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마탑 리모델링 (2)
10년 스킵으로 인한 공백은 금방 메워졌다.
이제 슬슬 침식지 레이드를 재개해야지.
굳이 진(眞) 아이템이나 각성 플레이어 확보가 아니더라도 침식지는 반드시 정화되어야 한다는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게임과 현실이 서로 섞이는 세상.
그 순기능은 분명 있다.
지구의 과학 문명을 보완해 줄 마정석 같은 신물질과 마도 공학이란 신기술을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니까.
마정석이라는 신(新)에너지, 그 덕분에 대폭 낮춰진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위험성, 마도 공학으로 더해지는 물질적 풍요와 편이.
비약적인 변화 발전을 이뤄 낼 발판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공짜는 없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베이징과 가봉 열대우림에 닥친 끔찍한 침식, 게임 속 마물 NPC 군주, 놈들을 따르는 사도 빌런들이 일으킨 테러.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사도 빌런 테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중국 베이징 동물원 침식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가봉은 열대우림 전체가 침식당할 뻔했다.
그대로 두면 지구가 멸망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망정이지.
바깥으로 나오기 전에 게임 안에서 정화한다.
유엔 임시 총회에서 게임 속 침식지 정화 건이 상정되었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연합 공격대를 조직하기로 의결했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 일어난 믿지 못할 사건.
일본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도쿄 수상 관저 대참사! 테러로 일본 내각 총리 서거!>
<사망자 명단 : 총리대신, 관방장관, 외무대신, 방위대신, 자위대 통합 막료장, 내각 정보관…….>
<범인은 각성 플레이어, 사도 빌런의 테러가 다시 재현되는가?>
<경찰과 검찰로 이루어진 진상 조사단, 수사에 착수.>
일본의 총리와 주요 지도급 인사들이 한곳에서 사망했다.
그것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수상 관저에서.
일본도 이전에 전 세계적인 사도 빌런 테러 사태를 경험했지만 그때도 수상 관저는 무사했었다.
빌런 테러 진상 조사단은 본부를 설치하고 그럴듯한 현판을 내건 후, 수사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각성 플레이어인 듯한 여성이 살인을 저지르는 CCTV 영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조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범인의 얼굴이 TV 등 언론을 통해 자세하게 나왔지만 그것이 폴리모프로 변신한 모습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난리가 난 일본 상황.
└ 유럽인이나 미국인 같은데… 왜 우리 일본을 공격하지?
└ 맞아! 그들은 일본을 사랑한다고, 조선인이 틀림없어.
└ 백인에다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조센징도 있었나?
└ 혼혈이겠지. 변장일 수도 있고. 당장 한국 각성 플레이어 중에 같은 년이 있는지 찾아야 해.
└ 틀림없어. 조센징이다.
└ 일본 정부는 뭐 하고 있지? 당장 한국에다 선전포고 하라고!
혐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한국을 가장 먼저 의심하는 짓은 일본인이 가진 고유한 종특.
일본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각 정부의 지시를 받아 한국 외교부 장관에게 접견을 요청한 주한 일본 대사.
“한국 정부가 직접 수상 관저 테러 사건에 대해 해명해 주십시오. 또 APS 각성 플레이어 신상 정보를 요구합니다.”
“왜요?”
“수상 관저 테러에 한국 각성 플레이어가 연관됐다는 정황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요? 근거는?”
“그럴 수 있는 플레이어가 한 사람뿐이잖습니까?”
픽! 하고 일본 대사를 비웃는 외교부 장관.
“케이를 말씀하시는 거요? 용의자가 여자라며 방송에도 떠들어 놓고.”
“케이가 공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폭탄 파편이 중국제라는 소문도 있던데. 오히려 중국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나요?”
“그, 그건…….”
“중국은 무섭고 한국은 만만한가?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요.”
“…….”
“솔직히 당신도 알고 있잖소? 케이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는 것을.”
뭐,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서로가 가장 의심 가는 나라.
“아무튼 잘 오시긴 했네.”
“네?”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무, 무슨?”
“한국도 테러의 피해자란 말입니다. 여길 보시죠.”
주한 일본 대사에게 증거 자료를 들이미는 외교부 장관.
그것은 경기도 과천 APS 접속 센터를 습격한 일본 측 각성 플레이어의 정보였다.
“이. 이 자료는 뭡니까?”
“뭐긴! 테러범의 신상 정보지. 우린 CCTV 영상과 더불어 테러범의 자백까지 확보했거든요.”
“…으음.”
“무려 25명의 일본인 각성 플레이어가 APS 접속 센터를 습격했습니다. 대부분이 국가 소속 같던데, 어디 해명해 보시죠.”
“이, 이건 저도 잘 모르는 일이라…….”
목소리를 떨며 당황해하는 일본 대사.
“모른다면 공개해 버릴까요? 그러면 되겠네. ”
“…공개라니요, 어디에?”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너튜브 같은 곳에.”
“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보세요, 대사님! 이 정도는 되어야 증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일본 대사는 기겁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
“대사관 들어가서 그쪽 높으신 분들에게 전하세요.”
“아아, 어, 어떤 말을…….”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자극하려 하지 말고 몸조심하시라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질 않습니까? 막을 능력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분명 협박성의 발언이었지만 일본 대사는 찍소리도 못 하고 돌아갔다.
한편 엘프 장로 에루인은 중국으로 숨어들었다.
도쿄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친 후,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몰래 무임승차.
일본에서 일어난 테러로 중국 주석궁의 경비가 강화되기 전에 혹은 지도부가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 전에 끝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청사, 공산당 전국 중앙위원회 본부와 주석궁이 모여 있는 중국 정치의 핵심 지역.
그곳에서 사상 초유의 대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최고의 권력자, 국가 주석 화롄방이 자택 침실에서 목이 잘린 채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각성 플레이어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심판할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그리하여 중국도 대격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듀플렉스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인 카시우스 제국 황도 폴른스타, 그곳도 혼란에 빠졌다.
황제와 고위 귀족들의 허망한 죽음.
그로 인한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
살아남은 중앙 귀족과 지방 귀족들이 군사를 이끌고 속속들이 황도로 몰려왔다.
모두 힘을 합쳐 마키나 공화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황도를 지키던 병사들의 증언.
보이지 않은 곳에서 날아오는 마키나 공화국의 신무기.
소드 마스터인 황제도 속절없이 당했다.
또한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출동한 1만의 기사단도 적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치명타를 입고 오합지졸로 패퇴했다.
게다가 든든한 연합 세력이었던 마탑의 몰락.
마법사들은 한순간에 터전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됐다.
머리가 잘리고 손과 발이 봉쇄된 상황.
귀족들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걸.
모여 봐야 뭘 하겠나?
결국 권력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제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
지배를 받고 있던 속국들도 독립을 선언하며 나섰고, 거기에 혁명을 꿈꾸는 공화주의자까지 가담했다.
카시우스 제국은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아바타명 [로켓보이], 백악관 안보 참모 마이클 피트는 게임 대기실로 접속했다.
며칠 전부터 솔솔 피어오르는 소문이 있었다.
테라퓨타 마탑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 그곳 주민이었던 마법사들이 갑자기 추방되어 집도 절도 없이 떠돌고 있다는 것.
마키나 공화국과 전쟁 중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는데, 설마 마탑이 전쟁에서 패했나?
그래서 최기병에게 슬쩍 찔러 봤다.
아는 것이 있냐고?
대답 대신 질문이 날아왔다.
케이와 친구를 맺었냐는 것.
아직 친구 사이라고 했더니 대기실에서 게이트를 하나 더 달아 보란다.
연결 도시는 공중도시 테라퓨타.
뜬금없이 게이트?
‘여긴 원래 게이트 설치가 안 되는 곳이잖아.’
어쨌든 해 보자.
문을 하나 더 달고.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테라퓨타!”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어? 진짜 된다고?’
이게 왜…….
게임 정책이 바뀌었나?
아니면 마법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거나.
“설정!”
[게이트 통로가 공중도시 테라퓨타로 설정되었습니다.]
마이클 피트는 게이트 문을 열었다.
화아아아악!
“아…….”
테라퓨타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르는 마이클 피트.
마탑이었다.
은빛 금속으로 치장된, 거대하게 솟아오른 탑.
‘마탑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세상 밖 도시에 이 정도 높이의 마천루들은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곡선형의 건축물은 처음 본다.
홀린 듯 마탑을 향해 걸어가는 마이클 피트.
가까이 가니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탑 주위에 임시 가설물이 지상에서 꼭대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공사 중인가? 작업용 비계 같은데…….’
비계에 올라서 마탑 표면에 문양 작업 중인 노동자들.
‘마키나 공화국의 엔지니어들이야.’
마탑만 공사 중이 아니었다.
테라퓨타 전체가 작업 중.
기존에 있던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축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공사에 투입된 이들이 누군지 보니.
‘드워프, 드워프들도 여기 왔어.’
광부이자 대장과 건축의 달인들.
작업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영상 빨리 감기 하는 듯했다.
망치로 두드리고, 정으로 돌을 쪼개고, 철제 기둥을 땅에다 박고, 간간이 캔 맥주로 목도 축이면서…….
가만!
캔 맥주?
심지어 상표도 있다.
‘버즈와이저?’
설마!
현실에서 파는 캔 맥주가 게임 속에 나타날 리가.
‘에이, 기분 탓이겠지.’
그렇다면 건축용 자재들은?
플레이어들이 나르고 있었다.
한국 APS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인벤토리에서 석재와 철강을 꺼내 지정된 위치에 쌓아 올린다.
“하하하…….”
감탄보다는 황당한 마음.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공중도시의 기본적인 형태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가장자리에 있는 무슨 파이프 비슷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마이클 피트는 제 눈을 의심했다.
‘대포?’
확실하다.
대포였다.
위와 아래를 동시에 조준할 수 있는 대포.
게다가 그 뒤쪽에 설치하고 있는 발사대.
‘…저건 미사일이잖아.’
대체 여기가 게임인가, 현실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현실에 게임 컨텐츠가 섞였듯이, 게임에도 현실의 문명이 섞이는 걸까?
그때였다.
“어때요? 소감이.”
어느새 곁에 다가온 [와치맨] 최기병이었다.
“소, 소감요? 아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보셨잖습니까, 마탑 리모델링과 도시 재건축.”
“…네? 마법사들은요? 주인들은 어디 가고.”
“마탑 주인 바뀌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그럼 주인이 누군데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는 최기병.
마이클 피트는 깨달았다.
마탑의 주인이 누군지.
“…호, 혹시 케이?”
“네. 그 사람 말고 누가 있을까요.”
“아.”
무의식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케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근데 그는 마탑을 리모델링해서 무엇을 하려는 거지?
“따라오세요.”
마이클 피트는 최기병을 따라갔다.
섬 가장자리.
그러니까 마키나 공화국 엔지니어들이 대포를 설치하고 있는 장소, 그 옆엔 길죽한 막대기가 땅에 꽂혀 있었다.
하나가 아니다.
도시 둘레를 따라 촘촘하게 박혀 있다.
“뭡니까? 피뢰침 같은데.”
“포스 안테나라고 부르는 겁니다.”
“…안테나라면 침식지에서 발견한 그것 말입니까?”
“맞아요. 하지만 이 안테나는 침식이 아닌 포스를 퍼뜨립니다.”
“어떻게요?”
최기병은 안테나 끝을 잡고 설명했다.
“한 개에 용병 플레이어 한 명씩 붙어서 포스를 불어넣습니다. 이렇게요.”
우우웅!
“총 300개가 꽂혀 있는데, 동시에 포스가 주입되면 도시 전체에 방어막이 형성됩니다. 우린 그걸 포스 배리어라고 부르죠.”
“…포스 배리어?”
“그래요. 마탑이 침식되는 걸 막기 위한 배리어.”
마이클 피트도 알고 있다.
마탑은 에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침식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이게 필요하다는 의미는?
“…공중도시를 몰고 침식지에 진입할 생각입니까?”
“맞습니다. 우린 이걸 이용해 침식지 몬스터와 보스를 소멸할 겁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마이클 피트.
그제서야 이해했다.
테라퓨타는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