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2) >
중국 베이징의 비극, 전체 도시 면적의 절반 정도가 침식당한 초유의 사태, 그 혼란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침식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했던 군대마저 먹혀버렸다.
침식이 일어나자마자 국무원에 상주하던 중국 지도부는 황급하게 베이징 밖으로 도망갔다.
그 뒤를 이은 시민들의 탈출행렬.
도시가 텅 비자 곳곳에서 일어나는 약탈과 범죄.
하지만 세계는 베이징의 비극을 애도할 겨를이 없었다.
자기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으니까.
각국 수도의 습격.
보통 의회나 행정부가 타깃이 되었기 때문에 혼란은 배가 되었다.
경찰과 군병력, 각성 플레이어들이 출동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터라 신속한 대처와 사후 처리가 매우 어려운 판국.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임시회 도중에 일어난 국회 의사당 학살 사건, 여야 합쳐 무려 114명의 국회의원이 사망했다.
그로 인해 국회의 기능은 마비되고 말았고.
너무나도 큰 충격.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코앞에 닥친 섬뜩한 위협을.
이런 걸 노렸을까?
분명 핵심은 중국 베이징 침식지.
그러나 전 세계 각성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베이징 침식지를 정화하려고 서로 합심한다면?
이것이 바로 동시에 사도 빌런들을 움직여 각국 수도를 습격한 이유일 터, 각성 플레이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다.
찬웅과 최기병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제공한 정보와 영상을 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일단 확장은 완전히 멈췄습니다.”
더 이상 넓어지진 않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 침식지 안에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었고요.”
“그렇죠. 침식지가 나타나고 나서 불과 몇 시간 만에 군대가 출동했으니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적인 느낌이···,”
“맞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침식이 발발하기 전에, 가까운 곳에 군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그것도 수만의 병력과 전차, 자주포, 미사일 발사차량, 헬기와 드론 등등, 중국의 최정예 부대들로.
“마치 침식지로 군대를 밀어 넣은 느낌이 드는데.”
작전 당시에도 병력을 침식지에 너무 가까이 붙였다. 그리하여 빠른 속도로 침식지가 확장되자 피하지 못하고 먹혔고.
불안한 목소리의 최기병.
“그, 그럼 설마···.”
찬웅이 못을 박듯 단호하게 말했다.
“확실해요. 사도, 중국 인민해방군 수뇌부, 혹은 고위 정치권 내부에 사도 플레이어가 있을 겁니다.”
추측이지만 근거는 충분하지 않나?
“제기랄, 갖다 바쳤군요. 군대를 고스란히.”
“정황이 그렇습니다.”
“이제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는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네요. 현대 화기를 보유한 침식지 몬스터라니. 하아, 생각만 해도.”
어떻게 보면 게임 속 침식지보다 더 위험하다.
“대체 왜 그놈들은 인류의 배신자를 자처하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
찬웅은 왜 그런지 알고 있다.
현혹이나 매혹 마법 탓도 있지만 영생을 약속받았겠지.
또 이번 침식지 사태와 수도 습격 사건엔 레지키쓰론의 사도들만 참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긴급 점검하기 전 엘리에게 들었던 말.
군주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쫄따구들인 사도들도 소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시스템이 갑작스럽게 긴급 점검을 결정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아마 현실의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버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으로 언제 떠나실 예정입니까?”
“조만간에, 준비되면 갑니다.”
“그럼 긴급 점검이 곧 끝나겠네요.”
최기병은 찬웅이 중국 베이징 동물원 침식지를 공략할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가 아니면 누가 하나?
하지만 찬웅의 생각은 다르다.
“아뇨. 긴급 점검은 생각보다 길어질 겁니다. 그러니 그걸 감안하고 플랜을 세우세요.”
“네? 무, 무슨?”
“어차피 중국의 침식은 고착화됐습니다. 당분간 더 넓어지진 않을 거고. 급하게 정화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그렇긴 한데.”
찬웅의 말에 최기병은 어리둥절 고개를 갸웃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지만 결국 일어났습니다. 되돌릴 수 없죠. 지금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침식지를 대할 필요가 있어요.”
“다른 방식이라니 어떤···,”
“연구, 침식의 정체에 대해서.”
“···으음.”
원래 침식은 게임 속 현상.
그러나 NPC들은 연구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다.
침식에 닿기만 해도 오염되어 버리니까.
“지구엔 침식에 면역인 각성 플레이어들이 존재합니다. 덕분에 침식을 통제하고 연구할 능력이 있죠.”
“아!”
그제야 최기병은 찬웅의 말이 이해가 간다.
침식지가 위험한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벌써 터져버렸다.
드러난 위협은 위협이 아니다.
지금이 바로 기회.
침식 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지구가 가진 과학 문명 자산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미국에도 연락하세요. 같이 연구하자고.”
“···어, 그럼 데우스칩의 존재가.”
“괜찮습니다. 당사자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지금 데우스칩 뭐 하고 있죠?”
“죽은 사도의 시체에 새겨진 문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부 구치소 사건을 일으켰던 일본인 여성의 몸도.”
소멸시키지 않길 잘했네.
아무튼 결정했다.
침식 정화는 잠시 보류한다.
‘슬슬 중국으로 갔다 올까?’
연구하려면 샘플 자료가 있어야지.
침식 시료 채취.
게임 안에선 쓸모가 없던 일이다.
마법사나 마공학자들에게 시료를 가지고 가면 뭘 하나?
기겁하고 도망갈 텐데.
그리고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
게임 안에서 샘플 채취해서 뭘 해?
게임 안에 성분 분석기가 있을 리도 없고, DNA 검사도 못 하고.
‘결국 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현실뿐만 아니라 게임 안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데우스칩이 있으니까.
그가 지구에서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마공학 연구소로 돌아가면?
함께 대응하고 함께 발전한다.
그게 맞는 길이다.
※ ※ ※
펄럭펄럭, 쐐애애애액!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하면서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는 찬웅와 유령마 부키.
“넌 지구에서도 침식지에 못 들어가냐?”
“히이이잉···,”
못 들어간단다.
약해빠진 말 새끼.
유령마라는 놈이 침식을 무서워해서야.
언제쯤 침식지를 누비며 함께 싸울 수 있을까.
“푸히이이잉!”
그래도 침식이 없는 곳에선 비행기보다 훨씬 좋다.
점점 빨라지고 있는 유령마, 어느덧 베이징에 도착했다.
휘릿!
부키가 침식지와 가까워지자 황급하게 선회했다.
‘여기구나.’
찬웅은 부키를 역소환하고 바람길 산책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파팟!
‘씨발, 지구에서조차 침식지를 보게 될 줄이야.’
기분이 더럽다.
땅 색깔부터가 다르다.
맨흙도, 아스팔트도, 보도블록도 죄다 불길한 녹색 빛.
순간!
“크러러렁.”
등위에 칼날 지느러미가 돋아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크기가 덤프트럭만, 은신막 발현으로 모습을 숨겼기 때문에 놈은 찬웅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저것도 죽이면 코인이나 아이템이 나올까?’
설마 그럴 리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지구에 시스템이 개입했다는 의미니까.
‘저 새끼는 너무 크고.’
찬웅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한번 잡아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니까.
스슷!
인벤토리에서 시료 채취용 용기를 꺼내 침식으로 오염된 흙, 돌과 쇳조각, 풀이나 나뭇잎, 동물원 연못에 있는 물도 퍼담았다.
‘다음은···,’
살아있는 놈들.
동물이 침식되면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벌레 한 마리 잡아가면 좋겠는데.’
그러나 곤충 종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후다다다닥!
‘음?’
방금 지나간 건 뭐지? 개인가?
‘아!’
찾았다.
쥐다.
크기가 대형 개만 하다.
머리가 두 개나 달린 변이 시궁쥐.
팟팟팟! 순간 가속으로 다가가
“슬립!”
픽, 쓰러지는 시궁쥐.
놈을 잡아서 특수 제작한 티타늄 합금 상자에 집어넣고.
‘이 정도면 충분히 수집했나?’
된 것 같다.
모자라면 다시 와서 채취하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저벅저벅.
개인화기를 들고 동물원 주위를 돌아다니는 군인 한 명.
‘···침식?’
사람이다.
침식된 사람.
인간이 침식되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 사망한다.
듀플렉스 대륙에서도 그랬다.
나약한 인간의 육체는 침식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간혹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원래 강하거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력이 남다르거나, 운이 좋거나.
그리하여 침식에서 죽지 않으면?
인간이 몬스터가 되는 것.
테라퓨타 지하 마탑에서 만난 마법사들, 망령의 침식지 데쓰나이트와 리치, 좀비, 보스 크자누이, 인간은 아니지만 스톤포지 광산에서 만난 침식된 드워프···, 또한 사도들도 알고 보면 침식된 인간.
이지를 잃어 망령화 되어버릴 수도 있고, 이성을 가진 채 몬스터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침식되기 전에 했던 행동을 침식된 후에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되돌릴 수 있을까?’
한번 해보자.
팟팟!
찬웅은 침식된 군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스르륵!
은신막을 해제하고 놈의 멱살을 콱! 잡은 후,
“키킥?”
아주 미세한 양의 포스를 천천히 주입.
“캬카카칵!”
침식을 먹어 치우는 찬웅의 포스.
“끼아아아아아···.”
동물원 침식지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렁!”
“쿠오오!”
“캬악!”
몰려오는 몬스터들.
조금만 더.
무작정 죽이는 것보다 살릴 수 있으면 살린다.
하지만,
파사사사사···.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군인의 육체.
‘쯧!’
안되는구나.
팟팟팟팟!
찬웅은 빠르게 침식지를 벗어났다.
목적은 달성했다.
※ ※ ※
다시 부키를 타고 찬웅은 과천 APS 본부에 도착했다.
철저하게 통제된 연구실에서 최기병을 만나 샘플을 건네주고.
“절대 일반인은 접촉하면 안 됩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성 플레이어가 시료를 다룰 겁니다. 과학자들은 모니터를 통해 심험에 필요한 지시를 내릴 거고요.”
실험에 참가하는 건 한국 과학자들뿐이 아니다.
전 세계 진(眞) 아이템 연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국가가 미국.
“마이클 피트가 미국 측 과학자와 각성 플레이어를 데리고 과천에 왔습니다.”
“그래요?”
“유럽 국가들도 참가 의사를 밝혔고요.”
그럼 전 세계가 알게 되겠네.
데우스칩의 존재를.
뭐, 당사자가 괜찮다고 했으니,
갑자기,
띠링!
울리는 스마트폰 메시지 알림음.
확인해보니.
[엘리] : 저예요. 안 바쁘면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저 APS 접속 센터 정원 벤치에 있어요.
엘리?
설마 개발자 엘리?
요정 모습 그대로 왔을 리는 없겠고.
찬웅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벤치에 앉아서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서양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네.’
보자마자 알았다.
젊다. 미모와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걸친 옷과 들고 있는 가방, 구두까지 죄다 명품, 그녀도 본색이 NPC였을 텐데, 지구에 제대로 적응한 모양.
“엘리?”
“네, 저예요.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이죠?”
“왜 왔습니까? 전엔 만나자고 해도 빼더니.”
“으음, 그게···, 침식지는 언제 공략할 예정인지, 베이징요.”
앓는 소리로 찬웅에게 말하는 엘리.
“이러면 긴급 점검 기간이 길어져요. 빨리 현실의 침식지를 정화해야 다시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어서···.”
역시 용건은 침식지 정화.
“후우, 그건 제가 알아서 할거고, ···혹시 그건 알고 계시나?”
“뭐, 뭘요?”
“데우스칩이 바깥으로 나온 거?”
“에?”
엘리는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멍하니 침묵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물었다.
“···네? 데, 데우스칩? 정말요?”
“지금 저 안에 있어요. 어떻게 나왔냐 하면 올드팩토리 정화하고 진(眞) 골렘을 발견했는데···,”
찬웅의 설명에 엘리는 입만 헤벌렸다.
사실 어떻게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오는 방법이야 수십 가지.
그러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데우스칩은 이쪽 시스템, 즉 주신(主神)의 관할 하에 있는···.
“아!”
탄성을 터뜨리는 엘리.
‘그렇구나.’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데우스칩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걸 시스템이 허락했다.
그렇다는 말은?
‘마도 공학, 지구에 마도 공학이 퍼질 거야.’
동시에 지구의 과학은 게임 속으로 스며들 것이고.
‘시스템이 드디어 칼을 빼 들었어.’
각성 플레이어를 늘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강력한 개입.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릴 건 없어요?”
“뭐, 딱히···, 아! 하나가 있긴 하네.”
“말씀만 하세요.”
“진(眞) 마정석.”
“네?”
“점검 동안 게임 접속 불가라 채굴을 못 해서, 앞으로 들어갈 곳이 많을 것 같거든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스템의 의도에도 부합하고.
“택배로 드릴게요.”
“양은?”
“얼마나 필요하세요?”
“많이. 인심 좀 써봐요.”
“알겠어요. 100년을 써대도 남을 만큼 드리죠.”
“오?”
시원시원하다.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부족할까 봐 걱정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