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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31화 (131/204)

< 망령의 침식지 공략(2) >

네크로맨서 크자누이를 죽이고 망령의 침식지를 정화하는 것,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오랜 숙원이었다.

그러나 어이없지만 그걸 바라지 않은 사람도 존재했다.

황궁의 높은 첨탑에서 폴른스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여는 일황자 올리버.

“시작됐군.”

“네, 그런 듯합니다.”

갑자기 한적해진 폴른스타 황도, 그 많던 플레이어들이 온데간데없었다.

“브랜든은 어디 있나?”

“별궁에 숨어 있는 걸로···, 카라카스와 놈의 수행 기사도 함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놈이 눈치를 챈 듯합니다.”

“흥! 그래봤자지.”

이방인 케이가 침식지를 정화하면 황위는 브랜든에게 돌아갈 터, 그러니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나?

나머지 황자들을 포섭한 이상, 케이가 성공하고 돌아와도 이황자 브랜든만 사라지면 제국은 자신의 것.

“처리합시다. 지금 당장.”

“네, 지워버리겠습니다.”

올리버의 지시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일워스 공작의 기사단과 일황자 지지 귀족 병력들이 황궁 안으로 쳐들어왔다.

황제가 살아있는데 병력을 황궁 안으로 투입했다는 건 반역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감시탑은 작동하지 않았다.

궁정 마법사도 이미 에일워스 공작에게 포섭되었고, 심지어 근위 기사단도 모른 척했다.

“이황자 브랜든이 황제를 시해했다.”

“반역자인 카라카스도 잡아라!”

“두려워 마라! 제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해도 혼자선 어림도 없다.”

일황자 올리버는 병상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 카인 스타리아 황제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너무 오래 누워계셨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품에서 미리 준비한, 브랜든의 이름이 새겨진 단검을 꺼내,

“절 탓하지 마십시오.”

푸욱!

빠르게 황권을 장악하려면 황제가 살아있어선 안 된다.

겸사겸사 브랜든에게 누명을 씌울 작정.

“전 그저 정당하게 황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거동도 못 하는 황제의 심장을 멈추는 일은 너무나 쉬웠고, 그리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참혹한 패륜 행위는 금방 끝났다.

※ ※ ※

추산이 불가능하겠지만 이번 레이드에 참가한 용병 플레이어 숫자는 어느 정도 될까?

대충 폴른스타에서만 백만, 다른 도시에 집결한 숫자까지 합하면 대충 3백만, 아니 그것도 최소로 잡은 숫자.

전 세계가 참여하는 축제의 현장.

레이드 당일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한 나라도 있을 정도.

동화율 상관없이 수많은 용병 플레이어가 참가했다.

직장에다 연차 휴가를 내고, 그게 안 되면 꾀병을 핑계로, 여의치 않으면 무단결근.

회사도 눈감아줬다.

이 상황에서 출근을 강제하면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니까.

그리하여 결과는?

침식지가 플레이어들로 포위된 형국.

이래서 크자누이가 케이를 두려워했을 터.

수많은 길드 중에서 제일 빠른 진행 속도를 보여주는 건 케이가 만든 [☆크자누이 공격대☆].

레이드 공략의 승패는 크자누이와 얼마나 빨리 대면하느냐로 결정된다.

시간을 오래 끌면 불리하다.

최대한 빨리 치고 달려야 한다.

쐐기 모양의 진형.

찬웅과 딸기가 선두에,

파바바바박! 파박! 퍼버버벅!

침식지 초입에 존재하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케이] : 빨리! 뒤처지면 그냥 두고 갑니다.

무서운 속도로 중심지를 향해 진격하는 케이의 길드.

이번 레이드를 위해 파워 스틱 밤도 1000개 정도 챙겨왔다.

공격은 동서남북 전방위에서 진행됐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줄줄이 소환됐지만 그대로 짓밟혔다.

물론 이번에도 무임승차 시도는 있었다.

늘 있는 일 아닌가?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고, 또 누군가는 남이 해 놓은 일에 수저만 올리고.

케이의 공격대가 쓸고 지나간 뒤를 편하게 따라가려고 하는 플레이어들.

“이 정도면 슬슬 따라가도 되겠어.”

“흐흐, 바보 새끼들, 뭣 하러 그렇게 어렵게 달려들어?”

“탈것 꺼낼까?”

“아냐, 너무 빠르면 따라잡을 수도 있다고, 천천히, 걸어서 편하게 가자.”

하지만 이들도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망령의 침식지의 가장 큰 특징, 리젠이 무척 빠르다는 것.

크자누이도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인지 언데드 재생성이 두 배 이상 빨랐다.

“어? 뭐, 뭐야? 여기 지나간 길 맞아?”

“···케이의 길드가 쓸고 간 길이 트, 틀림없어.”

“근데 몬스터가 왜 이리 많아?”

“제기랄! 빠, 빨리 잡고 따라가자.”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

한번 뒤처진 속도는 쉽게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리젠된 몬스터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고.

다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었다.

독자적인 경로 구축, 케이를 따라가지 않고 정반대 방향에서 침식지 중심부로 진입하는 경로,

“차곡차곡 전진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숫자는 우리가 더 많아.”

“손발을 맞추면서 가자고.”

“포스가 소모된 플레이어는 뒤로 빠져!”

갈수록 점점 싸움의 방법을 익혀가는 공격대.

요행을 바라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달려드는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편 무리없이 쾌속 전진하는 케이의 10만 길드.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농밀한 침식의 기운, 빨랐던 진격 속도도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시체 덩어리 골렘 출몰 지역.

놈의 특성은 바로 땅 밑에서 기습적으로 소환된다는 것.

꽈드득!

“헉!”

“조, 조심해!”

“제기랄! 시체 덩어리 골렘이다!!!”

땅 밑에서 솟아올라 공격 진형을 단숨에 흩트려 버리며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시체 덩어리 골렘, 게다가 좀비나 구울, 스켈레톤 같은 잡몹들까지.

“우워워웍!”

“크르렁!”

일단 생김새가 무시무시하다.

골렘의 몸체가 온통 시체.

“아오! 나 주, 죽어···.”

“씨발! 대출까지 해서 코인 사 왔는데,”

프스스, 프스슷, 휘날리는 가루.

하지만!

쐐액!

파아앙!

작열하는 딸기의 방패 공격,

그럴 때마다 후두두 분리되는 시체들.

“다 죽어! 이 개자식들아!!!”

딸기는 이번에도 미쳐 날뛰었다.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찬웅.

그녀가 광전사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 게다가 아이템에 달린 스킬인데.

‘원래 성격이 저런가?’

그나저나 시체 덩어리 골렘 습격으로 인해 무너진 진형.

찬웅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강기(罡氣).’

츠피릿!

두 배 이상 커다래진 쌍도끼가 전장을 휩쓸었다.

아군에겐 피해가 없었다.

길드 아군 식별 시스템이 작용해 도끼가 알아서 비켜나가고 있었으니까

도끼가 허공을 한번 나를 때마다 적게는 대여섯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

서거걱!

썩둑, 싹둑!

5%의 드래곤 하트, 그로 인해 아바타의 몸속을 타고 흐르는 무한한 포스.

팟팟팟팟! 번쩍번쩍, 찬웅의 신형이 나타나자마자 반으로 갈라져 사라지는 시체 덩어리 골렘.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애널써커]의 감상은 딱 한 마디였다.

‘미쳤군.’

잘한다, 강하다, 놀랍다, 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그냥 미친 거다.

저 정도면 혼자서도 공략 가능하지 않을까?

왜 길드를 만드는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이런 대규모 플레이어 공격대를 조직했지?

결론은 하나.

이건 버스를 타는 거다.

케이가 운전하는 버스에 오백만 명이 탑승한 거나 진배없다.

혼란은 곧 진정되었다.

[케이] : 진형 유지하고 전진!

크자누이 레이드 공격대가 가진 가장 큰 강점.

결코 무시 못 할 숫자.

그건 다른 공격대 상황도 마찬가지.

아무리 많은 숫자의 언데드들이 소환되어도 플레이어들의 진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저마다 속도는 달랐지만 차근차근 언데드들을 제압하면서 중심부로 다가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레이드가 있었던가?

무식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인해전술, 몬스터보다 훨씬 많은 플레이어의 수, 한 명이 죽어서 강제 로그아웃되면 다른 한 명이 그 자리를 채웠다.

열 명이 죽어 나간들, 백 명이 갑자기 죽어 나간들, 천 명이 한꺼번에 죽어 나간들, 티도 나지 않았다.

※ ※ ※

이황자의 별궁으로 들이닥친 일황자 병력들.

채챙! 채채챙!

“황제 시해범을 잡아라!”

“반역자를 찾아라.”

“이황자와 카라카스 공작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겐 누구라도 1천만 코인을 하사하겠다.”

진짜 설마설마했다.

케이의 침식지 정화가 선포되고 난 뒤,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던 일황자와 에일워스 공작, 그래서 카라카스 공작은 브랜든 이황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형님이 이럴 줄은···,”

브랜든은 침통한 표정.

죽고 죽이는 골육상쟁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심지어 황제 시해범?

“결국 아버님이···.”

카라카스 공작도 표정을 굳히며 조용히 말했다.

“···어서 피신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디로 갑니까? 황궁을 벗어날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서 있는 별궁 시녀만을 바라볼 뿐.

“네 말대로 이렇게 되었다.”

“우린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케이님께도 말씀을 드렸고.”

“···부끄럽군. 허면 이젠 어떡해야 하는가?”

어제 카라카스 공작을 따라 별궁에 들어온 시녀, 하지만 본래 신분은 엘프의 나무 길드 특급 요원 플로라.

“먼저 별궁 밖을 나가야 하는데, 비밀통로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있다. 하지만 황궁 밖으론 통하진 않아.”

“충분해요.”

“제가 안내하죠.”

별궁 밖으로 나가는 비밀통로로 숨어든 세 사람.

한참을 걸어 출구로 나왔지만 여전히 황궁 안.

“네 말대로 별궁은 탈출했다. 방법이 있겠느냐? 저 높은 내성 벽을 어떻게 넘을지, 위에도 병력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나 혼자라면 모를까, 이황자님까지 모셔야 하니.”

갑자기 황금빛 열쇠를 꺼내든 플로라.

케이가 그녀에게 건네준 아티팩트였다.

“따라오세요.”

대체 어딜 간다는 건지.

플로라는 이황자와 카라카스를 북쪽 내성 성벽으로 인도했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소리!

“반드시 찾아라!”

“놓치면 안 돼!”

“성벽을 넘지 못 하게 하라!”

빠른 걸음으로 성벽 주춧돌 앞에 선 플로라.

“여기 같은데···,”

순간!

철컥, 드득, 드드득, 덜컹!

갈라지는 주춧돌, 그리고 생겨난 구멍.

“와!”

“허어,”

“···이, 이럴 수가!”

깜짝 놀라는 이황자와 공작.

내성 안에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빨리요!”

세 사람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시 복원되는 주춧돌.

드득, 드드득, 철컥!

“조심하세요. 어두우니까.”

나선형으로 이어진 길을 통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일행.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도저히 지하라고 여길 수 없는 거대한 공동, 그런데 텅 비어 있었다.

아니, 텅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애애앵! 왱! 왱!

‘무슨 땅 밑에 모기가···,’

그때였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흠칫 놀라는 카라카스 공작, 이황자 앞을 막아서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공동안을 날아다니는 날벌레.

벌레가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상황.

“넌 뭐냐? 먼저 말하라!”

“어쭈?”

스사아아아아!

순식간에 무거워지는 내부의 공기.

결계라도 쳐진 듯 옴짝달싹할 수 없는 세 사람.

카라카스는 특히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드마스터인 자신이 결박당했다고?

그 와중에 날갯짓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비행체.

애애애앵!

한눈에 알아봤다.

“···요정?”

이젠 사라졌다고 알려진 전설 속 생명체.

요정이 왜 여기서 나와?

엘리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

이곳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되는 숨겨진 공간, 그런데 얘들은 뭐지?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을까?

저 여자의 손에 든 물건은 분명···,

“네 손에 든 열쇠는 어디서 난 것이냐? 설마 훔친 거냐?”

“바, 받은 거예요. 열쇠 주인에게서,”

“뭐라? 받았다고? 그럴 리가···.”

저걸 누구한테 줬는데,

“그렇다면 이방인 케이?”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내가 그에게 준거니까.”

“아!”

현실에선 개발자 엘리, 그러나 ‘세상’에선 요정왕 엘리하였던 그녀가 플로라에게 물었다.

“말하라. 케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가 왜 네게 열쇠를 넘겨줬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실 처음부터 발현되고 있었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요정왕의 권능이 말이다.

※ ※ ※

침식지 전투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시체 덩어리 언데드 골렘을 정리하고 다음 지역으로, 쾌속 전진하는 케이의 길드.

[케이] : 잠깐! 멈추세요.

찬웅은 잠시 전진을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마어마한 침식의 기운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뭐지?’

저쪽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희뿌연 구름층.

하지만 자세히 보니 구름이 아니었다.

너울너울, 무언가가 날아온다.

하도 많아서, 빽빽하게 뭉쳐있어서 구름처럼 보인다.

[와치맨] : 스펙터···,

찬웅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던 최기병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스펙터는 허공을 비행하는 유령, 가히 몇 마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숫자.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도, 북쪽 하늘에서도, 비구름처럼 까맣게 몰려오는 스펙터의 무리.

‘잘됐네.’

공격대의 무기가 숫자뿐일까?

[케이] : 투척조 앞으로!

그러자 동화율 높은 랭커 플레이어들이 앞으로 나섰다.

구름층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케이] : 투척!

슈슝! 슈슈슈슝! 슈슝! 슝! 슝!

마키나 공화국이 자랑하는 최악의 무기, 몬스터든, 플레이어든, NPC든, 영향권에 들어오는 건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파워 스틱 밤.

투척조가 던진 폭탄이 구름층을 뚫고 사라졌다.

잠시 후,

콰콰콰콰쾅! 콰콰콰쾅! 쾅쾅쾅쾅!

망령의 침식지에서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졌다.

구름은 순식간에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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