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지분 증여
침식지 보스 공략 성공.
게임 안에선 전체 공지를 띄워 플레이어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선언한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띄워진 전체 공지.
휴대전화 메시지.
대상은 듀플렉스 스페이스 플레이어 유저들. 처음 가입 당시 개인 정보를 입력한 사람들에게만, 현재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모두 다 메시지를 받았고.
띠링.
[열대우림 침식지 보스 광룡 레지키쓰론이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이걸 시작으로.
띠링, 띠링.
[앞으로 지구에 침식지가 나타날 위험이 줄어듭니다.]
[공략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혜택 떴다!”
“뭘 준다는 거지”
“랜덤 D박스 확률 상승 같은 건 없나?”
“에이, 여긴 현실이잖…….”
띠링.
[공략 참가자의 아바타에 한해 랜덤 D박스에서 고급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상승합니다. - 점검 완료 후 최초 접속부터 10분간 지속]
“어? 확률 상승 떴는데?”
“점검 완료하면 적용되는구나.”
“10분이면 개꿀이네.”
띠링, 띠링.
[공적도에 비례해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 회사의 지분을 증여합니다.]
[공적도 1위 지분 10%, 공적도 2위 지분 5%, 공적도 3위 지분 3%.]
“응?”
“어…….”
“지분? 주식을 준다고?”
“게임 회사 주주라면… 와!”
“가지고 있다가 상장되면 돈이 얼마야?”
듀플렉스 스페이스는 비상장 회사.
공적도 1위가 누군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미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배당도 주나?”
“지분 분할하면 배당도 주겠지.”
또한.
띠링, 띠링, 띠링.
[게임 서버가 복구 중입니다.]
[버그와 오류를 수정하는 데 일정 시일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예상 복구 시간은 72시간.]
드디어 긴급 점검이 끝날 거라는 소식.
길고 길었던 기다림이었다.
* * *
가봉의 임시 본부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매우 성공적, 기어코 침식을 막았다.
파괴된 지역은 열대우림에서도 극히 일부, 마정석 폭탄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후유증도 최소, 방사능 피폭도 되지 않았고, 잘만 가꾸면 예전의 모습을 곧 회복할 수 있을 터.
“이제야 끝이 났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곧 저쪽 세상과 연결이 되겠네요.”
이 상황까지 겪은 탓인지 듀플렉스를 게임이라 부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가상 세계는 저쪽 세상.
현실 지구는 이쪽 세상.
게임 안에선 반대겠지.
또한 NPC들도 마찬가지.
이곳에 건너온 두 명의 존재, 마공학자 데우스칩과 엘프 장로 에루인.
과연 그들을 데이터로 이루어진 게임 프로그램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그들.
“드워프들은 별일 없을까요? 우릴 잊어버린 건 아닐지.”
“에이, 게임 중단이 며칠이나 됐다고.”
사실 한 달이 훨씬 넘었다.
NPC, 아니 저쪽 세계의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방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튼 72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럼 저쪽 세상에 다시 접속할 수 있을 터.
그건 그렇고.
“공적도 1위는 케이가 분명하겠지만 2위와 3위는 누굴까요?”
“애널서커? 공격대장이니까.”
“딸기도 포함이죠. 물 정령왕을 거의 혼자서 캐리했는데.”
“으흠… 전 생각이 다릅니다만.”
다른 의견의 마이클 피트.
“누구……?”
마이클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멈추는 곳엔 한 사람, 아니 골렘이 있었다.
“아!”
“그러네요. 무조건 순위권 안에 들겠죠.”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
모두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쪽 세상 사람들이 아닌데?
멍하니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데우스칩.
한국에 처음 와서 주민 번호와 은행 계좌도 만들고 스마트폰도 개통했다.
자신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게임 계정을 만든 일도 없고.
그런데 이 문자 메시지는 뭐지?
[대우석 님의 공적도는 2위입니다.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지분 5%가 증여될 예정입니다]
솔직히 당혹스러운 마음.
지분, 일종의 소유 권리.
그 회사는 평범한 게임 회사가 아니다.
뭐, 겉보기엔 회사니까, 지분 같은 것도 있겠지.
‘하지만 난 지구인도 아니잖아.’
저쪽 세상에 속해 있는 자신, 그런데 저쪽 세상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수상한 회사의 소유권을 주겠다고?
‘허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자신이 받았다면 아마 에루인도 받았을 터.
당연하다.
그녀가 공적도 순위 안에 못 들면 누가 들어?
‘재미있네.’
세상 밖으로 나온 것도 그렇다.
자신은 마키나 공화국 출신.
오랜 숙원이었던 올드 팩토리가 정화된 후 밖으로 나왔다.
에루인은?
역시 정화된 로그드라실.
침식의 위험이 사라진 터라 그녀가 가져야 할 종족 보호에 대한 책임은 사라졌다. 즉, 지구에서 살아도 된다.
‘돈에 쪼들릴 일은 없겠어.’
지분의 가치가 얼마인지 자신도 안다.
뭐, 마음껏 누리면 되지.
* * *
가봉 열대우림 침식지 정화 소식은 전 세계로 전해졌다.
<열대 우림을 구해 냈다! 최소한의 피해로 침식 정화.>
<각성 플레이어의 헌신적인 희생, 부상자 358명,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지구의 과학과 마도 공학의 결합이 이뤄 낸 쾌거.>
<이날만을 기다렸다. 게임 접속 재개 소식에 플레이어들 잔뜩 기대.>
기사가 쏟아졌다.
혜택에 대한 관심도.
<과연 진(眞) 아이템이 몇 개나 나올 것인가?>
<공격대 참여 인원 800명, 간접 참여 인원도 혜택에 포함될 것으로 추측하면 최소 2,000여 명이 혜택을 받을 걸로 예상.>
<전문가 발언, 마도 공학 때문에 진(眞) 아이템의 효용성이 떨어졌지만 진본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
<주로 물약 종류에 큰 관심, 큰손들 코인 사재기 들어가>
<게임 재개 소식에 코인 시세 폭등!>
지분 증여에 대해서도.
<드디어 듀플렉스 스페이스 주식이 풀린다.>
<총 18%, 그 가치는? 상장 여부에도 관심.>
<10% 받을 사람은 정해졌다. 그럼 나머지 5%와 3%의 향방은?>
└ 1%만 해도 얼말까? 케이는 좋겠다.
└ 아마 상장되면 한 주당 가격이 최고액일걸?
└ 게임 잘하면 세계 최고 부자도 되고 그러는구나.
└ 세계 최고? 고작 게임 회사 주식 10% 가졌다고…….
└ 진(眞) 마정석은 생각 안 해?
└ 아! 그렇구나.
가장 많은 반응은…….
└ 하아, 이제 이틀 남았나? 금단현상 지린다, 지려. 이 게임은 마약이었어.
└ 영영 중단될까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천만다행이야.
└ 씨발, 그동안 아껴 뒀던 연차 다 쓴다.
└ 나도 가게 문 닫을 거임.
└ 난 지금 게임 캡슐만 닦고 있다. 뚜껑에 파리 앉았다가 방금 미끄러졌음.
침식지 정화도 정화지만, 그보다는 역시 서버 복구에 따른 게임 재개, 누구나 그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APS 본부로 귀환한 플레이어들. 니나 페레즈, 에루인도 찬웅을 따라 한국으로 왔다.
국적이 브라질.
더구나 수배를 받고 있어 이것저것 처리할 것이 많지만.
한국에 살아도 상관없다.
한국어, 영어, 브라질어, 중국어, 일어 등등 거의 모든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 세계수의 열매를 먹고 난 뒤 그렇게 됐다던데.
“피곤해. 오랜만에 힘썼더니, 제자야…….”
“네?”
“네 집은 어디야? 가서 잠이나 자자.”
“…우리 집에요?”
“방은 많지? 없으면 한 방에서 같이 자도 되고.”
“어어어, 그건 좀.”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짜식, 자꾸 보니 귀엽네.”
그러자 최기병의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의 눈길이 찬웅에게 몰렸다.
모두 다 에루인의 정체를 아는 이들, 하지만 브라질에서 모델 학원까지 다닌 외모와 몸매의 니나 페레즈가 갑자기 한집에서 자자고 하니까…….
민도연이 재빠르게 말했다.
“제가 호텔 하나 잡아 드릴까요? 최고급 스위트룸으로.”
“뭐 하러? 집이 있는데.”
딸기도.
“저도 집 있어요. 저하고 같이 살아요.”
“아니! 내 제자 집 놔두고 왜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져?”
“제자의 제자잖아요.”
“그럼 딸기, 너도 우리랑 같이 살든가.”
순간 표정이 싹 변하는 딸기.
“…그, 그래도 돼요?”
“못 할 게 뭐 있니? 셋이서 사이좋게 살면 되지.”
“네에…….”
혼자 사는 게 익숙한 찬웅은 황당했다.
그런데 왜 불편하게……. 그렇지 않아도 데우스칩 때문에 불편했는데.
게다가 여자가 2명씩이나 한집에서?
아무리 사제 관계라 하지만.
“저, 데우스칩도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만.”
“뭐?”
“…보, 복잡하지 않을까요? 좁아서 불편할 텐데.”
그러자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를 그리며 슬쩍 끼어드는 데우스칩.
“흐흐흐… 불편할 것이 있나? 방도 많잖아. 흐음, 가, 같이 살면 좋지.”
에루인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데우스칩을 노려보면서.
“너 왜 웃어? 방금 무슨 생각 했어?”
“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고.”
“아이 씨, 변태 새끼가… 그리고 넌 돈도 많이 벌었다면서 왜 우리 제자에게 빌붙어 사는데?”
“그냥 갈 데가 없어서.”
“당장 집 사서 나가! 새끼야!”
결국 최기병이 나섰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최기병의 입만 바라보는 사람들.
“제가 찬웅 씨가 사는 빌라 건물에 집을 구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한 채는 대우석 박사님이, 한 채는 장로님이 쓰시도록.”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빈집이 있나요?”
“기존에 살던 분들에게 잘 말씀드려 보죠. 집값은 두 배로 쳐준다고 하고, 이사 비용도 부담하면…….”
“흐음, 세 배로 쳐준다고 하세요. 돈은 제가 낼 테니까.”
“아! 우리가 부담해도 됩니다.”
“괜찮아요.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빠르게만, 아예 빌라 한 동을 통째로 사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죠.”
어떻게 스승과 한집에서 사나!
그리고 데우스칩도 쫓아낼 때가 됐다.
최기병도 즉시 빌라 매입에 착수했다.
돈이 문제인가?
마도 공학의 거두와 케이만큼이나 강한 엘프 장로 에루인을 한국에 묶어 두는 일인데.
그러자 슬며시 다가와 최기병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딸기.
“저도 집 하나 구해 주세요. 찬웅씨 집과 제일 가까운 곳에, 돈은 제가 낼 테니까.”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꼭이요.”
아무튼 그렇게 결정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띠링!
찬웅의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문자 메시지.
[엘리] : 저예요.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전에 만났던 곳에서.
[케이] : 혼자서 갑니까?
[엘리] : 아뇨. 대우석이랑 니나 페레즈도.
[케이] :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 * *
과천 APS 본부 정원의 한적한 벤치.
개발자 엘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용건은 공적도 혜택에 대한 것.
“고생하셨어요. 그럼 공적도에 대한 건데…….”
서류 몇 장을 꺼내더니.
“아시다시피 공적도 1위는 케이 님, 그리고 2위는 대우석 님, 3위는 니나 페레즈 님이세요. 여기 사인하시면 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있어요. 축하드려요, 우리 회사 주주가 되신 걸.”
그런데 사인할 생각은 않고 흥미로운 눈초리로 엘리를 바라보는 에루인.
“…왜 그러시죠?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건 아니고.”
에루인이 엘리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야!”
“네?”
“너도 건너왔지?”
“무, 무슨 말씀을?”
“냄새가 난단 말이야. 넌 분명 지구인이 아니야. 그렇지?”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엘리.
“바른대로 말해. 아니면.”
스윽.
에루인은 허리에 찬 마체테 손잡이를 잡았다.
“아, 알았어요. 말할게요. 전 엘리하, 세상 안에선…….”
“요정왕, 요정의 여왕 엘리하.”
“맞아요.”
“그럴 줄 알았어. 계속 요망한 냄새가 풍기더란 말이지.”
엘리하는 전설급 NPC만큼이나 유명한 존재.
그녀는 누군가의 가디언이었다.
“그럼 네 주인은 어디 있어?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 그 양반도 넘어온 건가?”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흥, 네가 여기 있으면 당연히 그도 있겠지.”
“…….”
그러자 찬웅이.
“게임 회사 게리 스탁턴, 그 사람이 리스타리칸일 겁니다.”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대체 목적이 뭐야? 왜 게임을 만든 거지? 아니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 두 세계를 연결한 이유는?”
“아, 으음, 그, 그건 답변할 수 없는 질문…….”
“여기서 내가 널 죽여도?”
“네, 못 해요. 저도, 주인님도, 말하고 싶어도 못 하거든요.”
스러렁.
에루인이 마체테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자 다급하게 말하는 엘리.
“사인은 안 해도 돼요. 어차피 명의 이전은 끝났거든요.”
그러더니.
팟! 하고 사라져 버렸다.
“…도망갔네?”
“그러네요.”
“이거 공간 이동 마법이지?”
“아마도.”
“쯧! 택배가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 알겠어.”
에루인은 다시 마체테를 허리춤에 차고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 부자 된 거야?”
찬웅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셈이죠.”
“그럼 나 카드 빌려 줘라. 다음에 갚을게.”
“카드? 뭘 하려고요?”
“날 좀 보렴. 이런 꼴로 어떻게 밖으로 나가니? 쇼핑이나 해야겠다.”
“혼자 가시게요?”
“아니, 딸기와 도연이 데리고 갈 건데.”
“…여기.”
에루인은 찬웅이 건넨 블랙 카드를 들고 사라졌다.
멀뚱하게 서 있는 데우스칩과 찬웅.
“박사님은 쇼핑 안 가세요?”
“나보고 여자들과 같이 쇼핑 가라고?”
“아!”
잠시 후.
찬웅의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카드 결제 알림음.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계속 울렸다.
하루 종일 울렸다.
그리고 또 하루 뒤, 마침내 서버 정상을 알리는 메시지가 전체 플레이어들에게 전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