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41화 (141/204)

< 긴급 점검 >

정화된 올드팩토리.

데우스칩의 근황을 전하러 온 찬웅에게 연구원 마리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니, 에고 전이가 밤 동네 산책 다니는 건 줄 아나? 하필 이 바쁜 시국에.”

“곤란한 일이라도 있어요?”

“으음, 사실 딱히, 이참에 눈치 보지 않고 일하게 됐으니 잘됐죠.”

진실과 거짓을 섞었다.

데우스칩이 에고 전이로 다른 몸으로 갈아탔다는 것, 그래서 마키나 공화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연구차 떠났다는 것.

현재 그의 본체 골렘은 올드팩토리 최상층 소장실에 있었다.

당연히 삼엄한 경비 속에 출입 금지지역으로 지정됐고.

혹시라도 본체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저게 그 마법진이구나.’

데우스칩을 지구로 오게 만든 마법진, 그 위에 잠을 자듯 쓰러져 있는 골렘 하나.

“돌아올 걸 대비해서 보존하고 있어요. 알잖아요. 그분 변덕 심한 거.”

“하하하, 그런가요?”

“그나저나 케이씨가 고생이겠어요. 우리 철없는 선임 연구원님 뒷바라지하느라.”

“뭘요. 변동 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드릴게요.”

“넵! 우린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푹 쉬다 오라고 전해주세요.”

하나는 해결했고.

‘카시우스 제국 들렀다가 로그아웃하자.’

허구한 날 노트북만 쳐다보고 있긴 하지만 데우스칩 혼자 놔두고 와서 불안하다.

겉모습은 저래도 학자는 학자.

엄청난 집중력으로 지구 문명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사실 찬웅도 데우스칩이 한낱 프로그램일 뿐이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과학 수준으로 이 정교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는 진짜다.

인간과 다름없는 생명체다.

찬웅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데 그때!

띠링.

친구 메시지 알림음이 울린다.

[플레이어 와치맨이 친구 대화를 요청해왔습니다.]

최기병이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기분이 쎄하다.

‘초대권 때문인가?’

마키나 공화국 올드팩토리 침식지를 공략한 후, 간접적으로 최기병을 통해 무수한 요청을 받았다.

정치권, 국내 대기업 회장들,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 돈이 썩어나가는 대부호들···, 용건은 단 하나, 대신전 초대권에 관한 것.

코인을 줄 테니 팔아라.

부동산이든, 금이든 현물로 교환할 용의도 있다.

차라리 경매에 부쳐라.

그러나 팔 이유가 없다.

이걸로 각성 플레이어 숫자나 늘려야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최팀장에게도 그렇게 말해뒀는데···,’

그럼 다른 문제일까?

백악관에서 알려온 정보가 있었다.

지구에도 침식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출처의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자신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게임과 현실이 뒤섞이고 있는 상황에서, 침식지가 지구에 출현한다는 것이 뭐가 이상할까?

현재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이 보유한 정찰 위성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더불어 정보망도 풀가동하고 있는 중, 혹시라도 있을 지구의 침식지를 찾아내기 위해서.

‘설마 침식지가 나타났다는 정보는 아니겠지?’

침식으로 인해 변이된 자연과 생명체, 그 비슷한 곳이 지구에도 있다면 분명 발견해 낼 것이다.

다만 그곳이 제발 한국만 아니길.

찬웅은 최기병의 친구 대화를 수락했다.

[와치맨] : 케이씨, 바쁘시지 않다면 잠시 대화를,

[케이] : 네, 무슨 일이죠?

[와치맨] : 혹시 올드팩토리 침식지 말고 다른 침식지도 공략하셨는지?

[케이] : 아뇨.

[와치맨] : 흐음.

말썽이 생겼나?

[와치맨] : 그럼 로그드라실 침식지가 정화됐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케이] : 그거야···, 네? 뭐라고요?

뜬금없이?

거기가 왜 정화돼?

[케이] :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와치맨] : 역시 케이님도 모르셨군요. 로그드라실 침식지가 사라졌습니다.

[케이] : 아니, 그게, 왜···, 갑자기.

아닌 밤중에 홍두깨.

[케이] : 전체 공지가 울렸나요?

[와치맨] : 아뇨. 들리지 않았습니다. 게임 속 오류 같습니다만.

황당하다.

원인이 뭘까?

[케이] :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가보죠.

찬웅은 곧바로 대기실로 이동해 로그드라실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화악!

텅 비어있는 로그드라실, 사람도 많지 않다.

소수의 플레이어와 세계수를 지키는 엘프 몇몇을 제외하곤.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어.’

팟팟팟팟!

찬웅은 서둘러 침식지로 향했다.

‘진짜구나.’

그 수많았던 몬스터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 ※ ※

찬웅의 자택.

딸깍, 딸깍, 딸깍,

주인 없는 고요한 방에 마우스 소리와 데우스칩의 혼잣말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흐음, 양자 역학이 이런 거였군. 기존 관념과 확실히 충돌돼.”

진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인슈타인은 가만히 있었나? ···그럼 그렇지 한마디 하긴 했구나.”

딸깍, 딸깍.

데우스칩은 말 그대로 천재.

“우주로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나? 마정석도 확보했다면서···,”

비록 지구의 과학 이론을 생소하지만, 단 며칠 동안 뉴턴의 법칙부터 시작해서 양자 역학까지, 지식들을 마치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무엇보다 데우스칩이 감명을 받은 건 바로.

“이게 제일 놀라워. 노트북 하나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다 볼 수 있다니.”

물론 정보의 신빙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건 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다.

지구의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듀플렉스 대륙보다 더 넓고 인구도 많은데,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을 앉은 자리에서 알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기막힌 인터넷 세상.

“권능이나 다름없어.”

이젠 허리띠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이미 컴퓨터 하나로 영어와 한국어를 불편함 없이 완전하게 마스터한 터라.

“허어, 보면 볼수록···.”

신기한 세상.

모든 정보가 자신의 손안에 있었다.

그 덕분에 알아낸 사실들.

솔직히 처음엔 절망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듀플렉스 대륙이 허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신이 코딩으로 짠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이 실제로 존재했고, 게임 홈페이지엔 대륙의 역사를 게임 시나리오로 기록했다.

또한 플레이어가 침식을 해결하기 위해 신의 인도로 이곳에 온 이방인들이 아니라, 단지 유희를 즐기기 위해 기계장치를 이용해 접속한 지구인이라는 것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은 심정.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심적 고통이 극에 달했다.

그냥 여기서 목숨을 끊고 싶었다.

그러나 컴퓨터 앞에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드디어 결론이 났다.

“내가 살던 세상은 허상이 맞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

안에 있을 땐 몰랐지만 바깥에서 관찰하니 확실해졌다.

“그러나 허상이되 프로그램으로 만든 세상은 절대 아니었어.”

현재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현실처럼 생생한 가상현실 공간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너그럽게 잡아도 오감의 착각을 이용한 VR 정도가 한계.

“웃기는 일이지.”

이건 지구인들도 인정했다.

가상현실 게임 자체가 기적이라고, 현시대에 나올 수 없는 오파츠라고.

“초월적인 힘이 개입한 것이 분명해.”

예를 들어 신의 권능 같은.

따라서 가장 중요한 사실.

“난 진짜야.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적어도 내 영혼만은.”

육체가 없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영혼만은 실재했다.

그거면 된다.

지구인 철학자 데카르트가 했던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더구나 데우스칩에겐 육체마저 없다는 사실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원래 없었으니까.

“그럼···, 이제 즐겨볼까?”

세상 안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지구인들에겐 듀플렉스 대륙이 유희의 대상이자 게임의 공간이지만, 데우스칩에겐 지구가 유희이며 게임.

그런 데우스칩에게 캡슐에 누워 세상에 접속 중인 케이가 눈에 들어왔다.

“고생이 많군.”

혼자서 이 세상 저 세상 왔다 갔다 하느라고.

데우스칩은 케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가 사는 이 집.

내부는 꽤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는데, 방 몇 개와 거실만이 자신의 소유란다.

케이 정도 되는 이라면 이 도시 전체, 아니 세계 전체를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빌라촌 이라는 작은 마을도, 그것도 통째 건물도 아니고, 겨우 이 좁은 방구석만 가졌을 뿐.

“쯧쯧,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서야.”

자신만 해도 마키나 뉴팩토리 전체가 자신의 소유.

이참에 올드팩토리 땅을 케이의 명의로 돌려놓자.

또한 여기 지구에서도,

“내가 도와줄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마도 공학의 냄새나 슬쩍 풍겨 줄까?

문양 몇 개만 풀어도 충분하다.

※ ※ ※

찬웅은 빠르게 침식지를 질주했다.

이곳이 정화됐다는 말은 침식의 근원이 소멸했다는 의미.

‘그럼 레지키쓰론이?’

팟팟팟팟!

저기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봉우리에 침식지 중심부가 존재한다.

광룡 레지키쓰론의 레어.

그리고 레어를 지키고 있는 엘프 레인저들.

NPC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발도 디밀지 못했을 텐데.

정화되었으니 당연한 이치.

“오셨군요. 케이님!”

“에루인 장로님은 어디 계시죠?”

“레어 안에 계세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레어 안으로 들어가니.

“어어, 거기 밟지 마! 벽쪽으로 붙어서 바람길 산책으로 들어와.”

“네.”

거대한 초록 도마뱀의 시체와 심각한 표정의 에루인, 레인저 스마엘.

“무슨 일이죠?”

“난들 알겠어? 갑자기 침식지가 사라져서 왔더니, 이 새끼가 죽어있네?”

“진짜 죽은 거 맞습니까?”

“보시다시피.”

“···.”

어처구니가 없다.

그 무시무시한 레지키쓰론이 시체로?

“드래곤 하트도 사라졌어.”

“···무슨?”

“파괴된 것이 아니야. 누가 빼갔어.”

빼갔다고?

“아마도 이방인들 같은데, 여기 발자국들 좀 봐.”

“아!”

그래서 밟지 말라고 했던 거구나.

“발자국을 조사해보니 여길 드나든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 20명 이상이라 보면 돼.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드래곤 레어를 방문해서 날붙이를 가지고 드래곤 하트를 적출 했어. 여기 상처 보이지?”

그런 것 같다.

인위적인 상처.

그런데 누가?

자신도 감당해내지 못하는 레지키쓰론을 다른 플레이어가 죽였다고?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아뇨, 저도 잘···,”

가만!

레지키쓰론의 레어에 들어올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라,

분명 있긴 하다.

‘사도.’

그들이라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드래곤 하트.’

자신도 복용한 영약,

어디서?

똑같이 레어였다.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레어.

‘설마?’

자신도, 사도들도 플레이어.

‘내가 먹을 수 있다면 사도들도 복용이 가능해.’

레지키쓰론의 드래곤 하트는 골드 드래곤의 그것과 다르다.

오염되고 침식된 드래곤 하트, 모든 침식의 기운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었을 터,

만약 사도 플레이어가 그걸 먹었다면?

그걸 먹고 반영률이 적용된 채 세상에 나타난다면?

‘미친!’

로그드라실 침식지의 비극이 지구에 재현될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 하니?”

“응? 아닙니다.”

“참! 그리고 이걸 봐.”

죽어있는 레지키쓰론의 배 밑을 가리키는 에루인.

“이건?”

“마법진 같아. 너 테라퓨타 마법사들하고 친하지? 이 마법진 조사 의뢰를 부탁하면 좋겠는데.”

레지키쓰론의 육체 아래 새겨진 거대한 마법진.

‘저거 어디서···,’

본 적 있다.

그것도 조금 전에 봤다.

올드팩토리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 최상층, 이전 데우스칩의 골렘이 잠들어있는 작은 방에서.

에고 전이 마법진.

“···이런 씨발!”

“어머, 깜짝이야! 왜 욕을 하고 그래?”

이제야 알 것 같다.

일단 나가서···,

그때였다!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갑자기 전체 공지?

[게임에서 발견된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 현 시간부로 서버 긴급 점검에 들어갑니다.]

전설 속 3대 명검 중 하나라는 긴급 점검이 떠버렸다.

[점검 완료 예정일은 미정이며 빠른 복구를 통해 다시 플레이어 여러분들과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아니, 어쩌자고.’

[10분 후에 서버를 다운합니다.]

[플레이어분들께선 즉시 대기실로 귀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강제 귀환까지 남은 시간, 10, 9, 8, 7···.]

강제 귀환까지?

“저, 스승님.”

“그래, 욕쟁이 제자야.”

“당분간 못 뵐 것 같아서,”

“응? 왜? 그리고 전에는 자주 봤니? 뭘 새삼스럽게.”

“그게···,”

슈슛!

찬웅은 대기실로 귀환했다.

[8분 후에 서버를 다운합니다.]

순간!

왜애애앵! 왱! 왱!

대기실 안에서 들리는 모기 소리.

마침 잘됐다.

설명해줄 존재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케이.]

“안녕할 것 같아요? ”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제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조금만 기다리시면 긴급 점검이 풀려서 접속이 가능해질 거라고···,]

“초록 도마뱀 레지키쓰론 현재 지구에 있죠?”

[이미 알고 계시군요. 그것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드래곤의 영혼이죠.]

그거나 이거나.

하나 더.

“지구에 존재하는 드래곤은 레지키쓰론 하나뿐입니까?”

[···그, 그게.]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은 어디 있어요?”

[다,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질문을 바꾸죠. 이 게임을 만든 게임회사 대표, 게리 스탁턴은? 그가 있는 곳은?”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럼 뭘 대답할 수 있죠? 알고 보면 시스템이 두 개라는 거? 걔들 둘이 싸우고 있는 거?”

[···.]

개발자 엘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뭘 물어봐?

그래도 알려줄 건 알려주고, 해줄 건 해주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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