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34화 (134/204)

< 변화(1) >

카시우스 제국 폴른스타.

썰렁한 도시의 분위기.

그 많던 플레이어들이 한순간에 모두 빠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백 년의 숙원이 해결될지, 아니면 또 실패할지 판가름하는 날이 바로 오늘.

시민들은 생업을 중단하고 침식지 정화라는 낭보가 울려 퍼지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침식지 정화 따윈 관심도 없는 이들도 있었다.

일황자 올리버와 리처드 에일워스 공작이 황궁 내성 성벽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

“아직 찾지 못했소?”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분명 황궁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황궁 마법사 도노반이 확인했습니다. 성벽을 넘으면 무조건 감시탑에 걸려들게 되어 있는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에일워스 공작.

일황자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멀쩡한 손톱만 씹어댔다.

“심려 놓으시지요. 폐하 곁엔 제가 있지 않습니까?”

폐하라는 말에 살짝 얼굴이 펴진 올리버.

“흠흠, 아직 황위 계승식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 뵈었을 때부터 제겐 황제 폐하였습니다. 이황자와 카라카스는 반드시 죽을 겁니다.”

“정말이지, 에일워스 그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우리 영원히 함께 갑시다.”

“충심으로 보필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성벽 위로 뛰어 올라온 병사.

“폐, 폐하!”

“무슨 일이냐?”

“미, 믿을 수 없지만···,”

“응?”

“침식지가 정화됐다고 전령이 알려왔사옵니다.”

“···뭐라고?”

정말?

이방인 케이가 크자누이를 잡았다니,

대체 어떻게?

“겨, 결국 해냈군.”

“···그렇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의 두 사람.

순간!

“우와아아아!”

“해냈다, 해냈어.”

“이방인 케이 만세!”

“축제로구나!”

조용하던 황도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죽음의 지역이 생명의 지역으로 해방됐다.

모두가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올리버와 에일워스 공작은 그렇지 않았다.

“미치겠군.”

“···.”

차라리 실패했더라면,

정화되든 말든 무슨 상관일까?

오백 년 동안 옆에 두고 살아왔다.

물론 한 번씩 웨이브가 일어나긴 하지만 황도만 침식되지 않으면 되니까. 위험하면 옮기면 그만이고.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황권.

아직 이황자와 카라카스가 잡히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케이가 황궁에 입성한다면?

“어차피 변하는 건 없습니다. 이황자는 반역자 신세입니다. 오히려 기회라고 봅니다.”

“기회라니?”

“이방인 케이와 협상하시지요. 이황자와 손잡은 걸 문제 삼지 않겠다. 반역자가 아닌 카시우스의 구원자로 대접해주겠다. 그러니 함께 손을 잡자고,”

“흐음,”

사실 케이를 반역자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문제는 민심.

이방인이지만 분명 카시우스 제국의 영웅으로 떠오를 터, 그런데 그를 억압하면 민심이 어떻게 될까?

반란이 일어날지도.

“이참에 케이에게 공작 작위를 내려보는 게 어떠하옵니까?”

“공작? 이방인에게?”

일황자 올리버는 고민했다.

지금까지 백작 이상의 작위를 받은 이방인은 없었다.

기껏해야 남작이나 자작.

그에게 공작을 약속하면?

“좋은 생각이군. 에일워스 대공.”

“대, 대공이라고 부르셨습니까?”

“케이가 공작이 되면 당연히 그대도 대공이 되어야지. 이방인과 같은 작위에 있을 수 있겠소?”

“가, 감사합니다.”

또 한 명의 병사가 성벽 위로 올라왔다.

“폐하!”

“무슨 일이냐?”

“반역자 브랜든과 카시우스가 별궁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라?”

그러자 눈빛을 반짝 빛내는 에일워스.

“놈들이 제 발로 나타났군요. 아마 침식지 정화 소식을 들은 듯하옵니다.”

“흥! 제 세상이 온줄 아나 보지?”

“서둘러야 합니다. 이방인이 오기 전에.”

“어서 갑시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일이 술술 잘 풀려간다.

올리버 일황자와 에일워스 공작은 서둘러 이황자의 별궁으로 갔다.

이미 별궁 앞뜰은 수천의 기사와 병사들로 포위된 상황.

그러나 희한하게도 브랜든과 카라카스는 태연했다.

별궁 주위에 수많은 귀족과 관료들, 그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황자들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상황에서,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오셨소? 형님?”

“감히 황제 폐하를 시해하고도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날 형님이라도 부르지 말라! 반역자 주제에 뻔뻔하구나.”

“그럼, 뭐, 그렇게 해 주지. 올리버 일황자.”

“···이놈이?”

스윽!

당당한 태도로 나서는 브랜든.

“그럼 묻겠소. 정녕 내가 아버님을 시해했다고 생각하시오?”

“허허, 기가 막히는군.”

미치기라도 했나?

아니면 포기했을까?

올리버는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잘 됐어.’

황실에 몰려온 귀족들.

그리고 병사와 기사들.

여기서 완전히 못을 박아버린다.

황제 시해범이자 반역자로.

“너같이 심약한 놈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당연히 내가 죽였지. 너의 이름이 새겨진 단검으로 누워계신 아버님을 내가 직접 죽였다. 금방 숨이 끊어지더군. 그래, 누명을 쓴 기분이 어떠냐? 브랜든.”

순간 조용해진 별궁 앞뜰.

잘못 들었나?

에일워스 공작이 황당한 얼굴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늙고 병든 영감이 오죽 명줄이 길었어야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느냐? 내 비밀이 들킬까 봐.”

“무슨 비밀?”

“내 아버지가 카인 스타리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염색약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금발로 물들여왔다. 지긋지긋했지. 빌어먹을 출생의 비밀 때문에···.”

별궁 앞뜰에서 폭탄이 터졌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나마 에일워스 공작만이.

“폐하! 정신이 나갔사옵니까?”

“···응?”

“뇌가 침식의 기운에 절여진 것이오? 차려진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되는데, 이런 망발이라니.”

“내, 내가 무슨 말을?”

“허허, 제국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잡은 것이 썩은 동아줄이었어. 이러면 황제를 중독시켰던 보람이 없잖아.”

“···뭐? 황제를 중독시켰다고?”

“그래, 황궁 마법사 도노반을 시켰지. 놈은 내 배다른 형제거든. 출생이 비천한 놈이지만 재능이 아까워 테라퓨타로 유학 보내고 나서 잘 써먹고 있었다.”

“···.”

폭탄이 연달아 터진다.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가?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브랜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형이라 생각했던 놈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외인이고, 아버지의 병이 에일워스 저놈 때문이라니.

“···환장하겠군.”

카라카스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

사실 여기 모인 모든 귀족들이 다 그랬다.

그 와중에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 사람.

“이건 모함이야!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실토한다고?”

“흑마법인가? 아니면 현혹? 어떻게 내 속내를···,”

“그, 그래, 저, 절대 믿지 말라.”

“도노반, 이 새끼야! 넌 마법사란 놈이, 어서 캔슬레이션 마법을 펼쳐.”

으드득,

이빨을 앙다문 황궁 마법사 도노반.

“이미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건 마법이 아닙니다.”

“···뭐?”

“마법 아니라고 개자식아! 그렇게 멍청하니까 네 마누라와 내가 붙어먹은 것도 모르지.”

“이놈!!!”

대혼돈의 현장.

순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 귀가 더러워지는 것 같아.”

왜애애애앵!

날갯짓하면서 별궁 앞뜰에 나타난 존재,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렸다.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을 대신해 너희에게 징벌을 내리마.”

샤라랑!

팡!

일황자의 머리가 마치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허억!”

“맙소사!”

“이, 이런!”

깜짝 놀라는 귀족들.

비현실적인 광경.

이게 실화인가?

올리버 일황자가 저렇게 허무하게?

아니,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황자도 아니긴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쪽팔리지도 않니? 도무지 염치를 몰라.”

에일워스 공작도.

“자, 잠깐···,”

샤라랑!

팡!

황궁 마법사 도노반까지.

샤라랑!

팡!

그리고.

“내가 기회를 줄게. 선택해. 머리가 터지든, 아니면 내 말을 듣든.”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만.

머리가 터지는 걸 누가 선택해?

“위대하신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가디언, 요정왕 엘리하가 명하노라. 이황자 브랜든 스타리아가 카시우스 제국의 황위를 이어받는다. 드래곤의 가호가 새로운 황제에게 내리기를.”

동시에 브랜든의 몸 위에 뿌려지는 황금색 가루.

샤라라라랑!

“반대하는 사람 손?”

귀족들과 황자들은 그저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요정왕 엘리하.

구전으로만 들어왔던 전설적인 존재.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요정왕의 권능.

반역자는 일황자와 에일워스 공작, 그리고 황궁 마법사 도노반.

꾸며진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이미 다 죽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요정왕에게 누가 덤비나?

자칫하다간 숨기고 싶은 비밀을 제 입으로 털어놓게 될 것인데···,

또한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과 함께 제국을 세웠던 요정왕 엘리하, 그녀가 선택한 이황자.

게임은 끝났다.

“황제 폐하!!!”

카라카스 공작이 먼저 브랜든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겨, 경하드리옵니다.”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황제 폐하!”

“···폐하!”

.

.

.

귀족들의 충성 맹세가 그 뒤를 이었다.

※ ※ ※

망령의 침식지 공략 소식은 전 세계로 알려졌다.

국내, 국외, 모든 방송에서 속보로 이 사실을 다루는 중.

통제하지 않는 레이드

따라서 누구나 참여가 가능했던 공략.

방송국 기자, 각종 플랫폼의 스트리머들이 촬영용 수정구에 생생하게 담아온 게임 속 전투 영상이 하루 종일 틀어져 나왔다.

공략 대성공.

비록 공격대 인원 80% 이상이 사망했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숫자만 50만 명.

당연히 축복이 내려졌고, 수많은 랜덤 D박스가 오픈되었으며,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각성한 자들도 있을 테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늘 따라붙는 분석.

무슨 무슨 경제적 효과.

이번 망령의 침식지로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는 대체 얼마일까?

다시 말해 대량의 진(眞) 아이템이 풀린 후 나타난 변화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돈 잔치가 벌어진 건 확실했다.

무기나 갑옷 등 진(眞) 장비 아이템, 반지, 귀걸이, 목걸이 같은 진(眞) 액세서리, 약초나 금속 종류의 진(眞) 재료 아이템, 진(眞) 스킬 구슬, 진(眞) 스크롤, 그동안 잘 나오지 않았던 치유 물약과 활력 영약, 체력 영약까지.

대기업, 권력자, 부자들이 지갑을 열었다.

- 활력의 영약 구합니다. 300억 + α

- 치유 물약 팔아요. 선제시.

- 쉴드 반지 삽니다. 직거래 원합니다. 전화번호는···,

대박이었다.

로또나 주식, 코인은 비비지도 못할 정도.

예전엔 국가가 각성 플레이어와 진(眞) 아이템을 통제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것보다는 혹시라도 탄생했을 빌런, 혹은 사도 플레이어에 집중해야지.

찬웅은 서울 모처 조용한 식당에서 최기병과 만났다.

같이 식사도 하면서.

“황궁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네, 플레이어들과 함께 황궁으로 들어가 케이님 이름으로 이황자지지 선언을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이미 다 끝나있던데요?”

끝나다니.

“일황자와 에일워스 공작이 숙청되고, 요정왕 엘리하라는 NPC가 브랜든을 밀었답니다.”

“···요정왕? 엘리하라고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브랜든 황제가 요정왕이 자신을 많이 도와줬다며, 꼭 케이님께 알려드리라고.”

설마 개발자 엘리?

운영자나 다름없을 텐데, 게임 시나리오에 막 개입해도 되는가 모르겠다.

“황위 계승식은 3일 후에 열릴 예정입니다. 케이님이 꼭 참석하셔야 계승식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요?”

“네.”

꼭 가야 하나?

하긴, 마무리는 지어줘야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많다.

정치가 잘못되면 얼마나 무서운지, 정치가 바로 서면 얼마나 이로운지.

게임 속이나 현실에서 똑같이 적용되는 것.

일본과 중국을 봐도 그렇고, 카시우스 제국의 일황자와 에일워스 공작을 봐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그나마 나았다.

자신이 마음 놓고 편하게 게임 할 수 있는 이유.

청와대, 국정원, APS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래서.

“여기 이거 받으세요.”

“이건···, 활력의 영약 아닙니까?”

“네, 대통령께 전해주세요. 저의 개인적인 선물이라고.”

“김영란법이···,”

“아니면 돈을 받던가.”

“파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한태수 대통령도 재산이 많습니다.”

“싸게 팔아요. 이게 시세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이것도 사실 엄청난 혜택.

돈이 있어도 못사는 물건이 바로 활력의 영약.

“참! 그리고 접속용 캡슐 몇 개 구하고 싶은데.”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5개 정도?”

“준비해놓겠습니다.”

“결제는 코인으로 하죠.”

“그러지 않으셔도···,”

“저 돈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부 좀 하려고 하는데, 익명으로···.”

코인이 썩어나간다.

진(眞) 마정석 판매로 얻는 수익만 해도 얼만가.

“그리고 당분간 게임보다는 현실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몇 명이나 각성했을까?

그 가운데서 빌런 성향의 플레이어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 ※ ※

대륙에서 가장 넓은 침식지는 카시우스 제국 망령의 침식지지만, 가장 많은 지성체 침식지 보스를 주변에 두고 있는 국가는 헤스티아 성국.

동쪽의 썩어버린 레비아탄, 서쪽 타락한 다크엘크 여왕, 남쪽 부정한 물의 정령왕, 그리고 북쪽 진혈의 군주.

성국을 에워싸고 함께 붙어 있는 침식지라 군주들 간의 왕래가 자유롭다.

그리하여 네크로맨서 크자누이 소멸 직후, 각 지역 군주들의 긴급 회동이 이루어졌다.

안건은 플레이어 케이의 무차별 침식지 정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