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폴른스타에 피어오른 버섯구름
메뚜기 떼만큼이나 많은 소형 드론.
작전명 ‘드론 클라우드’.
사실 드론을 세상 안에 구현하는 건 상당히 까다롭다.
프로펠러 4개만 달아 하늘에 띄우는 거야 쉬운 일. 하지만 조종과 통제가 문제, 그것이 안 되면 아무리 많이 만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하지만 데우스칩에겐 방법이 있었다.
현실에서 경험한 컴퓨터 운영 프로그램, 그것을 에고 체계에 응용했다.
미리 명령만 입력하면 알아서 행동한다.
앱시엔 분말 살포를 마친 후, 드론의 다음 임무는 자폭 공격.
너무 많아서 구름처럼 보이는 드론들이 모조 마탑이 만든 배리어 방어막에 날아가 꽂혔다.
퍼퍼펑! 펑펑! 펑펑펑펑!
사방에서 터지는 굉음.
떨어지면서 비산하는 드론 부품 조각.
폴른스타는 아비규환이었다.
누가 이곳에 남아 있으려고 할까?
황제와 귀족 관리들이 미사일 폭격에 죽어 버려 도시를 다스리고 통제할 주체가 없었다.
신심이 깊지 못한 일반 시민들, 신심이 어중간한 귀족들, 관광객, 상인, 성을 지켰던 병사들 모두가 뚫린 성벽을 통해 바깥으로 탈출했다.
“히이잉!”
그 와중에 부키를 타고 참누리 신전에 착륙한 찬웅.
팟팟팟팟!
내리자마자 신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네.’
사제들도, 성기사들도, 개미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찬웅이 이곳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듯, 활짝 열린 문.
저벅저벅.
찬웅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쌍도끼는 꺼내지도 않았다.
기존에 착용하고 있던 전설급 장비도 모두 해제했다.
대신 데우스칩이 만들어 준 방어 특화형 장비는 착용했지만.
‘여기였지?’
성녀가 기거하는 방.
한번 와 본 곳.
벽면의 시커먼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밑으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너무 깊으면 좋지 않은데.’
폭발의 위력이 감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지하 1층 정도의 얕은 공간.
중앙엔 커다란 제단과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성녀고, 다른 하나는?
순간!
[심판의 제단에 도착했습니다.]
[제단의 권능이 발동되었습니다.]
[대기실 귀환과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사망 시 페널티가 적용된 채로 제단에서 즉시 강제 부활합니다.]
‘…음?’
이거였나?
제단의 권능.
귀환 및 로그아웃 불가.
그리고 페널티 적용된 채 무한 부활.
‘날 붙잡아 두고 계속 죽이겠다는 의도였구나.’
이것이 성녀가 파 놓은 함정.
처음 만났을 때 멋모르고 따라 들어갔으면 어떡할 뻔했나?
지금은 상관없다.
이미 페널티 없는 부활의 엘릭서를 복용했고, 자신이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 후일 테니까.
그리고 제단의 권능?
박살 나면 권능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성녀.
“어서 오세요, 케이.”
“어, 구면이군.”
“혹시 놀라신 건 아니죠? 서프라이즈 환영 행사였는데.”
개같은 년.
서프라이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다.
“그래서 이젠 뭘 할 거지? 날 죽일 건가?”
“다 아시면서.”
“그럼 해 봐.”
“어머? 전 보기보다 약하답니다. 그런 험한 일은 이분이 대신해 주실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남자 하나가 더 있었지.
“저자는?”
“누굴 것 같아요? 참고로 인간은 아니에요.”
“인간이 아니라면…….”
성녀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이 세상 안에 드래곤이 몇이나 있을 것 같아요? 화이트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은 뒈졌고, 우릴 배반하고 도망간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과 병신 같은 그린 드래곤 레지키쓰론… 그리고 이분.”
남자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서로 인사 나누세요. 이분은 주신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은 이방인, 아니 플레이어 케이. 이분은 블루 드래곤 루스데모나.”
블루 드래곤.
색깔별로 다 나온다.
예상은 했다.
저런 엄청난 마력을 가진 존재가 드래곤 말고 또 있을까?
“후우, 드래곤이 너무 많아.”
“…클클클, 건방진 놈이로다. 하나 봐주겠다. 어차피 넌 여기서 끝날 테니까.”
“그건 끝나 봐야 아는 거고… 근데 혹시 실버도 있나?”
“알아서 뭐 하느냐? 죽음이 예정된 놈이.”
있긴 있다는 말이구나.
아군일 확률보다 적일 확률이 더 높은.
블루 드래곤 루스데모나의 입을 막으려는 듯 재빨리 앞으로 나서는 성녀.
“그럼… 시작할까요?”
순간!
파직! 파지지직! 찌지지직!
찬웅을 중심으로 동굴 전체에 펼쳐지는 푸른색 번개 줄기의 자기장.
“갑자기?”
“어디 한번 네 특기를 펼쳐 보려무나. 번쩍번쩍 블링크처럼 이동하는 몸놀림을 말이다.”
“흐음… 안 할 건데.”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자기장에 감전당할 터.
“그럼 겁쟁이처럼 가만히 있던지.”
“왜 날 안 죽이고?”
“이방인 아이야, 조급해하지 말아라.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
“그때가 언제인데?”
“최소한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까 잠시 기다려.”
왜들 이러지?
또 누가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서 터뜨려 버려?
성녀가 궁금증을 풀어 줬다.
“사실 밖에 당신의 숨통을 끊어 줄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게 플랜 A예요.”
“아하!”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긴 여기서 죽이는 것보다 밖에서 죽이는 것이 확실하긴 하지.
게다가 로그아웃도 불가능하니, 가수면 상태로 누워 반항도 못 하는 자신을 죽이는 건 누워서 떡 먹기고.
“그러지 말고 플랜 B로 가. 실패할 거니까.”
“…네?”
찬웅의 눈이 성녀를 향했다.
“네가 포섭한 각성 플레이어들, [북경 수호자], [노부나가의 아들], [대국88], [후지산1호], [대중화 무림맹], [관동 무사시]… 맞아?”
“어, 어떻게?”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성녀.
“내가 그 정도 대비도 하지 않았을까. 바깥에 누가 있는 줄 알기나 해?”
“뭐……? 누, 누구?”
“알려 줄 것 같아?”
“감히!”
성녀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확실히 못생겼다.
저게 본모습이겠지.
저걸 보니 더 궁금해지네.
핵을 꺼내 놓으면 얼굴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러나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는 성녀.
“어차피 달라질 건 없답니다.”
“아니, 많이 달라질 거야. 여긴 파괴되고, 너희 둘은 죽고, 물론 난 살고.”
“…자신감이 지나치시네요. 설마 주신(主神)의 개입을 기대하시나? 방화벽이 무너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무력한 시스템을?”
그건 동의한다.
명색이 주신인데, 다른 신이 이렇게 날뛰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
쿠쿠쿵, 쿠쿵!
밖에선 여전히 폭격이 계속됐다.
지금쯤이면 사람들도 다 대피했을 터.
또한 여긴 지하.
핵 배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물론 다른 지역에도 피해가 생기겠지만, 할 수 있는 조치는 최대한 했다.
“알았어요. 플랜 B를 시작하죠. 케이 님은 여기서 죽고, 죽고, 계속 죽을 거예요. 동화율과 반영률이 바닥날 때까지.”
“그건 조금 무섭네.”
“한순간에 일반인이 되시겠죠. 포스를 잃어버린 플레이어.”
성녀는 블루 드래곤 루스데모나에게 눈짓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앞으로 나오며 말을 건네는 드래곤.
“널 처음 봤을 때 느낀 거지만 네 몸에서 동족의 냄새가 나는구나. 혹시 리스타리칸의 하트를 취했나?”
“그걸 냄새로 맡을 수도 있었어? 개코로군.”
“흐흐, 네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겠다.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힘을 취하고 깝죽대는 꼴이라니, 주제를 알게 해 주마!”
파지지지직!
루스데모나의 손에 맺히는 무시무시한 뇌전의 기운.
“잠깐! 공정하게 하자.”
“…공정?”
“무기를 꺼낼 기회는 줘야지. 그게 내 자신감의 원천인데.”
“껄껄껄껄, 재밌구나. 정말 재미있어. 그래, 꺼내 보렴. 나도 뭔지 궁금하도다.”
찬웅이 어깨를 으쓱하며 성녀에게 물었다.
“성녀?”
“아멜리아라고 불러요. 이름 정도는 알려 줄게요.”
“그래, 아멜리아. 넌 핵무기가 뭔지 알아?”
“들어는 봤어요. 세상 밖 인간 문명이 만들어 낸 최악의 무기라죠? 적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알고 있네. 그럼 핵이 여기서 터지면 어떻게 될까?”
“무슨?”
“잘 봐 둬. 아이템 정보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핵 배낭을 꺼냈다.
스슷.
“자, 여기 있다.”
고개를 갸웃하는 성녀 아멜리아.
“그건… 으음?”
3초쯤에서 시작하는 타이머.
동시에 성녀의 아이템 정보 확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하지만 곧.
“…미, 미친! 핵? 핵이라고?”
“어때? 내 자신감의 원천이?”
2초.
블루 드래곤 루스데모나도.
“미, 믿을 수가 없다. 이건 세상 안에 존재해선 안 될 물건인데…….”
1초.
안절부절 다급하게 말하는 성녀.
지금까지 보여 줬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루, 루스! 당장 매스 텔레포트를…….”
그리고.
핵분열 시작.
콰콰콰콰콰콰콰쾅!
끔찍한 열기가 동굴 안을 덮쳤다.
“크아아악!”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블루 드래곤은 본체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불타올랐다.
그 강하다는 드래곤의 비늘로도 핵분열의 막대한 열기를 막을 수 없었다.
성녀도 마찬가지.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녹아내리는 그녀의 신체.
“아아아아아…….”
눈동자엔 불신과 경악, 공포가 어려 있었다.
죽는 순간에도 말이다.
심판의 제단은 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까짓 돌덩이로 만든 구조물이 핵폭발을 어떻게 버텨?
찬웅도 별수 없었다.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연속적으로 7서클 쉴드가 발동.
우우우우웅!
포스가 저절로 움직여 신체를 보호했지만.
쩌저저저저적!
녹아내리는 방어구.
더불어 아바타도…….
화르륵!
불타올랐다.
부활의 엘릭서를 마셨어도 고통은 막을 수 없었다.
‘으윽!’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견디는 건 턱도 없구나.
그래도 가장 늦게 죽었다.
[현재 사망한 자리에서 페널티 없이 부활이 가능합니다. 부활하시겠습니까?]
‘아니, 조금 있다가.’
폭발의 여파가 가시고 난 뒤에 해야지.
지글지글.
아직 바닥이 녹고 있었다.
바로 부활하면 또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폴른스타, 참누리 대신전, 심판의 제단이 있는 지하 1층 깊이에서 마침내 핵 배낭이 터졌다.
쿠쿠쿠쿠쿠쿠쿠쿠…….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그 여파에 신전 건물은 물론 25개의 모조 마탑도 수수깡처럼 붕괴했다.
40km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데우스칩.
‘결국 터뜨렸군.’
왠지 짜릿한 기분.
밖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을 세상 안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잔여 방사능은 어떻게 되지?’
순간!
화아아악!
저 하늘 위에서 폴른스타로 떨어지는 빛기둥.
침식지 정화를 알리는 모습과 다름없었다.
* * *
야심한 밤.
경기도 과천 APS 접속 센터.
검정색 전투복과 복면을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숫자는 50명.
“이거 경계가 너무 허술한데?”
“10년 동안 못 했던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겠지. 조센징 새끼들, 원래 게임에 미친 족속이잖아.”
“흐음, 그래도…….”
명색이 국가기관.
각성 플레이어는 그렇다 쳐도 일반 경비원마저 없다고?
함정일 가능성이 높다.
들어갈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중국 각성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온 아바타명 [북경 수호자] 가오광은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수상해.”
전력은 충분하다.
이번 작전을 위해 중국과 일본이 합동 작전을 펼쳤다.
중국 각성 플레이어 25명. 일본 각성 플레이어 25명.
게임 속 NPC 성녀와 한 계약.
케이만 죽여 주면 놈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리와 거기에 마도 공학의 기술, 신약으로 활용될 수 있는 진(眞) 물약도 대량으로 넘겨준다고 약속했다.
“나카지마, 네 생각은?”
“이번이 기회야. 성녀도 말했잖아. 놈은 캡슐에서 로그아웃하지 못해.”
“흐음, 성녀 말이 사실일까?”
“가오광, 중국에서 성녀의 축복으로 몇이나 각성했지?”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많아.”
“우리도 그래. 더불어 우리가 게임 속에서 가졌던 무기와 장비도 받았고.”
맞다.
최소한 성녀의 축복은 진짜였다.
“솔직히 케이가 무섭지, 딴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맞고.
케이의 정체는 이미 파악했다.
놈의 신분도 그리고 얼굴도.
각성 플레이어가 가장 취약한 순간은 바로 캡슐에 접속하고 있을 때.
접속 센터에 들어가서 투명한 캡슐 뚜껑 안을 확인해 깨어나지 못하는 케이를 찾아 죽이면 그만.
세상은 마도 공학의 질서로 재편되고 있었다.
거기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국가가 바로 한국.
진(眞) 마정석 광산. 대체 불가능한, 세계 유일의 자원을 틀어쥐고 있는 나라 아닌가.
중국과 일본은 한국 뒤꽁무니만 쳐다보게 생겼다.
이러다간 영영 도태될지도 모를 터.
그런데 게임 속에서 반전의 해답을 찾았다.
성녀 아멜리아, 그녀의 제안.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가는 것도 멍청한 짓이야.”
“…그렇군.”
가오광은 결정했다.
“진입하자. 빠르게 제거하고 빠진다.”
그때였다.
“와! 설마설마했는데, 떼로 몰려왔구나, 새끼들.”
스윽, 스윽.
중일 연합 각성 플레이어의 주위를 포위하며 나타난 이들, 니나 페레즈, 즉 에루인과 딸기 신여은 등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였다.
정보 길드 플로라에게서 성녀가 수상한 플레이어들과 접촉했다는 정보를 알아낸 후, 에루인과 딸기는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현실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리고 예상대로 들어맞았다.
“필동아!”
“네, 장로님.”
에루인의 말에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는 이필동.
“너 현실에서 정보 길드에 소속된 적 있었다며?”
“정확히는 정보국입니다.”
“몇 놈 살려 둘까? 배후는 알아내야 하지 않겠니?”
“어음, 그, 그게 너무 많이 죽이면 뒤처리가…….”
“확실히 알아내. 그놈들까지 싹 쓸어버릴 테니까.”
스르렁.
에루인이 허리춤에서 빼낸 두 자루의 마체테가 달빛에 반사되어 번뜩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