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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73화 (173/204)

173화 위용

중국 최고 지도자 화롄방.

한때 공산당 내부 개별 정파들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지휘해 온 노련한 정치인. 중화사상을 고취해 중국 소분홍 세대를 만들어 낸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89세라는 고령의 나이 때문에 뒷방 늙은이 신세에 불과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허무하게 죽었다.

경비가 허술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일어난 수상 관저 테러 사건.

빌런의 테러가 분명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같은 일이 생길까, 중국 정부 소속 각성 플레이어와 레이저 동작 감지 경보기, 적외선 탐지기 등등을 주석궁에 쫙 깔아 놨다.

그런데도 당했다고?

국가 권력의 존엄이 흔들리고 있었다.

중국 내 공산당 지지층도 동요하고 있고.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다음 권력을 공고히 다지는 것.

중국 내 정치 파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긴급하게 개최된 임시 중화 최고 인민 대표자 회의.

공산당 내부 서열 100위까지 고위 관료, 상하이파, 중화 인민단, 사회주의 홍위파, 베이징 원로방 등 각 파벌의 수장과 인민 해방군 지휘관 등이 모두 참석했다.

회의에선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당한 정책 실패에 대한 성토와 자아비판이 이루어졌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중화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어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대국의 기개를 만천하에 떨쳐 세워야 합니다.”

“한국을 너무 너그럽게 대했단 말입니다. 이게 다 케이 때문인 건 다 아시죠? 놈이 우리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바람에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중국의 지분이 줄지 않았습니까! 진(眞) 아이템도, 각성 플레이어도!”

“이번 주석 각하 피살도 놈이 관여한 것이 틀림없어요.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북부 전구 인민 해방군을 북한에 주둔시켜 중국이 화가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각인해 줘야 합니다.”

“미국도 한 패거리 아닙니까? 이 기회에 힘을 합쳐 대만을 공격해야 합니다. 대만에도 각성 플레이어 숫자가 꽤 되는 걸로 파악됐어요. 하나의 중국으로 힘을 합쳐…….”

그런 모습을 가만히 듣고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은신 상태로 회의장 천장에 딱 붙어서 살생부를 작성하는 엘프 장로 에루인.

‘중화 인민단의 대가리가 장륀이고, 상하이파는 덩샨, 사회주의 홍위파 쑹룽화, 베이징 원로방 양푸이… 군부 지휘관도.’

그녀의 살생부는 다른 게 아니다.

제자 케이에겐 전수하지 않은 암살자로서의 고유 스킬.

[죽음의 표식].

이 기술에 당하면 대상이 어디 있건 간에 무조건 찾아낼 수 있다.

한마디로 찍히는 거다.

‘중화 인민단 장륀이 다음 지도자로 유력한 인물이네.’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중국 국무위원회 주석으로 추대된 장륀을 시작으로, 에루인은 차례대로 죽음의 표식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회의가 끝나기 전에 조용히 빠져나온 그녀.

일을 치르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나고.

‘베이징에 왔으니 역시 베이징 덕이지.’

엘프라고 해서 육식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특히 그녀는 아주 잘 먹는다.

안 먹으면 근육을 어떻게 만들어?

* * *

새로운 주석이 된 장륀은 인민 대표자 회의를 끝마치고 다른 정파 수장들과 간담회를 거친 후, 곧장 국무 청사 집무실로 갔다.

자택은 불안하다.

집보다는 국무 청사가 더 안전하니까.

“제기랄! 성녀, 그년을 믿는 게 아니었어.”

자신의 경호원이자 심복인 각성 플레이어 후량위에게 대신 울분을 토해 내는 장륀.

성녀는 케이만 죽여 주면 놈이 가진 모든 자산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절대 캡슐 안에서 깨어나지 못할 테니 뚜껑을 열고 칼만 찔러 넣으면 된다고, 선금으로 일반 용병 플레이어도 30명이나 각성시켜 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한국으로 보낸 중국 각성 플레이어 25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또한 성녀도.

“그년은 왜 연락이 안 돼?”

“아마 죽었을 겁니다. 폴른스타 신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요.”

“후우, 분명 케이가 죽였을 거야. 성녀도 화롄방 주석님과 일본 총리도…….”

불안한 눈빛의 장륀.

“우리와 일본이 접속 센터 습격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케이가 알고 있을 거 아냐.”

“케이는 아닐 겁니다. 조금 전에도 확인했습니다. 놈은 APS 접속 센터 캡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놈이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자가 이 세상에 그놈 말고 또 있단 말인가?”

“그건 조사를 해 봐야…….”

그때였다.

스르륵.

“너였구나. 어쩐지 그 늙은이는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

모습을 드러내는 에루인.

“헉!”

“너, 너는 누구……? 후량위! 저년을 죽여!”

각성 플레이어 후량위는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박도를 꺼내 빛살처럼 빠르게 에루인에게 돌진해 갔다.

휘릿!

하지만…….

츠핏!

서걱!

요리할 때 쓰이는 중식도가 가로로 그어졌다.

“큭!”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벽에 박혀 버리는 후량위.

툭!

데구르르르르…….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

“내가 일본에선 마체테를 썼지만 여기선 이게 마음에 들더라고.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그래서 마련했어. 멋지지?”

큼지막한 중식도 두 자루를 들고 다가가는 에루인.

주춤주춤 물러나는 새로운 국가 주석 장륀.

“누, 누구 없나? 침입자다! 빨리 와!”

겁에 질려 고래고래 고함을 쳤지만.

“내가 좀 바빠. 살생부에 적힌 이름이 많아서…….”

츠핏!

서걱!

툭!

데굴데굴.

장륀의 머리도 바닥을 구를 뿐이었다.

다시 시작된 살육으로 중국 베이징에 초비상이 걸렸다.

거의 계엄령 수준.

중국 공산당은 대표자 회의를 생략하고 상하이파 덩샨을 국가 비상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빠른 상황 수습에 나섰다.

밀실보다는 사람 많은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덩샨은 훤히 트인 국무 청사 광장 앞에 방송 기자들을 모아 놓고.

“우리 중국을 공격하는 자는 반드시 붙잡아서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린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

순간!

피리릿!

어딘가에서 날아온 은빛 중식도가 덩샨의 미간에 날아가 박혔다.

콱!

“…켁!”

두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뒤로 넘어가는 덩샨.

TV 생중계 중이었다.

십수억의 중국 국민들이 이 모습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 *

중국에서 일어난 초유의 암살 사태.

당연히 전 세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빌런 습격 사태야 일전에 한 번 겪어 면역이 된 상태라 새로울 것도 없고, 또 인구가 워낙 많아 여러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은 중국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은…….

‘중국이 또 중국 하고 있네.’

뭐, 이 정도?

외교만 잘했어도 다른 국가들이 서로 도와주겠다고 나섰겠지만.

서울, 찬웅의 자택.

찬웅은 잠시 쉬려고 로그아웃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싶어 TV를 켰다.

특히 에루인이 걱정.

아니나 다를까.

“아이고, 스승님.”

엊그제 일본 수상 관저 참사 그리고 중국 주석 암살.

에루인이 벌인 일인 건 알고 있었다.

그 마음도 이해하고.

하지만 그쯤에서 끝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일이 계속 커진다.

중국 내 권력 구도를 송두리째 뽑아 털어 버리겠다는 의도. 어떻게 암살 대상자들을 선별했는지 지금도 계속 죽어 나갔다.

윗대가리부터 죽여서 차근차근 내려오는 식.

중국 권력자들은 겁에 질렸다.

해외로 도피하거나, 자신의 직을 내려 놓고 사임한다거나, 눈치 빠른 이들은 언론에 나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한다거나.

그게 또 웃기는 것이.

그런 놈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일어난 탈출 러시.

심지어 공산당 탈당을 선언하는 정치가들도 나오는 판이니.

‘잘 알아서 하시겠지.’

에루인이 보인 암살자로서의 행적 탓인지 피에 미친 살인마라고 오해를 많이 하는데, 그녀는 매우 지혜로운 엘프다.

찬웅은 잠시 쉬다가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대기실에서 테라퓨타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이제 공사도 거의 막바지.

남은 건 공중도시 기동 실험.

찬웅은 마탑 의무실로 먼저 올라갔다.

“브랜달, 괜찮냐?”

“…형님, 오셨어요?”

“그래, 밥은 먹었고?”

“네.”

꼴을 보니 안 먹은 것 같다.

공허한 눈빛의 브랜달, 살아남았지만 죄책감을 아직 떨쳐 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거의 대인 기피증 수준이고.

“빨리 추스르고 일어나. 네가 도와줄 일이 많아.”

“…….”

브랜달을 충격에 빠트린 건 또 하나 있다.

마법사들의 배신, 자신을 제물로 던져 주고 휴전을 꾀하려 한 파렴치한 그들의 행동에 몹시 낙담한 것.

예전의 브랜달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혼자 있게 놔두자.

마탑에서 나와 데우스칩을 만난 찬웅.

“애새끼는 여전히 그대론가?”

“네, 하지만 곧 좋아질걸요. 참! 기동 실험은…….”

“지금 하려고, 자네가 준 축복의 부유석 10개를 모두 설치했네. 이제 움직여 볼까 하는데… 목적지를 정하지.”

찬웅이 미리 생각한 곳이 있었다.

듀플렉스 대륙 전도를 펼쳐 놓고 한 지점을 가리키는 찬웅.

“여기로 하죠. 말코네 왕국 침식지.”

“흐음, 좋아. 포스 배리어와 화력 실험도 동시에 끝내자고.”

“혹시 모르니까 플레이어들 제외하고 주민들은 모두 돌려보내요.”

“알았네.”

잠시 후.

끼이이이잉.

목적지 방향으로 선회하는 테라퓨타 공중도시.

스스스스.

처음엔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속이 붙자.

슈우우욱!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공중도시 마탑.

모두가 만족하는 속도였다.

* * *

아바타명 [하키맨], 캐나다 출신 용병 플레이어 가빈 엘리엇은 민간 용병 길드 ‘온타리오 클랜’의 길드장.

원래는 케이가 만든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점검 후 재접속해 보니 아쉽게도 해체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50인 길드를 조직해서 침식지 사냥에 나섰다.

사냥터는 말코네 왕국 침식지.

이 침식지의 몬스터는 다름 아닌 오염된 고양이.

온갖 종류의 고양이가 다 튀어나온다.

긴꼬리 가시고양이, 더블 펀치 고양이, 두더지 땅고양이, 그림자 검정고양이… 보스는 실성한 삼두표.

물론 보스까지 공략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잡몹이나 잡으면서 코인 벌이만 하려 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게임이라 정신없이 열중하다 보니 너무 깊게 들어왔다.

“퍼킹! 우린 포위됐어! 털바퀴들이 너무 많아!”

“진정하라고. 죽기밖에 더 해?”

“아니, 여기서 죽으면 적자란 말이야. 물약값도 건질 수 없어.”

용병 플레이어들이 그렇다.

다른 플레이어와는 다르게 코인도 잘 벌고, 동화율 돌파도 쉽지만 그만큼 따라오는 리스크도 매우 크다.

죽으면 코인도 못 벌고, 장비도 드롭되고, 접속 제한 페널티에, 동화율도 하락한다.

이러면 용병을 선택한 보람이 없다.

돈을 벌지 못하면 용병을 왜 하나?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용병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고.

온타리오 클랜의 수는 고작 50명.

그들을 포위한 고양이 몬스터는 어림잡아도 500마리 이상.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왓 더 헬…….”

“씨발, 요즘 몬스터에게 죽으면 그렇게 아프다던데.”

“맞아. 그런 소리 들리더라. 통각 제어 시스템이 패치됐다 하더라고.”

“내 친구 한 놈은 캡슐에서 일어났는데, 후유증에 시달려 하루종일 끙끙 앓았대.”

고양이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어차피 피할 곳도 없다.

어쩌겠나?

죽어야지.

체념한 길드원들은 무기를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슈우우욱!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스스스스.

침식지 지면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가빈 엘리엇과 길드원들.

“무슨…….”

“어?”

“저, 저건?”

거대한 섬 하나가 빠르게 전진하면서 밑으로 내려온다.

“헉!”

“뭐, 뭐야?”

“…깔려서 죽겠다.”

그리고.

왜애애애앵!

섬에서 날아오는 낯익은 물체.

숫자도 제법 많다.

“…드론?”

“저게 왜?”

“여기 게임 맞지?”

“맙소사!”

가빈은 인벤토리에서 촬영용 수정구를 꺼냈다.

저건 무조건 찍어야지.

그런데 희한하다.

드론들이 공격도 한다.

물론 몬스터들에게.

푹! 푸푸푹! 푹! 푹!

고양이 몬스터에게 날아가 명중하는 금속 투사체.

“켁!”

“캭?”

“키익!”

고양이 몬스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파슛! 파슛!

도망가는 고양이 무리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포탄.

콰쾅! 콰콰쾅!

“포탄?”

“고, 공중 포격이냐?”

“아니, 진짜 게임 맞냐고?”

파슛! 파슛!

콰쾅! 콰콰쾅!

그 많던 몬스터가 흔적도 없다.

슈우우욱!

거대한 섬은 침식지 중앙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어느 정도 멀어져 큰 덩어리가 한눈에 들어오자 가빈 엘리엇은 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탑, 마탑이었어.”

“그럼 테라퓨타?”

“미, 미친! 저기 사람도 보여. 프, 플레이어 같은데…….”

“찍었어?”

“어, 지금도 찍고 있어.”

공중전함 테라퓨타가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처음으로 그 위용을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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