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공격받는 테라퓨타 (1)
부활의 엘릭서, 혹은 세계수의 가호처럼 페널티 없는 즉시 부활 상황에선 플레이어의 의식은 죽은 자리에 남아 있다.
영혼이 둥둥 떠 있는 느낌이랄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보고 들을 수는 있었다.
신전은 폐허로 변했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없었다.
물론 모조 마탑도.
특히 핵이 터진 바로 그 장소는 움푹 파인 구덩이로 변해 있었고.
이글이글, 주위에 가득 찬 열기
아직 뜨겁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렸다가.
제단도 부수고 블루 드래곤도 녹이고 성녀도 죽였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도 감감무소식.
이걸로 끝?
신전을 파괴했는데, 이 정도면 침식지 정화에 준하는 위업이지 않나!
하다못해 동화율 돌파라도 있어야지.
‘쯧! 시스템, 많이 약해졌네. 딴 쪽으로 갈아탈 수도 없고.’
슬슬 열기가 사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이쯤에서 부활하…….’
그때였다.
슈슛!
구덩이 한가운데 나타난 사람 하나.
‘…어?’
뭐지?
진짜 웃기네.
“이 개같은 놈! 케이, 이 씨발 새끼야!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아니, 쉽게 죽여 주지 않을 거야. 팔다리 다 잘라서 침식지 오크에게 먹이로 던져 주겠다.”
성녀였다.
‘부활했구나.’
하긴 이상할 것도 없지.
자신도 하는데 성녀라고 못 할까.
분노에 차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
그런데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네가 이긴 거라 착각하지 마! 어차피 너도 뒈졌잖아? 깔깔깔!”
이 상황에 웃어?
미친년인가?
“그리고 이건 우리 계획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야. 신전과 제단은 충분히 복구할 수 있어. 거짓 신의 무너진 방화벽은 복구할 수 없지만.”
말이 많은 성녀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속으로만 생각했다면 못 들었을 이야기.
“핵? 그걸 터뜨렸단 말이지. 좋아, 너도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 주지.”
하지만 저렇게 입 밖으로 꺼내 주니.
“바깥에 연락을 취해야겠어. 계약을 이행하라고.”
찬웅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누구한테 연락하려고 하나?
하지만 더 이상의 혼잣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럼 이제…….
[현재 사망한 자리에서 페널티 없이 부활이 가능합니다. 부활하시겠습니까?]
‘부활!’
핵폭발로 생긴 구덩이 안.
그 자리에 다시 생성된 아바타 케이.
슈슛!
찬웅은 부활했다.
후끈후끈한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포스가 신체를 보호해 참을 만했고.
성녀 아멜리아는 당연히 식겁했다.
“허억!”
환하게 웃고 있는 찬웅을 마주하며,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몇 번 눈을 끔벅거리더니.
“꺄아아아악! 이 씨발 새끼야!”
귀청 터지겠다.
스슷!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내.
콰악!
성녀의 가슴에 그대로 박아 버렸다.
“아악!”
도끼날을 타고 흐르는 찬웅의 포스.
“날 어떻게 죽인다고?”
“너, 너어…….”
“계획이 뭐야? 말해 봐.”
“으어, 끅, 내… 내가 한 방 먹었네?”
“엄밀히 말해 두 방이지. 바깥에서 너와 연락을 취하는 사람은 누구야?”
증오가 절절 흘러넘치는 성녀 아멜리아의 얼굴.
“개, 개새끼야! 내가 그, 그걸 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어?”
“알았어. 묻지 않을게.”
“…으음?”
“죽이기 전에 예의상 질문해 보는 거야. 일종의 요식행위거든. 대답 안 해도 상관없다고.”
“깔깔깔,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난 안 죽어. 절대! 너도 봤잖아.”
세상엔 절대라는 건 없다.
우우웅.
비로소 발동하는 플레이어 킬, 게임 저장 장치에서 영혼 데이터를 삭제시키는 능력.
따라서 NPC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기술.
“어차피 방화벽은 무너졌어! 병신아! 곧 네 세상은 난장판으로 변할 거야.”
우우우우우.
신성한 힘이 섞인 포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포칼립스라고 들어 봤겠지? 곧 세상과 세상의 전면전이…….”
그러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끅?”
성녀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 어어. 이, 이건…….”
“이번에도 부활할 수 있을지 보자. 과연 네가 섬기는 시스템이 널 보호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하네.”
“자, 잠깐.”
그녀도 느낄 터.
자신의 영혼이 사라지고 있다는걸.
“무, 무슨 마, 말도 안 되는…….”
우우우우우!
도끼가 진동한다.
그리고.
츠치치치치…….
가슴 부분부터 붕괴하는 성녀의 육신.
“아, 안 돼!”
프스스스슷.
결국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악!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기둥.
[시스템 내부 자원을 갉아먹었던 악성 코드 AML – 01DL 현 시간부로 삭제되었습니다.]
“오!”
다시 살아났구나.
[시스템 자원을 사용해 폴른스타의 잔여 방사능을 제거합니다.]
다행이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뭐지?’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두 번의 동화율 돌파.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반영률도.
마지막으로.
[인벤토리로 영혼 해방의 스크롤 1장이 발송되었습니다.]
영혼 해방 스트롤.
일단 진(眞)은 아니다.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영혼 해방의 스크롤을 꺼냈다.
[영혼 해방의 스크롤]
[등급: 신화]
[종류: 소모품]
[귀속 여부: 획득 시 귀속]
[효과: 지정된 NPC 한 명의 영혼을 세상 밖으로 해방합니다.]
“…….”
진짜?
* * *
콰콰콰콰콰콰쾅!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
공중 도시 테라퓨타 마탑에서도 굉음과 버섯구름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저건 대체…….”
공중 도시 맨 끝 가장자리에서 폴른스타 방향을 지켜보는 브랜달.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저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메테오라도 떨어진 건가?’
하지만 저 정도 위력의 유성 낙하 마법이라면 분명 엄청난 마력의 요동이 감지되어야 하는데,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고.
‘뭔가 폭발한 것이 틀림없어. 혹시 그거?’
파워 스틱 밤.
마정석 마력을 응집, 압축해서 폭발시키는 것.
마키나 공화국 데우스칩이 10년 전에 새롭게 만든 마도구.
그런데 저렇게 위력이 강하다고?
‘데우스칩, 비천한 기름쟁이 골렘 새끼.’
확실히 위험한 놈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마탑의 숙적.
‘케이 형님도 저놈의 꼬드김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어.’
반드시 죽여 버린다.
데우스칩만 죽이면 케이와의 관계도 다시 예전처럼 회복할 터.
부우우우우…….
폴른스타로 쾌속 직진하는 공중 도시 테라퓨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 * *
버섯구름은 곧 사그라들었다.
아마도 하늘에서 떨어진 빛기둥이 핵폭발 피해 지역을 정화시킨 모양.
하지만 데우스칩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임 연구원님! 잠시 후면 기사단 병력이 도착할 거예요.”
“드론 영상 띄워 봐.”
커다란 통신용 수정구에서 보이는 영상.
말을 타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기사들,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을 날며 기사 뒤를 따르는 테라퓨타 파견 마법사들.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해 버려.”
“화력은 어느 정도로? 아직 미사일과 로켓이 많이 남았는데.”
“마력포 궤도 골렘 포격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네!”
마력포 유도는 드론들이.
궤도 골렘의 마력포가 조준을 끝마쳤다.
이윽고.
파슛! 파슛! 파슛! 파슛…….
일제히 발사되는 마력 포탄들.
거칠 것 없이 평원을 달려오는 기마 부대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콰쾅! 콰콰쾅! 콰콰콰콰쾅!
“허억!”
“아아악!”
“마, 맙소사!”
포탄은 자비가 없다.
얼굴을 맞대고 냉병기를 이용해 서로 찌르고 벨 때는 동정심이라고 생기지.
이건 버튼 전쟁이었다.
멀리서 조준 완료된 표적을 향해 단추만 누르면 되는 전쟁.
콰콰쾅! 콰쾅!
사람들이 죽어 가는 비명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폭발음만 들릴 뿐.
따라서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도 없었다.
카시우스 제국의 기사들은 죽을 맛.
전원이 소드 유저들로 구성된 최정예 기사단이었다.
그중에 3,000명 정도는 소드 익스퍼트, 기사단장은 마스터.
기사단의 지휘관 마스터 오귀트랑 백작은 분통을 터뜨렸다.
“제기랄! 미치겠군…….”
병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
그런데도 적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이 정도는 아닐 터.
보이지 않는 공격에 대한 공포.
진격해 오는 도중에 후방 폴른스타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도 마음에 걸렸다.
황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마법사!”
“마, 말씀하시오.”
“황궁엔 아직 연락이 안 되나?”
“이상하게도 통신용 수정구가 먹통이라, 받는 사람이 없소이다.”
어떡할까.
결단을 내려야 한다.
황도로 회군하느냐, 아니면 적을 향해 돌격하느냐.
오귀트랑 백작은 결정을 내렸다.
“전군 후…….”
그때였다.
슈우우우우…….
“어?”
자신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는 금속 덩어리.
“이, 이런…….”
콰쾅!
“아악!”
한 발이 터지고 뒤를 이어.
콰쾅! 콰쾅!
연이어 떨어지는 포탄.
오귀트랑은 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굴렀다.
“쿨럭, 쿨럭!”
강력한 마력 폭발.
애지중지했던 애마는 조각조각 살점으로 흩어졌다.
드워프제 중갑옷이 종잇조각처럼 찢겨졌다.
내부 장기가 끊어질 정도로 심각한 치명상도 입은 것 같다.
“…이건 저, 전쟁이 아니야.”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과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이방인들이 사라지고 난 후, 스타리아 황제가 암살당하고 카라카스가 황위에 오르더니, 갑자기 희한한 이름의 신전이 황도에 세워졌다.
물론 침식에 패배한 헤스티아 성국의 부재로 생긴 결과지만, 제국은 너무나 쉽게 주신(主神)에 대한 믿음을 져 버렸다.
‘신의 징벌이었나?’
성녀의 행적도 그랬다.
헤스티아 몰락 이후 대륙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를 막은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그걸 직접 목격한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케이.
망령의 침식지를 정화한 영웅.
그가 10년 만에 돌아왔지만, 황궁과 중앙 관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우린 그를 푸대접했을까?
자신도 마찬가지.
제국은 주신(主神)을 버렸고 케이도 버렸다.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피거품을 입에 문 채 대자로 뻗어 쓰러진 오귀트랑 백작.
슈우우우…….
날아오는 포탄이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콰콰쾅!
멀리 떨어진 주둔지에 앉아 기사의 파멸을 통신용 수정구로 목격 중인 마키나 공화국의 엔지니어와 데우스칩.
“병력이 흩어지고 있는데… 계속 때릴까요?”
“…흐음.”
어떡할까?
생각 같아선 전멸을 시켜 마무리하고 싶지만.
“이쯤에서 그만하지. 위협사격이나 해. 후퇴할 수 있는 길은 열어 주고.”
“네!”
압도적 승리.
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생소한 전술 덕일 터.
원거리 전술이라면 훤히 보이는 곳에서 쏴 대는 마법이나 활, 공성차 등만 알았던 대륙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유도되어 날아와 꽂히는 폭발 공격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파워 스틱 밤.
자신이 만들어 냈지만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희한했다.
지구로 따지면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화약의 발명과 다름없다.
그리고 파워 스틱 밤도 세상 안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쯧, 그나저나 무기가 너무 많이 남았어.’
이번 전쟁에서 소모한 건 드론과 포탄 그리고 미사일 한 기뿐.
다 쏟아부을 작정으로 들고 왔는데.
순간!
“선임 연구원님! 크, 큰일 났어요.”
“왜 그래? 마리.”
“드론이 정찰하다가 수정구로 보내 온 영상인데요. 여기 이거…….”
“음?”
폴른스타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하늘.
거기에 점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점점 커지더니.
“오!”
데우스칩의 얼굴이 미소로 가득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
“드디어 왔구나.”
마탑이었다.
대륙 최고의 방어 병기이자 공격 병기인 찐 마탑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공중 도시 테라퓨타.
마탑 소속의 마법사가 탑주 브랜달에게 말했다.
“이제 곧 도착합니다. 저기가 폴른스타입니다.”
이제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버섯구름은 사라졌다.
그러나 커다란 구덩이는 남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길래?
폭발의 영향으로 도시 한가운데 생겨난 구덩이.
마탑주 브랜달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물론 자신도 만들 수는 있다.
9서클 궁극의 마법인 메테오.
소환된 운석을 지상으로 떨어뜨리면 저 정도 구덩이쯤이야.
하지만 메테오, 운석 소환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다.
자신, 혹은 드래곤.
‘드래곤일 리는 없어.’
도시를 파괴할 거면 차라리 브레스를 쏘지.
대체 뭘까?
바로 그때!
쐐애애액!
폴른스타 남쪽 방향에서 날아오는 낯선 물체.
불꽃 꼬리를 단 커다란 막대기.
‘저건…….’
쐐애애액!
갑자기 마탑이 진동했다.
스우우웅!
도시 전체를 감싸는 방어막 배리어가 발현되더니…….
콰콰콰콰쾅!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허억!”
쿠쿵!
거대한 충격파가 덮쳐 왔다.
그 여파에 흔들거리는 공중 도시.
“이게 무슨……?”
불꽃 막대기는 하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