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70화 (170/204)

170화 마탑 접수

테라퓨타 공중도시 마탑.

브랜달이 정체불명의 적을 찾기 위해 도시를 벗어난 후, 거짓말처럼 공격이 뚝, 끊겨 버렸다.

그래서 홀가분해진 공중도시는 공격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콰콰콰쾅! 콰콰쾅!

저 멀리서 들리는 굉음.

‘찾아냈군.’

테라퓨타 부탑주 로미오는 이글아이(eagle eye) 주문, 즉 천리안으로 전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고위급 간부 마법사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중.

‘역시 탑주야.’

마르지 않는 마나, 딜레이 없는 주문 시전, 9서클 마법엔 한계가 없었다.

이미 마키나 공화국의 마법 병기들은 초토화된 상태, 데우스칩인 듯 보이는 골렘 비슷한 놈도 인사불성으로 쓰러져 있었고.

그러나.

‘…케이.’

놈이었다.

탑주와 싸우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불꽃 튀는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이방인. 기어코 저 건방진 놈이 위대한 테라퓨타에 이빨을 드러냈다.

‘찢어 죽일 새끼!’

사실 테라퓨타 마법사에게 있어 케이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다.

마탑의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부유석과 실전된 마탑의 제어 권한을 되찾아 준 것?

부유석은 물질로 갚았다.

마법 스크롤도 제작해서 주고 고등급 스킬 구슬도 넘겨줬다.

거래를 통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

마탑 제어 권한?

그건 원래 테라퓨타의 것이 아니었나?

응당히 돌려받아야 할 것.

오히려 조건을 걸고 간을 보며 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넘겨줬었지.

그래서 마법사들은 응징을 원하고 있었다.

비천하고 교활한 이방인 케이에게 마탑의 무서움을 각인해 주는 것.

하지만 어째 점점 불안하다.

이쯤이면 결판이 나야 하는데.

전투는 초박빙.

물론 마탑주 브랜달이 약간 우세하긴 하지만.

“흐음, 역시 듣던 대로 미꾸라지 같은 놈이군.”

“공격 주문을 저리 쉽게 피하다니, 마법 저항 능력이라도 있나?”

“이방인 주제에 너무 큰 힘을 가졌어요.”

“쯧쯧, 테라퓨타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린 게 안타까워.”

“그래, 조금만 빨랐어도…….”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헉!”

“저, 저런!”

“맙소사!”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마법사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케이의 도끼가 번뜩일 때마다 탑주의 마법이 파훼되고 있었다.

저게 말이 돼?

도끼, 물리적인 힘으로 마법 주문을 무효화한다고?

급기야!

가슴을 베이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마탑주 브랜달.

“타, 탑주님!”

“안 돼!”

“아아…….”

“…….”

마법사들은 기절초풍에 혼비백산.

정말 진짜?

9서클 마법사인 탑주가 패했다고?

언제나 자신들보다는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이방인이었다. 침식에 면역이 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지 않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두커니 선 채 할 말을 잊은 부탑주 로미오.

“부, 부탑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함정이 틀림없어요. 놈이 비열한 흉계를 꾸민 게 분명합니다.”

“당장 날아가 저 간특한 이방인을 척살하고 탑주를 구합시다.”

“빨리 지시를 내려 주시오.”

그러나 로미오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9서클 마탑주 브랜달도 놈에게 당했다.

그런데 고작 7서클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놈을 이겨?

게다가 케이가 사용하는 기술들을 보라.

근접전으로 따지면 대륙 전체에서 최고.

가히 마법사들의 천적이었다.

‘…우린 그냥 한 번에 썰릴 거야.’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문제.

만약 탑주가 죽으면… 응?

‘가만!’

갑자기 드는 생각.

‘마탑주가 죽어? 죽는다, 죽는다면…….’

테라퓨타의 지배자는 마탑주.

왜?

마탑의 제어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부탑주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탑주를 보좌하는 집사나 다름없는 역할, 하지만 부탑주가 가장 빛을 발하는 경우는…….

‘탑주가 부재했을 때지.’

탑주 사망 시 마탑의 제어 권한이 자신에게 넘어오니까.

원래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브랜달이 죽으면 자신이 다음 탑주다.

이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

‘그래, 애초에 어린 애새끼가 탑주를 맡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20살을 갓 넘긴 브랜달에게 탑주의 지위는 처음부터 과분한 것이었을 지도 모를 터, 서클이 높다고 해서 공중도시 전체의 지배권을 가지는 게 말이나 되나?

“부탑주님! 빨리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전투 가용 인원이 1만, 그중 5서클 마법사 3,000명, 6서클 이상의 고위급 마법사들도 500명이 넘습니다.”

“맞습니다. 숫자로 짓누를 수 있어요.”

“시간이 없습니다. 자칫하면 탑주님이…….”

부탑주 로미오는 결심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탑주께서 테라퓨타를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잊었나?”

테라퓨타를 위해서도 브랜달은 죽어야 한다.

그를 케이에게 넘기고 전쟁을 멈춘다.

마탑 제어 권한 승계는 덤.

“…네?”

“무, 무슨!”

“왜?”

“마탑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탑주님도 그렇게 당부하신 것이고.”

고위급 간부 마법사들은 로미오의 의도를 단번에 깨달았다.

‘탑주를 버리자는 거군.’

‘다음 탑주가 되시겠다?’

‘탑주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승계가 되니까.’

동요하는 마법사들과 천천히 눈을 맞추는 로미오.

“벌써 잊어버렸나? 도시에 좀 전과 같은 공격이 한 번 더 날아오면 막을 자신이 있는가? 전쟁은 여기서 멈춰야 해.”

마법사들도 수긍했다.

‘하긴! 놈을 상대한다고 이길 거란 보장도 없어.’

‘이럴 바엔 휴전을…….’

‘탑주를 휴전의 제물로 넘기겠단 말이군.’

‘브랜달은 너무 빡빡했지.’

‘로미오가 나아. 융통성도 있고.’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일단 이동 중지! 방어 체제로 전환해.”

끼이잉.

그리하여 테라퓨타는 천천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 *

동화율 200%일 때는 NPC 혹은 사물의 본질 전체를 샅샅이 꿰뚫어 볼 수 있었지만 192% 때는 한계가 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보인다는 것. 그것도 언뜻언뜻 보였다 사라지는 식, 지속적이지 않다.

아무튼 문자열 코드로 세계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능력.

사실 볼 수만 있으면 뭘 하나?

코드의 역할과 의미를 알아야지.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 수 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감이 온다.

찬웅이 브랜달의 머리에서 빨아들인 코드는 바로 마탑의 제어 권한.

[마탑 제어 권한의 회수가 가능합니다. 회수하시겠습니까?]

찬웅은 쓰러진 브랜달에게 눈길을 돌렸다.

‘딱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은 회수하는 게 맞다.

설령 제정신이 돌아온다고 해도 말이다.

어느새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가까워진 마탑.

공격이 멈추자 미친 듯이 날아왔나 보다.

‘그래, 내가 회수하…….’

순간!

“끄응.”

뒤쪽에서 들리는 신음.

‘아차! 데우스칩!’

찬웅은 다급하게 인벤토리에서 치유 물약을 들고 달려갔다.

“괜찮아요?”

“차, 차암, 빠, 빨리도 왔군. 왜?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나?”

“친구 메시지 듣자마자 왔어요. 어휴, 엄살은! 어차피 죽어도 살아날 거면서.”

마탑주 브랜달과 맞닥뜨렸을 때 데우스칩은 찬웅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죽는 게 문젠가? 아프다고! 저 망할 애새끼가 날 요리조리 가지고 놀면서… 아무튼 반드시 복수 할 거네!”

“저 지경이 됐는데 무슨 복수?”

“흥! 테라퓨타의 진정한 힘이 저깟 꼬맹이 마탑주에게 있을까? 핵심은 마탑이야. 마탑을 하늘에서 떨어뜨려야 해.”

“그건 안 해도 됩니다.”

“응?”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찬웅을 바라보는 데우스칩.

“으흠, 설마 저 애새끼 편을 드는 건 아니겠지? 뭐… 자네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나도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사실…….”

찬웅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마탑을 빼앗을 생각이거든요.”

“…뭐?”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데우스칩.

“마탑을… 빼앗는다고?”

“네.”

“무슨 수로?”

“그건…….”

그런데 그때!

“응?”

끼이잉!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테라퓨타 마탑.

전투 마법사들의 지원이라도 오려나?

몇 명이 와도 상관없다.

오는 족족 썰어 버리면 그만.

‘…….’

안 오네?

분명 이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마탑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까지.

확실하다.

저건 싸우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터뜨리는 데우스칩.

“허허, 치졸한 놈들. 휴전 의사군. 여기서 끝내자는 말이구나.”

“그런가 보네요. 그런데 왜 가만히 있죠?”

“흐흐흐, 놈들은 기다리고 있네.”

“…뭘요?”

“자네가 탑주를 죽여 주길 말이야. 휴전하려면 제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

“브랜달을 넘기고 마탑 제어 권한이 승계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군. 아마 부탑주가 선동의 주체인가?”

데우스칩의 말이 맞다.

놈들은 브랜달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

“쯧쯧, 배신당했어. 브랜달 이놈, 불쌍해. 내가 이 애새끼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될 줄이야. 하여간 마법사들이란.”

마탑주가 위기에 처했는데 진짜 아무것도 안 해?

‘쓰레기들.’

겉으로는 진리를 탐구하는 고결한 마법사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시정잡배들도 두목이 당하면 도와주러 오거나 복수 정도는 해 준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줘야지.’

이 정도 거리라면 마탑 제어는 가능해 보이는데…….

그럼.

‘마탑 제어 권한 회수!’

[플레이어 케이가 마탑 제어의 권한을 획득합니다.]

[플레이어 케이에게 마탑 활용 매뉴얼을 주입합니다.]

‘아…….’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지식.

예전엔 지팡이를 매개로 마탑을 움직였는데 지금은 의식만 해도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뭐부터 해 볼까?’

이윽고 찬웅은 마탑에 첫 번째 지시를 내렸다.

* * *

부탑주 로미오는 천리안 마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결정을 내렸다.

구하지 않기로.

브랜달의 목숨을 대가로 여기서 전쟁을 멈추기로.

놈들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명분도 있다.

브랜달이 말하지 않았나.

마탑을 벗어나지 말고 지키고 있으라고.

자신은 탑주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 안 죽었어. 대체 언제……?’

쓰러진 모습은 보이는데… 옛정 때문에 망설이고 있나?

로미오는 고민했다.

계속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향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그때였다.

마탑에 울리는 메시지.

[테라퓨타 공중도시 전역에 공지합니다.]

‘됐어!’

[테라퓨타 마탑의 관리자가 변경되었습니다.]

로미오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희열이 떠올랐다.

‘탑주가 죽었군.’

이제 공식적으로 선포될 터.

마탑의 제어 권한이 부탑주에게 승계될 거라는 내용이.

그런데?

[마탑의 제어 권한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무사히 승계되었습니다.]

[새로운 마탑주의 명령으로 테라퓨타 거주민들은 10초 후에 지상으로 추방될 예정입니다.]

[추방 후, 테라퓨타의 재입장이 제한됩니다.]

“…뭐?”

이게 무슨 날벼락?

[남은 시간 : 10초]

“추, 추방?”

“이보시오, 부탑주! 당신이 그랬소? 우릴 추방한다고?”

“나, 난 아니야.”

[남은 시간 : 8초]

“그럼 누가?”

“바른대로 말하시오. 당신이 승계받은 것 아니오?”

“난 아니라니까!”

[남은 시간 : 6초]

“어어? 정말?”

“미친!”

“여기서 쫓겨난다고?”

마법사들에게 마탑은 그들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추방이라니….

“난 못 가!”

“어떻게 좀 해보시오!”

“난들 방법이…….”

[남은 시간 : 3초]

[남은 시간 : 2초]

[남은 시간 : 1초]

그리고.

우우웅!

마탑 표면에서 솟아나는 찬란한 빛.

슈슛! 슈슈슛! 슛! 슛! 슈슈슈슛…….

사라지는 마법사들.

정신 차리고 보니 자신들이 있는 장소는 마탑 바로 아래 허허벌판.

“안 돼!”

“이렇게 허무하게…….”

“난 다시 올라갈 거야!”

플라이로 날아오르는 마법사들.

휘잇, 휘리릭!

그러나 가까이 가기도 전에…….

슈슛! 슛! 슈슈슈…….

다시 지상으로.

접근조차 못 했다.

마법사들의 표정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나?

지상에 수북하게 모인 1만여 명의 테라퓨타 마법사들.

순식간에 터전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로미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책임져라!”

“맞아! 책임져!”

“혹시 몰래 마탑을 혼자 먹겠다는 수작인가?”

“…나, 난.”

순간!

펄럭펄럭.

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한 마리 유령마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유령마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공중도시 테라퓨타에 가뿐하게 착륙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마법사들은 깨달았다.

마탑의 권한이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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