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올드팩토리(2) >
마키나 공화국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골렘은 다 에고를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한 골렘, 심지어 장난감들도 기본적인 에고가 있다.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하는 에고 골렘, 에고가 없는 골렘은 그저 기계장치일 뿐.
그러나 정작 데우스칩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만든 이 값비싼 골렘들은 에고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했다.
에고가 있으면 침식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고를 버리고 원격 수동조종기를 통해 동작을 입력해야 움직이는 원시적인 골렘을 만들었다.
쿵! 쿵! 쿵! 쿵!
올드팩토리 침식지까지 골렘과 함께 이동하는 찬웅, 데우스칩에게서 받은 매뉴얼을 보고 조종 능력도 익히고.
쿵! 쿵! 쿵! 쿵!
아그작! 아그작!
자폭 용도지만 워낙 크기가 커서 가는 길을 막아서는 몬스터들은 그냥 밟혔다.
‘확실히 대단하긴 해.’
마도 공학으로 탄생한 무시무시한 무기.
‘공화국 NPC들이 플레이어처럼 침식에 면역만 됐어도 정화는 금방 끝났을 텐데.’
어디 마키나 공화국 뿐인가?
테라퓨타는 또 어떻고.
침식만 아니라면 마탑이라는 최강의 병기가 존재하는 공중도시를 움직여 침식지 상공에서 광역마법만 쏴대도 끝난다.
카시우스 제국이 보유하는 기사단과 대규모 병력, 엘프 레인저들의 원거리 저격 능력, 드워프의 장비와 강인한 체력, 하나같이 플레이어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플레이어보다 더 강하지.
NPC들이 가지지 못한 것은 오로지 하나.
바로 침식에 취약한 영혼, 데우스칩만해도 그 작은 침식 마정석 알갱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전면에 나서고 후방에서 NPC들이 지원한다.
찬웅이 얼떨결에 올드팩토리 정화라는 퀘스트를 수락한 이유도 데우스칩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호언장담한 신무기 자폭 골렘의 성능이면 충분하다 확신했기 때문이다.
쿵쿵쿵쿵!
가는 동안 제법 능숙해진 찬웅의 조종실력, 천천히 걷다가 이제는 뜀박질로 이동하는 3기의 골렘.
어느덧 올드팩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성벽과 합금 금속으로 만든 성문.
성문을 뚫는 건 어렵다.
너무 단단하다.
차라리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 쉽지.
골렘들은 모두 다 똑같지 않다.
제각기 용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제일 첫 번째 골렘이···,’
1호기는 성벽 파괴용.
대가리가 다른 골렘보다 훨씬 크다.
‘슬슬 시작해볼까?’
나머지 두기의 골렘은 후방에 대기.
“가자!”
쿵쿵쿵쿵!
1호기가 성벽으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 와중에 마치 뾰족한 드릴처럼 변화하기 시작하는 골렘의 머리.
퍼억!
뾰족해진 골렘의 머리가 성벽에 박혔다.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경고 발령! 경고 발령!>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경고 발령! 경고 발령!>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경고 발령! 경고 발령!>
귀가 따갑게 울리는 경고음.
우르르르···.
두두두두···.
몰려드는 올드팩토리 몬스터들.
위이잉! 뚜두두둑!
골렘 대가리 드릴이 회전한다.
점점 더 깊이, 상체 전체가 성벽을 파고 들어갔다.
‘이 정도면···,’
방식은 크레모아와 비슷하다.
위쪽과 전면, 두 방향으로 집중되는 폭발력.
따라서 뒤에 있으면 별 피해는 없을 터.
“터져!”
쿡!
조종기 자폭 스위치를 누르자.
콰콰콰콰콰콰쾅!!!
귀를 찢을 듯한 폭발음.
지진이라도 난 듯 울리는 지축.
먼지가 피어오른다.
작은 버섯 구름과 크고 작은 돌조각이 하늘 위로 뿌려졌다.
“오우.”
진짜 폭발력 하나만큼은 거의 핵폭발 수준.
“수고했다.”
제 몸 희생해서 길을 열어준 1호기 골렘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잠시 후,
먼지가 걷혔다.
뻥 뚫린 성벽,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올드팩토리의 풍경, 엄청난 숫자의 금속 몬스터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길이 열렸다.
다음은 잡몹들 처리.
“가라! 2호기!”
두리뭉실한 몸체의 2호기 자폭 골렘이 뚫린 성벽을 넘어 올드팩토리로 진입했다.
“쓸어버려.”
쿠쿠쿵! 쿵쿵!
수많은 금속 몬스터 무리로 돌진하는 2호기.
찬웅은 뒤로 조금 더 물러났다.
그리고 조종기 버튼을 누르자.
쿡!
타닥! 타다닥!
몬스터가 잡몹 처리용 2호기 골렘에 달라붙었다.
타닥! 타다닥!
계속 붙었다.
2호기 골렘의 안쪽에 그려진 강력한 자석 마법 문양.
금속이란 금속은 모조리 달라붙었다.
어느새 둥그런 공 모양으로 변한 2호기 골렘.
‘이거 게임 하다 본 거 같은데.’
비슷한 것이 있다.
뭐든지 붙여서 굴리는 단순한 게임.
찌그덩, 쯔그덩, 쩌저저적!
2호기가 눈덩이처럼 굴렀다.
올드팩토리 성벽 안쪽을 따라 빙 돌면서 자석의 힘으로 몬스터들을 자신의 몸에 붙이고 계속 커졌다.
‘···청소도구 같네.’
붙이고, 굴리고, 또 붙이고, 또 굴리고.
쿠쿠쿵, 쿠쿵!
거대한 금속 공 모양.
쿠쿵, 쿠쿠쿵,
한번 구를 때마다 땅이 울릴 정도.
‘대충 모았으니까.’
이제 자폭.
쿡!
찌이이이이이잉!
그 자리에서 멈춰선 거대한 구체.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강렬한 빛.
타다다다다다닥!
그 와중에 계속 달라붙는 금속 몬스터들.
그리고.
콰콰쾅! 꽈과과과과쾅! 콰콰콰콰쾅!
“윽!”
지잉,
화끈한 폭발이 열기가 찬웅이 피해 있는 자리까지 밀어닥쳤다.
쉴드까지 자동으로 발현됐다.
올드팩토리도 무사하지 못했다.
무너지는 건물들, 폭발에 휘말리는 몬스터.
‘···미쳤구나.’
일부러 가장자리로 굴렸다.
도시 중앙엔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가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마도 공학의 정수가 모인 연구소를 파괴하면 정화하나 마나.
‘괜찮겠지?’
퀘스트 보상이 뭔가!
정화된 올드 팩토리 그 자체.
정확히 말하면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가 바로 보상이었다.
이제 3호기 하나 남았다.
쿵쿵쿵쿵!
찬웅은 3호기를 이끌고 올드팩토리 시내로 진입했다.
잡몹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용케 폭발에서 살아남아 찬웅을 향해 달려드는 골렘 몬스터들은,
우웅!
서걱!
콰악!
도끼로 처리하고.
목적지는 올드팩토리 중앙광장.
와본 적 있다.
당연히 침식지 보스도 만났었고.
정확한 명칭은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
놈은 중앙광장에만 나타난다.
보스의 임무는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
당시엔 부서진 기간트에서 엑사급 코어만 뽑아서 도망쳤는데···.
‘다 왔네.’
광장 분수대.
정면으로 보이는 연구소.
그때였다.
<침입자 발견. 소멸 작업 실행.>
섬뜩한 기계음.
쿠웅, 쿠웅, 쿠웅.
놈이다.
마침내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가 중앙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크게 심호흡 한번하고.
스으윽!
마그누스 기간트의 머리가 찬웅에게 돌려졌다.
츠츠츠츠···.
머리에 달린 뿔에 맺히는 강한 스파크.
“오랜만이네.”
<침입자 발견. 소멸 작업 실행.>
“그래, 한번 가보자.”
꿀꺽, 가속 물약 한 병 마시고.
[10초간 스피드가 대폭 향상됩니다.]
차롸롸뢋!
파괴 광선이 쏘아졌다.
팟팟팟팟!
빠르게 벗어나는 찬웅,
콰콰콰쾅!!!
분수대가 박살이 났다.
팟팟팟팟!
중앙 마공학 연구소 쪽으로는 피해가 없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멀리 놈을 유인한다.
쿵! 쿵! 쿵! 쿵!
순간 가속으로 피하는 찬웅을 집요하게 따라와 파괴 광선을 발사하는 마그누스 기간트.
차롸롸뢋! 콰콰콰쾅!
몸체 크기만큼이나 보폭도 엄청나게 넓어 매우 빠른 느낌, 자칫하면 따라잡힐지도.
‘···아직 아니야.’
쫓고, 쫓기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놈에게서 벗어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놈을 공략해야 한다.
어느 정도 중앙광장에서 놈을 떨어뜨린 후.
‘지금!’
쿡.
찬웅은 조종기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차차차착!
후두둑, 후두두두두두···.
3호기 자폭 골렘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골렘의 특성은 하나의 큰 폭탄이 아닌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이 합체된 것.
보스만을 상대하기 위해 데우스칩이 설계한 대(對) 마그누스 기간트용 자폭 골렘, 커다란 몸체에서 수백 개의 작은 거미 골렘으로 분화됐다.
다다다다닥! 다다다다닥!
뒤쪽에서 달려와 마그누스 기간트의 몸에 착착 달라붙기 시작하는 작은 거미 골렘.
타닥! 타닥!
발목, 무릎, 좀 더 기어올라 팔꿈치, 손목, 어깨, 목, 머리에 달린 뿔, 거대한 이족 보행 기간트의 모든 관절에 달라붙었다.
그제야 위협을 느낀 기간트가 몸을 흔들면서 털어내려 했지만.
“잘 가라.”
콰콰콰쾅! 쾅쾅! 쾅쾅쾅!
폭탄이 한 번에 터졌다.
놈의 외갑은 폭탄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러나 관절이라면?
오직 대형 골렘의 약점만을 철저하게 노리는 3호기 자폭용 골렘.
기우뚱!
관절에 손상을 입은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가 균형을 잃고 말았다.
쿠쿵!
쓰러지는 보스 기간트.
따그닥! 따그닥!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팟!
찬웅은 쓰러진 마그누스 기간트의 가슴 부위를 밟고 섰다.
골렘들은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럼 마무리는 직접 해야지.
동시에 휘몰아치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
우우우우우···.
오른손에 쥐어 쥔 앙증맞은 머리 따개.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혀 앙증맞지 않았다.
우우우우웅!
강기.
아바타 케이가 가진 모든 포스가 도끼 한 자루에 몰려들었다.
점차 거대해지는 도끼.
짙은 푸른색과 군데군데 섞은 하얀색.
마그누스 기간트는 그저 미리 입력된 기계음만 뱉어냈다.
<소멸 작업 실행.>
순간!
거대한 도끼가 마그누스 기간트의 가슴에 떨어져 내렸다.
콰직!
쩌억, 갈라지는 외갑,
파지직! 스파크가 튄다.
콰직!
<소멸 작업 실···.>
콰직!
<소멸 작···.>
콰직!
<소···.>
콰직!
기어코 기간트의 심장, 엑사급 코어에 박혀 드는 도끼.
파사삭!
스웅.
마그누스 기간트의 붉은 눈동자가 그 빛을 잃었다.
- 올드팩토리 침식지 보스 처치(완료).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동화율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아바타 케이가 반영률을 1% 돌파했습니다.]
또 다시 3번씩 돌파.
그리고,
화아아악!
하늘에서 굵은 빛기둥이 올드팩토리에 내려왔다.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마키나 공화국 올드팩토리 침식지 보스, 해방된 마그누스 에고 기간트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위업이 달성되었습니다. 마도 공학의 새로운 장이 듀플렉스 대륙에 펼쳐집니다.]
[공략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정화된 지역에 5분 동안 주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덤덤하다.
크자누이를 처리한 경험 때문에 뽕맛을 이미 봐서 그런가.
5분 동안 상자를 까고, 쓸데없는 건 버리고 진(眞) 아이템만 챙긴 후에.
보상을 받아야지.
정화된 올드팩토리.
비록 도시 곳곳이 파괴되어 폐허가 됐지만, 저 멀리 보이는 옛 중앙 마공학 연구소는 건재했다.
팟팟팟팟!
찬웅은 빠르게 연구소 앞에 도달했다.
‘정문은 잠겼구나.’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
어떻게 열고 들어가지?
자원 재생 물약 마시고 강기로 부숴?
‘아니야. 그것보다는···.’
가능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뉴팩토리의 중앙 연구소는 올드팩토리의 그것을 본떠 만든 건물, 보안 장치나 내부구조가 서로 비슷할 터.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중앙 마공학 연구소 명예 연구원 자격증을 꺼냈다.
그리고는 잠금장치에 갖다 대니.
띠딕!
- 확인되었습니다. 명예 연구원님, 환영합니다.
철컥!
문이 열렸다.
“오!”
찬웅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두둑, 두두둑, 여기저기서 켜지는 빛, 도시가 정화되자마자 연구소 자동 운영 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
움직이는 것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찬웅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쪽으로 가면 연구소 소장실 워프 게이트였지?’
확실히 비슷하긴 하다.
뉴팩토리 연구소 구조와 그대로.
워프 게이트 장치에도 명예 연구원 자격증을.
띡!
- 확인되었습니다.
슈슛!
마침내 최상층으로 올라왔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먼지로 가득 쌓인 연구실.
찬웅의 목적은 소장실에서 연결되는 연구소 지하 창고, 보통 그곳에 귀중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소장실도 살펴보고.
‘···별거 없나?’
죄다 쓰레기뿐.
진열장도 텅 비어있었다.
‘이거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럼 남은 장소는 지하밖에 없는데···.
찬웅은 다시 소장실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띠딕!
- 접근이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명예 연구원 자격증으로는 부족한 모양.
그렇다면?
찬웅은 소장실을 샅샅이 뒤졌다.
‘있어야 하는데···,’
5백 년 전 올드팩토리가 침식당할 때,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침식당했다.
당시 연구소 소장이었던 인물도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가 무사했으면 뉴팩토리에서 마도 공학의 맥이 이어져 한층 더 발전했겠지.
‘여기서 죽었다면 신분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분명 있을 텐데···.’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반짝이는 금속 카드 하나.
‘이건가?’
주워보니.
[팩토리 중앙 마공학 연구소 최고 선임 연구원]
[이름 : 무트 엑자일]
찬웅은 카드를 들고 워프 게이트 장치에 가져다댔다.
띠딕!
- 확인되었습니다.
됐다.
슈슛!
바로 지하 창고로.
그러자 보이는 광경.
“···어.”
압도적인 광경.
가득 차 있는 지하 창고.
뭐가 엄청나게 많다.
줄 지어선 다양한 형태와 용도의 골렘들,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마도 공학 아이템, 벽면 책장에 꽂힌 서적.
이 중에 있을까?
진(眞) 아이템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