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테라퓨타 게이트 (1)
월급만 천만 원.
그중에서 한국인 특례 채용 1,000명.
주 게임 이용자인 젊은 세대는 폭발적으로 열광했다.
적어도 용병 플레이어라면 지원을 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런데 채용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니.
사실 소문은 예전부터 돌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조용히 묻혀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어야 정상이지만 기자들은 단 한 줄의 의혹 제기도 하지 않았다.
결국 너튜브 스트리머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출근길 기자회견을 감행함으로써 겨우 이슈화되었다.
그리하여 이름 붙여진 ‘테라퓨타 게이트’.
게임 속 대기실의 그 게이트가 아닌 정치 권력과 관련된, 비리 의혹을 뜻하는 게이트.
원래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법.
└ 씹라, 내가 떨어진 이유가 저 장관 새끼 때문이었어?
└ 저놈뿐일까? 관계된 놈이 엄청 많다더라.
└ 너튜버 스트리머가 열일을 하네. 진정한 대기자야.
└ 기레기들은 뭘 했지?
└ 분명 언론사 놈들도 부정 채용에 가담했을 거야. 내 불알 두 쪽을 건다.
└ 맞아. 이제야 마지못해 기사 올라오는 거 봐라.
청와대 한태수 정부도 초비상 상황.
현직 장관이 테라퓨타 게이트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산업자원부 장관 조석균.
출근길에서 ‘몇 명이나 꽂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도 못 하고 황급하게 얼버무리며 차를 타는 모습이 그대로 영상에 찍혔다.
뜬금없이 터진 악재.
한태수 대통령은 그동안 가만히 앉아서 꿀을 빨아 왔다.
진(眞) 마정석 생산지, 마도 공학의 선두 국가 대한민국.
경제도 호황이고 케이로 인해 잔뜩 상승한 국격은 내려올 줄을 몰랐으며, 어쩌다 해외 순방이라도 나가면 초호화 국빈 대접을 받았다.
지지율?
아무것도 안 해도 올랐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테라퓨타 게이트?
비서실장 도동훈의 보고를 받는 한태수 대통령.
“조석균 그놈, 정신이 나갔나? 돈이 부족해서 그랬어?”
“이번에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었답니다. 강원도 춘천에 공천이 확실시되었는데, 지역구 관리차 지역 유지와 지지자들의 친인척을 특혜로…….”
“미친놈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한태수 대통령은 분란을 만드는 걸 싫어하는 정치인.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좋게 말하면 처세에 강한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원칙과 지조가 없는 박쥐.
그래서 확실하게 발본색원하기보단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조석균을 사퇴시키는 걸로 마무리 짓지.”
“다른 사람들은요? 조 장관이 직접 꽂은 건 10명 정도입니다. 고위직 공무원과 국회 그리고 APS 내부에도 관련자들이 아직 많아서.”
“괜히 크게 들쑤셔서 국정 공백이 생기면 부담만 돼. 실무진은 건들지 말고 적절한 선에서 쳐 내.”
“그럼 APS는?”
“최기병 팀장에게 내 뜻을 전하게.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일에 발목 잡히면 쓰나?”
사실 한태수 대통령이 이렇게 하는 진짜 의도는 국정 공백 따위가 아니다.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노련하게 처리하면서 봐줄 놈은 봐주고, 쳐 낼 놈은 쳐 내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왔다.
‘이것도 기회라고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면 케이는 참 복덩어리야.’
한태수는 본질적으로 권력욕이 강한 사람.
대통령을 퇴임한 후에도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조석균 장관의 전격 사퇴 기자회견.
“국민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코 부정한 의도는 없었으며 그저 능력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추천을 한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사과문이 아닌 4과문.
└ 오해? 아하! 그러니까 우리가 오해했구나.
└ 다들 대가리 박자. 미천한 개돼지들이 높으신 분의 의중도 모르고 설쳐 댔으니.
└ 이게 나라냐? 국격 올려놓으면 뭘 해? 애먼 새끼들이 다 갉아 먹잖아.
└ 내가 듣기로는 언론사, 국회, 재계까지 연관 안 된 곳이 없다고 하던데, 장관 하나로 꼬리 자르긴가?
└ 근데 이게 그렇게 큰 건이었어? 테라퓨타 공중도시 선원이 무슨 로또도 아니고.
테라퓨타 게이트는 이대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APS의 조사는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해?
초기엔 동네 파출소보다도 못한 조직으로 출범한 한국 APS였다.
각성 플레이어 하나도 관리 못 하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으며, 국가 소속 플레이어 수준도 민간 길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
하지만 케이를 만나면서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
각성 플레이어와 진(眞) 아이템 다수 확보, 급기야 진(眞) 마정석 유통을 맡으면서 엄청나게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플레이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직원도 엄청나게 많다.
조직의 특성상 대부분 공무원. 연봉도 다른 공공 기관에 비해 높아 공시생들에겐 꿈의 직장.
갑자기 조직이 비대해지다 보니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물이 고이면서, 일부는 냄새가 날 정도로 썩어 버렸고.
더 이상 파헤치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무시하고 이필동과 함께 철저하게 전수 조사를 시행한 최기병.
찬웅에게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에 대해 설명했다.
“채용이 결정된 인원 중의 약 400명 정도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렇게 많아요? 대체 뭘 대가로?”
“몇 명 적발해서 심문해 봤는데 청탁 비용이 평균 오천만 원이랍니다.”
“가담한 인원은요?”
“줄줄이 딸려 나오고 있습니다. 고위직부터 말단직까지 골고루 관여했어요.”
채용 과정은 플레이어의 이력서를 받아 아바타 면접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수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지원한 터라, 면접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동화율 조건 충족하고 범죄 전과가 없고 성실해 보인다 싶으면 합격시키라고 일렀는데 이 사달이 났다.
부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일인데 사전에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후 처리는 반드시 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또한 테라퓨타 공중도시를 움직이기 위해 요구되는 사항이 많다.
그들은 전투함을 조종하는 노잡이의 역할. 방출 스킬의 숙련도, 다른 플레이어와의 협력, 지시도 잘 따라야 하고.
물론 연습을 통해 극복하면 되는 문제이지만 부정으로 채용된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일이나 할 수 있을까?
월급 루팡이나 안 되면 다행.
더불어 이 시점에서 드는 의문점.
기껏해야 테라퓨타 공중도시 노잡이 선원 역할인데 왜 기를 쓰고 달려들까?
월급 천만 원?
겨우 그걸로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한다고?
물론 찬웅은 안다.
‘테라퓨타 마탑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
말코네 침식지 공략.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마탑의 역할을.
침식지가 정화되면 시스템은 축복을 내린다.
각성의 확률, 랜덤 D박스 확률, 모두 상승한다.
테라퓨타에 타고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그 혜택을 받게 될 텐데, 월급 천만 원이야 거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
하지만 청와대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조사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미 채용된 사람은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진행하잔다.
‘선 넘네.’
테라퓨타가 한국 정부 건가?
APS는 대행자 역할, 일을 추진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자신과 데우스칩.
찬웅은 최기병에게 물었다.
“청와대가 여기서 멈추라면서요?”
“네, 비서실장을 통해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전에도 이랬던 적이 기억나네요.”
그게 언제였지?
꽤 오래된 일이다.
몰래 각성 플레이어들을 육성해서 군부 쿠데타를 시도했던 조창대 중장.
그와 얽혀 있던 여야 정치인, 언론사, 재계…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묻었다.
정치적 대립 구도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 그러나 권력자들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겠다는 것이 진짜 목적.
그 결과 권력을 효과적으로 장악해서 반대파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었고, 이번에도 다를 바 없다.
찬웅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고, 그래서 최기병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네, 얼마든지요.”
“청와대 VIP 지시에 반하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제가 그걸 무서워할 것 같습니까?”
최기병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대통령? 그깟 5년짜리 시한부 공무원이 뭐라고?’
대통령은 착각하고 있다.
케이가 게임에만 신경 쓰고 밖에선 빌런만 족치고 다니니 그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는 모양.
과거 조창대를 처리했을 때 케이가 그냥 넘어가 주니까 간덩이가 부었다.
“일단 채용이 결정된 모든 플레이어에게 통보해 주세요. 이번 채용은 무효라고.”
“반발이 심할 테지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APS 내부에서 관련된 직원들은 고위직이든 말단직이든 모조리 해고하고 고발 조치 부탁드립니다.”
“철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동화율 기준도 145%로 상향 조정합시다. 방출 스킬 숙련도도 최소 7등급 이상.”
“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리고 한국인 특혜 채용도 폐지해 주시고, 진(眞) 마정석 한국 기업 우선 공급도 취소.”
“어, 아, 알겠습니다.”
“아! 이참에 진(眞) 마정석 관리도 잘되고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채용 비리도 터졌는데, 거기라고 깨끗할 것 같지는 않은데.”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최기병.
솔직히 채용 비리까지는 감당할 수 있지만 진(眞) 마정석에 어떤 문제라도 생겼다면?
‘제발 아무 일 없어라…….’
* * *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이번 테라퓨타 게이트에 대한 APS의 공식 입장.
언론들이 기사를 쏟아 냈다.
그러나 메이저 언론은 빠져 있었다.
중소 인터넷 언론과 지역 신문을 중심으로.
<테라퓨타 게이트! 밝혀진 채용 비리! 국가 기관, 정부와 정치권, 재계, 언론사… 발을 뻗지 않은 곳이 없어.>
<채용 비리에 관여한 APS 고위직 공무원부터 말단직까지 모두 검찰에 고발 조치.>
<이미 채용된 인원도 무효 처리.>
<채용 인원 3,000명 중 1,000명을 한국인으로 뽑겠다는 계획도 없었던 일로.>
<진(眞) 마정석 한국 기업 우선 공급도 잠정 중단.>
<대체 왜 이런 비리가 터졌나? 알고 보면 월급 천만 원이 전부가 아니다.>
└ 월급 천만 원이 전부가 아니면 뭐야?
└ 그걸 왜 몰라? 테라퓨타 공중도시에 왜 인력이 필요하겠냐?
└ 으흠, 빨리 움직이려고?
└ 멍청한 놈아! 침식지 정화잖아!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냐?
└ 아!
└ 오!
└ 내가 멍청한 거 인정한다.
└ 이제 알겠네. 난 솔직히 이상했거든, 월급 천만 원에 저렇게 개떼같이 들려들 줄은.
└ 결국 각성과 진(眞) 아이템이구나.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거기에 기름을 부어 버리는 기사도 나왔다.
<정부 차원에서 테라퓨타 게이트를 은폐하려는 시도 포착.>
<한태수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나?>
└ 씨발, 내 처음부터 알았다. 음흉한 새끼, 탄핵해야 해!
└ 솔직히 한태수, 저 새끼 하는 일이 뭐가 있어? 케이 덕분에 꿀이나 빤 거지.
└ 이런 일 생기니까 본색이 나타나는구나.
└ 몰랐냐? 원래 겉과 속이 다른 놈이었어.
폭락하는 지지율.
청와대는 당황했다.
케이가 아무리 APS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지만, 명색이 국가 기관, 최기병도 공무원 아닌가!
그런데 감히 대통령의 지시 사항에 정면으로 맞서?
‘젠장! 이미 다 이야기해 뒀는데.’
채용 비리에 관여한 국회의원, 언론사 대표, 대기업 회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큰소리 떵떵 쳤다.
그 대가로 꽤 많은 걸 약속받았고.
“건방진 놈이!”
“최기병 그놈도 각성자입니다. 주제도 모르고…….”
“됐네. 어떻게 수습할지 대책을 내놔 봐.”
한태수 대통령이 최기병에게 지시를 내린 이유.
최기병은 케이와 매우 친하다.
그래서 그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렇게 틀어져 버렸으니.
“최기병, 그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놈입니다. APS에서 배제해야 합니다.”
“무슨 수로? 그러다가 케이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는 날엔?”
“승진시켜 버리면 어떻습니까? 괜찮은 공기업 사장으로 발령 내죠. 그럴 만한 공적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흐음…….”
좋은 생각이다.
징계를 내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시켜 주겠다는데.
그래서 공석이 된 APS 팀장 자리에 말 잘 듣는 놈을 골라서 앉히면 그만.
“APS 팀장 후임으론 누가 좋을까?”
“양화갑 국정원장 어떻습니까? 케이와의 안면도 있고, 또 국정원과 APS는 서로 업무 관련성도 있으니까.”
“흐음, 좋아. 추진해 봐.”
고발 조치 된 권력자들이야 변호사를 써서 질질 끌면 되는 일이고, 판사와 검사들은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있으니 기소 중지, 또는 무죄 판결을 대가로 다시 구슬리면 되고.
그렇게 수습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밤.
한태수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 자신의 침실에서 누군가의 방문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허억! 누구……?”
“처음 뵙겠습니다. 물론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아아, 서, 설마, 케, 케이?
맞다.
당연히 찬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