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27화 (127/204)

< 케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난다(2) >

목표는 정해졌다.

동해 바다에 뜬 수송선.

잠수함 어뢰나 전투기로 폭격을 해서 바다 밑으로 수장시켜버리면 간단하게 끝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전투함도 아닌, 합법적으로 한국 영해로 들어온 러시아 국적의 민간 선박.

침몰시켜 버리면 러시아 정부가 가만히 있을까?

아직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판국에.

최기병은 자신이 있었다.

선박에 투입하는 병력은 모조리 각성 플레이어들.

헬기가 공중 지원을 담당하고,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도 출동, 바다 밑엔 잠수함까지.

최악의 순간에 배를 침몰시켜 버리면 그만,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모두 준비됐습니까?”

“네!”

“완료!”

“저도,”

바디캠을 장착한 방탄복과 헬멧, 그리고 개인 화기 및 진(眞) 아이템으로 무장한 APS 각성 플레이어들.

각성 플레이어라 신체 능력은 문제없다.

총기 사용과 기본적인 기초 훈련도 모두 받았다.

헬기가 선박 가까이 다가가자 차례대로 뛰어내리는 플레이어들, 그들을 리드하는 특수부대 출신의 우현수와 고유섭.

“1조 앞으로, 조타실부터 장악합니다.”

“2조는 선창 수색! 준비되면 바로 진입.”

각성 플레이어들이 다 참가했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해있던 민도연까지 복수하겠다며 나섰다.

당연히 딸기도.

“언니, 조심해요.”

“우리 딸기가 있는데 무슨 걱정? 그런데 여기선 날 죽이면 안 돼. 현실과 게임을 혼동하지 마.”

“···이거 게임 아닌가? 게임 같은데.”

“어머! 얘는, 나 진짜 무서워.”

“걱정 마요. 게임 안에서도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나야 믿지. 그리고 찬웅아! 넌 우리만 따라와. 혼자 막 뛰쳐나가지 말고.”

“···.”

지금은 평범하게 행동하자.

‘별일 없겠지?’

제발 손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역시 사도.

하지만 최기병의 말처럼 APS 요원들도 강해졌다.

오히려 모든 아이템과 모든 스킬을 구사할 수 있는 게임 안이라면 위험할 수 있겠지만.

“1조, 날 따라와.”

“2조는 창고 입구부터 찾습니다.”

찬웅이 속한 조는 2조.

킹크랩을 보관하는 창고는 바로 발밑에 있다.

“여기에 수상한 물건들이 실려있다는 CIA의 정보가 있었는데···,”

“뭐지?”

“무기 같은 건가?”

그때였다.

우우우우우···,

창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찬웅은 이 기운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침식?’

쿵, 쿵, 부스럭, 파직!

“이 안에서 소리가, 무언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단 대기···,”

순간!

퍼펑!

갑판 위 창고 뚜껑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헉!”

“무슨···,”

“어마 씨발, 저게 뭐야?”

그리고 선창 안에서 튀어나온 기괴한 생명체.

곰? 아니 호랑이?

대가리는 호랑이인데 몸통은 곰, 꼬리는 호랑이, 앞발은 곰의 것.

“캬아아아악!”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다.

쑥쑥, 올라온다.

“쿠오오오오!”

몸통은 멧돼지, 머리는 늑대의 것을 한 괴물도.

그리고 뒤를 이어,

휙휙휙휙!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올라오는 좀비 무리들,

“캬악!”

“크르르르,”

우현수가 재빠르게 지시했다.

“사격 개시!!!”

타타타타탕!

개인 화기가 불을 뿜었다.

티팅! 팅팅팅팅!

철판이라도 둘렀는지 곰, 혹은 호랑이가 총알을 맞고도 무섭게 달려온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걸 확인했고.

“무기 꺼내!”

스르렁, 스윽!

각종 진 아이템 장비, 그리고 그걸 본떠 만든 양산형 무기들.

“죽여!”

그리하여 벌어진 난전.

딸기가 방패를 들고 호랑곰을 향해 돌진했다.

퍼억!

서걱!

옆에서 민첩한 속도로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오는 좀비들.

“내가 백업할게.”

민도연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좀비의 머리를 찔렀다.

푹푹!

퍽퍽!

터져나가는 좀비의 머리통.

찬웅도 미리 준비한 양산형 검으로 미친 듯이 딸기를 보조하며 좀비들을 베어 넘겼다.

서걱! 서거걱!

좀비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여, 여기 지원 좀!”

“기다려! 내가 간다.”

난전 상황에서 총기 사용은 금물.

무조건 육박전.

확실히 이전보다 눈에 띄게 진보한 능력의 플레이어들.

스킬이 난무한다.

게임 속 성능이 그대로 구현된 진(眞) 아이템 무기가 좀비들을 휩쓸었다.

APS 요원들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괴생명체, 호랑곰과 멧늑대, 좀비들을 밀어내면서 한 마리씩 처리.

순간!

우우우우우웅!

현장을 덮쳐오는 진득한 침식의 기운, 발밑으로 기괴한 오망성 모양의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으흑!”

“머, 머리가.”

“사도들이야!”

“어디?”

조타실 안에서 나와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검은 로브의 사람들.

그러나 후방에서 전장을 살펴보던 최기병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무전기를 들고.

“발포하세요. 제가 책임집니다.”

드르륵! 드르르르르르륵!

허공에서 선박을 감시하던 공격헬기의 발칸포가 불을 뿜었다.

콰쾅! 콰콰콰쾅!

“끄아아악!”

“아악!”

“허억!”

순식간에 쓸려나가는 사도들.

지구의 무기는 장난이 아니다.

숨어있는 빌런들이나 무섭지, 저렇게 자신을 훤하게 드러낸 놈들이 뭐가 무서울까?

제발 죽여달라고 비는 꼴.

각성 플레이어는 무적이 아니다.

레지키쓰론의 능력을 이어받아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진 빌런 사도 플레이어도 대물 저격총 한방에 골로 갔는데.

그러나 우리도 알아야 했다.

저쪽 역시 준비를 해왔다는 걸.

타앙!

“큭!”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뒤쪽으로 나가떨어지는 마태길.

“어헉!”

저격이었다.

드르륵!

하늘에서 지원을 담당하던 헬기가 즉각 대응 사격에 나섰다.

쏟아지는 총탄.

마태길의 상태는 심각했다.

방탄복을 찢어버리는 위력의 철갑탄, 꿀렁꿀렁, 가슴부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빨간 선혈.

봉춘섭이 달려왔다.

“태길아!!!”

“걱정 마세요. 제가 돌볼게요.”

찬웅은 지체하지 않았다.

재빠르게 마태길을 부축한 후, 인벤토리에서 치유 물약을 꺼내 절반을 상처에 뿌린 후,

“자, 빨리 마셔요.”

“···이, 이건?”

정신이 혼미했지만 치유 물약을 모를 리 있나.

봉춘섭도 당연히 알아봤다.

“어떻게 이걸?”

“전에 상자에서 뽑았어요.”

“아, 아니, 제 말뜻은 너, 너무 귀한 거라서.”

“사람 목숨보다?”

“···.”

찬웅은 아예 마태길의 입에다 치유 물약 병을 꽂았다.

“읍!”

꿀꺽, 꿀꺽.

곧 괜찮아질 터.

지금은 들리지 않은 총성.

하긴 공격용 헬기가 4방향에서 감사하고 있는 판에.

그러나 언제나 사각지대는 존재하는 법.

갑판 중앙.

선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응?’

철커덕!

무릎을 꿇고 앉아 이쪽 방향으로 무언가를 겨누는 러시아인 한 명,

우현수가 먼저 알아봤다.

“대전차 미사일이다! 모두 피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헬기의 지원도.

퉁!

발사기 입구에서 쏘아지는 미사일.

“아!”

“씨발!”

“···.”

막을 수 있을까?

진(眞) 쉴드 마법 스크롤도 없고,

이미 찬웅은 도끼를 손에 들고 있었다.

미사일이 날아온다.

츠피릿!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도끼가 마중을 나간다.

강기를 머금은 암살자 루인의 앙증맞은 머리 따개.

하나 더!

츠피릿!

먼저 날아간 도끼가 미사일에 명중했다.

콰쾅! 콰콰쾅!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터져버린 미사일,

동시에,

서거거거걱!

두 번째 도끼가 먼 거리 미사일 사수를 가로로 베어버리고 선실 안쪽까지 뚫고 들어갔다.

휘리릿! 휘릿!

탁! 탁!

차례대로 찬웅의 손으로 돌아오는 두 자루의 도끼.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진 전장.

저 도끼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케이?”

“차, 찬웅씨가···?”

“찬웅아?”

“세, 세상에!”

어쩔 수 없었다.

동료들이 죽는 것보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이 맞다.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몰랐다면 또 다르겠지만 딸기를 포함해서 이미 4명이나 알고 있는데.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밝히고 나니 속이 시원할 정도, 그리고 이제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제약이 사라졌다.

찬웅은 마음껏 날아다녔다.

팟! 서걱!

팟! 콰직!

순간 가속하는 찬웅.

팟팟팟팟!

호랑곰, 멧늑대들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아···.”

“정말이구나.”

“찬웅씨가, 케이였어.”

그러자 선박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무장 병력들.

타타타타탕!

각종 중화기들이 오직 찬웅에게만 집중됐다.

티팅!

파팟!

투웅!

지구의 무기가 강하다 해도, 그건 사람 나름.

자동 발동되는 쉴드, 그리고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빠르기, 최고조로 끌어올린 인식 능력으로 총알이 날아오는 궤적이 보일 정도.

아니, 아예 총이나 미사일을 쏘기 전에,

츠피릿!

서걱! 콰직!

“으아아아!”

“미, 미친!”

“사람이 어떻게?”

APS 소속 플레이어들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현실에서 목격한 케이의 위엄.

게임 속에서 케이와 함께 플레이한 사람은 많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전부가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케이의 전투를 목격한 이는 드물다.

있다면 딸기 정도.

민도연이 옆에 있는 딸기에게 물었다.

“넌 알고 있었지? 처음부터.”

“그, 그건 아니에요. 저도 최근에,”

“와! 진짜 난 꿈에도 생각 못 했어. 찬웅이가 케이?”

“···.”

초롱초롱해진 민도연의 눈빛, 그 모습에 극도로 불안해진 딸기의 마음.

우현수와 고유섭도.

“찬웅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생명의 은인이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몰랐군.”

“우리 플레이어 중에 케이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저렇게 드러내도 되나?”

“숨겨야죠. 최대한!”

침통한 표정의 최기병.

“본부로 돌아가서 비밀 유지 각서에 서명해야 할 겁니다.”

“그거야 뭐···, 백 장이라도 쓰라면 쓰겠지만.”

입안이 쓰다.

‘내 실수야.’

완벽한 작전은 없다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거의 그랬고.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

전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계 임무인데···,

‘미사일을 발사하는 놈을 놓쳐버리다니.’

게다가 마태길 플레이어는 죽을 뻔했다.

이렇게 케이에게 계속 신세를 지니 면목이 서질 않는다.

각성 플레이어들의 신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런 군사작전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해.’

자신도.

물론 케이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아무튼 수습해야 할 일이 많다.

찍고 있는 영상도 편집해야 하고, 사람들의 입도 막아야 하고.

이필동이 최기병에게 다가와 말했다.

“인상만 찡그리지 말고 받아들이세요. 전보다 훨씬 나아졌잖아요.”

“천만에요, 아직 부족합니다.”

“그건 그렇고, 전 이제 어떡하죠? 찬웅씨 대역을 할 필요가 없어졌네요.”

“어째 속이 시원해 보입니다만,”

“···티가 났습니까?”

어느덧 깔끔하게 청소된 갑판 위.

팟팟팟!

그리고 찬웅이 최기병 앞에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 귀한 치유 물약을···,”

“불찰은 무슨,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다고, 오히려 좋은데요?”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도 비밀 유지는 계속할 겁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전 상관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찬웅의 눈이 선실로 통하는 입구로 돌려졌다.

“선실 안만 남았네요.”

“지금부터는 저희가···,”

“아뇨! 저 혼자 들어갑니다.”

“네?”

“지금 발밑에 뭔가 어마어마한 놈이 숨어있거든요.”

“아!”

게임이라면 몰라도 현실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거대한 침식의 기운이.

찬웅은 선실 입구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스르르륵.

사라지는 찬웅.

빨리 끝내고 게임이나 하자.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이 있는 망령의 침식지 보스, 네크로맨서 크자누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그리고 지루한 황위 계승전도 종식 시키고.

※ ※ ※

갑판 위에서 사망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러시아 정보국 요원들과 [브로큰 코사츠]를 비롯한 사도 플레이어들은 선실 안에 숨어있었다.

훤하게 트인 갑판 위보다 미로처럼 복잡한 선실 내부가 대응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두가예프가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케이가 왔소.”

“···그렇군요.”

브로큰 코사츠는 담담했다.

대체 우리가 여기 온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 러시아 정보국의 힘까지 빌렸는데.

철커덕!

중무장한 두가예프.

“케이, 그놈은 반드시 죽을 거요. 실패하더라도 최후의 순간 배 전체를 터뜨릴 테니 알아서 대비하길.”

두가예프는 자폭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악(惡)의 증폭 저주.

마음속엔 온통 케이에 대한 복수심만 가득 차 있는 마당에 투항 같은 건 고려조차 하지 않겠지.

‘슬슬 준비해야겠군.’

위대하신 네크로맨서 크자누이님께서 내리신 지엄한 명은 반드시 완수되어야 한다.

브로큰 코사츠는 동료 사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어.”

“그래,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누가 할래?”

“당연히 코사츠, 네가 해야지.”

선실 안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원을 만드는 크자누이의 사도들, 동시에 그들의 입에서 나지막한 주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희생의 주문.

그리하여 자신들의 포스와 영혼마저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서 강력한 존재를 현세에 강림시키는 흑마법 스킬.

찌직, 쩌억! 츠츠츠츠츠···,

사도들의 육신이 마치 시체처럼 쪼그라든다.

동시에 브로큰 코사츠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풍선처럼 부푸는 그의 육신.

강대한 침식의 기운, 인간의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

흐물흐물.

브로큰 코사츠의 피부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지방층도, 살덩어리도, 근육도, 신경도···,

흘러내린 신체조직이 발밑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새빨간 공의 형태로.

해골만 남은 브로큰 코사츠의 깊게 파인 눈구멍에서 피어오르는 검정색 안광.

마침내 그는 언데드가 되었다.

불사의 리치.

리치가 발밑에 놓인 새빨간 공, 라이프 베슬을 손에 들었다.

이지(理智)가 사라진,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에 대한 끔찍한 증오의 감정만 남긴 채 언데드 최악의 몬스터, 리치가 현세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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