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열대우림 침식지 공략 (2)
폭격 1일째.
총 100여 기의 무인 폭격기가 출격.
10대의 자주포와 5대의 다연장 로켓 발사기의 지원 사격.
그중에 무사 귀환한 무인 폭격기는 약 10대.
파괴되자마자 재생하는 숲이라 괄목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폭격 3일째.
200여 기의 무인 폭격기가 출격.
30대의 자주포와 20대의 다연장 로켓 발사기의 지원 사격.
그중에 무사 귀환한 무인 폭격기는 약 80대.
침식지 일부에 땜빵 자국이 보였다.
그래도 금방 재생했지만.
폭격 5일째.
이번엔 300여 기의 무인 폭격기가 출격.
100대의 자주포와 50대의 다연장 로켓 발사기의 지원 사격.
그중에 무사 귀환한 무인 폭격기는 약 200대.
침식지 군데군데 움푹 파인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숲의 재생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침식지도 조금씩 축소되어 간다.
그리고 10일째 이어지는 폭격.
지구 연합군의 총공세.
하늘엔 온통 무인 폭격기뿐이었다.
새까맣게 뒤덮었다.
파워 스틱 밤을 단 드론들도 저고도에서 숲을 누비며 보이는 건 모조리 날아가 박았다.
지상에서 올라오는 마법 공격은 보이지도 않았다.
숲이 재생하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물 정령들은 생성되자마자 물방울로 흩날렸다.
제공권의 완전한 장악.
하늘에서 폭탄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멀리서 날아오는 스마트 포탄과 로켓도.
오직 침식지에만 한정해서 촘촘하게 꽂혔다.
콰쾅! 콰콰콰콰쾅! 쾅쾅!
모든 폭발물에 마정석의 기운이 포함되어 있었다.
화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력의 파동에 의해 으스러지는 침식.
그랬다.
죄다 마정석 폭탄이었다.
그것도 마법 문양으로 강화된 폭탄.
레지키쓰론의 표정이 썩어 들어 가기 시작했다.
각성 플레이어 그리고 케이와의 일전을 위해 준비했던 몬스터들이 허무하게 소멸되고 있었다.
“이런 비겁한 놈들!”
살아 움직이는 식물 덩굴, 나무 위에 숨어 있다 먹이가 나타나면 습격하는 변이 정글 거머리, 송아지만큼 커다란 독거미, 커다란 용족으로 진화한 비단뱀, 두꺼운 가죽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변이 악어, 목표물에 처박혀 함께 자폭하는 침식의 변이 앵무새 .
모두 침식의 은총을 받아 더 크고 강해진 동식물.
그러나 제대로 된 전투조차 없었다.
‘대, 대체 언제까지?’
각성 플레이어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에 의해 무기력하게 녹아내렸다.
재생하면 뭘 하나?
그 순간 파괴될 텐데.
그 순간에도 침식의 영역은 조금씩, 그러나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고.
‘이, 이게 무슨 전쟁인가!’
상상해 보라.
마도 공학과 지구 과학의 결합이 낳은 기막힌 결과를.
화염만 없다 뿐이지, 자주포 한 발의 위력은 파이어 버스터와 비슷하고, 다연장 로켓은 멀티 파이어 스피어, 무인기가 발사하는 미사일은 헬파이어, 실제 이름도 헬파이어 미사일.
숫자로 치면 약 1,000명의 7서클 마법사가 좁은 영역에다가 집중적으로 공격 마법을 일제히 퍼부어 대고 있었다.
그것도 열흘 동안.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물량이 소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이미 숲은 평지로 변했다.
조그만 풀조차 보이지 않았다.
재생을 위해 침식의 기운을 투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퉁퉁퉁.
그나마 안테나는 무사했다.
핵폭발에 견디도록 설계한 건데.
차라리 핵이 낫다.
방사능을 흡수해 침식의 기운과 결합하면 변이의 효과는 더 강해질 테니까.
그런데 핵도 아니고 끊임없이 침식을 갉아먹는 지독한 마력 폭탄의 공격이라니…….
‘…버틴다, 어떻게든!’
* * *
대(對)열대우림 침식지 공격 진행 상황을 관찰하는 지휘 본부.
“오염된 숲과 몬스터, 물의 정령 재생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고착 상황입니다. 침식지 축소도 멈췄고요.”
“버티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지상군 투입을…….”
“에이, 아직 물량의 반도 소진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때리다가…….”
“소모전보다는 대가리를 쳐야죠. 도마뱀과 물덩어리 왕 그리고 안테나를.”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결국.
“대우석 박사님,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
“계속 소모전으로 갈 건지, 아니면 지상군 투입해서 끝낼 것인지.”
“흐음.”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첫 공습 당시 출동한 무인기의 90%가 격추되었을 때 데우스칩은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지구인들은 덤덤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이런 반응?
그리고 깨달았다.
그럴 만했다.
차후에 투입되는 물량을 보고 기절초풍했으니까.
자신이 전파한 마도 공학이 지구의 산업과 결합했다.
그 결과 마르지 않는 화수분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량.
‘계속 때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슬쩍 에루인의 눈치를 보는 데우스칩.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다.
하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걸 막고 있으니, 그것도 열흘씩이나. 더 이상 미루면 그녀의 마체테가 자신의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았다.
또한 이런 소모전으로는 결착을 지을 수 없다.
기운을 약화할 순 있어도 소멸은 불가능.
침식지도 더는 줄어들 것 같지도 않고.
결국 결정타가 필요한 시점.
“지상군 투입합시다.”
“오!”
“마지막 쐐기는 준비됐나?”
“발사 신호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공습 후, 진입합시다.”
“네,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확실히 조져 놓겠습니다.”
기어코 때가 왔다.
* * *
끔찍한 마지막 공습 이후.
약 800여 명, 고르고 고른 정예 각성 플레이어가 정글로 진입했다.
침식지 남쪽 방면.
총지휘관 애널서커의 지시에 따라 무인 장갑차를 앞세우고 중앙을 향해 투입되는 각성 플레이어 공격대.
“진격!”
울창한 숲은 이미 사라졌다.
그럼에도 군데군데 재생되는 동식물과 부정한 물의 정령.
하지만.
투퉁! 퉁퉁퉁!
인공지능으로 조종되는 무인 장갑차의 마력 통통포에 의해 한순간에 소멸됐다.
할 일 없이 장갑차만 따라가는 각성 플레이어들.
무료한 표정의 민도연이 장창을 땅에다 질질 끌고 가면서 한마디 했다.
“심심해.”
그러자 상큼한 딸기가.
“심심한 것보다 안전한 것이 좋지 않아요?”
“나 솔직히 기대했거든. 요즘 게임을 통 못 해서 현실에서라도 기분을 내 보려고 했단 말이야.”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에이, 설마! 그건 그렇고… 찬웅이와 에루인 님은?”
“그분들이야 우리와 함께 움직일 짬밥은 아니잖아요.”
“하긴!”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
갑자기 진동하는 대지 그리고 공기.
“뭔가 온다. 전투준비!”
농밀한 침식의 기운이 공격대를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파!
쑤욱! 쑤우우욱!
땅 밑에서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나무 덩굴, 침식의 숲이 급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퍼퍽, 퍼퍼퍼퍽!
무인 장갑차들이 나무 덩굴에 감겨 부서진다.
그리고.
공기 중 습기가 뭉치기 시작하더니.
퐁퐁, 포포퐁퐁.
이쪽저쪽 사방에서 무수하게 출현하는 물의 정령.
“쳐!”
쐐애액! 파앙!
딸기의 방패 돌진을 시작으로 각성 플레이어와 열대우림 침식지 몬스터 간의 전투가 시작됐다.
* * *
레지키쓰론은 때를 기다렸다.
그 악몽 같은 공습을 견디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어차피 방화벽은 뻥 뚫려 있었다.
침식의 기운을 지속적으로 받아 내는 안테나가 건재한 한 이 무지막지한 소모전도 충분히 버틸 만했다.
결국은 각성 플레이어들이 투입될 것이다.
케이도.
놈만 죽인다면, 그리하여 안테나만 지켜 낸다면, 전쟁은 무조건 승리할 터.
드디어 멈춘 공습.
그리고 각성 플레이어의 투입.
레지키쓰론은 침식의 기운을 퍼뜨리는 안테나, 디바인 아티팩트의 출력을 최대치로 설정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
힘이 차오른다.
침식의 은총이 이 열대우림에 내린다.
땅속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식물의 씨앗들이 그 힘으로 발아하기 시작했다.
폭탄에 찢겨 흩뿌려져 있던 동물들의 세포가 재생하고 곤충들의 알이 부화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다시 생겨나는 숲.
천천히 침식이 복원을 시작했다.
공습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아군의 머리 위에 폭탄을 투하하지는 않을 테니까.
레지키쓰론은 탐색 마법을 펼쳤다.
자신의 기를 사방에 흩뿌려 포스의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
‘어디 보자… 남쪽이군.’
침식지 남쪽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수많은 포스의 개체.
그렇다면 남쪽으로 힘을 더 보내야…….
순간!
“응?”
남쪽뿐만이 아니었다.
‘…동쪽이야.’
엄청난 포스의 기운.
거대하지만 단일 개체.
단 하나!
홀로 이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을 수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 말고 더 있을까?
‘케이, 너로구나.’
그렇다면 힘의 집중은 남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그때였다.
“…어?”
이번엔 서쪽.
역시 한 명.
살벌한 속도로 안테나를 향해 달려오는 강대한 포스.
‘이건 뭐지?’
케이 같은 놈이 하나 더 있다고?
‘대, 대체?’
레지키쓰론은 혼란에 빠졌다.
어디로 힘을 집중해야 하나?
동쪽? 서쪽인가……? 그럼 남쪽은?
* * *
침식지 동쪽.
엘프 장로 에루인은 신들린 듯 쌍마체테를 휘둘렀다.
아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침식, 세상 안에선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기운.
그러나 지구로 와서 각성 플레이어의 육신에 빙의한 후로 더 이상 침식은 무섭지 않았다.
팟팟팟팟!
서걱! 서거거거걱!
마체테, 정글도, 식물을 베는 데 안성맞춤인 무기.
숲과 식물을 사랑하는 엘프이지만 침식된 숲과 식물은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자르고 소멸시켜야 할 침식 덩어리.
콰드득! 서걱! 거침없이 돌진하는 에루인.
그녀의 마체테엔 자비가 없었다.
침식지 서쪽.
찬웅은 강기로 거대해진 도끼를 전면으로 쏘아 보냈다.
콰콰콰콰콰콰!
강기의 소용돌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치명적인 포스의 쌍도끼.
팟팟팟!
찬웅도 침식지 중앙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다가오는 강대한 포스의 기운에 레지키쓰론은 분명 당황할 터. 엘프 장로 에루인이 지구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이제 결판을 내야 할 때.
확실한 끝을 보여 줄 최종 무기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 * *
가봉 열대우림 공략 본부.
미국에서 파견된 나사 선임 연구원이 데우스칩에게 말했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정확하게 꽂혀야 해. 단 1미터의 오차라도 생기면…….”
“걱정 마십시오. 정밀 타격, 그건 우리가 가진 특기입니다.”
카운트다운 시작.
10, 9, 8, 7… 3, 2, 1, 0.
“발사!”
열대우림과 멀리 떨어진, 가봉 해안가에서 위성 발사 때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발사체가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슈슈슈슈슈슛!
잠시 후, 떨어져 나가는 1단 엔진, 그리고 2단 엔진 점화.
슈슈슈슈슈슛!
발사체는 높게 높게 날아갔다.
길쭉하고 매끈한 몸체, 표면에 어지럽게 새겨진 마법 문양.
발사체의 앞부분은 송곳처럼 뾰족했다.
그 송곳에도 무수하게 많은 마법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 공략을 준비하면서 데우스칩이 세심한 공을 들여 제작한 일종의 무기.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자 발사체는 수평을 유지하며 계속 날았다.
그리고 천천히 거꾸로 세워지는 몸.
열대우림 침식지.
레지키쓰론이 세운 침식의 안테나와 멀지 않은 지점을 향해 수직 낙하하는 발사체.
콰콰콰콰콰!
엄청난 속도였다.
무수한 마법 공격이 날아왔지만 스치지도 못했다.
운 좋게 한 발 맞아도 속도와 방향은 변하지 않았고.
앞선 공습의 영향으로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고. 또한 동쪽의 에루인, 서쪽의 찬웅 그리고 남쪽의 각성 플레이어의 공격이 동시에 진행된 탓에 힘이 분산된 이유도 있을 터.
급기야!
지면으로 내리꽂히면서.
쿠쿠쿠쿠쿡!
몸체의 90% 가까이가 땅속으로 박혀 버렸다.
폭발은 없었다.
처음부터 터지라고 만들지 않았다.
휘어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 통짜 합금 전봇대 같은 물건.
열대우림 중앙 근처에 박혀 우뚝 세워진 거대한 은색의 발사체, 마력이든 오러든 혹은 포스든, 어떤 힘이든 전도율 최상이라는 미스릴이 절반 이상 섞여 있었다.
데우스칩은 이걸 만들기 위해 다수의 금속 진(眞) 아이템을 녹여 미스릴을 추출해 냈다.
코인으로 따지면 얼마나 할까?
아마도 1억 코인은 가뿐하게 넘을 것이다.
팟팟팟팟!
발사체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찬웅.
팟팟팟팟!
뒤를 이어 애루인도.
“늦으셨네요, 스승님.”
“…이, 이미 와 있었거든? 네가 언제 오나 기다리다가…….”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아 씨, 너 이따가 보자.”
꼬리만 빼곡 땅 위로 나온 발사체.
끝부분엔 손바닥 형태의 문양 두 개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에루인이, 반대편 하나는 찬웅이.
“준비됐죠?”
“응… 근데 스승으로서 부탁 하나만 하자.”
“뭘요?”
“레지키쓰론은 내 거야.”
“하지만…….”
“알아. 막타는 양보할게.”
“그럼 뭐.”
찬웅은 문양의 형태에 맞게 손바닥을 밀착했다.
그러자 뒤늦게 달려오는 물의 정령과 변이 동식물들.
포스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찌이이잉.
반대편엔 에루인의 포스도.
찌이이잉!
신성력이 섞인 찬웅의 포스와 세계수의 기운이 섞인 에루인의 포스.
이 거대한 발사체는 일종의 안테나였다.
침식의 기운이 아닌 포스를 증폭해 파장으로 변화시키는 안테나.
이 거대한 안테나를 침식지 중앙 근처에 갖다 박으려면?
차량 운반은 어렵다.
무인 항공기 몇 대로는 어림도 없다.
그럼 인력은?
영차영차 옮겨 봐야 가까이 갈 수나 있을까?
결국 지상에서 발사해 땅에다 박아 넣어야 했다.
그것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찌이이이잉…….
거대 안테나의 꼬리 부분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커다란 안테나를 발동하려면 찬웅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했을 터, 공교롭게 에루인이 나타나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
한꺼번에 주입되는 절대자 2명의 신성한 포스.
급기야!
파아아아앗!
땅속에 박힌 기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강력한 포스의 파동.
데우스칩의 증폭 마법 문양으로 한층 더 강화된, 침식과 상극이 되는 무시무시한 기운.
츠파파파파파파파파!
정화의 물결이 흘러넘친다.
열대우림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