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서울(2) >
어쩌다 보니 올드팩토리 침식지를 공략해버렸다.
로그아웃한 후, 캡슐에서 일어난 찬웅.
스마트폰을 확인했더니 메시지가 엄청나게 와 있다.
‘어후, 곧 있으면 방전되겠네.’
노트북을 열어 커뮤니티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역시 그곳도 난리가 났다.
<충격! 케이의 올드팩토리 솔로잉>
<혼자 할 거면 왜 굳이 길드를 만들었나?>
<케이님이 천한 플레이어들에게 자비를 베푸사···,>
머쓱하다.
‘알고 보면 혼자 한 거 아닌데.’
자폭 골렘 3기가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공략의 8할은 데우스칩의 몫.
‘지금쯤이면 연구하느라 바쁘겠구나.’
카시우스 제국에 이어 침식지 정화라는 오랜 숙원을 해결해 낸 마키나 공화국, 플레이어들에게도 이익일 터.
이미 파워 스틱 밤이라는 신무기를 만들어 낸 그들이었다. 올드팩토리 정화로 또 얼마나 획기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낼까?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던 침식지였다.
옛날 옛적 마도 공학으로 명성을 드높였던 팩토리, 그 안에 존재했던 유물들이 이젠 햇빛을 보게 된 거나 마찬가지.
순간!
딩동!
울리는 초인종.
바깥으로 나가보니.
‘···무지 크네.’
문 앞에 놓인 냉장고 크기만 한 박스 하나.
찬웅은 박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인간형 골렘이겠지?’
맞다.
그거였다.
게임 속 골렘과 그 모습 그대로.
꺼내서 거실 한쪽에 세워두고,
‘이걸 어떻게 한다?’
생각 같아선 집에서 쓰고 싶지만 대의를 위해선 최기병에게 넘기는 것이 낫다.
로봇 공학자들이 군침을 삼키며 달려들 것이 뻔하다.
‘그전에 살짝 작동시켜 볼까?’
미끈한 몸체의 금속 골렘.
외형은 현재 만들어진 로봇과 다를 바 없다.
실리콘 피부만 붙이면 거의 인간과 흡사할 정도.
‘흐음, 움직이는 방법이···.’
나름 중앙 마공학 명예 연구원.
골렘이 움직이는 원리 정도는 안다,
가슴에 박힌 엔진 코어는 골렘의 운영 체계 역할, 인간에 비유하자면 심장과 뇌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고 보면 된다.
‘동력 에너지는 마정석이고.’
움직이려면 진(眞) 마정석이 필요하다. 그거야 뭐, 인벤토리에 몇 개 가지고 있으니까.
덜컥!
찬웅은 등 뒤에 달린 투입구 뚜껑을 열고, 진(眞) 상급 마정석 몇 개를 집어넣었다.
긴장되는 순간.
작동하려나?
‘···.’
하지만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이거 뭐야?’
설마 고장 난 건가?
하긴! 아무리 지하 창고에 보관됐다고 해도 무려 5백 년이나 지났으니.
“에이!”
밥이나 먹자.
먼저 씻고 난 다음.
찬웅은 몸에 착용한 방어구를 벗어 의류 관리기 안에 걸어 놓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친후, 간단한 속옷 차림으로 나왔다.
“으아, 배고파. 햇반이나 하나 데울까?”
그런데!
‘음?’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달라졌다.
인간형 골렘이 서 있던 위치가 말이다.
이것 봐라?
찬웅은 골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순간!
“dlsha! snrnsi? rkagl skfmf?”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찬웅에게 달려드는 인간형 골렘.
이 새끼 뭐야?
※ ※ ※
에고 전이 마법.
사실 이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의 단련.
테라퓨타 마법사들의 힘을 빌려 환상 마법진으로 가상의 상황과 설정을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수련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아 정체성을 잃지 않게, 언제 어디라도 자신이 데우스칩인 걸 자각할 수 있게, 눈앞에 펼쳐지는 일생의 기록을 곱씹어 전이 과정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기억력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런 준비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이한다면 분명 문제가 생기겠지만···, 데우스칩은 이미 준비된 영혼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에고 전이에도 그의 정신은 더없이 온전했다.
‘···제기랄.’
대응 골렘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전이에 성공했겠지.
‘여긴 어디야?’
누군가의 방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광경, 생소한 물건들,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움직일 수 있나?’
골렘의 품질은 좋다.
골렘은 마키나 공화국의 특산품, 그중에서도 최상위 고급 라인 같은데···,
‘전투용 골렘은 아니군.’
전투 기능을 뺀 대신 일상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게 만든 제품.
우웅,
마력 전달 기능도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능해.’
하지만 지금 막 전이된 터라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면 골렘을 억지로 파괴한다든가.
‘그럼 그동안 상황부터.’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
스윽,
데우스칩은 천천히 한 발자국 뗐다.
‘확실히 인기척이 있어.’
분명 누가 있다.
예기치 못한 사고일까? 아니면 의도된 계획일까?
조심해야 한다.
뜻하지 않은 전이로 인해 전투 능력이 전무한 집사용 골렘에 들어왔다.
‘이곳은 정말···, 보면 볼수록 희한하군.’
처음 보는 곳이다.
낯선 물건들이 이렇게도 많나?
몇몇 물건들은 능히 용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들, 저건 탁자, 저건 의자, 그런데 벽면에 부착된 매끄러운 사각판은 뭘까? 탁자 위에도 비슷한 것이 있고, 그리고 처음 보는 문자판도.
순간!
“으아, 배고파. 햇반이나 하나 데울까?”
누군가 나온다.
재빨리 벽에 붙어 선 데우스칩.
하지만,
“너···,”
들켰다.
할 수 없다.
싸우는 수밖에, 마력은 쓸 수 있으니.
“이놈! 누구냐? 감히 나를!”
찬웅은 황당했다.
갑자기 덤벼?
아이템이?
게다가 말도 한다.
알아듣지도 못 할 말을 말이다.
‘그래도 침식의 기운은 없네.’
제압하고 보자.
콰악!
다행히 힘은 그렇게 세지 않다.
“dlrj shk! dlsha!”
“참나, 고장 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다.
한 손으로 놈을 제압하고, 한 손으론 의류 관리기 문을 열어 시스템과 소통 가능한 허리띠를 꺼내 착용하는 찬웅.
허리띠를 보자마자 놈이 어버버, 하면서 더더욱 몸부림쳤다.
‘이 골렘 뭐라고 하는지 통역할 수 있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듀플렉스 대륙 공용어와 한국어를 상호 번역합니다.]
‘···듀플렉스 대륙 공용어?’
그러자.
“그 허리띠는 어디서 났느냐? 훔쳤나? 이런 찢어 죽일 놈이, 넌 마키나 공화국의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그 옷장 안에 있는 장비들, 인비저블 수트에, 폴리모트 복면, 다 내가 만든 것이다. 네 놈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야!!!”
점점?
골렘 주제에 똑똑한 건지, 아니면 오류가 생긴 건지.
고장 난 제품을 고치는 가장 단순한 방법.
한 대 치면 된다.
껐다 켜도 되고.
“바른대로 말해라! 나 데우스칩의 눈을 속일 수 없어.”
“···어?”
잘못 들었나?
찬웅은 멈칫, 놈의 머리를 때리려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네가, 당신이 데우스칩?”
“그렇다. 마키나 공화국 최고 선임 연구원, 에고 전문 공학자이며 중앙 마공학 연구소를 책임지는···,”
“잠깐! 진짜 데우스칩이 맞다고?”
“망할 놈!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서 골렘들을 이끌고 와서 널 죽여버리겠다.”
“···난 케이인데?”
“···.”
잠시 침묵한 뒤 데우스칩, 아니 데우스칩이라 주장하는 골렘이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클클, 내가 케이의 생김새를 모를까, 그는 너처럼 생기지 않았다. 너보다는 훨씬 잘생긴···,”
당연히 아바타와 실제 얼굴은 다르다.
스윽!
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내는 찬웅.
“헉! 그, 그 도끼는?”
“에루인에게서 받았지. 저 쫄쫄이 수트도,”
“···진짜 케이?”
“정말 데우스칩?”
“허허,”
“하아,”
아무래도 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제법 긴 대화가.
그런데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 ※ ※
결국 다 말해버렸다.
당신이 사는 곳은 게임이다.
어쩔 수 없었다.
NPC가 세상에 나온 판에.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세상, 그래서 NPC들도 코딩으로 이루어진 데이터 조합이라는 것까지.
더불어 진(眞) 아이템, 각성 플레이어, 침식의 기운, 군주, 이런 게임과 현실의 섞임 현상에 대해서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하다.
자신이 살던 세계, 더불어 자아 정체성을 완전하게 부숴버리는 그 기막힌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니까 여기가 자네가 사는 대한민국의 서울이란 곳이고, 난 ···그, 게, 게임 속에서 나온 에, 엔피씨란 말인가?”
“네.”
“···확인이 필요해. 난 아직도 믿지 못하겠네. 자네 말이 정말인지.”
“흐음,”
어떡하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찬웅에게 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다루게 해준다면.’
인터넷,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찾아볼 수 있는 정보의 바다, 백과사전.
하지만 동작 방식이나 언어도 이해하지 못할 텐데.
‘가만!’
방법이 있다.
‘데우스칩도 이 허리띠를 사용할 수 있나?’
[지정된 사용자 말고는 시스템과의 소통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한? 그럼 풀어줘. 데우스칩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무리한 요구였을까?
답변이 없다.
‘부탁이야. 네가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난 그에게 다 알려줄 거야.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잖아.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지.’
계속 묵묵부답.
그러다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지정 사용자 목록에 듀플렉스 대륙주민 데우스칩을 추가합니다.]
됐다.
먼저.
“데우스칩.”
“응?”
“내가 설명하는 것 보다 이쪽이 더 빠를 거예요.”
“뭘···,”
찬웅은 골렘, 데우스칩을 노트북 앞에 앉혔다.
그는 천재다.
곧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곧 사용법을 터득할 터.
그리고 허리띠를 풀어 그에게 채우자.
“어!”
깜짝 놀라는 데우스칩.
“참나, 이건 또 무슨! 내가 만든 허리띠에 어찌 이런 기능이, 불량품인 줄 알았는데.”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시스템과 소통하고 있는 모양.
그리고 이윽고,
딸깍, 타다닥.
데우스칩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여 인터넷 검색 페이지를 실행했다.
검색어는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
대한민국 서울.
노트북 앞에 앉은 가상현실 게임의 NPC, 자신이 나온 세상을 바깥에서 알아보는 모습.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데우스칩의 인터넷 서핑은 오래오래 이어졌다.
정체가 골렘인지라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동안 찬웅은?
꼼짝 말고 자리를 지켰다.
‘참! 올드팩토리 한번 갔다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가서 무사하다고 알려는 줘야지.
※ ※ ※
듀플렉스 대륙.
엘프들의 둥지이자 터전, 세계수가 보호하는 로그드라실.
장로 에루인은 요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연이어 들려오는 대형 침식지 정화 소식.
카시우스 제국에, 변태 데우스칩이 있는 올드팩토리까지.
‘왜 우리는 안 하는 거야?’
그 정도 이방인들을 동원할 능력이 있었으면 제일 먼저 로그드라실로 달려왔어야 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분명 망령의 침식지와 올드팩토리를 우선 정화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 터.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말은 해줬어야 했다.
‘만나면 좀 갈궈야겠네.’
사실 로그드라실도 사정이 괜찮은 편은 아니다.
광룡 레지키쓰론, 어쩌면 침식지 보스 중 가장 강력하다고 정평이 난 존재, 아직 한 번도 본 사람이 없다던 미지의 테라퓨타 침식지 보스 데몬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놈이 데몬보다 무서운 점이라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침식지 바깥으로 튀어나온다는 점, 그나마 세계수 덕분에 막아내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자, 장로님!”
“스마엘, 무슨 일이야?”
“저, 저기, 저어···,”
뭔가에 놀랐는지 대답을 주저하는 레인저 스마엘.
“왜? 광룡 새끼가 쳐들어오기라도 했니?”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침식지가,”
“나참, 답답해 미치겠네. 빨리!”
“치, 침식지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침식지가···, 뭐?”
에루인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에 그저 멀뚱멀뚱 눈만 굴렸다.
“이방인들도 그랬어요. 몬스터가 사라져 사냥도 못 했다면서.”
“···정화된 거야? 케이가 왔다 갔나? 아니, 그럴 리 없잖아. 정화됐다면 주신의 계시가 내렸을 텐데.”
“그러니까요!”
대륙인들이 침식지가 정화됐다는 걸 어떻게 알까?
바로 신의 계시 덕분이다.
주신의 음성이 정화 사실을 직접 말해주신다.
확인해보자.
팟!
빠르게 사라지는 에루인.
팟팟팟!
정신없이 침식지로 달려갔다.
“지, 진짜?”
없다.
그 징글징글한 침식의 기운이 온데간데없다.
팟팟팟팟!
시시때때로 로그드라실을 위협하던 몬스터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람길 산책 순간 가속으로 빠르게 침식의 중심부, 광룡 레지키쓰론의 레어로.
파팟!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
“아!”
그제야 목격했다.
드래곤 레어.
그 중간에 거대하게 몸을 누인 초록색의 거대 생명체를.
“···죽었어?”
그런 것 같다.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흩어져 자연의 품으로 사라져가는 레지키쓰론의 육체.
“세, 세상에!”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물론 놈이 죽어 로그드라실이 정화된 것은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만···.
‘드래곤 하트는?’
죽은 지 얼마 안 됐다.
그렇다면 드래곤 하트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없어.’
드래곤 하트가 있어야 부분이 뻥 뚫려있었다.
침식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가 통째로 사라졌다.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