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84화 (184/204)

184화 미궁 속으로

가상현실 게임 콘텐츠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분야가 더 늘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주로 여가와 레저 활동.

플레이어들은 게임 안에서 모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것도 매우 안전하게.

또한 눈에 띄게 달라진 플레이어와 NPC 간의 우호도, 어떤 이들은 현실의 친구보다 게임 속 친구가 더 많이 있을 정도.

그래서 게리 스탁턴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임무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완수될 기미가 보이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감개무량하군. 오늘은 오랜만에 맥주 파티야!”

“…오랜만?”

“왜 자꾸 따지고 그래?”

“아니, 재주는 딴 사람이 부리고 돈은 드래곤이 버는 식이잖아요.”

“나도 그동안 힘들었어.”

사실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이었던 게리 스탁턴이 바깥, 여기 지구로 나온 건 사실 5백 년 전.

10년 스킵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시간을 빠르게 돌린 건 처음이 아니다.

무려 5백 년을 스킵한 적이 있었다.

세상 안에서 일어난 침식.

점점 세력이 넓어질 기미가 보이자 주신(主神)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대로 가면 세상은 또 망한다.

원래 지구에서 침식이 생겨난 후 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5백 년.

그래서 아예 차원의 시간 흐름을 중지시켜 버렸다.

대책이 나올 때까지.

하지만 안에선 불가능하다.

있다면 벌써 찾았지.

대책은 밖에서 찾아야 한다.

지구에서 발생한 새로운 문명.

혹시라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리스타리칸은 무려 450년 동안 지구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거의 포기 상태.

이러다간 시간이 다시 흐른다고 해도 세상은 멸망할 터.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번뜩 떠오른 생각.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바로 게임.

지구의 인류들은 컴퓨터라는 물건을 이용,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게임을 즐긴다.

세상을 게임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곳을 디지털로 변환해서 게임 방식으로 지구와 연결하면?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이 담긴 캐릭터, 즉 아바타로서 침식에 대항하게 하면?

리스타리칸의 아이디어는 즉시 엘리를 통해 주신에게 전달됐다.

그리하여 시작된 작업.

먼저 컴퓨터와 프로그램의 원리부터 깨우쳐야 했다.

뭐, 워낙 뛰어난 머리를 가진 드래곤과 요정이었기에 금방 배우긴 했지만.

그런데 접하면 접할수록 희한하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원리, 이진법.

0과 1, 꺼짐과 켜짐.

이거야말로 신의 언어가 아닌가.

어둠과 빛, 죽음과 생명, 소멸과 창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과학과 마법, 신의 권능이 결합했다.

게임 환경으로 변화하는 세상.

그리하여 세상은 디지털 문자로 재구성됐다.

지구와 세상을 연결하기 위해.

그것의 결정체가 바로 캡슐.

모든 준비가 끝나자 멈춰 있던 세상 속 시간이 흘러갔다.

침식의 추세를 살피며 천천히, 그렇게 단 몇 년 만에 5백 년의 시간이 흘러 버린 것.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신력이 소모됐고.

“케이의 마탑은 지금 어디 있지?”

“헤스티아 성국에 곧 도착할 거예요.”

“고비를 맞이했군.”

“거기만 넘으면…….”

“승리가 눈앞에 있는 거지.”

하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소름 끼치도록 끈질긴 침식이 아닌가.

“참! 중국에서 요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혹시 알고 계세요?”

“나야 얘기 안 해 주면 모르지. 뭔데?”

“…중화영웅이라는 플레이어 알아요?”

“음, 많이 들어 봤어. 아! 생각났다. 우리가 처음에 주목했던 플레이어 아니었나? 케이가 나타나기 전에.”

“네, 맞아요.”

고개를 갸웃하는 게리 스탁턴.

“하지만 걔 뒈졌잖아. 플레이어 킬에 의해 아바타도 삭제됐고.”

“아뇨. 뇌사 상태였죠. 지금은 기적적으로 살아나 힘까지 회복했어요.”

“뭐?”

회생한 건 그렇다 쳐도 힘까지?

“그놈 사고 치는 거 아니야? 철저하게 감시해. 괜히 한국에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

“걱정 마세요. 현재 지켜보는 중이에요.”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서비스 초기.

각성과 진(眞) 아이템의 존재가 최초로 밝혀지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플레이어들을 육성할 당시, 중국은 그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었다.

플레이어 숫자가 타국에 비해 차원이 다른데.

각성 플레이어도 제일 많이 보유했고.

그래서 상하이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는 중국 권력의 핵심 기관이었다.

하지만 케이의 출현 이후 모든 것이 어긋나 버렸다.

시작은 로그드라실 웨이브 이벤트부터였다.

한국에서 벌인 작전 실패로 인해 관리청장 [대국혼]이 숙청당했고, 스톤포지 공방전에서 당한 망신 그리고 급기야 빌런에 의한 국가 지도자 암살까지.

중국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한국에 밉보여,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마도 공학의 열풍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진(眞) 마정석이 공급돼야 뭐든 해 보든지 하지.

그런데 거의 몰락한 상하이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에 묘한 소문이 들려왔다.

[중화영웅]

덩샨의 아들 덩차오.

그가 부활했다.

그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소문은 현실로 드러났다.

상하이에 뒷골목에서 암약하던 각성 플레이어 범죄 조직을 덩차오가 홀로 소탕하면서 말이다.

덩차오의 범죄자 척결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 무섭다던 삼합회 조직도 그의 무력 앞에선 허무하게 쓸려 나갔다.

순식간에 중국의 진짜 중화 영웅으로 부상한 덩차오.

바닥으로 추락한 중국의 자존심이 회복될까?

중국 언론의 관심도 그에게 쏠렸다.

국민들의 요청으로 전격적으로 결정된 덩차오의 TV 생방송 인터뷰.

인터뷰는 야외에서 진행됐고, 수많은 상하이 시민이 그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리 약속한 기자의 질문과 덩차오의 답변.

중국을 어지럽힌 빌런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 사망한 아버지의 유지를 잇겠다는 결심, 앞으로의 전망… 등등.

인터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덩차오의 포부를 밝히는 자리.

그런데 갑작스러운 돌발 질문이 나왔다.

“기자님, 중국이 망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을 받은 기자는 당황했다.

“어, 으음, 주, 중국이 망했나요?”

“네,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

하지만 말릴 새도 없이 이어지는 덩차오의 발언.

“애초에 ‘하나의 중국’은 잘못되었습니다. 모두가 ‘중화’는 아닙니다.”

폭탄이 떨어졌다.

중국 공산당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

“하나의 중국과 중화사상은 서로 모순 아니었나요?”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현장.

야외에 가득 모인 청중도, 기자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중화의 자격을 갖춘 민족은 오직 한족(漢族)뿐, 우리 한족을 중심으로 중국은 재편되어야 합니다.”

계속되는 덩차오의 선포.

“위구르족이 한족입니까? 그들은 중국인이 아닙니다. 티벳족은요? 내몽골 자치구는? 저 동북 삼성의 만주족과 조선족도 사실은 오랑캐들입니다.”

순간!

우우우우웅!

요동치는 마나.

“우린 중화의 기치를 새로 써야 합니다.”

서서히 덩차오의 몸이 태양을 등진 채 하늘 위로 둥실둥실 떠 올랐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

아무리 각성 플레이어라도 인간이 하늘을 날아?

저건 케이도 엄두를 내지 못할 터.

“오랑캐들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은 한족(漢族)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샤라라락!

덩차오의 전신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빛무리.

화르르륵.

이글이글.

두 손에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그는 천신이나 다름없었다.

시각적 효과가 가미되자 사람들이 혹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맞다.

왜 오랑캐들과 한 나라를 이루어야 하지?

“그래서 전 이 자리에서 선포합니다. 한족이 중심이 되는 신중화주의(新中華主意)를!”

덩차오의 손 위에 있던 불덩어리가 공중으로 쏘아졌다.

퍼펑, 펑펑펑펑!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화염구.

동시에 터져 나오는 시민들의 환호성.

“와아아아아…….”

“덩차오! 덩차오!”

“중화 영웅 만세!”

“한족 만세!”

덩차오, 브랜달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멍청한 놈들.’

극단적 민족주의, 순혈주의와 분리주의.

잘 먹힐 것이다.

대륙에서 마법사들의 인식이 왜 좋지 않을까?

마법사 제일주의 때문이다.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철저하게 차별하고 무시했다.

마도 공학은 이단(異端), 연금술도 이단(異端), 드워프의 금속 기술과 엘프의 약초학을 천하게 여기고,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들은 무식하다 폄하하면서 스스로 고립되어 왔다.

여기도 같은 방식으로.

그렇지 않아도 민폐의 대명사였던 중화주의는 한족 순혈주의로 더더욱 강화될 터, 타민족의 반발도 심해지겠고.

중국인들이 조금만 현명하다면 걸려들지 않겠지만, 금방 선동당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

모든 건 자업자득.

2차 문화혁명의 씨앗.

중국의 분열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밥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

그럼 그동안은?

‘이왕 밖으로 나왔으니…….’

새로운 것이 너무 많다.

조금만 즐기자, 조금만!

* * *

테라퓨타 공중도시 마탑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명의 군주가 다스리는 두 개의 침식지.

여기만 처리하면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

물론 여기 말고도 군주가 다스리는 침식지가 한 군데 더 있긴 하다.

과거 마법 왕국이 존재했던 지역.

거짓과 속임수의 데몬이 다스리는 침식지.

거긴 마지막.

맛있는 건 묵혀 두고 먹어야지.

테라퓨타 마탑은 옛 헤스티아 성국, 타락한 다크엘프 여왕과 진혈의 군주가 있는 북서쪽 침식지로 나아갔다.

하지만.

“침식지가 텅 비었네요.”

찬웅의 말에 대답하는 데우스칩.

“맞아, 이 새끼들 어디로 숨었지?”

“침식 탐지 장치는 작동하고 있죠?”

“어. 계속 찾는 중이야.”

몬스터들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찬웅도 포스를 퍼뜨려 찾고 있지만.

“흐음, 북쪽에서 뭔가 걸려드는 것이 있는데…….”

“가 보죠.”

스우우우우…….

빠르게 이동하는 마탑.

그러자.

“저기!”

“아…….”

침식지에 건축 구조물이 모인다.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건물 하나.

정면에 입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식의 기운은 저 입구 쪽에서 흘러나왔다.

“…옥쇄 작전인가? 저 안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것 같군.”

“미사일로 두드려 보면?”

“글쎄, 입구만 무너지지 않을까?”

일종의 지하 벙커.

놈들의 의도는 확실하다.

버티기.

그동안 충분히 학습했겠지.

마탑과 마력포, 미사일 등 그 막강한 화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깊게 땅을 파고 숨는 수밖에 없다.

‘핵배낭 하나만 더 있었어도.’

사실 미국의 도움을 받아 현실에서 인벤토리에 몇 개 넣어 뒀다.

하지만 게임 속 핵배낭은 구현되지 않았다.

그걸 다시 또 만들어 내기엔 무리가 있는 모양.

최기병을 비롯한 APS 소속 플레이어들도 모였다.

“공략하려면 아무래도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입구가 훤히 열려 있잖아. 마치 들어오라는 듯.”

“들어가면 되지.”

“흐음, 위험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생각도 그래. 그냥 바깥에서 미사일로 때리죠.”

“에이, 턱도 없어.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잖아.”

그러자 에루인이.

“참 나, 니들 쫄았냐? 뭐, 이해는 하지만, 잠시 기다려. 내가 정찰하고 나올게.”

상큼한 딸기도.

“저도 같이 갈게요.”

“…딸기야. 넌 낄끼빠빠도 몰라? 닥치고 포스 배리어 안테나나 잡고 있어.”

“아, 으음, 요즘 제가 아무것도 못 한 거 같아서.”

“응, 계속 아무것도 하지 마.”

스슷!

에루인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쌍마체테를 양손에 들었다.

“잠시만요, 스승님.”

“왜?”

“정찰은 제가 할게요.”

“넌 잠시 쉬라니까.”

“스승님은 저보다 동화율도 낮잖아요.”

“이 새끼가 자존심 상하게.”

“어쨌든, 사실이죠. 반박 불가.”

찬웅은 도끼를 손에 들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다들 잘 들어요. 저와 메시지 연락이 끊기면 절대 들어오면 안 됩니다.”

예감이 좋지 않다.

놈들이 입구를 열어 둔 이유가 뭐겠나?

전에 경험했던 성녀의 제단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

휘릭!

탁!

바닥에 착지한 찬웅은 침식 구조물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솔직히 함정인 줄은 안다.

그래도 간다.

공략하려면 가야 한다.

함정이 있으면 부수면 되고.

더 강한 힘으로.

더불어 동화율 195%의 통찰력으로.

입구로 들어간 찬웅.

통로를 통해 걸어 내려갔다.

확실히 깊다.

예전 성녀가 자신을 유인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굴보다 훨씬 더.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자 거대한 벽과 이쪽저쪽으로 난 통로, 마치 미로 같았다.

바로 그때!

[짙은 어둠의 미궁에 도착했습니다.]

[참신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미궁 입구가 닫혔습니다.]

[대기실 귀환과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현실에서의 페널티가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사망 시 페널티가 적용된 채로 제단에서 즉시 강제 부활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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