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본격적인 마정석 유통 시작 (3)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지만 마도 공학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나마 데우스칩이 강연을 통해 이론의 기초를 정립해 줬기에 망정이지,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세계 유수의 대학교에서,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의 연구소에서 속속 발표되는 마도 발명품들.
하지만 역시 마정석이 문제.
한국 APS에서 꾸준하게 공급이 되고 있지만 모자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한국에서 터진 마정석 유통 비리 사건으로 인해 원활한 공급이 되지 않았고.
그런데 기회가 왔다.
자신들의 성과물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충분한 마정석을 공급받을 기회가.
바로 마도 공학 연구 평가회.
참가하는 건 자유.
내용이 유출되기 싫은 자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
불이익도 없을 거라 약속했고.
하지만 과학자들은 인정받고 싶었다.
마도 공학의 대가 데우스칩에게.
그야말로 크나큰 영광 아닌가?
더불어 연구 평가를 하면서 조언도 해 준다고 하니.
마도 공학을 연구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참여 의사를 밝혀 왔다.
보고서들이 메일이나 저장 장치를 통해 APS로 전달됐다.
그리하여 실내 체육관을 통째로 빌려 개최된 마도 공학 평가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저명한 과학자들, 관리, 기업가, 자연스럽게 교류의 장이 마련되고.
데우스칩의 신랄한 혹평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건 쓰레기야. 지나가는 초등학생 잡아다 한 달만 가르쳐도 이보단 낫겠어.”
“흐음, 의료용 투시 마법 문양이라, 발상은 좋아. 하지만 적용되는 마법 문양이 이게 뭔가? 순서도 틀리고, 크기도 틀리고, 이렇게 하니 결과가 나오긴 하나?”
“어허, 끔찍하군. 무한 동력 문양,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괜히 봤어. 누가 물 좀 떠 오게. 내 눈을 씻어야겠네.”
“진동 문양 스티커? 어떤 물건이든 붙이면 진동한다고? 진동시켜서 어디 쓰는데? 뭐? 일본 수출용……? 이 보고서는 내가 직접 휴지통에 버려 주지.”
까칠한 데우스칩.
그러나 에루인에게만은 다정한 남자.
평가회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이틀, 사흘, 나흘…….
그 과정에서 데우스칩의 인정을 받은 보고서도 나왔다.
“오! 드디어 우리 한국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군. 흡수 문양과 차폐 문양으로 잔류 방사능을 수집해서 오염을 해결한다라…….”
오랜만에 나온 부드러운 말투.
“이거 괜찮아. 앞으로 원자력 발전이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탈원전 정책에도 충분히 기여하겠고, 수고했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바로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겠어. 화정 그룹인가?”
슬며시 손을 드는 정규광 회장.
“수고했어. 수정할 부분이 있지만 그건 차차 해결하고.”
기쁨을 감출 수 없는 정규광 회장이었다.
그럴 수밖에!
대가에게 인정을 받았다.
이건 노벨상을 타는 것과 마찬가지.
마도 공학이 발표되자마자 제일 적극적으로 뛰어든 화정 그룹, 보람이 있었다.
반면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타 기업들.
그 후에도 몇몇 긍정 평가가 있었지만 화정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은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평가회는 성황리에 종료됐다.
남은 건 결론.
하지만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발표된 연구 성과 보고서 중 데우스칩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건 전체 3%도 채 되지 않았다.
97%가 다 쓰레기, 쓰레기 또 쓰레기.
마정석 공급 활성화는 물 건너가나 싶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우스칩.
누구지? 혹시 케이인가?
어차피 데우스칩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최종 판단은 케이.
이윽고.
“모두들 고생이 많았네.”
결론이 난 것 같다.
“덕분에 내 황금 같은 시간이 낭비됐어. 쯧쯧, 시간은 금이라던데.”
안 좋은 쪽으로.
“케이의 결정을 대신 전해 주지. 앞으로 마정석 공급의 제한을 전면적으로 풀겠네. 연구와 물품 생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아니, 좋은 쪽.
…진짜?
“어…….”
“오!”
“저, 정말?”
“휴우, 잘됐군.”
데우스칩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연구소나 기업에겐 더 많은 양의 마정석이 공급될 거야. 공급가도 더 싸게.”
박수 치며 환호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
“단! 두 가지만 명심하게. 마정석 사재기는 불허. 그리고 무기에 적용하는 것도 금지. 이 둘만 지키면 마정석의 공급은 영원히 계속될 거야.”
규칙도 정했고.
“마정석 대금은 코인 30%, 나머지는 달러, 유로화, 원화 등으로 받을 계획이야. 금이나 부동산도 괜찮아. 이상!”
평가회는 완전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의문점도 있었다.
규칙만 지키면 마정석 공급은 영원할 거라는데 대체 얼마나 많다는 거지?
* * *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중국인조차.
민주주의 체제를 위해선 결여된 것이 많았다.
완전하게 만들어 줘야지.
그 시작이 중국 지도자 직선 선거제.
브랜달, 덩차오는 연일 천안문 광장에서 선동 연설을 계속했다.
점점 숫자가 많아지는 군중.
중화영웅을 보기 위해 베이징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도시. 농촌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 한족 중심의 신중화주의를 위해서는 하나의 중국은 포기되어야 합니다. 저 위구르와 티벳족을 진정한 중국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와아아아!”
“중화영웅! 중화영웅! 중화영웅!”
“한족의 우수성을 증명하자.”
“중화 만세, 만세, 만만세!”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들.
- 그 시작이 바로 지도자 직선 선거제입니다. 누구도 중국 국민의 선택 없이 지도자가 될 순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선택을 받겠습니다.
정치 개입 선언이나 다름없는 발언.
이렇게 되자 중국 정부는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중화영웅 덩차오가 투숙하고 있던 고급 호텔.
그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전투 장비와 개인화기, 야시경을 쓰고 방탄복을 입은 모습이 딱 봐도 군인들, 그것도 고도로 훈련된.
“호텔 통제실 침투조, 현재 상황은?”
- 전원을 차단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좋아! 공중 타격 팀은?”
- 곧 이륙할 예정입니다.
“알았다. 우리도 지금 진입하겠다.”
빌런 대테러 특수부대는 은밀하게 호텔 안으로 침투했다.
엘리베이터를 막고, 계단도 통제하고.
쥐새끼 한 마리 나갈 틈을 만들지 않고 철저하게 호텔을 봉쇄한 군인들.
작전 시작 전에 목표물 확인부터.
호텔 내부에 숨겨 둔 첩보용 카메라에서 전송된 영상.
스위트룸 거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덩차오의 모습이 보인다.
확실히 놈은 거기 있다.
“시작해!”
순간!
타닥, 타다다다닥!
차례대로 꺼지기 시작하는 호텔 안 조명.
호텔 주변의 가로등과 건물 불빛도 모두 소등됐다.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
“목표는 뭐 하고 있지?”
- 열 감지 영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방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현재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렇군. 작전 수행을 허가한다.”
동시에.
투투투투투…….
호텔 밖에서 들리는 프로펠러 소리.
중국군의 CW-20 최신예 공격 헬기 두 대였다.
덩차오의 스위트룸 전망 창을 조준하고.
파슛! 파슛! 파슛…….
차례대로 발사되는 미사일.
콰쾅! 콰콰콰콰콰콰쾅!
호텔 최상층이 화염에 휩싸였다.
챙! 채채챙! 쿠쿵!
깨어져 나가는 호텔의 유리창.
드르륵,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두 대의 헬기에서 발칸포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다시 발사되는 미사일.
파슛! 파슛!
콰콰콰콰콰쾅!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지만 사람 하나 잡자고 이렇게나 무지막지한 화력을 쏟아붓다니.
과도할 정도로 지속되는 헬기의 공격.
최상층 스위트룸은 완전하게 파괴됐다.
활활 불타올랐다.
각성 플레이어는 무적이 아니다.
놈들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
게다가 이건 미사일과 발칸.
이 정도면 덩차오, 아니 케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
잠시 후.
호텔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투입됐다.
불이 꺼지길 기다린 후, 방독면과 야시경을 착용하고 수색 시작.
“생명 반응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거 시체도 안 남았겠는데요?”
“무조건 찾아! 놈이 죽었다는 걸 상부에 보고해야 해.”
순간!
“아! 찾았습니다. 불에 탄 시체 한 구 발견.”
“덩차오 맞아?”
“…어, 근데 확인이 어렵겠는데요?”
빌런 대테러 특수부대 대장은 시체에 다가가 유심히 살폈다.
머리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터져 버렸겠지.
몸통은 새까만 숯덩이.
슬쩍 건드려 보니 그냥 부서질 정도로 완벽하게 탔다.
지문 채취도 안 되고…….
“DNA 검사도 불가능할 듯합니다.”
“흐음.”
사실 신분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천안문에서 연설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기까지, 하루 종일 놈을 추적했다.
그리고 제거 작전은 영상으로 찍어서 저장했고.
이 시체는 놈이 확실하다.
특수부대 대장은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제거 성공했습니다.”
* * *
베이징 중난하이 국무원.
리정푸 비상위원회 위원장은 덩차오 제거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성공했다고 연락이 왔소.”
“멍청한 놈! 정체와 위치가 밝혀진 각성 플레이어는 그저 과녁일 뿐이라는 걸 모르고 나대더니만.”
“이제 천안문 광장 집회 단속만 남았네요.”
“철저하게 금지해야 합니다. 우매한 국민들이 다른 생각 하지 않게끔.”
“한편으론 아까워요. 놈이 경거망동만 하지 않았어도 품에 안았을 텐데.”
제거되었지만 그래도 케이와 비견할 만한 실력을 갖춘 플레이어, 한마디로 써먹을 데가 많았던 놈이었다.
“아까워할 필요가 없소. 우리가 품기에 너무 위험한 놈이었소.”
“맞습니다. 제거 결정은 옳았습니다.”
“쯧쯧, 제 아비 반만 따라갔어도.”
간만의 성공이었다.
그래서 위원들은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저렇게 쉬운 것을… 어쩌면 케이도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닐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놈의 위치와 정체만 특정되면 못 죽일 것도 없지요.”
“미국만 아니라면 놈은 벌써 죽었을 겁니다.”
“으흠, 우리가 계속 미국 눈치만 보고 있을 필요가 있나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계획이나 세워 봅시다.”
정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스르륵!
회의실에 누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굴 죽인다고?”
마치 귀신처럼 나타난 남자.
중화영웅 덩차오였다.
“으아아악!”
“…너는?”
“분명 죽었다고 연락이 왔는데.”
“귀, 귀신?”
“…….”
덩차오는 손가락을 들었다.
우우우웅!
그의 주위에 생성되는 푸른색 마력의 덩어리들.
슈슛! 슈슈슛!
제각각 날아가 비상위원회 위원들의 이마로 날아가 명중했다.
퍼벅! 퍼버버벅!
“이, 이런!”
“헉!”
“무슨 짓을…….”
“이건 뭐냐?”
비릿하게 웃는 덩차오, 아니 브랜달.
“이거? 추적 마법이라는 거야. 너희들 머리에 내 마력을 심었지.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이목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이놈! 감히.”
위원 한 명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다.
바로 그때!
화르르륵!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하는 몸.
“끄아아악!”
단 수 초 만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귀가 터질 정도의 비명이었지만 달려오는 경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위원들은 겁에 질렸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너무나 허무하게.
“봤지? 까불다가는 이렇게 되는 거야.”
꿀꺽.
조용해진 방 안.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내가 추적 마법을 너희에게만 건 게 아니거든. 원래 이런 짓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너희들 가족들에게도 걸었어.”
흠칫 놀라는 사람들.
“확인해 볼까? 이정푸 위원장 당신 아들, 지금 공항에 있군. 맞아?”
이정푸는 당황했다.
덩차오의 말이 맞다.
아들이 홍콩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세계 어디든 상관없어. 추적 마법에 걸린 이상 내게서 벗어나지 못해.”
“…뭘 원하시오?”
덩차오, 브랜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죽일 줄 예상은 했어.”
“그, 그건 오해요. 그리고 안 죽었지 않소?”
“아니! 아주 잘했다고. 그래야 시나리오가 시작되거든.”
“…무, 무슨?”
“지금부터 덩차오는 죽은 거야.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다가 죽은 진짜 영웅이 되는 거지.”
잠시 침묵 상황.
“그리고 당신들은 내 뜻을 기려서 생전 이룩하지 못한 지도자 직선제와 신중화주의의 위업을 이어받는 거지. 아! 날 죽인 놈들은 군부 내 불순분자의 개인적 일탈로 처리하면 되겠네.”
“왜 직접 하지 않고?”
“이게 훨씬 편하거든. 또 그림이 잘 나오잖아. 영웅의 희생, 그가 죽어서까지 달성하려 했던 숭고한 뜻, 그가 남긴 유산을 이루고자 하는 중국 정부.”
처음부터 노린 건가?
“우리가 응하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지. 모조리 정리하고 내가 직접 하면 돼. 뭐, 귀찮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영웅의 부활과 정당한 복수도 나쁘지 않은데?”
외통수다.
말을 안 들으면 여기 모인 자신들을 모두 죽인다는 뜻. 그간의 행적을 봐도 이놈은 충분히 그렇게 할 터.
이정푸와 비상위원회 위원들은 목숨을 버려 가며 자신들의 신념을 지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우리가 뭘 하면 되오?”
유들유들하게 웃는 덩차오, 브랜달.
“먼저 지도자 직선제 시행하고, 그다음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지하자고. 그건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와는 모순되잖아. 안 그래?”
그의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