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50화 (150/204)

< 역전! 안테나 >

레지키쓰론은 추락하는 헬기를 보면서 살짝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예상보다 빨리 들켰어.’

이 넓은 땅, 듀플렉스 대륙보다 어쩌면 3배 이상 더 큰 지구, 그것도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 숨었다고 판단했지만 이렇게 빨리?

‘어찌 된 놈의 세상인지···.’

지구는 너무 빠르고, 노골적이다.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저 하늘엔 비행기와 위성이, 도시엔 CCTV가.

그것만 빼면 마음에 드는 세상인데.

‘그나마 부정한 물의 정령왕을 지구로 데리고 온 다음이라 다행이군.’

겨우 몇 시간 전에 정령왕 강림을 성공시켰다.

‘일단 나온 이상 된 거야.’

세상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제법 많다.

방화벽을 뚫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거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사도를 만들어내 그들의 몸에 빙의하는 것, 자신도 그렇게 했다.

가봉 국적의 사도 플레이어 피에르 운게마.

육신만 인간이지 영혼은 자신, 그린 드래곤 레지키쓰론.

그렇다면 정령은 어떻게 밖으로 나올까?

평소엔 에너지, 때에 따라선 실체로 존재하는 정령의 특성.

나오려면 에너지 형태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 설치한 것이 안테나, 이미 세상의 안팎이 서로 섞이고 있어서 침식된 정령력을 끌어낼 수 있는 매개체만 있으면 된다.

빙의로 탈출하자마자 레지키쓰론은 안테나 아이템부터 만들었다.

침식과 정령의 에너지를 뽑아오고, 거기에 실체화를 명령하는 정령왕의 의지도 담고.

그러나 처음엔 잘되지 않았다.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에서 확인했다.

정령력은 충분했지만 실체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인이 뭘까?

정령의 실체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같은 시공간 안에 정령왕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것.

정령왕이 지구에 와야 실체화도 가능하다.

당연히 데리고 와야지.

그리고 저 커다란 안테나를 완성시키면서 마침내 정령왕 강림을 성공시켰다.

마법 문양은 어떻게 새겼냐고?

어려울 게 있을까?

마법 문양은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의 전유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

오백 년 동안 올드팩토리 침식지가 누구의 소유였는데!

‘준비는 끝났어.’

우우우우우우···,

기어코 가봉 열대우림에서 나타난 물의 정령왕.

퐁퐁퐁퐁.

열대우림의 침식된 강 위에서 온갖 물의 정령들이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왕은 이지(理智)를 상실했다.

침식되었을 때부터 그랬고, 지구로 건너오면서 더 심해졌다.

겉모습만 정령왕일 뿐, 이젠 레지키쓰론의 명령만 충실하게 수행하는 몬스터나 마찬가지.

이로써 지구는 끝이다.

※ ※ ※

데우스칩은 답답했다.

실험실에서 목격한 실체화한 정령.

“···실체화라니.”

저 안테나는 베이징 동물원에서 가져온 것.

하지만 최초 침식 당시 실체화된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지금 실험실에서 실체화됐다고?

결론은 하나.

“정령왕이 지구에 출현했어.”

그것도 최근에.

심상치 않은 데우스칩의 표정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최기병.

“어차피 예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맞설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우리 각성 플레이어들이 쉽게 정령을 잡았고요.”

“아니! 그렇게 단순한 상황이 아니야.”

“네? 무슨 말씀인지?”

뭐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까?

싸워서 이기면 된다.

각오도 하고 있다.

침식지도 미리 경험해봤고.

“게임 속에서 부정한 정령들이 출현하는 침식지가 어딘지 자네도 알고 있지?”

“네, 헤스티아 성국 남쪽 침식지죠.”

“거긴 내륙 지역이야. 그래서 물이 충분치 않고.”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물의 정령들은 수도 없이 많아. 죽여도 죽여도 또 나타나고,”

그렇긴 하다.

게임 속 그 지역엔 큰 강이나 호수는 없다.

“여기 지구는 어떤가? 대륙이 넓은가, 바다가 넓은가?”

“그야 바다가 두 배 이상···, 헉!”

“저 안테나엔 침식의 기운만 있는 것이 아니야. 정령의 에너지와 부정한 정령왕의 의지도 담겨있네. 정령을 실체화할 수 있는 왕의 의지.”

“···.”

“정령왕이 지구에 나타났다 가정하고, 침식된 지역에 안테나를 꽂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지구 멸망각이지.

게임 안에서 에너지로서 존재하던 정령을 안테나로 뽑아와 지구에서 실체화한다.

침식된 물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부정한 정령 군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강이든, 호수든, 바다든!

감당이 될까?

“바,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 무조건!”

하지만 대체 어떻게?

“케이에게 연락이 되고 있나?”

“연락해보겠습니다.”

역시 믿을 건 케이뿐.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

※ ※ ※

중국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

지금도 침식의 기운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남은 침식지는 딱 동물원 면적만큼.

무기 대신 촬영용 카메라를 든 플레이어 한 명이 연신 멘트를 치며 중국 공격대를 비추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륜입니다. 오늘도 자랑스러운 중화의 플레이어들이 침식지도 진입하고 있습니다. 저 마륜도 이들과 함께하면서 공략 실황을 여러분께 생방송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마륜이란 남자는 각성 플레이어.

각성할 때부터 그는 방송인이었다.

동물원으로 진입하는 300명의 중화 각성 플레이어.

이 숫자로도 충분하다.

가장 강력한 몬스터인 변이 코끼리?

전방에서 쉴드 스킬과 아이템이 있는 탱커 역할 플레이어 몇 명이 주의를 끌고 딜러들이 하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쉽게 잡는다.

“변이 코끼리가 무너졌습니다. 모두 환호해주십시오! 중화 각성 플레이어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침식의 기운이 매우 옅어졌기 때문에 처음의 그 기세등등하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변이 동물들.

“또 쓰러집니다!!! 파죽지세란 말이 어울리겠네요.”

솔직히 쉽다.

그래서 공격 대장 덩팡취는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잘 잡히는 것만 신경 썼다.

한 번씩 마이크로 명령도 내리면서.

“집중해! 단독 행동은 금물이다. 괜히 방송 의식하려 하지 말고.”

사실 제일 의식하는 사람이 바로 덩팡취.

전 중국인들이 보고 있는 생방송이다.

시청률이 얼마인가?

중국 각성 플레이어는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많지만 누구나 다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 공격대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속칭 빽이 있어야 하고, 출신 성분도 확실해야 한다.

공격대가 동물원 중앙 연못 주변에 멈췄다.

“잠시 대기! 여기서 휴식하고 진행한다.”

플레이어들이 개인 정비에 들어가자 마륜이 재빨리 다가와 덩팡취와 인터뷰를 했다.

“어떻게 보십니까? 언제쯤 동물원이 정상화될는지?”

덩팡취는 카메라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이 속도라면 일주일 안에 끝날 겁니다. ···으음.”

그런데 인터뷰하다 말고 눈살을 찌푸리는 덩팡취.

거슬리는 무언가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미소를 지으며.

“제가 지휘하는 중화의 공격대 각성 플레이어들이 지금도 열심히···,”

여전히 거슬린다.

“···여러분들도 봐오셨듯이 우린 강합니다. 동물원에 진입한 각성 플레이어는 극히 일부일 뿐이고 이보다 더 많은 영웅이···,”

도저히 못 참겠다.

“···잠깐!”

덩팡취의 눈에 들어온 공격대원 하나, 연못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은 돌발 행동이었다.

“어이! 쑤레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쑤레이라 불린 각성 플레이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야!”

휘리릿!

덩팡취를 무시하고 제비처럼 날아가 연못 중앙 작은 인공섬에 도착한 쑤레이, 그리고 등에 멘 기다란 상자에서 깃발이 달린 금속 작대기 하나를 꺼냈다.

“내가 개인행동은 금물···,”

순간!

쑤레이는 서슴없이 작대기를 인공섬에 꽂아버렸다.

푸욱!

그러자 연못으로 퍼져나가는 불길한 기운.

우우우우우웅!

“···어? 이, 이거?”

“뭐, 뭐지?”

“무슨···.”

공격대원들은 당황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덩팡취도 마찬가지.

“쑤레이!!! 너 혹시···?”

휘릿!

갑자기 커다란 대도를 든 쑤레이가 인공섬에서 날아왔다.

깜짝 놀라는 덩팡취.

“허억!”

번쩍!

대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위에서 밑으로 그어졌다.

서거거거걱!

덩팡취의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붉은 선이 그어졌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읊조리는 쑤레이.

“내 이름은 왜 자꾸 불러대는 거야? 귀 따갑게.”

잠시 후,

쩌어억!

덩팡취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으, 어, 아아아···.”

방송인 각성 플레이어 마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공격대장이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그 장면은 여과 없이 생방으로 송출됐고.

쑤레이는 싸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멍청한 놈들, 뭐? 중화의 각성 플레이어들이 침식을 정화했다고? 자! 그럼 어디 해봐! 내가 있는 데서.”

중국 각성 플레이어들도 바보가 아니다.

쑤레이의 정체.

“···사도.”

“변절자 새끼가!”

“괜찮아, 저놈 하나뿐이야.”

“그래,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무기와 장비를 꺼내 드는 중화의 공격대.

하지만 쑤레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히죽 웃으며,

“병신들.”

순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 연못.

동시에,

퐁! 퐁퐁! 포포포퐁! 퐁퐁퐁퐁퐁!

비눗방울처럼 연못 위로 떠 오르는 희한한 물체들.

셀 수도 없었다.

100? 200? 아니 최소 500.

쑤레이는 당황하는 플레이어들을 조롱했다.

“뭔지 알지? 침식된 물의 정령들이야. 너희들도 게임 속에서 잡아봤을 테고, 근데 쉽지는 않을 거다. 게임과 지구는 다르지. 너흰 반쪽짜리잖아. 빌어먹을 반영률의 적용을 받는···, 킬킬킬.”

대도를 번쩍 든 쑤레이, 판결을 내리듯 각성 플레이어를 칼로 가리켰다.

“너희들은 여기서 죽는다. 모조리! 온전한 힘을 가지고 나타난 정령의 힘에 의해서!”

포퐁! 포포퐁!

이 와중에도 계속 물에서 솟아오르는 침식된 물의 정령들.

츠츠츠츠츠츠!

정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아직 남아있던 변이 동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하자.

“아, 으어,”

“뭐, 뭐야?”

“···이건 아니야.”

“나,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삽시간에 와해되는 공격대 진형.

한사람이 이탈했다.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

그 옆 사람도, 옆옆 사람도.

급기야!

우르르르르,

“으아아아아!”

“살려줘!”

“비, 비켜!!!”

싸워보기도 전에 위대한 중화 각성 플레이어 공격대는 지리멸렬, 무너지고 말았다.

쏟아지는 물의 화살.

변이 동물에 짓밟히는 플레이어.

방송인 각성 플레이어 마륜도 도망쳤다.

그래도 직업의식은 살아있는 듯 카메라는 절대 끄지 않았고.

쑤레이는 낄낄대면서 도망가는 플레이어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서걱! 푸욱!

“끄아악!”

“케엑···,”

아비규환, 난장판, 저항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국 공격대.

“낄낄낄, 겁쟁이 새끼들···, ”

그때였다.

팟팟팟팟!

쐐애애액!

저 위에서 들리는 굉음.

“···뭐, 뭐야?”

쑤레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하늘에서 새하얀 물체가 별똥별처럼 날아오더니.

콰콰콰콰콰콰콰!!!

연못 속으로 내리꽂히는 모습을.

“크억!”

사방으로 비산되는 물방울.

폭탄이라도 터졌나?

얼마나 위력이 강한지 연못 밑바닥이 드러날 정도.

그로 인해 연못에 있던 침식 정령들이 절반 이상 사라졌다.

“이게 무슨···,”

그제서야 당황한 표정의 사도, 쑤레이.

대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뭐길래?

진짜 운석?

하필 여기에?

정령들이 터지면서 물방울이 안개로 자욱한 연못.

그리고 보였다.

하반신이 물에 잠긴 채, 양손에 쌍도끼를 들고 연못 중앙에 서 있는 누군가를.

‘도, 도끼?’

연못과 도끼라면···, 산신령?

금도끼 은도끼인가?

그럴 리 있나.

도끼라면 분명 그자다.

‘···케이.’

쑤레이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저놈이 왜 여길?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츠피리릿!

시퍼런 도끼가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짓쳐들어왔다.

“이런!”

쑤레이가 대도를 들고 막았지만.

서걱!

콰직!

도끼는 이미 자신의 머리, 미간에 정확하게 박혀버린 뒤.

“끅!”

짤막한 비명 한 마디만 남기고,

프스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쑤레이.

찬웅은 인공섬으로 올라갔다.

이 지긋지긋한 안테나.

혹시 몰라 한국에 가려다 잠시 들러봤는데,

“캬악!”

“포롱!”

“크러렁!”

그런 찬웅을 향해 침식 정령과 변이 동물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섬에 꽂힌 안테나, 예전엔 그냥 없애버렸지만.

‘이게 침식지를 만들어낸단 말이지?’

침식의 기운을 퍼뜨리는 매개체.

‘그 반대도 가능할 수도,’

이를테면 안테나를 이용해 포스를 퍼뜨리게 할 수 있다면?

힘의 역전, 침식이 아닌 포스.

‘해보면 돼.’

찬웅은 안테나를 손으로 잡았다.

천천히 힘을 주입하면서···.

찌직,

갈라지는 깃대의 표면.

너무 힘이 강했나 보다.

그 와중에도 찬웅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들.

스웅,

자동으로 발현되는 쉴드.

얘들한테 맞으면 아프기나 할까?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고.

‘조금만 더.’

찌직, 찌지지직!

포스의 기운이 안테나로 흘러 들어갔다.

이미 침식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채운 충만한 포스.

찌이이이이잉.

드래곤 하트 흡수율 30%

물론 반영률로 인해 실제로는 20% 정도지만···.

찌이이이잉···.

안테나 금속 막대가 새하얗게 변했다.

포스가 들어간다.

계속 쭉쭉 주입됐다.

찬웅은 자신이 가진 모든 포스를 고스란히 밀어 넣었다.

LED 전구보다 더 선명하게 빛나는 막대.

급기야!

파아아아아앗!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막대기.

동시에 인공섬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강력한 포스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밧!

그 위력에 터져나가는 침식된 정령들.

파동에 접촉되자마자 터진다.

팟! 파파파팟! 팟팟팟팟!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변이 동물들도 마찬가지.

푸슥, 푸스슥.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찬웅을 짓밟으려고 발을 치켜든 모습 그대로,

프스스스스스···.

강렬한 포스의 파동에 의해 가루로 변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포스는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동물원 전체로.

포스,

침식의 기운과 상극인 기운.

시스템, 주신이 부여한 신력의 힘이 섞인 포스.

희한하지만 여기 지구에서도 신력은 유효했다.

게임 안에선 정화의 빛기둥.

지구에선 정화의 포스 대파동.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방송인 각성 플레이어 마륜에 의해 그대로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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