 용병 플레이어 몇 명뿐.
그래도 상관없다.
마탑의 능동 방어 시스템으로 허가받지 않은 대상은 절대 출입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지상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성국의 재건을 위해 모인 NPC들.
마키나 공화국에서 지원 나온 듯한 건설용 골렘 그리고 수많은 인간 노동자가 건축의 달인 드워프의 지휘 아래 힘을 쏟고 있었다.
어느새 신전 건물이 거의 다 올라갔다.
“빠르네.”
그럼 가 볼까?
이제 남은 침식지는 약 50여 개.
그중 굵직한 건 단 하나.
옛 마법 왕국의 침식지.
경로를 조정해 자잘한 건 치우고 나아가면 그곳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경로에 포함되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동 경로와는 멀리 동떨어진 침식지.
거기까지 치우고 가려면 어쩔 수 없이 빙 돌아가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랭커)]
[포스 : 731,856]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MAX), 바람길 산책(MAX), 별빛 가르기(MAX), 강타(MAX), 슬립(2단계), 강기(MAX)]
[패시브 스킬 : 방출(MAX), 듀얼 스트라이크(MAX), 마법 저항(5서클), 약점 포착(MAX), 고무 신체(MAX)]
[동화율 : 198%]
[반영률 : 78%]
[드래곤 하트 : 흡수율 55%]
포스 73만대.
모든 성장형 스킬 올 맥스.
‘힘들겠지만 10개만 정리하자.’
대기실로 귀환해서 문을 좌라락 단 후.
화아아악!
일단 하나부터.
처음으로 간 곳은 카쟌 침식지와 비슷한 사막형.
팟팟팟팟팟!
보스만 잡자.
인지 범위에 들어오는 굵직한 침식의 기운.
찌이이이이잉!
삽시간에 소모되는 70만의 포스.
스킬 강기(MAX)
엄청난 크기로 변한 도끼.
그대로 사막 침식지 한가운데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콱!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모래 지반.
강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범위 안의 모든 것이 소멸했다.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바로 공략 성공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 * *
그 와중에 일본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화정 그룹, 아니 데우스칩이 만든 방사능 오염 물질 흡수 마도 공학 아이템이 문제의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