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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54화 (154/204)

< 비로소 드림팀 >

촤아아아악!

비가 내린다.

열대 소나기 스콜.

앞이 보이지도 않게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

찬웅은 비를 뚫고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여전히 곧게 쭉 뻗은 열대 밀림의 길.

나무들이 길을 열어준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면 덩굴들이 움직여 다리를 만들어 준다.

사방, 이곳저곳, 어디에서나 보이는 반투명 물딩딩이들도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레지키쓰론의 초대.

초대인지 유인인지 잘 모르지만.

순간!

묵직한 침식의 기운.

저릿저릿, 살갗을 에일 정도로.

침식으로 똘똘 뭉쳐진 덩어리 2개가 저 앞에 있었다.

‘곧 보겠네.’

놈은 어떤 모습일까?

드래곤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놈의 육체는 로그드라실에서 사망한 것이 분명하니까.

그때였다.

때마침 그치는 비.

저 길 앞에 홀로 서 있는 한 사람.

인종은 아프리카 원주민.

맞다.

흑형이다.

하지만 찬웅은 차별 없는 남자.

“바깥에서 처음 보네. 초록 도마뱀, 아니 검정 도마뱀인가?”

“이방인, 아니 플레이어 케이. 그게 너의 본모습이구나.”

놈의 뒤편으로 거대한 안테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주위에 우뚝 선 거대한 반투명체 물덩어리도.

“저게 정령왕이냐? 쟤는 왜 저렇게 멍청하게 있어?”

피식, 하고 웃는 레지키쓰론.

“쓸데없는 말로 시간 끌지 마라. 여기 온 이상 각오는 되어 있겠지?”

“무슨 각오?”

“당연히 죽을 각오, 겁도 없이 이곳에 홀로 온 대가는 치르고 가야지.”

“싫은데?”

“그게 네 마음대로 될까?”

까만 피부색의 그린 드래곤 레지키쓰론은 찬웅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네 실력을 과신하고 있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정녕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넌 살아서 못 간다. 애초에 혼자 온 것이 실수였어. 그리고 그 실수의 대가를 치르거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나중에 확인하면 되고, 내가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말이야.”

“대답은 해주겠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놈은 지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넌 핵미사일이 무섭지 않나? 무슨 생각으로 여기다 침식지를 만든 거지? 미사일 한 방이면 이 일대는 초토화될 텐데.”

“껄껄껄, 핵이라, 얼마든지 해 보려무나. 나도 바라는 일이야.”

오히려 바란다니.

“참 기대가 돼.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의 정령, 지구에서 새로운 속성의 정령이 탄생하겠구나.”

“···.”

방사능 물의 정령.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어찌 됐든 놈은 생명체.

마법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핵을 무서워하지 않는 놈의 믿는 구석은 뭘까?

‘설마?’

찬웅의 눈이 땅으로 향했다.

사실 핵폭발의 위력을 피할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진짜 핵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면···,’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와 철근, 철판으로 만든 지하 벙커 같은 거, 또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쉴드, 혹은 배리어, 충격 흡수 같은 장치도 마련했겠지.

텔레포트 마법진, 혹은 워프 게이트로 이동할 테고.

‘핵은 안 돼.’

사실이라면 그걸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

오히려 방사능 오염 물 정령이나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

그럼 최악이다.

‘아무튼 정보는 알아냈고.’

이제 가야지.

놈이 순순히 보내줄지 모르겠지만.

“자! 넌 이제 여기서 죽는다.”

“그냥 가면 안 될까?”

“흐흐흐, 건방진! 어림도 없다.”

우웅!

강렬하게 퍼져나오는 침식의 기운.

‘싸워야 하나?’

물론 드래곤 하트의 힘을 믿고 놈과 여기서 생사 결단을 해 볼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보자마자 알았다.

놈도 만만치 않다.

거의 자신과 비등하다.

여기서 싸운다면 이놈 정돈 비벼볼 수 있지만 문제는 저 뒤에 버티고선 거대한 물덩어리.

그래도 무작정 도망치는 건 조금 기분이 나쁘고.

‘한번 찔러볼까?’

그래.

미친 짓 한번 해 보자.

스슷!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러시아 정보국 요원에게서 압수한 원통형 핵배낭을 꺼냈다.

자신이 이걸 가지고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이게 뭔지 알아?”

“무슨?”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찬웅이 꺼낸 물건을 바라보는 레지키쓰론.

“핵배낭이야. 위력도 쓸만해, 아마 이 일대가 불바다가 될걸?”

“···뭐?”

“그래, 한번 붙어보자. 싸우는 동안 터지든 말든. 핵 따위는 안 무섭다며?”

찬웅은 핵배낭 전면에 설치된 기판을 조작했다.

틱틱, 틱틱틱!

그리고 패널에 뜬 숫자.

[00:09:59.59]

소수점까지 표시되는 시계.

“10분 남았다. 진짜 괜찮아?”

레지키쓰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게 진짜 핵배낭인가?

블러핑일 가능성은?

마법의 힘을 이용해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냄새가 난다.

정글의 흙내음과 물 냄새를 뚫고 콧속으로 풍겨오는 짙은 플루토늄의 향기.

‘이런 미친놈이?’

여기에 핵폭탄을 가지고 와?

지구에 오자마자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지 깊이 연구해왔다.

그중 하나가 당연히 핵,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저건 진짜가 맞다.

플루토늄, 뇌관, 기폭 장치도 진짜.

그리고 놈의 태도도 진짜.

시간이 다하면 터지는 것도.

핵폭탄.

지구의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무기.

빙긋 웃는 찬웅.

동시에,

찌이잉!

쌍도끼에 어리는 두터운 강기.

“왜 그리 심각해? 무섭지 않다고 했으면서?”

“···넌? 그게 터지면 너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

“뭐, 여기서 죽으면 되지. 나 하나 죽어서 드래곤 한 마리와 저 물덩어리 새끼 소멸시키면 남는 장사 같은데.”

[00:09:22.41]

“허세가 심하군. 터지지 않는 걸로 장난치려고 하나?”

“확인해보든가. 터지는지 안 터지는지.”

레지키쓰론은 답답하다.

몸이야 피하면 되지만 저 침식의 안테나는?

저게 부서지면 침식의 기운이 급격하게 약화 된다.

뽑아서 가면 되지만 놈이 순순히 내버려 둘지도 모르겠고.

‘10분, 아니 9분 안에 놈을 죽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레지키쓰론도 느끼고 있었다.

케이가 품은 어마어마한 포스의 기운을.

저 핵배낭은 자살 폭탄 테러나 마찬가지.

핵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날아오면 미리 알 수 있게 해둬서 피할 여유가 충분하다.

안테나를 뽑아서 안전한 곳으로 가져갈 시간이.

반면 핵배낭을 멈추게 하려면 놈과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

안테나가 세워진 상태에서 핵이 터지면?

그건 엄청난 손해.

또한 혹시라도 핵이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싸우는 것도 문제.

자신이 먼저 도망치면 그건 또 무슨 창피한 일인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00:08:35.18]

‘괜히 여기서 무리할 필요가···,’

그래서.

“알았다. 보내주지. 이만 가라.”

“보내준다고? 이 새끼가···, 그냥 싸워!”

“···내가 물러선다는 뜻이다.”

“그래? 뭐, 그럼, 나도 허락해줄게.”

스슷!

빠르게 핵배낭을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찬웅.

인벤토리 안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 간다? 안 잡을 거지?”

“드래곤의 약속이다. 용언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

저벅저벅.

찬웅은 보란듯이 천천히 걸어갔다.

소득은 있었다.

놈이 핵을 무서워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핵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핵으로 인해 생기게 될 부작용. 그래서 핵 사용은 절대 금물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가봉 열대우림 근처에 차려진 침식지 대응 본부.

세계 각국의 지원이 줄을 이었다.

각종 미사일, 무인 장비, 그리고 인력지원, 전 세계 각성 플레이어들도 속속 도착했다.

찬웅이 찍어온 영상을 토대로 계획을 수립하는 사람들.

“화면에 나타난 놈은 가봉 국적의 피에르 운게마, 그리고 부정한 물의 정령왕도 확인했습니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놈은 이곳에 있었던 걸로 파악됩니다.”

“지하 핵 방호 시설은 그때 건설한 거군요.”

“우리가 대응해야 할 몬스터는 일단 변이된 동식물과 물정령인가요?”

“핵은 의미가 없어요. 지하 핵방호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면···,”

“벙커버스터는?”

“글쎄요. 이걸 잊어선 안 됩니다. 드래곤은 마법의 종주라 불릴만큼 똑똑한 놈이죠.”

수많은 계획이 입안됐다.

그중에 일부는 폐기, 그중에 일부는 채택.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전술이 세워지고···,

“각성 플레이어 숫자가 관건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모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죠. 그중에 사도라도 섞여 있으면?”

“그건 대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대우석 박사님이 침식 식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금속 탐지기처럼 침식의 기운이 가까이 있으면 경고를 해주는 마도두, 찬웅이 가져온 샘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사도 빌런 말고도 보통 빌런도 좌시해선 안 됩니다. 얼마 전 브라질에서 있었던 일, 다 알고 계시죠?”

“아하! 마약 조직 갱단 107명이 참수당한 그 사건 말입니까?”

“네, 용의자는 니나 페레즈, 각성 플레이어입니다.”

“가족의 복수가 동기였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해도 너무 심한 손속이었습니다. 일반 조직원들까지 무참하게 살해했어요. 케이도 일반인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브라질이 난리가 났었다.

“더구나 우려되는 것이···,”

“뭐죠?”

“브라질 경찰에서 수배를 때렸는데, 가봉행 비행기를 타려다가 공항에서 적발되어 도망간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흐음.”

여기로 온다면 확실히 위험하긴 하다.

“인상착의는?”

“여기···,”

“호오, 이 젊은 여자가? 외모도 보통이 아닌데.”

“네, 모델 학원 출신입니다. 그리고 전단지 만들어서 배포했습니다. 그녀가 여기 온다면 무조건 잡아야죠. 공략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 ※ ※

니나 페레즈, 아니 에루인은 이미 가봉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길은 정말로 험난했다.

여권도 있겠다, 돈도 마약 조직 놈들에게서 충분히 챙겼고, 느긋하게 비행기를 타고 오려고 했는데, 출국 금지라니!

경찰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공항으로 들이닥쳤다.

물론 자신의 몸 하나 빼는 거야 쉬운 일이지만 편하게 가긴 글렀다.

이미 빌런으로 취급받은 터라 대화도 힘들고, 어떻게 케이에게 연락이라도 취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고.

할 수 있나?

직접 가야지.

다행히 브라질과 가봉은 크게 멀지 않았다.

남대서양만 건너면 바로 가봉.

브라질 해안 도시로 숨어 들어가 적당한 배 한 척을 훔쳐서 항해를 시작했다.

큰 배보다는 작은 배를, 기름이 떨어지면 열심히 노를 저어.

아아! 배 한척에 의지해 대서양을 횡단하는 엘프라니.

그리하여 기어코 당도한 가봉.

이제 케이만 만나면 된다.

아니면···,

‘데우스칩, 이 새끼도 건너왔잖아.’

그 변태 새끼가 무슨 수로 지구까지 왔지?

게다가 언론에선 마도 공학의 대가라며 띄워주기까지 한다.

스마트폰에 검색만 해도 다 나온다.

하바드, 예일, 캠브리지, MIT, 코넬···, 이런 데서 명예 교수, 박사 학위까지 받고, 플렉스라며 슈퍼카를 타고 다니고,

‘관심종자 새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골렘 주제에 명예욕에 물욕까지 있다.

가봉에 위치한 침식지 임시 본부까지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왔다.

왔으면 된 거지.

이제 케이만 만나면···,

‘돌아버리겠네.’

여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본부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담장.

삼엄한 경비로 출입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군인들.

‘그냥 숨어서 들어갈까?’

은신막 수트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지금은 없고.

‘바람길 산책 순간 가속이면···,’

그때였다.

부우우웅!

정문으로 다가오는 빨간색 스포츠카.

‘어?’

뚜껑 없는 차 안엔 선글라스를 착용한 골렘 하나와 두 명의 젊은 미인이 함께 타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대우석 박사님.”

“하하, 그래, 수고가 많아. 자, 받게. 시원한 거라도 사 먹어.”

“이러면 안 되는데···,”

“쯧, 어른이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야지.”

“고, 고맙습니다.”

지랄도 풍작이구나.

에루인은 안으로 들어가려는 데우스칩을 손짓으로 불렀다.

“야!”

그러자 데우스칩이 뒤를 돌아봤다.

“나, 나 말인가?”

“그래, 너! 일루와 봐.”

“···.”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는 데우스칩.

그러자 옆에서 그를 경호하는 상큼한 딸기, 신여은이 물었다.

“아시는 분이세요?”

“으음, 아, 아니, 흐음, 자, 잠깐만 기다리게.”

데우스칩은 차에서 내렸다.

일면식도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이 미칠 것같은 호감은 대체 왜?

데우스칩에겐 여자란 그저 자신과 다른 생물종일 뿐.

그런데 저 여자는 다르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대는···,”

“동작 봐라! 빨리빨리 움직이지?”

“넵!”

군기 바짝 든 자세로 대답하는 데우스칩.

그 와중에 딸기와 함께 있던 민도연은 스마트폰을 켰다.

저 무례한 여자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봤는데···.’

그리고 떠오른 사진.

‘응?’

니나 페레즈.

브라질 마약 조직 갱단 107명을 참수한 빌런.

“딸기야! 이거···,”

딸기도 확인했다.

서둘러 등에 멘 방패를 왼손에 들고, 허리춤에 찬 검은 오른손에.

“멈춰!”

쐐애액!

딸기의 방패 돌진!

팟팟! 하며 사라지는 니나 페레즈.

“헉!”

뭐지?

이거 익숙한데?

“딸기야! 뒤, 뒤에 있어!”

휘릿!

신여은은 급하게 뒤로 돌면서,

츠릿!

검을 휘둘렀지만···,

팟!

“무슨···,”

딸기는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몸놀림.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니나 페레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잠깐! ···딸기? 상큼한 딸기?”

“···.”

“맞구나!”

환한 표정의 그녀.

“나 몰라? 이거, 이거, 이거?”

팟! 파팟! 팟팟팟!

연속적인 순간 가속.

케이 말고 저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딸기 신여은, 그리고 데우스칩에게 눈길을 한번 줬다가, 다시 그녀에게로,

“···에루인 장로님?”

“맞아! 제자의 제자야. 잘 지냈니?”

신여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믿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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