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본격적인 마정석 유통 시작 (1)
게리 스탁턴은 찬웅을 만난 후 카리브해 리조트로 돌아왔다.
“엘리, 별일 없었지?”
“네, 다녀오셨어요?”
“어, 우리도 슬슬 이사할 준비를 하자고.”
“이사요? 어디로?”
“서울.”
“오예! 드디어 이 촌구석을 벗어날 수 있는 건가.”
곧 회사의 소유권 전체가 케이에게 넘어간다.
차원 창고를 열기 위한 수단만 넘겨주면 자신의 할 일은 끝.
‘그 전에 점검이나 해 볼까?’
게리 스탁턴은 차원 창고를 열었다.
‘흐음… 계속 늘어나고 있군.’
차원 창고의 숨겨진 비밀 하나.
창고에서 나가는 물건도 있지만 생겨나는 물건도 있다.
침식의 권능이 파괴와 변형이라면 주신(主神)의 권능은 창조와 생성.
새로운 차원 창조는 작은 폭발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우주 생성의 원리는 빅뱅, 차원 생성은 그보다 작은 스몰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신의 권능을 거의 다 소모하게 했던 천지창조.
창조의 스몰뱅이 있고 난 뒤, 세상의 영혼과 문명의 실제 생산물, 자원들은 새 차원으로 옮겨졌다.
폭발이 끝나고도 남아 있었던 창조의 권능, 그런데 그 영향을 오롯이 받은 물건이 있었다.
바로 마정석.
마정석의 근본은 에너지 결정체.
창조의 에너지와 마정석의 에너지가 섞여 버린 것.
창조와 생성의 권능이 마정석에 닿았다.
그리고 그 마정석은 차원의 틈 안에서 무한 증식을 시작했다.
마치 화수분처럼, 소금을 만들어 내는 맷돌처럼.
마법이 아닌 신의 영역.
지금도 마정석은 계속 늘어났다.
수만 년을 써도 괜찮다고 했지만, 늘어나는 양을 보면 수백만, 아니 수천만 년 동안 써도 남아돌듯.
또한 이런 창조의 힘은 의외의 결과도 낳았다.
마정석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 진(眞) 아이템도 함께 생겨난 것.
진(眞) 아이템과 일반 아이템은 그것을 구성하는 코드부터 다르다.
일반 아이템은 코드만으로 구성된 허상이지만, 진(眞) 아이템은 실체가 있다.
그런데 허상의 일반 아이템이 창조로 생성되는 진(眞) 마정석과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매우 높은 확률로 허상의 아이템이 실체화하여 차원 창고에 보관된다.
허상의 실체화.
이것이 바로 창조 경제.
만약 데우스칩이 파워 스틱 밤과 마력 미사일, 마력 포탄을 게임 속 진(眞) 마정석으로 만들었다면?
아마 차원 창고 안에서 실체를 가진 물건으로 생성되어 있을지 모를 일.
하지만…….
‘아직은 없네.’
이 비밀은 찬웅에겐 말하지 않았다.
소유권을 모조리 넘겨줄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
사실 차원 창고를 차원 공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 * *
중국 정치의 핵심은 공산당.
물론 다른 당이 존재하지만 그건 구색 맞추기일 뿐.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가졌기 때문에, 당내 계파 다툼이 일어나도 중국의 정치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빌런의 습격 사태로 인해 내로라하는 중국 정치인들이 줄줄이 사망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들이었다.
누가 그랬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다.
혹시 케이가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그 시각 그는 게임에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극심한 정치적 혼란.
그래도 어렵사리 수습했다.
현재는 당 대표자와 주석이 부재한 상황.
임시 비상 위원회를 꾸려 국가 주요 정책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발생한 의외의 변수.
바로 [중화영웅] 덩차오의 급부상.
중국 지도부는 당혹스러웠다.
임시 비상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리정푸 위원장.
“덩차오의 인기가 너무 높아졌소. 이건 정상이 아니요.”
위원들도 동의의 목소리를 냈다.
“맞습니다. 언론이든, 인터넷이든, 다 그놈 얘기만 떠들고 있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한족 순혈주의라니!”
“하나의 중국 원칙과 위배되는 발언입니다. 때문에 현재 각 소수민족이 매우 동요하고 있습니다.”
“덩차오에게 자제하라고 경고 메시지를 날리든, 아예 입을 꿰매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겁니다.”
처음엔 도움도 됐다.
홀로 빌런 갱 조직을 소탕하면서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덩달아 지도부의 지지율도 올라갔고.
그래서 상하이 방화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덩차오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묻었다.
하지만 점점 선을 넘고 있다.
신중화주의? 한족 순혈주의?
지극히 정치적 발언 아닌가!
“베이징 연찬회 화재도 놈이 일으킨 거죠?”
“이유는 뭔지 알 수 없지만 덩차오가 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루빨리 놈에 대한 입장을 결정해야 해요. 우리가 품느냐, 아니면…….”
“품는 건 위험합니다. 각성 플레이어라 통제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케이와의 관계도 미심쩍고.”
“하지만 섣불리 건드렸다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지금 덩차오의 인기를 보세요.”
요 근래, 선전 선동이나 특별한 배후 작업 없이 이렇게 국민적 인기를 끈 중국인이 있었던가.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덩차오를 제거하려 들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터.
“고민이군.”
“하아, 먹을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고.”
“사람을 보내 보는 게 어떻겠소? 덩차오의 의중을 물어보면…….”
순간!
똑똑.
“위원장님!”
“뭔가? 지금 회의 중인 거 안 보이나?”
“저어, 더, 덩차오가…….”
“응? 그놈이 왜?”
“지금 덩차오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천안문?”
“그가 나타난 걸 목격하고 수십만의 군중이 모여서… 여길 보십시오.”
스마트폰으로 생중계 영상을 보여 주는 중국 국무원 직원.
“이런 미친놈이!”
천안문 광장.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늘 위로 떠올라 있는 찬란한 빛의 덩차오.
- 모두 알고 계시듯 저는 증명해 냈습니다. 침식지 공략을 성공해 냄으로써! 한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 우수합니다.
집회 자체가 불허된 천안문 광장.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운집하다니.
- 중국은 다시 위대해져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와아!
덩차오의 이름을 연호하는 군중의 소리.
- 하지만 지금까지 어땠습니까? 중국이 처한 꼴을 보십시오.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왜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모두 멍청한 지도자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우리 한족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옳소!”
“영웅의 말이 맞아!”
“그렇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동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 우린 지도자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중국을 다스릴 수 있는 진정한 한족의 지도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아무 말 없이 방송을 시청하는 중국 지도부.
분위기가 심각했다.
이건 지도부에 대한 정면 도전.
급기야…….
- 그래서 전 제안합니다. 한족 지도자 직선 선거제의 전면적 시행을! 지도자는 우리 손으로! 공산당원이 아니라도 한족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와아아!”
“덩차오 만세!”
“중화영웅을 한족의 지도자로!”
“덩차오! 덩차오! 덩차오…….”
“직선제 찬성! 우리 손으로 지도자를 직접 뽑자.”
심각한 표정의 리정푸 위원장.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죽입시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 *
천안문 광장.
덩차오, 브랜달은 라이트닝 마법으로 후광 효과를 극대화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신체.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에 떠올라, 목소리를 크게 키워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들고, 거기에 시각적 효과까지 가미했다.
비록 매혹이나 현혹 같은 정신계 마법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 민주화의 첫 단계.
바로 전 국민 직선 선거제.
중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국민 선거가 없다.
아니, 있긴 하다.
고작해야 지역 인민 대표를 뽑는 선거, 그거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인물에다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 고작. 나머지 대표 선출은 간접선거로 진행되고.
‘미끼는 던졌고.’
언제 입질이 올까?
아마 순순히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현 권력자들이 지도자 직선제를 받아들일 리 없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반응해 오냐는 것.
회유, 아니면 숙청, 둘 중 하나.
‘제발 회유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그래야 더 화려하게 판을 벌여 보지.
* * *
서울 여의도 화정 백화점.
화정 그룹 미래 전략본부 본부장 정지은은 무료한 표정으로 VIP 명품관을 둘러보고 있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쇼핑이나 해 볼까 해서 백화점으로 왔다.
얼마 전에 폭풍처럼 밀어닥친 마정석 유통 부정의 여파, 그 결과 한국 기업 우선 공급 혜택이 사라져 버렸다.
현재 모든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 마정석, 특히 데우스칩에 의해 마도 공학의 기초 이론이 전파되자 그 발전 속도는 더더욱 가속화됐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줄어든 공급.
APS 마정석 유통 본부는 매우 엄격하게 마정석을 관리했다.
그리하여 모든 생산과 연구 활동이 올 스톱.
그룹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아니, 한국 경제가 발칵 뒤집혔을 정도.
아버지 정규광 회장도, 정지은도, 모든 채널을 통해 APS에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하긴!
청와대도 APS를 어찌해 보려다 초토화됐는데.
‘케이를 만나야 해.’
그러나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정체.
얼굴도 모른다.
강찬웅이라는 이름만 안다.
그 이름도 매우 어렵게 알아낸 정보.
‘어떻게 접근할 방법은 없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백화점에 왔으니 목적에 충실하자.
“신상 나온 건 없어요? VIP 명품관에, 이게 전부?”
“죄,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마음에 드시지 않으시면 다른 숍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신경을 좀 써야겠어요. 디스플레이도 눈에 썩 들어오지 않고, 유행 지난 건 빨리 아웃렛이나 2차 판매점으로 넘기세요.”
“알겠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쇼핑도 큰 재미가 없다.
순간!
왁자지껄 우르르 몰려다니며 명품관을 휘젓고 다니는 한 무리의 사람.
자연스레 정지은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기존 고객들은 불쾌한 표정.
‘뭐야? 예의 없이.’
‘화정도 다 됐어.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몰려오네.’
‘수질 관리 좀 하지.’
화정 백화점의 명품관은 두 개.
하나는 일반인들도 구매 가능한 곳.
다른 하나는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
여긴 VIP 회원만 올 수 있는 장소다.
회원이 되려면 나름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있어야 하고.
그러자 정지은을 수행하는 백화점 직원이.
“조치를 할까요?”
“무슨 조치?”
“회원제 명품관에서 저렇게 소란스럽게 다니면…….”
“이봐요! 저분들 고객님들이잖아요. 조치의 대상이 아니에요. 이곳에 왔다는 건 VIP 회원이라는 말이고.”
“아, 아닙니다.”
이해는 한다.
VIP 명품관에서 저렇게 떼로 몰려다니면서 쇼핑하는 고객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조용하게 확인해 봐요. VIP 회원들이 맞는지.”
“네! 알겠습니다.”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직원.
정지은은 곧 관심을 접었다.
‘집에나 가야겠어.’
퇴근해서 와인이나 한잔하고 일찍 자야지.
정지은은 백화점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찜찜한 기분이 든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고객들 틈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던 한 명의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반이나 가려져 있었지만 매우 낯익었다.
늘씬한 키에 조막만 한 얼굴.
‘연예인인가?’
재벌가 로열패밀리인 정지은 입장에서 연예인 정도야 딱히 특별한 것도 없지만…….
무심코 차창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정지은.
커다란 광고 판이 보인다.
화장품 광고.
광고 모델은…….
“아!”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든다.
‘민도연.’
확실하다.
그녀였다.
백화점 VIP 고객이 맞고.
그보다 그녀는 APS 핵심 각성 플레이어.
케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또 그녀와 같이 온 사람들.
옷차림을 보면 연예인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APS?’
미친!
“차 돌려요!”
“네?”
“빨리 차 돌리라고요! 백화점으로”
큰일 났다.
* * *
그 시각 민도연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뾰족한 목소리로 직원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뭐죠? 지금 이 상황은? 제 일행이 VIP 회원이 맞는지 확인해 보시겠다?”
“네, 협조 부탁드립니다.”
“나 몰라요? 저 민도연이에요. 여기 회원 맞고.”
“아, 죄, 죄송합니다만 다른 분들은… 규정상 어쩔 수 없어서.”
창피하다.
찬웅이 쇼핑을 하고 싶다며 자신에게 연락해 왔었다.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백화점으로 이끌었다.
둘뿐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따라오는 사람이 많았다.
APS 소속 플레이어에, 데우스칩, 에루인, 딸기도 껌 딱지처럼 붙었고.
다 좋은데 딸기, 얘는 시간이 남아돌아?
만날 친구도 없나?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이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없던 정(情)도 싹트고, 그러다 보면 둘만 오붓하게 만날 기회도 생길 것이고.
그런데 이게 무슨 망신?
감히 진상 고객 취급 해?
마음만 먹으면 백화점 따위는 현찰 주고 살 수 있는 사람을?
민도연은 찬웅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