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83화 (183/204)

183화 먹고 쪼개자

영혼만 넘어온 터라 브랜달에게 남은 건 이 쓸모없는 몸뚱어리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9서클 대마법사로서의 기억.

그는 이미 절대 경지를 경험해 본 영혼.

명색이 마법사인데 서클 생성부터 먼저.

브랜달은 서클 만들기에 착수했다.

‘마나가…….’

희미한 마나의 향기.

있기는 있다.

매우 적어서 그렇지.

‘쯧, 서클 하나 만들기도 벅차겠어.’

그래도 마나를 끌어모아 본다.

우우…….

역시 쥐똥만큼 모이는 마나.

턱도 없다.

1서클 고리를 심장에 두르려면 최소 3개월 이상은 걸릴 듯.

2서클은 1년 이상, 3서클은 5년…….

‘흐음, 천천히 만들자.’

희박하지만 마나는 존재하니까.

이젠 뭘 하지?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볼까?’

이방인, 그러니까 지구인이 세상 안으로 건너가 가상의 육체를 만들어 활동하면 매우 희박한 확률로 현실에서도 포스를 지니게 된다.

포스.

신의 권능.

마법에도 사용 가능한 범용적인 에너지.

게다가 이 덩차오는 한 번 각성한 몸.

‘포스 각성이 가능할지도…….’

마법 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

이미 누워 있는 곳이 캡슐.

덩차오의 온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패드와 선 그리고 수액을 집어넣어 주는 투명한 관.

‘이게 캡슐 연명 치료구나.’

그러나 뇌사 혹은 혼수상태 환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치료를 결정한 것 같은데.

반면 의식은 멀쩡하지만 육체는 불구 상태인 환자들에겐 매우 뛰어난 효과가 있긴 하단다.

덩차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캡슐 사용 방법.

브랜달은 접속 단추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쿡!

그러자 어디론가로 빨려 들어가는 의식.

‘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세상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접속됐다.

하지만 텅 빈 대기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은 뭐였지? 맞다……! 아바타 생성.’

그런데?

[현재 고객님의 뇌파가 불안정해서 아바타 생성을 할 수 없습니다.]

[뇌파가 안정되면 아바타 생성이 가능합니다.]

‘이런!’

지금 당장은 안 된다는 의미. 사실 에루인도 니나 페레즈에 빙의하고 나서 바로 아바타를 만들진 않았다.

게임에 접속해 아바타를 만든 건 한참 후.

아바타는 플레이어의 영혼과 관계있는 것, 빙의된 육체에 영혼이 안정적으로 안착이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브랜달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나?’

조금 불안해진다.

의사들이 나눴던 대화를 다 들었다.

자신이 깨어났다는 걸 알면 병원은 어떻게 반응할까?

모르긴 몰라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터.

더구나 본체의 친인척들도 본체가 살아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힘이 필요해.’

최소한 1서클이라도.

브랜달은 다시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우웅!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마나.

“어?”

왜지?

아까는 인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마나량이 적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지금, 뭐가 다를까?

“아하!”

브랜달은 깨달았다.

처음 마나를 모았을 때는 게임 안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결이 되지 않았던 상태.

하지만 지금은 접속 중.

세상과 세상이 캡슐로 연결됐다.

‘접속하면 저쪽 세상의 마나를 끌어올 수 있다는 건가?’

잘됐다.

브랜달은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우우웅!

심장 부근으로 마나가 밀려왔다.

이 정도 마나라면 서클 하나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

찌잉!

느껴진다.

캡슐 안 육체의 심장에서 하나의 고리가 완성되었음을.

여세를 몰아 하나 더.

우우우우웅!

찌잉!

2서클.

마나가 충만하다고 해서 무작정 고리를 늘리면 안 된다.

허약한 육신의 심장이 버티지 못할 터.

‘천천히, 성급하면 안 돼.’

그때까진 깨어나지 못한 척 조용히 지내자.

어차피 치료 목적으로 캡슐 안에 쭉 들어가 있으니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 * *

폴른스타 건국 준비 위원회는 마침내 공화정 수립을 선포했다.

그리하여 결성된 임시 정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가의 영역이라고 해 봐야 옛 제국의 황도였던 폴른스타.

제국이 거느린 식민지, 귀족들의 영지, 자유 도시 등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생 공화국으로선 사방이 적.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쿠쿠쿠쿠쿵.

폴른스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시내로 진입하는 마력포 궤도 골렘, 전투용 골렘들도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고 있었다.

혁명은 탱크로 완성됐다.

마키나 공화국 팩토리의 지원이라면 최소한 침략당할 일은 없겠지.

오히려 혁명을 전파해 보겠다며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을까 걱정.

“이제 떠나도 되겠네요.”

찬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우스칩.

“그렇군. 우리가 할 일은 없어 보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건…….

“브랜달, 그놈은 아직 소식이 없지?”

“네, 혹시 밖에서 최 팀장이 APS에 전화가 올까 기다리고 있긴 합니다만.”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그리고 걔는 아바타도 안 만들었나? 그럼 대기실 게이트를 통해 폴른스타로 넘어오면 되는 일이잖아.”

“뭐, 기다리다 보면 연락이 오겠죠.”

명색이 9서클 대마법사였던 놈이다.

영혼만 넘어갔다고 해도 예전의 힘을 회복하는 건 금방일 터.

브랜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내 걱정이나 해야지.’

처음 이 게임에 뛰어들고 나서 단 한 번도 가상현실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즐겨 본 적이 없다.

인간의 뇌파 연결로 현실의 감각을 그대로 재현한 게임. 그래서 대다수는 팍팍한 일상을 벗어나, 정신적 힐링을 위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시스템도 그걸 의도했는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게임의 목적은 더더욱 뚜렷해졌다.

상자를 까면 골프채도 나오고, 고성능 릴이 장착된 낚싯대에, 서핑보드, 캠핑용 장비, 심지어 얼마 전엔 산악용 자전거를 획득했다며 SNS에 자랑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찬웅도 즐기고 싶다.

게임 속 풍광 좋은 강변에 텐트를 치고, 낚시도 하면서, 밤엔 모닥불을 피워 고기도 굽고, 옆에 같이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

그러려면 침식의 위험을 완전하게 제거해야 가능한 일.

솔직히 이게 무슨 생고생인가?

세계 최고의 부자지만 돈은 쓰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끝이 보이니까 그나마 다행.

츠츠츠츠츠…….

투명화로 모습을 감추는 테리퓨타 마탑.

다음 침식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호우란 초원 침식지 보스, 지독한 질병의 자칼이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플레이어와 NPC 간의 우호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헤스티아 성국 침식지.

두 명의 군주가 존재하는 그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상하이 종합 병원.

병원장 진샤오롱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은 심정.

같은 중국인이지만 친인척이라며 단체로 우르르 몰려와 난리를 치는 건 종특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당장 캡슐 연명 치료 중단해! 책임을 져도 내가 책임져!”

“주치의는 접니다. 치료 중단 여부는 제가 결정해요.”

“내가 보호자라고!”

특히 죽은 덩샨의 동생이자 덩차오의 고모인 덩링링.

이년이 제일 골칫거리.

뚱뚱한 몸에, 말할 때마다 푸들푸들 떨리는 볼, 몸에 걸친 금붙이만큼 탐욕이 덕지덕지 붙은 인상.

“당신도 가망 없다는 거 알잖아? 우리 조카 볼모로 삼아 치료비나 쪽쪽 빨아먹으려는 수작 아니야?”

“맞아! 하루에 나가는 병원비만 얼만데?”

“못 들었어? 보호자는 우리야! 당신이 무슨 권리로.”

“지금이라도 치료 중단하면 없던 일로 해 줄게.”

떼로 몰려왔다.

요구가 통하지 않으니까 단단히 마음먹고 날을 잡은 모양. 친척이라고 데리고 온 사람 중에 우락부락한 남성도 다수 있었다.

협박을 위해 데려온 불량배들이겠지.

상관 않고 그저 피식 웃는 진샤오롱 병원장.

“아니, 조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치료를 중단하라니. 당신들 덩차오 환자 친척 맞아요?”

“뭐? 이, 이게? 말 다 했어?”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하시오. 덩차오가 빨리 죽어야 유산을 나눠 가질 수 있다고.”

“…….”

“정 급하면 법원 명령이라도 받아 오든가. 그 전엔 어림도 없소.”

갑자기 냉정을 되찾았는지 소파에 앉으며 담배를 꼬나무는 덩차오의 고모 덩링링.

“그래, 솔직하게 말해. 얼마가 필요해?”

“뭘?”

“덩차오 생명 유지 장치 제거하는 거, 얼마 주면 할 수 있겠냐고?”

“흐흐흐,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시니…….”

“당신도 돈을 원하는 거 아니었나? 피차 서로 알고 있잖아?”

병원장 진샤오롱은 히죽 웃으며 덩링링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덩차오 환자가 입원한 병실은 VVIP 룸이요. 하루 입원비만 약 3만 위안, 4천 달러가 넘어요. 한 달이면?”

13만 달러, 한화 1억 7천.

“그래서?”

“치료를 중단하면 그 돈이 싹 날아가는데 내가 미쳤다고 중단합니까?”

덩링링은 크게 웃었다.

“참, 다행이야. 난 또 어쭙잖은 의사의 윤리, 양심, 이런 거나 들이댈 줄 알았잖아.”

“흐흐흐, 양심은 무슨.”

“5천만 위안.”

“응?”

“생명 유지 장치 제거하면 그 돈 준다고.”

“글쎄.”

드디어 원하는 답이 나왔다.

그러나 진샤오롱은 만족할 수 없다.

“2억 위안 어떻소? 현찰 말고 금으로.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제거할 수 있는데.”

“…죽고 싶어?”

“덩차오가 받는 유산만 20억 위안 아니오? 그보다 더 많다는 소문도 들었고, 그 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1억 위안! 더 이상은 안 돼! 받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어.”

1억 위안이라.

그 정도면 떵떵거리며 살기에 충분한 돈.

더 욕심을 내 볼 수도 있지만…….

“좋소. 그렇게 합시다.”

진샤오롱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며 대답했다.

순간 안색이 굳어지는 덩링링.

“…뭐야, 녹음하고 있었어?”

“나도 보험 하나는 들고 있어야지. 하나 걱정하지 마시오. 약속이 지켜지면 절대 새어 나갈 일이 없으니까.”

“알았어. 생명 유지 장치는 언제 뗄 거야?”

“바로 합시다. 사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거든.”

그때였다.

벌컥, 하고 열리는 원장실 문.

환자복을 입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덩차오였다.

“헉!”

“억!”

“…너, 너는?”

“이럴 수가…….”

“사, 살아났다고?”

“뭐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전개.

당사자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비록 창백하고 핼쑥해진 모습이지만 눈을 비비고 봐도 덩차오가 맞았다.

원장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깨, 깨어났구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지? 나 고모야, 기억나지 않니?”

“다행입니다. 우리 병원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한 결과입니다.”

“어쩌자고 일어났어? 아직 움직이긴 무리일 텐데.”

“그래요. 어서 빨리 병실로 돌아가 진찰부터…….”

그러나 덩차오, 브랜달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

덥석!

“아, 안 돼! 그건…….”

병원장 진샤오롱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러고 난 뒤 툭툭툭, 손으로 터치해 녹음된 음성 파일을 재생하는 브랜달.

- 당장 캡슐 연명 치료 중단해! 책임을 져도…….

음질이 꽤 좋다.

하지만 덩차오의 친척과 병원장에겐 끔찍한 일.

생명 연장 장치를 중단하라는,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는 추악한 내용이 저 폰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는 덩링링.

덩차오가 살아난 건 확실하다.

한때 아버지 덩샨보다 저 유명했던 그.

꽌시로 맺어진 공산당 인맥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만약 저 녹음 파일을 가지고 병원 밖으로 나가면?

‘우린 다 죽어.’

자신의 조카는 병원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

여기서 죽어야 한다.

한때 중국 최고의 각성 플레이어였던 덩차오.

하지만 게임 속에서 사망한 후 아바타를 삭제당해 힘을 잃었다.

지금은 평범한 일반인, 아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기에 그보다 더 약해졌을 터.

“쟤, 쟤 죽여!”

“…뭐?”

“어차피 죽일 거였잖아. 아니면 우리가 죽어!”

“으으음.”

“뭐 해? 여긴 우리 말고 아무도 없잖아. 빠, 빨리!”

진샤오롱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 덩링링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저놈이 살면 자신이 죽고, 저놈이 죽으면 자신은 산다.

더불어 1억 위안까지.

슬금슬금.

덩차오를 포위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의도는 브랜달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로 무력화됐다.

“프리즈!”

병원장과 친척들의 몸이 우뚝 멈췄다.

“허어억!”

“…스, 스킬?”

“힘을 잃은 게 아니었어?”

“맙소사!”

덩링링은 기겁했다.

살아난 것도 모자라 각성의 힘까지 되찾았다고?

이러면 끝장.

일단 살아야 한다.

설마 고모를 죽이진 않겠지.

“더, 덩차오야, 오해가 생긴 모양인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란다. 설마 고모가 널 죽이기라도 할까…….”

시끄럽네.

“사일런스.”

순식간에 조용해진 병원장실.

어떡할까?

브랜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나 저기나…….’

돈 앞에선 친척이고 뭐고 없었다.

브랜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직 어렸던 그때, 어떻게 마탑에 들어갔나?

그의 부모가 돈을 받고 노예상에 자신을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마법사의 눈에 띄어 마탑의 제자가 된 것이고.

결정했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자.

“헬파이어!”

화르르륵!

7서클 화염 마법, 뜨거운 지옥의 겁화가 병원장실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 번지지 않고, 모든 것이 타서 사라질 때까지,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 브랜달.

캡슐 안에서 서클을 만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케이 형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바타를 만들어 게임 속에서 한몫 거드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중국을 먹는 것이 최고야. 그리고 쪼개 버려야지.’

그럼 다음 행선지는?

상하이에 위치한 중국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본부.

거기부터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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