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47화 (147/204)

< 변절자를 위한 세상은 없다(1) >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엔 일명 ‘전설급 NPC’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있다.

물론 거의 죽었다.

그래서 전설이고.

하지만 그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전설급 NPC가 딱 둘이 있다.

한 명은 로그드라실 엘프 장로 에루인, 다른 하나는 마키나 공화국 뉴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소 최고 선임 연구원 데우스칩.

둘 다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많다.

엘프에 꽂힌 덕후들은 에루인 얼굴 한번 보는 걸 게임의 목표로 삼고, 실제 현실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잠시나마 데우스칩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소원.

로봇처럼 생긴 골렘이 데우스칩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미국 과학자들은 야단법석이 났다.

“저, 싸, 싸인 한 번만.”

“싸인? 못 해줄 것 없지.”

“오! 여기 옷에다가.”

“100만 원.”

“네?”

“100만 원만 내. 그럼 자네 옷에 체력증가 마법 문양과 싸인을 그려주지.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드, 드리겠습니다.”

체력증가 마법 문양에 100만 원이면 거저.

물론 영구적이진 않다.

며칠 못 가서 지워진다.

“맨몸에다 직접 그려주면 안 됩니까?”

“자네 몸에 땀은 안 흐르나? 하루도 못 갈걸?”

“그럼 무, 문신으로.”

“마정석 가루를 일반인 몸 안에다 박는다고? 각성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뒈지고 싶어 환장했군.”

“···그냥 옷에다가.”

“100만 원, 선입금이야.”

“현금이 없는데요.”

“내가 계좌번호를 쏴주지. 여기로 보내게. 예금자명 대우석.”

바짝 오른 돈독이야 둘째치고,

정말 데우스칩이 맞나?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마이클 피트는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최기병의 표정부터 살폈다.

너무나도 태연하다.

그렇다면?

“어음, 저어, 마, 맞습니까? 게임 속 NPC가 밖으로 나왔다고요?”

데우스칩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는 최기병.

“왜요? 진(眞) 아이템은 인정하면서도 진(眞) NPC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혼만.”

마이클 피트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까?”

“저도 몰라요. 다만 케이가 데려왔다는 거 말고는.”

“그렇군요. 뭐, 케이 하나로 설명이 되네요. 하긴 군주들도 나오는 판에 NPC라고 못 나올 이유가···, 근데 생각보다 물욕이 많은 영혼인가 봅니다.”

“여기서 살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 데우스칩이 제게 처음 한 요구가 주민 번호와 은행 계좌를 생성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

천재긴 천재인가보다.

오자마자 뭐가 중요한지 단번에 아는 걸 보면.

“우리 미국 과학자들도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100만 원만 내면.”

“오! ”

“그리고 이거···,”

“뭡니까?”

“가격표입니다.”

최기병이 건네준 종이.

이렇게 쓰여있었다.

- 각종 마법 문양 주문 제작.

- 무기, 방패, 방어구 일체.

- 문양 종류와 개수에 따라 개별 요금 책정.

- 하급 마법 문양 개당 5억

(EX : 절삭력, 내구도 강화 등)

- 중급 마법 문양 개당 10억

(EX : 쉴드, 원소 속성 부여 등)

- 상급 마법 문양 개당 30억

(EX : 데미지 반사, 공속 상승 등)

- 그 외 기술 양도 가능. 로열티 있음.

“진(眞)이 아닌 지구에서 만든 무기를 가져와도 문양을 새겨주겠답니다. 각성 플레이어에 한해서.”

“···.”

비록 가격이 비싸지만, 변변한 진(眞) 아이템 무기나 장비조차 없는 각성 플레이어들은 혹할 수밖에 없다.

지구에 마도 공학이 퍼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 그러나 침식의 위협이 코앞에 닥쳤다.

공략을 위한 장비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마도 공학의 대가가 직접 해주는 마법 인챈트, 누가 마다할까?

그래도 남아있는 의문점.

“처음부터 이렇게 장사만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야 이득이지만 왜 굳이 마도 공학 이론 강의를 하시겠다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알려주지 않고 독점만 해도···.”

바로 그때!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찬웅이었다.

반색하면서 악수를 청해오는 마이클 피트.

“현실에서 뵙는 건 처음이죠? 케이, 아니 미스터 강.”

“네, 그러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마이클.”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데우스칩을 케이님이 데려오신 거 맞는지.”

“우연이 겹치긴 했지만, 제가 데려온 건 맞습니다.”

“그럼 왜 공개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케이님이 데우스칩을 설득해서 마도 공학이라는 어마어마한 기술을 독점한다면 세상 돈을 다 쓸어 담을 텐데.”

찬웅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자신이라고 왜 돈을 벌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마도 공학 기술은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발전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침식에, 빌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마도공학이 필요하죠.”

“그래도···.”

“돈이야 데우스칩은 수강료와 마법 문양 팔아서 벌면 되고, 전 진(眞) 마정석 공급해서 벌면 되니까.”

“아!”

결국 지구에서 마도 공학이 발전하면 마정석의 수요가 늘어난다. 어차피 마정석은 케이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흠, 진(眞) 마정석은 현재 점검 중이라 채굴이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리고 앞으로 마도 공학 기술이 널리 퍼지면 물량 공급도 여의치 않을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네? 어떻게···,”

순간!

띠링,

울리는 메시지 음.

[엘리] : 5분 후, 지정하신 위치로 전송될 겁니다. 주인님과 의논한 결과 양을 넉넉하게 보냈어요. 수백 년 동안 물 쓰듯 써도 줄어들지 않을 만큼.

마침 잘 됐다.

찬웅은 최기병과 마이클 피트를 보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어딜···,”

찬웅이 건물 밖을 나서자 따라오는 최기병과 마이클 피트

도착한 곳은 APS 접속 센터로 진(眞) 아이템 택배가 도착하는 장소.

“여긴 왜?”

“잠시만···,”

슈슛!

갑자기 나타난 택배 상자.

그 위에 쓰여 있는 찬웅의 아바타 명.

상자 재질은 종이가 아니라 철제 제품이었다.

“그건···.”

“마정석 보관 창고로 갑시다.”

“이거 설마?”

잔뜩 상기된 표정의 최기병.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굴리는 마이클 피트.

창고는 임시로 지어진 가건물이었다.

웬만한 물류창고만큼 커다란.

크기에 비해 보관된 물건의 양은 극히 적었다.

저쪽 한켠에 기존 채굴한 마정석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지만 창고 전체로 보면 텅 비었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

“부을까요?”

“네네.”

후두두두두둑!

진(眞) 마정석이 쏟아진다.

계속 쏟아진다.

거대한 창고의 절반이 마정석으로 메워질 정도.

그 광경을 처음 보는 마이클 피트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지경, 이렇게 많다고?

최기병도 놀란 건 마찬가지, 아공간 상자에서 마정석 쏟아지는 거야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지만 그전과 확연하게 다른 양.

“차, 창고가 꽉 차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스슷!

찬웅은 마정석 박스를 인벤토리에다 집어넣었다.

“모자라면 말만 하세요. 언제든지 부어줄 테니까.”

꿀꺽.

최기병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마정석 판매 수익의 70%가 찬웅의 몫이고, APS와 정부는 30%만 먹는다지만, 30%라고 해도 이 정도 양이면 돈이 얼마인가?

나쁜 마음 먹고 캐리어 가방 몇 개에 가득 담아 뒤로 빼돌려도 티도 나지 않을 양, 물론 최기병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죽으려고 환장한 것도 아니고.

“참! 마침 두 분이 함께 모였으니까, 제가 말해 드릴 것이 있는데.”

“네, 듣겠습니다.”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는 곧 정화될 겁니다.”

“···네?”

“뭐, 뭐라고요?”

찬웅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부연설명했다.

“제가 어쩌다가 침식의 근원을 제거해서···, 그냥 남겨두려고 했는데, 하지만 게임처럼 금방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튼 정화된 건 확실하니까.”

갑자기?

뭐지?

대체 이 사람은···.

어쩌다가 올드팩토리 정화하고, 어쩌다가 데우스칩 데려오고, 어쩌다가 중국 침식지까지 정화했단다.

어쩌다가 세상까지 구하려고?

“아무튼 제가 영상 하나 보내드릴 테니까 참고해주세요.”

“영상이라면?”

“원래 작전할 때는 바디캠이 필수 아닙니까? 그리고···,”

찬웅은 마이클 피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 네?”

“군대를 침식지로 밀어 넣은 놈, 그렇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책임자.”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마이클.

“당연하죠. 찾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찾고 있고요.”

“꼭 제게 알려주시길.”

꼭 제거해야 한다.

오히려 침식지보다, 군주 NPC보다, 숨어서 등 뒤에 칼을 꽂는 인간이 더 무섭다.

※ ※ ※

중국 침식지 출현과 사도 빌런들의 테러.

사람들이 그 두 사건을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재해처럼 일어난 사건들.

상상이나 했을까?

└ 씨발, 그럼 이게 다 게임 때문이야. 게임만 없었어도···,

└ 게리 스탁턴, 그 새끼 잡아다가 족쳐야 해.

└ 예전에 행방불명됐던 사람을 어떻게 잡는다고,

└ 게임부터 중단시켜야지.

└ 어차피 점검 중이야.

└ 점검이 끝나도! 캡슐 압수하고, 전기 끊고, 인터넷도 자르고.

└ 이미 늦었어. 게임을 닫아버리면 각성 플레이어는? 앞으로 침식지 해결할 수 있는 자들은 걔들 뿐인데.

양날의 검이 되어버린 가상현실 게임.

침식이 게임과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이제 와서 중단할 수도,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 하지만 게임 때문에 얻은 것도 많긴 하지.

└ 맞아. 애초에 게임이 지구를 침식하려 했으면 각성 플레이어들은 왜 만들었겠어? 진(眞) 아이템도.

└ 게임은 예방 주사였을 가능성이 높아.

└ 그건 또 무슨 말?

└ 지구에 침식이 나타날 것이 미리 예정된 수순이었다면 게임을 통해 인간에게 경고하고 대비하게 하는 목적?

└ 오! 그럴싸한데!

└ 그나저나 게임 마렵다. 빨리 서버가 열렸으면···.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두 까발려져 버린 사도 플레이어, 그리고 게임 속 NPC 침식지 보스 군주.

일반인들에겐 사도 빌런들의 존재가 침식지 출현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 침식지보다 그 변절자 새끼들이 제일 문제야.

└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알아.

└ 으스스하다. 길 가다 마주쳤을 수도 있잖아.

└ 솔직히 난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어떻게 인간이 게임 속 NPC에게 복종을 하지?

└ 진(眞) 아이템이 출현했을 때부터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었어?

그랬다.

비상식의 시대가 도래했다.

게임과 현실의 섞임.

원인도 모르고 그 여파로 빚어지게 될 결과도 예측이 안 된다.

└ 그런데 중국 베이징 침식지는 왜 그렇게 힘이 빠졌대? 1차 확장 때만큼 줄었잖아.

└ 혹시 케이?

└ 으흠, 아무 말 없던데, 공략할 거면 같이 하자고 했겠지.

└ 착각하지 마라. 여긴 현실이다. 게임이 아니야. 각성 플레이어 숫자가 몇 명이나 된다고, 게임 안에서처럼 3백만씩 막 동원할 수 없어.

└ 그럼 핵미사일이라도 쐈나?

└ 베이징에? 중국이 잘도 그랬겠다.

확실히 중국 침식지 영역이 눈에 띄게 좁혀지고 있었다.

힘을 잃어가는 침식지.

그제야 중국의 각성 플레이어들이 공략에 투입됐다.

중국이 관영 방송들은 하루 종일 떠들어댔다.

위대한 중화의 각성 플레이어들이 침식지를 밀어내고 있다고.

자화자찬 수준이 낯뜨거울 정도.

그 와중에도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은 중국을 주목하고 있었다.

중국 상황을 보고 받는 CIA 국장 윌 제리코.

마이클 피트가 보내준 동영상을 보며,

“허허허,”

하도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나온다.

침식지 안에서 탱크가 움직이는 건 둘째치고,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어? 그것도 서울에다가?

영상에 녹음된 사도들의 대화.

번역본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조리 알 수 있었다.

- 어후, 하필이면 미사일 발사 보직 군인이 죽어버려서 고생했네.

- 그래도 케이가 있는 APS 본부 좌표는 이미 입력되어 있더라고.

- 이거 한방이면 케이가 죽겠지?

- 전술 핵무기야. 그 지역 일대가 전부 소멸할 걸. 케이라고 당할 재간이 있겠어?

- 케이가 사라지면 우리 세상이지.

모골이 송연하다.

한국에 핵이 터질 뻔했다.

대체 누가 군대를 사도 빌런들에게 헌납했나?

그놈은 변절자.

인류의 반역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신원은 파악했나?”

“일단 중국 주석은 배제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으니까요. 아마도 현혹되었을 가능성도.”

“그럼?”

“명령체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군사위원회 참모부장 허진량, 이놈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리고 북부전구 중장 하오위동도.”

“지금 허진량의 위치는?”

“중국 텐진입니다.”

“좋아. 놈의 위치 확실하게 파악해서 한국 APS에 넘겨.”

“네.”

CIA의 정보는 최기병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그리고,

찬웅의 유령마 부키가 중국을 향해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중국의 대도시, 텐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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