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62화 (162/204)

162화 성녀를 만나다

게임 속 인벤토리와 현실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게임과 현실이 뒤섞이고 있는 시점에서 바깥의 물건이 안에서도 나타나는 것이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콜라와 캔 맥주 같은 탄산음료들, 과자나 칼로리 바 종류의 비상식량, 텐트나 의자 같은 캠핑용 장비… 지금도 게임 속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다.

게임에서도 꺼낼 수 있는 현실의 물건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 바이크 등은 공유되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도 안 한다.

이런 것들을 게임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

그런데 핵? 핵이라고?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애초에 나올 수나 있긴 한 거였어?

‘콜라와 맥주 정도는 이해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흐음, 뭔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가볍다.

텅텅 비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자 패널도 달리지 않았다.

‘그럼 핵배낭이 아닌가?’

모양만 비슷한 양철통.

‘모형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핵배낭이라고는 할 수 없다.

‘쯧, 이걸로 뭘 하라고…….’

순간!

‘…뭐지?’

살짝 무거워지는 느낌.

분명하다.

미세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설마?’

아이템 정보는?

[구현율 : 4%]

숫자가 바뀌었다.

처음 확인했을 때 3%, 지금은 4%.

“아…….”

이제 알겠다.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구현해 내지 못했을 뿐.

“이런 의미였어?”

구현율.

현실의 물건이 게임 속 물건으로 변화되는 비율.

100%가 되면?

완전한 핵배낭이 될 터.

“하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미친 시스템 아닌가.

현실의 핵무기를 게임 안에 구현하려고 해?

‘이걸 터뜨리라고?’

어디에다?

‘…알 만해.’

어디긴 어디야?

깔끔하게 부숴 버려야 하는 곳이지.

게임 속에 핵무기와 비견할 수 있는 건 메테오 말고는 없다.

그러나 그건 방어가 가능하다.

이미 알려진 마법이니까.

오백 년 전에도 마키나 공화국이 막아 냈다고 전해졌고.

그러나 핵은 다르다.

여태까지 세상 안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신무기.

[구현율 : 5%]

또 올라갔다.

위력은 약 2kt,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8분의 1 수준.

이 핵배낭이 100% 구현되면?

‘작은 마을 하나는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구현율 : 6%]

‘…일단 인벤토리에 넣어 두자.’

이렇게 되면 행선지를 바꿔야지.

친구 메시지로 최기병에게.

[케이] : 접니다. 그쪽은 아직 별일 없죠?

[와치맨] : 네, 케이 님, 별일 없습니다. 진(眞) 마정석 광산도 안전하고요.

[케이] : 혹시 스톤포지는 무슨 종교 관련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요?

[와치맨] : 아! 참누리 교단 말입니까? 저도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문제 때문에 속속 보고가 올라오고 있고요.

최기병도 알고 있었다.

곳곳에 흩어진 APS 소속 플레이어들도 당연히 세상의 변화를 인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 메시지를 통해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와치맨] : 여기 드워프들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초기에 포교 활동은 이루어졌지만 단칼에 끊었답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은 따로 있다고.

드워프들은 영향이 없다.

반(反)시스템의 권능에도 안전했다는 의미는?

‘아마 시스템이 보호했겠지.’

또한.

[와치맨] : 로그드라실에 갔던 플레이어도 소식을 전해 왔는데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누리 교단의 포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로그드라실도 납득이 간다.

세계수가 있는 곳에서 감히.

그렇다면 교단의 포교 행위가 집중된 곳은 카시우스 제국과 테라퓨타 마법사들, 반면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마키나 공화국은 포교에 실패했고.

‘그게 전쟁이 일어난 원인일 거야.’

그럼 이제 카시우스 제국 황도 폴른스타로.

직접 확인해 보자.

그 종교를.

* * *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통용되는 모든 언어는 각기 제 나라말로 번역되어서 들린다.

한글로 참누리 교단, 영어로 리얼월드(real world), 한자로는 진세계(眞世界), 이름부터가 노골적이었다.

이름이 지칭하는 곳이 어디겠나?

그곳은 바로 현실, 지구.

명칭을 봐도 알 수 있듯 결국 교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교단 건물이… 저기구나.’

굳이 길을 물을 필요도 없었다.

수도 중앙에 떡하니 위치한 거대한 구조물. 건물 외벽은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그리고 곳곳에 솟아난 높은 첨탑들.

황궁보다 더 거대하다.

그런데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익숙하다고 해야 하나?

홀로그램 영상으로 봤을 땐 몰랐지만 첨탑 하나하나가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느낌.

‘어디서 봤더라? 흐음…….’

형태와 빛깔.

크기는 훨씬 작지만.

‘…마탑?’

미친!

가까이 가면 갈수록 확신이 들었다.

저 첨탑은 마탑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형 마탑, 이미테이션 열화판.

세상에 마탑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마법사들을 제외하면 마탑을 실제로 목격한 이들은 드물다.

그라운드 테라는 개방되어 있지만 테라퓨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다.

플레이어의 출입도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찬웅만은 예외.

마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몇 개야?’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으로 각각 5개씩, 총 25개

테라퓨타 마탑의 경우 움직이니까 공격 용도로도 활용 가능하지만, 원래 마탑은 방어 목적으로 건설한 것.

만약 저 첨탑들이 테라퓨타 마탑 10분의 1이라도 기능할 수 있다면…….

‘완벽한 요새구나.’

외부 공격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제야 알겠다.

놈들이 테라퓨타 마법사들을 포섭하려 했던 이유를.

‘마탑 설계도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어.’

모조 마탑으로 이곳 신전의 방어력을 극대화하려는 목적.

‘핵배낭 하나로는 부족할지도…….’

화력이 부족하다.

겨우 2kt, 한 20kt이면 모를까.

다행히 진짜 마탑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했다.

크기가 작아 몇몇 기능은 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테라퓨타의 마탑 외형, 핵심 기능을 설계하고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마법사와 더불어 드워프, 옛 인챈트 마법사들의 후손들인 마키나 공화국민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포교는 실패했다.

그래서 테라퓨타의 마탑을 비슷하게 본떠 만든 열화판을 세웠을 것이고.

‘아무튼 무조건 부숴야겠지?’

여긴 게임 속 세상.

이 교단의 건축물은 일종의 데이터이자 실행 중인 응용프로그램.

얼마나 많은 자원을 잡아먹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걸 파괴하면, 다시 말해 깨끗하게 삭제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들 문제가 아니야.’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이 세워져야 한다.

더불어 핵배낭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추가 화력도.

결국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데우스칩.’

그가 함께 와서 다행.

처음엔 미사일이나 자주포 같은 지구의 무기를 게임 속에 재현하려는 그의 행동에 살짝 우려가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많이 만들라고 해야겠네.’

데우스칩이 만든 무기와 핵배낭이라면?

신전 건물뿐만 아니라 황도 전체가 불바다.

제일 난감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따로 의논하기로 하고.

재료도 많이 필요할 터.

금속이나 마정석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들은 스톤포지에 있다.

‘드워프 국왕에게 보다 많은 물량을 마키나 공화국에 공급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어.’

물론 대가는 줄 테지만.

‘지금 스톤포지에 남은 침식지가 11개였나?’

그걸 정화해 주면 된다.

혼자서도 가능하다.

작은 침식지 11개 정도야 하루 만에.

찬웅은 신전으로 들어갔다.

폴리모프로 얼굴도 바꾸고 개발자 엘리에게 새로 받은 아이숨 귀걸이를 발동해 이름표를 가린 터라 자신이 누군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신전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크고 화려해서 관광지의 역할도 겸하는 모양인지, 사람들도 주로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들.

“어서 오세요. 형제님들, 입교를 원하시는 분들은 여기 입교서 양식을 채워 주시면 됩니다.”

“여길 보세요. 성녀님께서 대륙 곳곳에서 보여 주신 이적(異蹟)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분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침식지 웨이브가 종식되었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만이 우릴 침식에서 자유롭게 할 겁니다. 헌금요? 가난하신 분들에겐 헌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필요할 뿐.”

“실버 교인 등급부터 교단에서 지원금이 나갑니다. 실버나 골드 교인은 어떻게 승급하냐고요? 새로운 신도들 10명만 데리고 오세요. 그럼 실버 교인입니다. 100명을 데리고 오면 골드 교인, 다이아 교인을 목표로 도전하세요.”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붙잡고 교단의 체계와 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오직 믿음.

심지어 신실한 믿음을 보이면 그 대가를 물질로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거 피라미드잖아.’

세상과 현실이 섞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별게 다 들어온다.

NPC뿐 아니라 드문드문 보이는 이름표의 플레이어들.

그들에게도 포교 사제가 붙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괜찮습니다. 이방인들도 환영합니다.”

“헌금도 해야 하나요?”

“그건 개인의 자유죠. 다만 믿음이 성녀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분명 은총을 받으실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은총?”

온화한 미소로 대답하는 포교 사제.

“세상 안에서 얻은 것들이 세상 밖에서도 이루어지리라.”

그 말에 플레이어의 눈빛이 반짝인다.

“음, 혹시 각성과 리얼(real) 아이템이라면…….”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 겁니다.”

“오! 입교서 어디 있습니까? 당장 서명합니다.”

기가 막힌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들을 유혹해?

그러나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성녀의 은총이라.’

헤스티아 성국 알스테어 성황의 축복과 비슷한 권능일 터.

만약 일반 용병 플레이어가 성녀의 축복을 받아 각성 플레이어가 된다면? 그리고 진(眞) 아이템도 소유하면서.

‘제대로 된 놈들이겠어? 또 다른 형태의 사도 빌런이 출현하는 거지.’

빌런 각성 플레이어 그리고 사도 각성 플레이어, 거기에 성녀의 축복을 받은 각성 플레이어까지.

‘지구를 난장판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거 미루면 안 되겠다.

최대한 빨리 끝장을 본다.

바로 그 순간!

“저어, 형제님.”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

포교 사제인가?

“저요?”

“네, 맞습니다.”

“그쪽은 누구신데?”

가만히 보니 사제는 아니다.

은빛 찬란한 갑옷과 투구 그리고 검을 옆에 찬 기사들.

“저희는 참누리 성기사단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용건이…….”

“성녀님께서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형제님.”

성녀?

갑자기?

찬웅은 고개를 돌려 반들반들한 대리석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확인했다.

이름표는 잘 숨겨졌다.

얼굴도 그렇고.

“원래 성녀님은 아무나 만나시고 그러나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격이 되어야죠. 그런 의미에서 ‘케이’ 님은 자격이 충분하지요.”

들켰구나.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아티팩트 아이템 몇 개로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초청에 응하시겠습니까?”

“갑시다. 앞장서요.”

“…의외로 대범하시군요. 정체를 숨기고 들어오셔서 도망치시나 했는데.”

도망?

이 새끼 봐라?

10년이란 공백이 길긴 한가 보다.

자신이 어떤 플레이어인지 잊어버릴 정도니.

“대범은 무슨. 나보다 성녀가 걱정되지 않나?”

“네?”

“날 직접 만나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고. 성녀는 목숨이 두 개라도 돼?”

“…….”

순간 안색이 싸늘하게 변하는 성기사.

“대범하신 게 아니라 오만하시군요. 역시 이방인답습니다.”

“시끄럽고, 안내나 하지? 모가지 따이기 전에.”

“흐흐흐, 네네, 케이 님이라면 제 목이 따여도 억울할 일이 없겠죠. 그럼 따라오십시오.”

찬웅은 성기사들의 안내를 받아 신전 중앙의 커다란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긴 회랑을 지나, 꾸불꾸불한 복도를 거쳐,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후에, 마침내 커다란 방에 도착했는데.

“참누리 대신전에 오신 걸 환영해요, 케이.”

“당신이 성녀?”

“부끄럽지만 신도들이 절 그렇게 부르더군요.”

성녀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여인.

찬웅은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

보자마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외모, 빨간 입술, 몽롱한 눈빛, 가려진 곳보다 안 가려진 곳이 더 많은 의복, 그래서 하얀색 피부와 함께 노골적으로 훤히 드러나는 몸매.

‘오우야!’

모태 솔로 찬웅의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로.

혹시 성녀의 ‘성’ 자가 성스러울 성(聖)이 아니라… 그 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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