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39화 (139/204)

< 어쩌다 서울(1) >

침식지였던 올드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소 지하 창고.

굳이 따지자면 ‘유적’ 같은 곳.

한마디로 보물 창고라는 말이다.

하지만 진(眞)이 아니면 찬웅에겐 의미가 없다.

일반 아이템은 모조리 데우스칩에게 넘기는 게 낫지.

‘아이템 정보 확인부터···.’

맛있는 건 나중에.

책장의 책부터 살펴볼까?

제목을 보니 죄다 마공학 관련 논문들이다.

<기초 마공학 개론서>

<골렘의 골격 구조와 미스릴의 상관관계>

<광물 연금술의 기초>

.

.

.

책장 전체를 훑었지만 진(眞) 수식어 책은 없다.

‘예상은 했다.’

현실처럼 생생한, 그래서 무한한 자유도를 자랑하는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에도 몇 가지 제한 사항이 있다.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규제.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NPC 한 명을 붙잡고,

- 여긴 사실 게임 속 세상이다. 넌 그냥 코딩으로 만든 프로그램일 뿐이야.

이렇게 말해도 NPC는 알아듣지 못한다.

자동으로 필터링 되어 아무 의미 없는 헛소리로 인식되도록.

또한 지구의 과학이론,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백날 설명해봐야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이건 반대의 경우에도 유효하다.

플레이어는 마법이나 마도 공학, 연금술 학문 같은 것에 접근하는 건 제한되어 있다.

아니 제한되어 있다기보다 아예 이해를 못 한다.

책을 봐도 읽지를 못하고, NPC의 강의를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데.

예를 들어.

- 마법은 어떻게 배우죠?

- 초승달이 뜬 밤에 연못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빨간색 개구리가 나타나는데, 놈을 잡아서 심문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

플레이어들이 따라서 해봤지만 될 리 만무하고, 강의한 사람에게 따지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발뺌하고.

마법?

스킬 구슬로 먹든지,

아이템?

상인에게서 사든가, 아니면 상자를 까든가.

따라서 현실에서도 게임 속 아이템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려면 진(眞) 아이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현실 밖으로 나온 물건을 지구의 기술로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마법서나 마공학 논문이 진(眞)으로 나오면 괜찮을 텐데.’

책은 됐고.

다음은 아이템.

반대편 벽에 진열된 장비들.

때깔만 봐도 최소 영웅 등급.

그러나 이것도 관건은 진(眞).

게임과 현실이 섞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와 방어구 같은 진(眞) 아이템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다.

하지만.

“···뭐야? 여기도 없어?”

실망이다.

그래도 몇 개는 나와줘야지.

자폭 골렘이 다했지만 자신도 노력했는데.

역시 믿을 건 골렘들밖에 없다.

마키나 공화국 특산품이 뭘까.

바로 골렘 아닌가.

마치 군병력처럼 5열 종대로 길게 늘어선 각종 골렘.

크기 별로 서 있었다.

뒤엣것이 제일 크다.

“전투형 골렘 같은데.”

하지만 죄다 꽝.

“···작업용 골렘도 괜찮고.”

꽝.

“골렘 경비견은? 이게 제일 좋지.”

물론 꽝.

“씨발.”

해도 해도 너무하네.

남은 건 앞줄에 늘어선 인간형 비전투 골렘들.

‘용도가 개인 집사 역할이랬나?’

그냥 허드렛일 전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구도 이런 거 곧 나올 텐데.’

현실도 로봇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물론 골렘하고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이거라도···.’

진(眞)이 없으면 어떡하지?

순간!

“오!”

있다.

진(眞)이다.

[진(眞) 문양이 새겨진 이족보행 인간형 골렘]

[등급 : 영웅]

[종류 : 골렘]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골렘 기능 : 노동력 대체, 섬세한 손기술]

기어코 하나 나왔다.

‘그런데 문양이 새겨졌다는 건 뭐야?’

그냥 매끈한 금속으로만 된 외갑.

문양은 안쪽에 그려졌겠지.

용도는 뭘까?

나중에 분해해서 연구해보면 될 터.

‘아무튼 빈손은 아니네.’

하지만 기분은 별로.

올드팩토리 침식지 정화 보상이 뭐였나?

바로 ‘정화된 올드팩토리’였다.

그런데 고작 이런 골렘으로 퉁친다고?

전투형이면 말도 안 한다.

집사 골렘으로 뭐 하라고.

그래도 만족하자.

무려 골렘 아닌가.

한국의 로봇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터.

스슷.

찬웅은 [진(眞) 문양이 새겨진 이족보행 인간형 골렘]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슈슛!

지하 창고에 나타난 또 하나의 인간형 골렘.

“공작 저하!!! 감축드립니다.”

데우스칩이었다.

침식지가 정화된 걸 보고 부리나케 달려온 모양.

“공작 저하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엎드려서 절까지 한다.

삐쳐있을 때는 언제고.

“···공작? 신분제도를 반대한다면서요?”

“자넨 예외야. 공작이 아니면 종신 통령은 어떤가? 지금 있는 허수아비 놈 쿠데타로 밀어버리고 자네가 통령에 취임하는 거지.”

“···.”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릴 하네.

그만큼 기분이 좋은가보다.

지하 창고를 돌아다니며 연신 감탄을 터뜨리는 환희에 찬 데우스칩.

“이, 이 노, 논문이 여기 있었군. 허허, 찢어진 곳 하나 없어.”

“호오, 이런 식의 문양이라니, 그래, 그렇지.”

“세상에! 단종된 골렘 모델이 여기에? 당장이라도 뜯어보고 싶네.”

“공학용 재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자폭 골렘 10개는 만들 수 있겠어. 아니 이젠 만들 필요가 없나?”

미친 사람 같다.

그를 보는 찬웅도 정신이 없다.

데우스칩은 한참을 헐레벌떡 돌아다니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가까이 다가와.

“그런데 자넨 여길 어떻게 들어왔나? 연구소 지하 창고는 보안이 철저해서 명예 연구원 자격증으론 안됐을 터인데, 나야 문제없지만.”

“이거 주워서 들어왔어요.”

찬웅은 소장실에서 주운 ID 카드를 꺼내 보여줬다.

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소 최고 선임 연구원 무트 엑자일.

“아!”

데우스칩이 카드를 확인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아시는 분?”

“당연하지. 무트 엑자일, 내 지도교수였네. 난 그분의 조교였고.”

“네?”

“최고의 에고 마도 공학자셨지. 얼마나 날 부려 먹었는지···,”

추억에 잠긴 데우스칩.

그러나 좋은 기억은 아닌 듯, 가끔 몸서리를 치는 걸 보면.

하긴!

조교 생활을 했다던데.

슈슛! 슈슛! 슛! 슛!

뉴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원들도 속속 지하 창고로 내려왔다.

“케이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사랑해요!!!”

“절 가져요.”

연구원들에게 둘러싸인 찬웅.

그래, 보상이 뭐가 중요해.

이렇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들으면 그걸로 된 거지.

“자자, 섣불리 건들지 말고, 할 일이 많아.”

“아이템부터 옮길게요.”

“아니!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연구소야.”

“워프 게이트 하나 더 설치해야겠는데요?”

“보안 철저히 하고.”

정신없이 바빠진 연구원들.

이제 찬웅의 할 일은 없다.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

‘목걸이는···.’

나중에 확인하러 오면 되고.

로그아웃하자.

집에서 택배로 골렘 받아야지.

※ ※ ※

조셉 라이든 미국 대통령은 긴급 국가 안보 회의를 소집했다.

게리 스탁턴의 백악관 방문으로 알게 된 사실, 솔직히 지금도 믿을 수 없지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도 아니다.

게임과 현실의 섞임.

지금도 목격하고 있으니까.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걸로 하지.”

“네. 유엔 총회 소집해서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후우,”

그날,

게리 스탁턴이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었을 때.

환상을 보는 것처럼 목격한 광경들.

침식이 덮친 지구.

끔찍한 파멸의 현장.

침식은 게임 속처럼 고정되지 않았다.

점점 세력을 넓혀나가며, 마치 바이러스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오염시켰다.

풀이며 나무, 곤충과 동물, 심지어 인간까지도.

일부는 죽어서 소멸하고, 일부는 오염되어 침식 생명체로 변이되고.

만약 지구에 침식이 덮치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구의 무기로 가능할까?

군대 투입은 어렵다.

생명체는 여지없이 침식될 테니까.

‘원거리에서 미사일이나 로켓은 가능하겠지만···.’

그걸로 충분하려나.

대안은 결국 하나.

침식에 대한 면역력.

바로 포스.

그리고 그 포스를 몸 안에 가지고 있는···,

‘각성 플레이어.’

그들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그들의 힘을 키워야 한다.

게임에서처럼 지구에서도 레이드가 가능하게.

해답은 역시 케이.

그만이 앞으로 닥쳐올 침식에 대항할 수 있다.

“지금 케이, 그는 어디에 있나?”

“글쎄요. 그건 잘···,”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한국에서 넘어온 정보에 의하면 게임 속 침식지 보스 진혈의 군주 렐리스의 사도와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음?”

한국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있었던 사건 보고서를 읽어보는 조셉 라이든.

“지금까지 그의 성향으로 보아, ···복수하겠군.”

“네, 아마 다음 침식지 공략은 헤스티아 성국 북쪽 침식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이클 피트.

“대통령님!”

“무슨 일인가?”

“바, 방금 침식지 하나가 공략됐답니다.”

“뭐? 어, 어디? 혹시 헤스티아 성국?”

“아닙니다. 마키나 공화국 올드팩토리라고.”

“허어,”

어찌 된 일이지?

거긴 공략 예고도 없었는데.

※ ※ ※

찬웅은 아직 길드를 해체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활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길드 채팅창.

[한가한 꿀벌] : 방금 마키나 공화국 올드팩토리 근처에서 케이 봄.

[루불] : 거긴 왜 갔어? 무기 내구력 떨어지는 곳이라 인기도 없잖아.

[한가한 꿀벌] : 한가해서.

[메이릴린] : 케이 혼자야? 설마 침식지 공략하려고 하는 거?

[한가한 꿀벌] : 아니. 그냥 골렘 3마리 끌고 어디 가던데.

[케밥맨] : 혹시 다음 침식지 공략이.

[왓썹] : 확실해. 올드팩토리야.

10만 플레이어가 가입된 길드.

현재 동시 접속하고 있는 플레이어도 최소 5만 명 이상.

채팅의 내용은 주로 케이가 왜 그곳에 갔을까였다.

그러다가.

[한가한 꿀벌] : 헐! 지금 성벽 터졌다.

[진야스오] : 뭐?

[런닝차일드] : 음?

[난멈추지않는다] : 터지다니?

[루불] : 올드팩토리 성벽?

[메이릴린] : 빨리 말해봐.

[상큼한 딸기] : 진짜예요?

[한가한 꿀벌] : 잠깐! 어지러워. 나도 뒤에서 따라가는 중.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주르르 올라가는 수많은 글.

[한가한 꿀벌] : 미친!

[왓썹] : 왜 그래?

[케밥맨] : 답답해 죽겠네.

[한가한 꿀벌] : 와! 이거 실화?

[플라워 헌터] : 무슨 소리야? 씨발!

[깔라만챠] : 퍼킹!

[진야스오] : 안 되겠다. 나 마키나 공화국으로 간다.

그리고 갑자기 뜬 전체 공지.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마키나 공화국 올드팩토리 침식지 보스,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폴로사줘] : 어.

[냉장시체] : 으응?

[악마의 유혹] : 무슨.

[개복치 멘탈] : 말도 안 돼.

[골든 엠퍼러] : 와!

[콜라먹는 북극곰] : 한가한 얘는 뭐하냐? 왜 말이 없어?

[광란 오소리] : 제기랄! 상자 까고 있겠지.

뜬금없는 침식지 공략 공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향기방귀] : 그럼 혼자서 공략한 거?

[칼라소드] : 그게 돼? 혼자서도 가능한 거였어?

[당통] : 되니까 공지가 떴지.

[매직샤크] : 맙소사!

[데스베이더] : 난 케이가 자기 명성 이용해서 잇속만 챙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루불] : 그냥 혼자서도 충분했구나.

[트레이시] : 길드 가입은 자비를 베풀어 주신 거였어.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진야스오] : 아깝다.

케이의 단독 침식지 공략 성공, 당연히 전 세계가 들썩였다.

※ ※ ※

정화된 올드팩토리.

데우스칩은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 소장실에 있었다.

연구소 소장이자 최고 선임 연구원, 더불어 자신의 스승이었던 무트 엑자일의 개인 연구실.

‘먼지투성이군.’

감회가 새롭다.

여긴 다시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침식이 덮칠 당시 대부분의 연구원은 연구소에 있었지만, 자신은 출장을 나가 팩토리에 없었다.

도시 재건을 위해 뉴팩토리라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마도 공학의 명맥을 이어나간 지 어언 5백 년.

그리고 마침내 오랜 숙원을 해결했다.

이방인 케이 덕분에, 또한 그를 이토록 훌륭하게 키워준 에루인도 지분이 있다.

‘여기가 방이었지?’

벽면에 부착된 장식물을 건들자, 스르륵 열리는 벽면.

연구실 안쪽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개인 공간, 여기도 먼지가 엄청나다.

‘청소나 해야겠군.’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야지.

연구할 것이 너무 많다.

청소용 골렘을 부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나을 듯, 의미도 있고.

바닥에 가득 깔린 먼지.

빗자루로 살살 치우면서···.

“응?”

뭐지?

‘마법진 같은데,’

게다가 상당히 익숙하다.

‘···에고 전이 마법진?’

스승님이 그리신 것 같다.

자신의 에고를 골렘에다 이전하는 마법진.

원래 즐겨하는 마법은 아니다.

법칙에 의해 정해진 수명을 억지로 늘리는 만큼 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골렘에다 자신의 영혼을 옮기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물론 생각할 수 있는 이성, 시각이나 청각, 후각은 보존되지만 다른 것은 안 된다.

음식도 못 먹고, 아니 먹을 필요도 없고, 배설이나 성욕도 해결하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는 감정도.

그럼 오래 살아봐야 뭘 해?

자신도 마도 공학의 명맥을 잇겠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에고 이전 따윈 하지 않았을 터.

아무튼 스승이 남긴 마법진.

에도 전이를 시도한 모양.

그런데.

‘미완성이군. 그리다 말았어.’

침식의 순간에 마음을 바꿨나?

하긴 전이해도 침식될 판에.

아니면 전이할 대응 골렘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데우스칩은 마법진으로 손을 가져갔다.

충동적이었다.

스승이 그리다 만 마법진.

선 하나만 그리면 문양이 완성되는데.

스윽!

이렇게 말이다.

그때였다!

화악!

“어?”

쑤욱!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자신의 영혼?

‘서, 설마?’

왜 마법진이 작동되지?

단순히 손으로 그려봐야 의미가 없다.

마정석 가루로 그려야···,

‘헉!’

이제 알았다.

‘먼지에 마정석 가루가 섞여 있었나?’

그런 것 같다.

반짝이는 먼지 가루.

‘제기랄!’

에고 전이 마법진이 작동했다면 그것에 대응하는 골렘도 있어야 하는데···,

그건 대체 어디 있을까?

어쨌거나 데우스칩의 영혼은 에고 전이 마법진을 통해 어디론가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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