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78화 (178/204)

178화 준비는 끝났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목적은?

두말할 필요 없이 즐기는 것이다.

물론 용병 플레이어는 무서운 몬스터와 싸워 가면서 코인을 벌기 위함이지만, 그것도 사실은 즐기는 거나 마찬가지.

게임 속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선 전혀 피해가 없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 확신이 무너졌다.

게임을 하다가 현실에서 죽을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 조셉 라이든의 긴급 담화.

백악관에서 한낱 게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어쩌겠나? 세상이 그렇게 변했는데.

“현 시간부터 가상현실 게임 속 침식지 보스 공략 중단을 권고합니다.”

미리 보도 자료를 받아 어떤 내용이 나올지 알고 있었던 기자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이유가 뭡니까? 침식지 공략 목적이 게임 속 모든 침식지를 깨끗하게 정화하여 지구에 닥칠지도 모를 침식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아닙니까?”

“네, 정확합니다.”

“그런데 왜?”

조셉 라이든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게임과 현실이 뒤섞이고 있는 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침식도 지구에 출현하는 것이고.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 뒤섞임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섞여서 어떻다는 거죠?”

“게임 속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사망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동화율 150% 미만의 용병 플레이어들은 매우 위험합니다.”

다소 충격적인 발언.

백악관 브리핑장이 시끄러워졌다.

잠시 후.

“요, 용병 플레이어의 사냥 자체가 중단되는 겁니까? 침식은 어떻게 해결할 건지…….”

“보스 공략만 하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침식지 잡몹들을 잡으면서 최소 155%까진 끌어올린 뒤에 시도해 주십시오. 또한 군주가 다스리는 거대 침식지엔 접근조차 하지 마시길.”

미국 대통령이 직접 말했다.

그 무게감은 절대 무시하지 못했다.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이 떠들썩했다.

└ 이거 어떡하냐? 나 148%인데, 나도 위험하다는 말 아냐?

└ 난 처음부터 용병 플레이어 아니었거든, 흐흐흐, 내가 목장 하나를 가지고 있어. 일자리 필요하면 말만 해. 양치기 정도는 시켜 줄 수 있어.

└ 닥쳐! 내가 그따위에 위축될 거였다면 용병은 선택도 안 했어.

└ 오우! 패기 보소.

└ 쯧, 그러다 골로 간다.

└ 솔직히 무섭긴 하다. 잡몹도 못 잡겠어.

애초에 용병 플레이어를 선택해서 동화율을 140% 이상 돌파한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현실과 다름없는 게임 환경에서 몬스터와 맞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맘 편하게 게임을 해?

└ 그나저나 테라퓨타 잡은 플레이어들은 대박 잡았네.

└ 추가 인원 모집 안 하나?

└ 그것도 그거지만 내 코인 어떻게 하냐? 지금이라도 손절?

└ 새끼야! 존버 몰라?

D코인 거래소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미국 대통령의 발표는 호재이기보다는 악재.

원활한 게임 플레이에 문제가 생겨 버렸으니.

쭉쭉 내려가는 D코인 시세.

1코인당 5달러에서 6달러 사이를 오고 가던 가격이 끝도 없이 추락했다.

4달러, 3달러, 2달러…….

이제 게임의 시대는 끝났나?

하지만 갑자기 쭉쭉 치고 올라가는 그래프.

큰손이 등장했다.

개인이 팔려고 내놓은 코인들을 쭉쭉 빨아먹었다.

빠르게 사라지는 매도 물량.

금세 예전 시세를 회복하고 치고 올라간다.

대체 누가?

카리브해 리조트.

게리 스탁턴이 비서 엘리에게 말했다.

“코인 매집 끝났어?”

“간만에 시원하게 돈 좀 썼어요. 시세 올리는 거야 껌이죠.”

“너무 올라가면 안 되니까 적절한 선에서 풀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참! 말씀하신 대로 서울에 아파트 두 채 사들였어요.”

“한강뷰야?”

“그렇죠. 그런데 뭘 하시려고?”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게리 스탁턴.

“서울에서 살려고,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더라고, 일이 다 끝나면 내 힘도 거두어질 거잖아. 그럼 평범한 인간이 될 텐데… 치안이 좋은 곳에서 살아야지.”

“아하, 그런데 왜 두 채?”

“같이 서울에서 살자고.”

하지만 엘리는 반응이 그닥 좋지 않았다.

“흐음, 전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서울이?”

“아뇨, 주인님이요. 이제 떨어져 살 때도 되지 않았나?”

“내가 그렇게 싫어?”

“더는 수발들기 귀찮아서요.”

살짝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게리 스탁턴.

‘망할 년.’

아직 힘이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는데, 평범한 보통 인간이 되면 얼마나 자신을 우습게 볼까?

무시하지나 않으면 다행일지도.

* * *

플레이어 포스를 기반으로 한 테라퓨타 기동 훈련, 선장 데우스칩의 지휘.

“우현으로 선회!”

끼이이잉.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공중 도시.

“급속전진!”

슈우우욱!

마정석으로만 움직일 때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감속!”

끼이이익!

느려지는 것도 마음대로.

“좌현으로 선회 후, 정지 비행.”

가장 중요한 건 방출 스킬이다.

숙련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찬웅과 데우스칩은 드워프들이 만든 함교, 즉 지휘 통제 건물에 있었다.

테라퓨타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함의 역할도 있으니까.

“점점 손발이 잘 맞아가네.”

주입 장치에 포스를 밀어 넣고 있는 플레이어들.

그 힘은 마법 문양에 의해 기동 에너지로 치환됐다.

“이게 다 노련한 선장의 지휘 덕분이랄까.”

“어련하시겠어요.”

“하하하, 요 근래 이렇게 재미가 있었던 적이 있었나 모르겠군. …참! 우리 애새끼 대마법사는 뭘 하고 있나? 아! 이젠 대마법사도 아니지.”

브랜달.

여전히 마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가끔 찾아가 보고 있긴 하지만, 나이가 어린 터라 찬웅에 대한 죄책감과 동료에 의한 배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양.

그래도 찬웅은 브랜달을 믿었다.

“괜찮을 겁니다.”

“흠, 그럼 우린 목적지를 정해서 출발하지.”

“그러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1차 목적지는 바로 여기.”

찬웅은 커다란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옛 헤스티아 공국이로군.”

“네, 아직 살아남은 두 놈의 군주가 다스리는 침식지.”

처음엔 네 마리의 군주가 헤스티아 성국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부정한 물의 정령왕과 썩어 버린 레비아탄은 소멸했고 남은 두 놈은 타락한 다크 엘프 여왕, 진혈의 군주.

“너무 큰 목표가 아닌가?”

“곧바로 가자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자잘한 침식지들에 점을 찍고 이으면…….”

지도에다 S자 형태로 선을 긋는 찬웅.

“이러면 헤스티아 공국까지 거쳐야 할 침식지가 약 50개 정도 됩니다.”

“이동 경로에 존재하는 모든 침식지를 싹 쓸고 가겠다는 의도로군.”

데우스칩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흥분의 빛이 떠올랐다.

비록 바깥에 나가 있는 상태지만 그도 세상 안의 영혼, 5백 년 동안 이곳을 괴롭혀 왔던 침식을 일거에 소탕할 기회.

“그러고 나서 다시 이렇게 경로를 설정하면…….”

“테라퓨타, 아니 옛 마법 왕국이 지상에 있었을 때의 침식지 아닌가.”

“네. 거기도 군주가 다스리는 곳이니까. 아! 가는 길에 폴른스타에도 한 번 들를 겁니다.”

“카시우스 제국 황도에?”

“성녀의 신전과 제단은 파괴했지만 어떻게 됐는지 확인은 해 볼 필요가 있어서.”

“알겠네.”

계획은 세워졌다.

실행만 남은 상황.

“슬슬 이동하자고, 여기서 제일 가까운 침식지가…….”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드드드드드득!

마력의 기운이 요동친다.

그 여파가 함교까지 전달될 정도로 엄청났다.

“어?”

“헉!”

진원지는 바로 마탑.

마탑 전체가 사정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마, 마탑이……?”

“저게 왜?”

“고장 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당황하는 데우스칩.

“혹시 마탑 리모델링하다가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이 사람이! 날 뭘로 보고?”

“그러지 않고서야 왜?”

“나도 모르지.”

우우우우우웅!

끄드드드드득!

마력의 유동은 점점 심해졌다.

마탑의 진동도 그랬고.

‘마탑이 고장 나면 완전 나가린데.’

저러다 무너지는 건 아닌가?

순간 번뜩 드는 생각.

“브랜달!”

브랜달이 최상층 탑주 연구실에 있다.

팟팟! 파파파팟!

재빨리 함교를 빠져나가 마탑으로 향하는 찬웅.

다행히 워프 게이트는 작동하고 있었다.

슈슛!

“어디 있어?”

탑주 연구실에 도착했는데.

“…윽!”

눈도 뜨지 못할 정도의 찬란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뭐지?’

빛을 뿜어내는 광원.

하나의 인간이었다.

“…브랜달?”

우우우우우…….

천천히 사그라드는 빛.

더불어 진동을 멈추는 마탑.

“오셨어요? 형.”

브랜달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찬웅을 맞이했다.

“설마 너?”

“네, 성취가 있었어요. 비록 성녀에 의해 억지로 올라간 거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가 봤던 길이라…….”

10년 스킵 후 처음 만났던 브랜달.

그때 느꼈던 그의 경지는 9서클.

그런데 그때보다 더 강해 보였다.

이제야 알겠다.

마탑에 휘몰아쳤던 거대한 마력의 유동.

다 브랜달의 깨달음으로 빚어진 일이었다.

“이 새끼! 극복해 냈구나.”

“하하하, 다 형 덕분이죠.”

“축하해.”

“별말씀을요.”

클래스는 영원하다.

천재가 어디 가나?

그렇게 브랜달은 완전한 9서클 대마법사가 되었다.

“그나저나 이 마탑은 어디로 가는 거죠?”

“침식지 정화하려고, 헤스티아 성국까지 이동할 거야. 그리고 옛 마법 왕국 침식지도.”

“역시! 마탑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요.”

“무슨, 원래 주인은 마법사들이지.”

“천만에요. 이 마탑을 마법사가 만들었나요? 대륙인들이 다 협력해서 건설한 거죠.”

브랜달의 표정이 좋다.

세상의 이치를 달관한 듯했다.

“그리고 알고 보면 이 마탑도 다 허상인데.”

“허상은 아니야. 원래 이 세상은…….”

“알아요. 세상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전 진짜 영혼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은 자, 브랜달.

찬웅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진짜 세상이 궁금하지 않아?”

“흐음, 글쎄요.”

“네가 널 밖으로 나가게 해 줄 수도 있어.”

핵배낭으로 성녀를 처리하면서 받은 보상이 있다.

[영혼 해방의 스크롤]

[등급 : 신화]

[종류 : 소모품]

[귀속 여부 : 획득 시 귀속]

[효과 : 지정된 NPC 한 명의 영혼을 세상 밖으로 해방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매듭지어야 할 일도 있고요.”

“알았어. 언제든 말해.”

“…그런데 형은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세요?”

“귀여웠거든.”

“제가요?”

“그래, 지금은 어른이 됐지만 뉴팩토리에서 처음 봤을 때 낼름낼름 막대사탕을 혀로 핥고 있는 네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흐흐, 기억나네요.”

아무튼 어긋났던 일들이 슬슬 제자리로 돌아왔다.

* * *

테라퓨타에서 추방된 마법사들은 현재 어디 있을까?

마침 쫓겨난 곳이 카시우스 제국의 폴른스타와 가까웠다.

그럼 어디로 갈까?

결국 폴른스타로 들어갈 수밖에.

하지만 재기를 꿈꾸기에 더없이 적당한 장소.

군웅할거의 시대.

현재 폴른스타엔 주인이 없었다.

황제가 사망한 후,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복마전의 대도시, 각 지방의 귀족, 영주, 변경백들이 제각각 독립을 선포하고 왕국을 세운 후, 제일 먼저 점령해야 할 도시로 손꼽은 곳.

여러 세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민들이 주축이 된 공화파들도.

그리고 여기에 마법사들이 가세했다.

집을 잃은 마법사들을 이끄는 지도자, 한때 테라퓨타 마탑의 부탑주였던 7서클의 로미오.

“여길 보라고, 이 거대한 도시에 주인이 없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안성맞춤이지.”

“황궁도 마찬가집니다. 지키는 병사들도 없고, 이미 약탈당한 지 오랩니다. 그곳을 점령해서 마법사의 왕국을 선포하는 게…….”

“아니야,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는 건 무리가 있어.”

“그럼 어떻게?”

“연합해야지.”

그 말이 맞다.

엄청난 무력을 가진 마법사들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적당한 세력 하나 잡아서 접촉해 봐.”

“어디가 좋을까요? 지방의 기반이 탄탄한 대영주 세력도 있고,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변경백도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화파 세력도.”

“공화파?”

“네. 폴른스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던 정보 길드가 하나 있습니다. 엘프의 나무라고, 케이 그놈과도 관련이 있다고 소문난 조직입니다. 그놈들이 공화파의 주축 세력입니다.”

로미오는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흐흐, 공화파는 연합대상이 될 수 없어. 미천한 평민 새끼들이 감히 세력을 만들겠다고? 놈들은 척결 대상일 뿐이야.”

“네, 그럼 대영주, 혹은 변경백들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로미오의 목적은 빼앗긴 마탑을 다시 찾는 것.

하지만 지금은 힘이 없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뭐, 굳이 마탑을 되찾지 않아도 새로운 마법 왕국을 만들어 왕 노릇을 하는 것도 괜찮고.’

* * *

백악관 미국 대통령의 발표로 인해 급격하게 위축된 게임 플레이.

물론 용병이 아닌 타 직업 플레이어는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숫자도 타 직업이 훨씬 많다.

눈에 띄게 썰렁해진 침식지.

그 와중에 게임 속에서 울린 전체 공지.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헤이트론 구릉지 침식지 보스, 냄새나는 외뿔 멧돼지가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플레이어와 대륙 주민들 간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세상 안의 기운이 점점 깨끗해집니다.]

이건 시작이었다.

앞으로 수도 없이 울리게 될 침식지 정화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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