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게리 스탁턴 혹은 골드 드래곤 (1)
침식지의 기운은 지상에 가까울수록 가장 강하다.
그러나 하늘이라고 침식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건 아니다.
대기권까진 영향권에 들어간다.
올라갈수록 많이 옅어질 뿐이지.
테라퓨타 공중도시는 지상에 거의 붙어 비행하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아니고서는 무조건 침식당한다.
특히 에고 시스템이 있는 마탑 같은 경우엔.
하지만 이렇게 낮게 침식지를 활강할 수 있는 조건.
바로 포스 배리어 때문.
배리어를 발현하게 하는 장치는 도시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꽂혀 있는 300개의 포스 안테나.
사실 300개 다 필요한 건 아니다.
100개만 있어도 충분하다.
동화율이 높은 플레이어가 잡으면 숫자가 그보다 훨씬 줄어들고.
300개를 꽂은 이유는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바로 교체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만들어 둔 것.
현재 한국 APS 소속 용병 플레이어 100명이 포스 안테나를 잡고 있었다.
“…하아,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
안테나에 포스를 불어넣으며 [롤리롤리팝] 민도연이 딸기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왜 그래요, 언니? 처음엔 좋다고 방방 뛰었으면서.”
“난 선 베드 하나 깔아 놓고 편하게 누워서 갈 줄 알았지.”
“…침식지 사냥하러 가는 거잖아요. 소풍도 아니고.”
“그럼 내려가서 싸우라고 하든가, 이게 뭐야? 내가 건전지니?”
“그래도 남자들은 좋아하는 모양인데요?”
건전지 신세가 맞긴 하지만 확실히 온도 차가 있다.
특히 이필동과 우현수, 고유섭 등 군 생활 오래 한 남자들은 치사량 수준으로 뽕이 차올랐다.
파슛! 파슛!
콰쾅! 콰콰쾅!
연속적으로 뿜어지는 마력포.
“캬아! 죽인다. 전포 발사! 암, 전함은 못 참지.”
“매일매일 여기로 출근할 겁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항모의 꿈을 게임 안에서 실현하네요.”
“미사일은 언제 발사하죠?”
“보스 정도는 나타나야 쏘지 않을까?”
좋은 건 또 있었다.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메시지.
[2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D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
.
시스템은 테라퓨타 공중도시와 플레이어가 같은 파티라고 인식한 모양.
소소하지만 끊임없이 코인이 들어왔다.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격.
반면 표정이 영 좋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찬웅과 데우스칩.
“이거, 심각한 결함이네요.”
“그래, 예상은 했네만 이 정도일 줄은…….”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공중전함 테라퓨타.
이름만 번드르르하다.
“물 먹는 하마가 아니라, 마정석 먹는 하마입니다. 몹쓸 하마 새끼.”
“연비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벌써 마정석 연료 저장고 30%가 날아갔네.”
“마정석을 바닥에 뿌리고 날아다니는 거죠.”
마탑은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능동 방어 체계를 운용하고, 각종 마법 문양을 발현하고, 마력포나 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에 지시를 내리고… 명령을 실행할 때마다 마정석이 소모된다.
게다가 테라퓨타는?
떠 있는 거야 부유석이 한다지만 움직이는 건?
역시 마정석이 필요하다.
속도를 높이려면 더 많이.
조금 전과 같은 전투 기동 시에는 그 두 배로.
거기에 공격용 무기인 마력포에 들어가는 마정석은?
드론은 햇빛 받아 움직이나?
따라서 모든 순간이 다 마정석.
데우스칩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했다.
“내 손이 다 떨리는군. 마법사 놈들이 마정석에 환장하는 이유를 알겠어.”
찬웅도 같은 마음.
크기만큼이나 최악의 연비.
하지만 기껏 리모델링 했는데 그냥 띄워만 둘 순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1년 정도는 충분히 운용할 수 있습니다.”
“나도 알아. 아까워서 그러지.”
게임 속에서도 자신 소유의 마정석 재고는 엄청나다.
스톤포지 마정석 광산에서 캐낸 마정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현실에서 진(眞) 마정석을 받았다고 게임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뭐, 평소에는 정속 주행으로 연비를 절약하면 되고요. 지금은 실험이니까.”
“어쨌든 연비 절감 방안을 찾아봐야지.”
연비 절감.
찬웅도 생각하는 것이 있긴 하다.
잘될지는 모르지만.
“휴우, 그건 그렇고…….”
갑자기 지상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데우스칩.
“왜! 여긴 왜! 몬스터가 고양이냐고!”
콰콰쾅! 쾅쾅!
마력포가 한 발 터질 때마다 갈려 나가는 고양이 몬스터.
데우스칩의 안타까운 눈망울.
“아아아, 저 이쁜 것들이.”
“그냥 침식지 몬스터잖아요. 고양이가 아니라.”
“원래 고양이었잖아! 왜 침식되어서는…….”
이 양반 캣 맘이었나?
“빨리 보스나 처리하죠. 제가 내려갈게요.”
“아니, 조금만 참게. 곧 보스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거야.”
지구에서 겪은 두 번의 침식.
데우스칩은 침식 샘플을 재료로 많은 것을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침식 탐지기.
찬웅이 가진 감지 능력보다 범위가 더 넓다.
마탑이 레이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보스가 품은 침식의 기운은 상대적으로 크지. 현재 마탑이 탐색 마법으로… 아! 찾았군.”
데우스칩은 손으로 직접 가리키며 말했다.
“북서쪽 방향에서 보스로 보이는 거대 침식 에너지가 포착됐어.”
“그래요? 빨리 그쪽으로 이동하죠.”
“어허,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많은 마정석이 드는데, 그리고 왜 힘들게 직접 가나.”
위이잉.
데우스칩이 눈짓하자 자동으로 미사일 발사대가 세워졌다.
“저거 하나면 끝나.”
고밀도 압축 파워 스틱 밤 Ⅱ 탄두 장착 유도 미사일.
“여기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저게 슈우우, 날아가서 쾅! 하면서 보스 소멸! 얼마나 쉬운가.”
확실히 편하긴 하다.
그러나.
“좋네요. 다 좋아요. 근데 축복은?”
“…으응?”
“알잖아요. 축복이 떨어지면 아바타에게도 좋고, 랜덤 D박스 확률도 올라간다는 거.”
“아! 맞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탄성을 지르는 데우스칩.
“축복이 떨어지는 지역은 좁아요. 보스가 죽은 장소 주변이라, 기껏 보스 잡아 놓고 아무런 소득도 없으면 재미가 없죠.”
“큰일 날 뻔했군. 나도 랜덤 D박스 깔려고 코인 계좌도 만들었는데.”
“그리고 혹시 알아요? 공중도시도 축복을 받으면 변화가 생길지.”
“빠, 빨리 가세.”
슈우우욱!
테라퓨타가 급속 전투 기동으로 방향을 북서쪽으로 선회했다.
금방 보인다.
다른 고양이 몬스터보다 훨씬 커다란, 머리가 3개나 달린 보스 마물, 실성한 삼두표.
“카르릉!”
진짜 실성했나 보다.
거대한 섬이 다가와도 폴짝폴짝 뛰면서 적대감을 드러낸다.
“갑니다. 바짝 붙어요.”
“알았네.”
팟팟팟팟!
찬웅은 테라퓨타에서 뛰어내려 놈에게 돌진했다.
‘미안하다.’
워낙 압도적인 전력 차이라 그런지 몬스터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
츠리리릿!
쌍도끼가 날고.
서걱! 서걱!
잘리는 두 개의 머리.
나머지 하나는.
퍼억!
주먹으로.
“끼이잉.”
가루로 흩날리는 보스, 삼두표.
찬웅은 혼자서도 잘한다.
‘이제 슬슬 끝을 낼 때가 왔어.’
모든 침식지를 정화하고 세상을 되돌려 놓는 일.
플레이어들은 평화로운 가상현실 게임에서 힐링을 즐기면 되고.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군주들이 몇 놈이나 남았지?’
일단 옛 헤스티아 성국 침식지에 아직 두 놈이 있다는 건 안다.
결정했다.
다음은 거기.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말코네 침식지 보스, 실성한 삼두표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정화된 지역에 1분 동안 주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그러자 안테나에서 손을 떼고 상자를 까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
데우스칩도 정신이 없었다.
* * *
게임 접속 재개로 활발해진 커뮤니티.
제일 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은 용병 플레이어 게시판.
파티를 구한다거나, 획득한 아이템을 자랑한다거나 혹은 촬영용 수정구로 찍은 전투 장면을 올려 자신의 실력을 뽐낸다거나.
그러던 중 북미 커뮤니티 사이트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제목 : 말코네 왕국 침식지에 나타난 하늘섬(avi 동영상 첨부).>
- 미리 말해 두겠는데 절대 합성 아님. 촬영용 수정구로 찍은 영상이야. 나 이거 보고 쌀 뻔했다. 갈아입을 바지 준비하고 봐라.
재생된 영상의 내용.
몬스터에게 포위된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그때 저 하늘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거대한 섬, 소형 드론과 엄청난 화력의 포격으로 몬스터를 섬멸하는 영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 이거 다른 게임 아니냐, 새로운 SF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된 거야?
└ 오우야! 포격이네. 밀덕들 환장하겠구만.
└ 하늘섬 가장자리에 막대기처럼 삐죽 나온 것들 다 대포구나.
└ 근데 섬 중앙에 솟아난 건물은 뭐야?
└ 저거 마탑인데?
└ 엥? 진짜? 마탑이면 테라퓨타잖아.
마법사들의 도시 테라퓨타.
리모델링을 했지만 도시 전체의 외형이 변하지는 않았다.
겉모습은 분명 테라퓨타.
└ 저게 테라퓨타가 맞는다고 치면, 저렇게 빨랐어? 원래 속도가 굼벵이 아니었나?
└ 와! 진짜 빠르네.
└ 어떻게 마탑이 침식지에? 애초에 공중으로 띄워 올린 것이 침식을 피하기 위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늘섬 포격 동영상은 전 세계 커뮤니티로 급속하게 퍼 날라졌다.
그러던 중.
<제목 : 하늘섬 동영상 분석 (스크롤 주의).>
- 영상을 영 점 일 초 단위로 캡처 해서 분석해 봤다. 일단 하늘섬은 테라퓨타가 맞다. 자세한 건 직접 봐.
캡처 사진을 확대해 놓은 것.
주로 섬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다.
대부분 이름표를 단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이름표가…….
└ 케이? 내가 본 게 맞아?
└ 맞네. 또 케이였어.
└ 와! 이쯤 되면 찐이다, 찐! 또 케이.
└ 케이가 마탑을 접수한 거야?
└ 그러고 보니 소문이 돌긴 했어.
└ 무슨 소문?
└ 마법사들이 테라퓨타에서 쫓겨나 떠돌이가 되었다는 거 말이야.
케이가 테라퓨타 마탑의 소유자다.
이 기막힌 사실은 금방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 요즘 케이가 조용하다 했더니 저러고 있었네.
└ 솔직히 난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케이가 한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어.
└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또 죽은 중국 정치인들은 다 일반인들이잖아.
└ 맞아. 지금까지 케이가 일반인을 죽인 적이 있었나?
하늘섬의 정체와 소유자가 밝혀졌고, 이제 사람들의 반응은.
└ 아아, 간절하게 타고 싶다.
└ 저기 올라가는 방법은 없어?
└ 올라가게만 해 주면 케이 발바닥도 핥을 자신 있음.
전 세계가 들끓었다.
하늘을 나는 도시 테라퓨타.
그리고 마탑.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
그러던 중 각국 커뮤니티에 새 글 하나가 올라왔다.
그 글을 읽은 플레이어들은 열광했다.
<구인 공고 : 공중전함 테라퓨타 선원 모집.>
- 고용 인원 : 3,000명.
- 지원 자격 : 동화율 140% 이상 용병 플레이어.
- 채용 방법 : 면접.
- 업무 : 포스 주입, 교대 근무.
- 혜택 : 수당 지급(코인), 테라퓨타 통행 게이트 설치 가능.
- 문의 : 한국 APS 접속 센터.
- 작성자 : 데우스칩.
지원이 물밀듯이 쇄도했다.
APS는 전화가 폭주해서 통화 불능 상태.
실로 폭발적이었다.
* * *
찬웅은 로그아웃을 하고 캡슐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제 좀 쉬자.”
선원 모집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자신.
테라퓨타엔 사람들이 필요하다.
포스 배리어는 플레이어가 만든다.
안테나에 포스를 주입함으로써.
포스는 에너지니까.
여기에 착안했다.
포스가 에너지라면 그걸 추진력으로 변환할 수는 없을까?
공중도시 기동을 플레이어의 포스로 가능하게 만든다면?
자신의 생각을 데우스칩에게 말하자.
‘아마도 가능할 거야. 인원이 많아야 하지만, 한데 그걸 좋아할 플레이어들이 있겠나? 우리 APS 플레이어들을 보게나. 지루해서 죽으려고 하더만. 허구한 날 안테나만 잡고 있는 판에.’
‘사람을 많이 고용하면 됩니다. 월급도 주고, 교대 근무로 돌리면 지루할 일도 줄어들 거고요.’
‘음, 그럼 뭐.’
데우스칩 입장에서도 듣고 보니 괜찮은 생각.
그래서 모집 공고를 냈다.
코인은 충분하게 먹고살 만큼 지급할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창조 경제지.
사실 침식지 공략은 혼자서도 가능하다.
하루에 하나씩만 정화해도 6개월이면 끝난다.
그러나 반(反)시스템이 가만히 있을까?
분명 반격이 있을 것이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대응하는 것이 더 낫다.
‘썰렁하네.’
집 안엔 찬웅 혼자.
데우스칩도 새로 집을 얻어 독립했다.
물론 바로 윗집이지만.
‘햇반이나 하나 데울까.’
싱크대 옆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바로 그 순간!
멈칫.
발길을 멈추는 찬웅.
‘하아, 씨발!’
집 안에 누군가가 있다.
‘어떻게 들어왔지?’
찬웅이 사는 집은 평범한 빌라가 아니다.
1차로 바깥은 국가에서 파견된 경호 인력이 지키고 있다.
게임 접속 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2차로 데우스칩은 현관문과 창문에 경계 마법 문양을 새겨 넣어서 누가 침입하면 자동적으로 경고음이 울리게 해 놓았다.
게임 안에서도 인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보통 놈은 아니야.’
잡고 나서 알아보자.
스슷!
인벤토리에서 쌍도끼를 꺼내 든 찬웅.
동시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거실 벽에 도끼를 쏘아 날렸다.
츠피릿!
“…허억!”
짤막한 비명.
콰악!
도끼는 자루만 남기고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어갔다.
놓쳤다.
하지만 투명화가 풀렸는지.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는 놈.
“자, 잠깐! 머, 멈추게.”
그러나 무시하고.
팟팟팟!
빠르게 순간 가속으로 다가가.
덥석.
멱살을 잡고서.
“누구야?”
“어어, 나, 난, 게리, 게리 스탁턴이라고 하네.”
“…뭐?”
게리 스탁턴이라면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회사의 대표?
그리고 또한.
“세상 안에선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이라고 불렸었지.”
드디어 만났다.
게리 스탁턴, 이 게임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을, 아니 드래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