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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85화 (185/204)

185화 미궁 속 전투 (1)

헤스티아 성국 북쪽 침식지 지배자, 진혈의 군주 렐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케, 케이가 왔어. 그냥 미궁을 무너뜨려! 생매장하란 말이야!”

싸늘한 표정으로 렐리스를 바라보는 서쪽 지배자 다크엘프 군주 셀라핌.

“렐리스.”

“으음?”

“정신 차려, 쌍년아! 그러고도 네가 군주야?”

“너, 넌 겪어 보지 못했잖아. 상대는 케이야, 케이라고!”

“…진짜 많이 망가졌구나.”

진혈의 군주 렐리스는 아직 잊지 않았다.

사도의 몸을 빌려 지구에 강림한 후, 한국 동부 구치소에서 처음 케이와 맞닥뜨렸을 때 그에게 당한 일격.

빙의로 인한 간접 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힘은 연결된 길을 타고 들어와 세상 속 본체의 영혼에 상처를 입혔다.

그런데 여기서 직접 만난다면?

갈가리 찢겨 나갈지도 모른다.

솔직히 죽는 게 뭐가 무서울까?

그건 하나도 문제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참신께서 부활시켜 주실 텐데.

그러나 놈에게는 영혼을 삭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혼의 소멸엔 다음이 없다.

소멸하면 그걸로 끝.

반면 셀라핌은 랠리스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룩하신 참신의 대리자면서 겨우 플레이어 따위에게… 군주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나?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기 위한 숭고한 사명.

참신께 은총을 받아 권능의 정수를 품은 존재가 바로 군주 혹은 지킴이.

우매한 놈들은 침식이니 뭐니, 헛소리를 해 대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우주 근원의 정수가 바로 참신의 힘이다.

그걸 퍼뜨리는 것이 바로 자신들의 역할.

“멍청한 년!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냐?”

“지, 짙은 어둠의 미궁.”

“여기를 어떻게 만들었고 누가 지키고 있어?”

“…참신께서 권능을 보태 주셨고, 너와 내가 만들었으며, 충성스러운 종복들이 지키고 있지.”

“맞아! 미궁은 우리가 만든 덫이야. 놈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쥐새끼일 뿐이고, 그런데도 겁을 집어먹는단 말이야?”

“핵이 또 있으면…….”

“이젠 없어. 참신께서도 확인해 주셨다. 더 이상 세상 안으로 핵을 가지고 오는 건 불가능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예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사실 성녀와 블루드래곤이 놈을 끝낼 줄 알았다.

그러나 거짓 신의 안배 때문에 실패했고.

“놈이 여기 들어온 이상 결과는 세 가지야. 미궁에서 헤매다가 안팎에서 굶어 죽든지, 아니면 종복들에 의해 죽든지, 우리가 직접 끝내든지.”

셀라핌의 말에 렐리스는 조금 안심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영혼에 각인된 공포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셀라핌, 쥐뿔도 모르는 년이!’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영혼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아픔을.

물론 렐리스도 케이가 죽기를 바란다.

오히려 셀라핌보다 더 간절하게.

하지만 마음 다른 한편으론…….

‘너도 한번 당해 봐.’

그러면 알게 되겠지.

왜 자신이 여기까지 몰렸는지.

* * *

찬웅이 미궁에 들어서자마자 울린 메시지.

내용은 성녀의 제단 때와 비슷, 귀환 제한, 로그아웃 제한, 현실과 게임 속 페널티 적용 그리고 강제 부활.

그러나 부정적인 메시지만 들린 건 아니다.

[시스템 접근이 제한된 지역에 들어섰습니다.]

[자원을 최대한 투입해서 플레이어 케이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지원합니다.]

‘얘는 우리 편이네.’

성녀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어떤 방법으로 지원할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는 아니야.’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

어차피 바라던 바.

물려 죽든, 목을 따서 나가든 둘 중 하나.

찬웅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미궁.

보이는 건 바닥에서 천장까지 벽으로 꽉 막힌 통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확실히 전보다 정교해진 덫.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라고?’

모퉁이마다 두 개 또는 세 개로 이루어진 갈림길.

아직은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저벅저벅, 찬웅은 내키는 대로 걸었다.

갈림길에 가서도 고민하지 않고.

그러다가.

‘…막혔구나.’

막다른 벽, 다시 돌아가기도 귀찮다.

‘…뚫릴까?’

츠팟!

번뜩이는 쌍도끼.

콰콱!

카캉! 캉캉캉캉!

찬웅은 벽을 앞에 세워 두고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강기로 두르긴 했지만 도끼날이 상할까 우려될 정도로 두꺼운 벽.

‘뚫긴 뚫겠네.’

그렇다면 지금부터 아예 벽을 뚫고 갈까?

포스로 강기를 더 키우면 이보다 빨리 뚫을 수 있을 터.

좋은 방법이긴 해도 단점이 있다.

‘포스 소모량이 너무 커.’

몇 번 휘두르다 보면 금세 말라 버린다.

드래곤 하트에서 흡수한 포스량은 무한하지 않다.

자원 재생 물약 또한 몇 병 챙겨 오긴 했지만 모자랄지도…….

“30,000D코인으로 D박스 100개 구매!”

[현재 위치에선 D박스 구입이 불가능합니다.]

안 된다.

그래도 대답은 해 주니까 다행.

‘그냥 가자.’

뭐가 두려울까?

암만 고민해도 이것이 함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걸어가다가 보이는 대로 부수고, 보이는 대로 공격한다.

그러다 보면 끝이 나오겠지.

일단은 포스 절약 모드.

가볍게 산책하듯 걸어가다가 또 막다른 벽이 나오면 콱콱! 벽을 뚫고 또 뚫고.

‘대체 여긴 얼마나 넓은 거지?’

순간!

“카르르르…….”

“키이아악!”

“크르륵!”

빛 한 점 없는 통로.

어둠 저편에서 몬스터의 음성이 들려왔다.

뭔가가 이동하는 소리도.

슥슥슥슥!

‘드디어 왔구나.’

찬웅은 양손에 도끼 자루를 꽉 거머쥐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나타난 몬스터.

“크륵?”

그런데 겨우 한 마리.

찬웅을 노려보며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헤벌리고 있다.

분명 인간형인데 네발로 걷는 놈.

입술을 비집고 나온 길다란 송곳니.

‘…좀비? 아니, 뱀파이어?’

그 둘을 섞어 놓으면 저 모습일 터.

또 반대편 통로에서도 한 마리.

“이히힉! 히히히히이…….”

저것도 인간형.

근데 웃고 있다.

확실히 웃음이다.

‘…미친놈인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시퍼런 눈빛, 다리까지 내려오는 헝클어진 긴 머리, 날카로운 손톱, 피부도 까맣다.

‘다크엘프구나.’

그러나 지성을 갖춘 놈이 아니다.

겉모습도 기괴하다.

저게 엘프야? 짐승이지.

‘몬스터들이 어디에 숨었나 했더니…….’

다 미궁 안에 있었다.

신경 쓸 것도 없다.

‘싸그리 잡고 가면…….’

그때였다.

우르르르르…….

쏴아아아아…….

드드드드드…….

통로를 가득 메우는 기괴한 소리.

심지어 땅까지 울린다.

‘…뭐야? 물이 쏟아지나?’

홍수가 나서 물이 통로로 들어오면 비슷한 소리가 날 건데.

순간 보이는 소름 끼치는 광경.

물 샐 틈 없이 통로를 가득 채우며 몬스터 떼가 찬웅에게 달려들었다.

“크캬캬캬캬!”

“크르르!”

“키에에에에에에…….”

“카라롸롸롸!”

몬스터의 홍수.

한쪽에선 좀비 뱀파이어가, 다른 한쪽에선 미친 다크엘프가.

“하아, 씨발!”

팟!

찬웅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징그럽긴 하지만 앞으로 전진.

그나마 다크엘프가 덜 징그러우니까.

팟팟팟!

순간 가속으로 찬웅이 사라진 자리에.

툭! 툭!

떨어지는 금속 막대기.

데구르르르르…….

그 위를 타고 넘어오는 몬스터들.

잠시 후.

콰콰콰콰쾅! 콰콰쾅!

막대기가 터졌다.

동시에 강렬한 마력의 폭풍이 통로를 휩쓸었다.

녹아내리는 다크엘프와 좀비 뱀파이어.

통로는 좁다.

그러하기에 마력 폭발의 효과는 한층 극대화됐다.

데우스칩이 개량한 파워 스틱 밤 Ⅱ, 자원 재생 물약을 챙기는 대신 이걸 인벤토리에 가득가득 챙겨 왔다.

얼마나 좋아!

잡몹들에게 도끼질 안 해도 되고, 겸사겸사 포스도 아끼고.

파팟! 파파파팟!

찬웅이 움직인다.

몬스터 떼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잠수부처럼.

“비켜! 좀 지나가자!”

당연히 공격이 들어왔다.

사방에서 이뤄지는 공격.

손톱 공격에, 물어 뜯기, 발목을 잡아서 질질 끌기.

그러나.

지잉!

위잉!

실드 자동 발동.

포스도 아바타의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저절로 움직였고.

츠핏!

서걱! 서걱! 서거거거거…….

쌍도끼 강기로 길을 만들어 내면서.

파파파파파팟!

투둑! 또르르를.

투두둑! 또르륵.

찬웅이 사라진 자리에 어김없이 파워 스틱 밤 Ⅱ가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콰르르릉! 콰쾅! 콰르르르르……!

“끽?”

“꾸에에에엑!”

“켁!”

“왓 더 헬……!”

.

.

.

뭐지?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지구인들이 쓰는 말.

기분 탓인가……? 잘못 들었겠지.

미궁 통로를 누비며 폭탄을 떨어뜨려, 자신은 모퉁이를 돌아 피하면서, 몬스터 박살 내고.

이 비슷한 게임을 한 적이 있다.

‘게임 이름이 봄버… 뭐였건 것 같은데.’

아무튼 폭발과 순간 가속.

그 화려한 시너지.

엄청난 폭발력이지만 미궁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팟팟팟!

콰콰쾅!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찬웅.

몬스터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런데?

“아악! 아, 아파.”

이번엔 확실히 들렸다.

‘플레이어?’

아니면 NPC.

확실하다.

인간의 음성이다.

게다가 여자.

찬웅은 아직 살아서 달려드는 소수의 잡몬스터를 도끼로 썰어 가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동했다.

“아아아, 사, 살려 줘…….”

폭발에 휘말렸나?

부상을 입은 듯,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여성 플레이어, 아바타명 [핑크울프].

“흐음.”

여기에 플레이어가 있다?

굳이 정체가 뭔지 따질 필요도 없다.

군주가 다스리는 미궁 침식지에 플레이어가 왜 있을까?

무조건 사도다.

[핑크울프]도 찬웅을 발견한 모양.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케이?”

가까이 다가온 찬웅에게 핑크울프가 체념한 말투로 말했다.

“비, 비참하네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당신 혹시?”

“네, 저 사도 맞아요.”

애처로운 핑크울프의 표정

“하, 하지만 후회하고 있어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유혹에 쉽게 무너졌어요. 지금이라도 시간을 거꾸로 돌렸으면…….”

눈빛도 촉촉하다.

“여길 탈출하고 싶지만… 안 되겠죠? 전 여기서 죽어야 할까요?”

찬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말고 몇 명이나 있어요?”

“…네?”

“날 죽이려고 투입된 플레이어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도 메시지를 통해 미궁으로 오라는 명령만 받아서…….”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뭐든지요.”

우호적으로 나오는 찬웅 덕분인지, 그녀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여길 나가는 길은 알아요?”

“네, 알고 있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아악……!”

몸을 일으키려다 고통에 못 이겨 다시 털썩 주저앉은 핑크울프.

“…으음, 저, 소, 손 좀 잡아 주실래요?”

그러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반지를 낀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찬웅.

‘웃기네.’

찬웅은 ‘시스템의 지원’이 무엇인지 알았다.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부터 [핑크울프]의 주위로 떠올라 있던 문자열과 코드.

해독해 보니 그건 다름 아닌 상태창이었다.

- 동화율 171%, 반영률 55%.

또한 스킬.

- 기만(MAX), 독칼(MAX), 대지의 도약(MAX), 어둠의 습격(MAX), 검은 여왕의 은총(MAX)…….

스킬을 감안하면 다크엘프 여왕 셀라핌의 사도.

손가락에 낀 반지 아이템 정보도 보였다.

[잔인한 신경마비 독침 반지]

[등급 : 영웅]

저 반지를 착용한 채 손을 잡아 달라는 그녀였다.

상태창뿐만이 아니었다.

게임 시작 시 입력했던 개인 정보도 보인다.

- 실명 : 캘리 오하라, 나이 30세.

또한.

- 범죄 단체 결성으로 현재 뉴욕 경찰의 수배를 받는 중. 최소 6명의 연쇄 살인 혐의.

알 만하다.

사도가 현실에서 조용히 지냈을 리 있나.

“핑크울프?”

“아, 네네.”

“왜 거짓말을 하고 있지?”

“무슨, 제가 왜 거짓말을.”

“캘리 오하라, 나이 30세, 연쇄 살인 혐의로 뉴욕 경찰의 수배를…….”

그때였다.

“죽엇!”

휘릭!

독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찬웅을 향해 벼락처럼 달려드는 그녀.

츠핏!

콰악!

“끄억!”

핑크울프, 캘리 오하라의 가슴에 박힌 도끼.

“어, 어떻게?”

“설마 이런 같잖은 수작에 내가 넘어가길 기대한 건 아니겠지?”

“너, 넌 반드시 주, 죽어!”

“그래, 맞아, 그런데 난 늙어 죽을 거거든.”

“이 개새…….”

프스스스.

그러더니 곧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물론 플레이어 킬도 잊지 않았다.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었어.’

몇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사도들도 있었다.

‘잘됐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미궁 전투가 끝나면 세상은 더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다.

* * *

미궁 안쪽.

네 명의 플레이어가 있었다.

원래는 다섯.

[레드울프], [블랙울프], [그린울프], [옐로우울프], [핑크울프].

“핑크는? 대답이 없어?”

“방금 연락이 끊겼어.”

“뒈졌네.”

“아마도…….”

핑크는 동화율과 반영률이 제일 구리긴 하지만, 남을 속이는 건 제일 잘하는 년인데.

“설마 밖에서도 죽었을까?”

“그럼 좋은 거지. 나눌 몫도 더 늘어나고.”

“너무하네, 레드. 그래도 네 여자 친구잖아.”

“뭐,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고.”

울프 패밀리는 어릴 적부터 뭐든지 함께하는 친구였다.

도둑질도 함께, 게임도 함께, 살인도 함께.

“핑크가 독침은 제대로 박아 넣었으면 좋겠다. 그럼 조금 쉬워질 텐데.”

“잡몹들을 보내 봐. 폭탄도 소진시킬 겸.”

“그래, 아직 마주칠 때가 아니야. 힘을 더 빼 놓고.”

케이에게 걸린 포상금만 100억 코인.

놈을 죽이면 군주께서 직접 하사하실 것이다.

더불어 스킬과 힘도.

자신들뿐인가?

케이를 죽이는 것.

그 목적을 위해 전 세계 모든 사도가 미궁 안으로 집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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