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26화 (126/204)

< 케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난다(1) >

러시아 정보국의 명성은 KGB 시절부터 유명했다.

잠입과 정찰, 요인 암살, 무기 판매···,

그러나 정보 탐지 면에서 보면 러시아와 견줄만한, 아니 그보다 훨씬 뛰어난 나라가 존재한다.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CIA 본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감시하는 목표 대상이 있었다.

러시아 정보국 제2국장 미하일 두가예프, 정작 그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겠지만.

“미하일 두가예프가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부하직원의 보고에 눈빛을 반짝 빛내는 CIA 국장 윌 제리코.

“갑자기? 혼자서?”

“러시아 정보국 일부 요원들과 동행한 걸로 파악됩니다.”

“좋아! 지금부터 모든 감시 체계를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집중한다. 정찰 위성 총동원해. 그리고 두가예프와 만나는 놈들이 누군지도 파악하고.”

케이의 파워 스틱 밤 판매 금지 조처.

그 때문에 미국의 침식지 공략 레이드가 중단됐다.

처음엔 케이에게 화가 났지만 나중엔 연유를 알고 나서 이해했다.

러시아 새끼들이 폭탄으로 NPC 기사단을 죽였다고? 침식지 공략하라고 준 아이템을 게임 속 정치 분쟁에 이용해?

결국 러시아, 두가예프의 뻘짓 때문에 미국이 피해를 보게 된 것.

“퍼킹! 대가리를 잘라 돼지 밥을 줘도 모자랄 새끼, 지옥에나 가라!”

미국이란 나라는 절대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나라.

타국에선 뇌물, 혹은 불법으로 치부되는 자금 지원도 미국에선 합법적인 로비 활동으로 인정된다.

미국이 단독으로 감행한 침식지 레이드.

파워 스틱 밤 덕분에 공략이 성공하자 엄청난 돈이 집중됐다.

폭탄구매에 필요한 코인을 전액 부담할 테니 자신을 공격대에 넣어달라는 정치인, 재력가, 권력자들의 로비가 빗발쳤다.

윌 제리코도 그랬다.

다음에 있을 레이드에 가까스로 한 자리 인정받은 것.

그런데 판매금지라니!

이게 다 두가예프 때문.

멍청한 잡놈의 새끼 때문에 다음 레이드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때부터 줄곧 두가예프를 감시해왔다.

게임 속에서도 놈을 찾아봤지만 나타나지 않았고, 그러다가 현실 감시망에 걸려든 두가예프의 수상한 행동.

“1차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래, 놈이 뭘 하고 있던가?”

“블리디보스토크에 파견된 CIA 현장 요원이 전송한 보고서입니다.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는데, 실행할까요?”

“빨리 해.”

대형 모니터 화면에 뜬 영상.

어두운 밤.

항구의 모습이었다.

다양한 크기의 상자와 트레일러를 대형 선박에 나눠 선적하는 사람들의 모습.

“저건 무슨 배지? 상당히 큰 배인데?”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동해항으로 가는 킹크랩 수출용 선박입니다.”

“동해항? 거긴 한국이잖아.”

“네, 케이의 나라죠.”

“킹크랩이라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려고 하나? 그럼 저 상자들이 다 킹크랩?”

“확실치는 않지만 상자 중 일부는 무기 같습니다. 보고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이 새끼들이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이지?

목표는 분명 케이일 것이다.

그럴 동기도 충분하고.

“아! 방금 한국 국정원에서 넘어온 정보도 있습니다.”

“국정원에서도 두가예프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나?”

“그게 아니라 게임 속에서 한국 APS 용병 플레이어들이 망령의 침식지 사냥 중 사도 플레이어들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사도, 게임 속이든, 현실이든, 여기저기서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빌런들.

“그런데 사도 플레이어 스킬 유형이 흑마법사 계열 같다고.”

“흑마법? 그런 스킬은 처음 들어보는군.”

“공식적인 스킬은 아닙니다. 게임 시나리오에서도 흑마법은 사장된 걸로 나오고요. 어쨌든 이들이 APS 플레이어들을 습격하면서 케이의 정체를 심문했다고 합니다.”

“그래?”

곰곰이 생각하는 윌 제리코 CIA 국장.

사도들이 케이의 정체를 알아내려 했다니.

“···성공했나?”

“당연히 실패죠.”

그럴 줄 알았다.

여하튼 대충 감이 오는데.

“분석관들 모조리 불러와.”

국장의 지시로 모인 CIA 분석관들.

속속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두가예프의 행동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내어놓았다.

“폴른스타 망령의 침식지 보스가 네크로맨서 크자누이였지?”

“맞아. 흑마법의 대가, 5백 년 전 대륙 대전쟁 당시 시체들을 일으켜 카시우스 제국을 침공하려다 침식의 기운이 노출되어서 보스가 된 몬스터.”

“두가예프의 주 활동 지역도 카시우스 제국이었고.”

“만약 APS를 습격한 자들이 크자누이의 사도라면···,”

“절대 우연이 아니지. 분명 두가예프와 접촉했을 거야.”

이미 전 세계 사람들이 케이를 알고 있다.

당연히 지구 곳곳에 숨어있는 사도 놈들도 케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터.

“두가예프, 그놈이 사도들과 손을 잡았군. 케이를 제거하기 위해.”

근데 왜 그렇게까지···.

두가예프도 사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을 텐데.

놈들과 손을 잡는 건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한다.

“전에 두가예프가 게임 안에서 사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황위 계승전 도중에 NPC 암살자에게 죽은 거? 청부자는 삼황자 세력일걸. 기사단 전멸에 대한 복수 같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새끼, 사망한 후 3일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사망 페널티가 지났는데도 접속하지 않는다면···, 혹시?”

“아바타 삭제. 중국 플레이어들에게 가해졌던 시스템의 제재, 폭탄을 NPC에게 사용한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한 제재 대상이 될 것 같은데.”

아바타가 삭제되었다면 놈이 가진 귀족 작위도 소멸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케이가 황위 계승전에 개입해서 이황자 측에 붙었으니, 자신이 밀고 있는 사황자의 황위 계승은 물 건너갔고.

그 와중에 사도 플레이어가 두가예프에게 접근해서 그를 충동질했다는 추측, 분석관의 보고서는 즉시 윌 제리코 국장의 책상 위에 올려졌다.

“그렇군. 신빙성이 있어. 궁지에 몰렸을 테니, 제안을 받아들였을 테지.”

단독 작전이 아닌 합동 작전.

케이의 제거 가능성이 대폭 올라간다.

두가예프에겐 케이에 대한 복수, 더불어 황위 계승전의 주도권을 다시 잡아 보려는 수작.

사도 플레이어에겐 눈엣가시처럼 자신들을 방해해왔던 케이라는 장애물 제거.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

그럼 이걸 어떻게 한다?

정보 취득 과정은 불법.

러시아 정부가 알면 난리가 날 터.

“선박이 언제 출항하는지 끝까지 감시해.”

윌 제리코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직접 알려줘야지.

겸사겸사 점수도 좀 따고.

혹시 알아?

파워 스틱 밤이라도 팔아줄지.

※ ※ ※

민도연은 다행히 무사했다.

아바타 사망 후, 캡슐에서 실신한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단다.

지금은 일반 병실로 옮겨져서 회복 치료 중.

시간이 흐르고 면회가 허락되자 찬웅은 딸기와 함께 민도연을 보러갔다.

“괜찮아요?”

“으으으, 따, 딸기야. 머리가 너무 아파.”

“미, 미안해요. 언니.”

“뭐가 미안해? 네가 아니면 캡슐 안에서 죽었을 텐데.”

숨기려 할 줄 알았는데 딸기는 결국 고백해버렸다.

자신이 직접 아바타를 죽였다고.

“음? 찬웅아, 너도 왔어?”

“그래. 다행이다. 별일 없어서,”

“다행은 무슨, 아파 죽겠구만.”

엄살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괜찮아 보인다.

포스가 사라지지 않았고, 침식의 기운도 없고, 하락한 동화율이야 복구하면 되고.

순간!

병실 안으로 몰려오는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들.

“도연씨!”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아니, 누가 감히 누님을 죽였어요? 제가 복수해드릴게요.”

“···.”

최기병도 왔다.

찬웅의 옆으로 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최기병.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찬웅은 뒤로 빠져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서.

‘아무도 없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꺼내 마시며 기다리자 최기병이 올라왔다.

“무슨 일이죠?”

“미국 CIA가 국정원에 정보를 공유해왔습니다. 비공식적으로요. 실은···,”

최기병은 찬웅에게 CIA가 취합하고 분석한 정보를 자세하게 털어놓았다.

뜨악한 표정의 찬웅.

“러시아 정보국이 사도와 손을 잡았다고요?”

“네.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미쳤네요. 게임이 뭐라고···,”

“단순한 게임은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앞선다.

러시아도 빌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그 폐해가 심각했다.

그런데 빌런보다 더한 사도와 손을 잡다니.

“배는 출항했어요?”

“아직은 아닙니다.”

“미국은 어떻게 한답니까?”

“글쎄요.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고, 그렇다고 확실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러시아 정부에 항의할 수도 없고.”

“···.”

러시아를 상대할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자칫하면 3차 세계 대전에 빌미를 만들어 낼지 모르니까.

사실 두가예프를 감시한 것 자체가 미국에겐 큰 부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얻어내 우리에게 알리기까지 했다.

‘미국에게 신세를 졌네.’

나중에 차차 갚기로 하고.

“배가 출항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세요.”

“···네?”

“제가 처리하죠. 한국 영해로 넘어오자마자.”

“아···,”

놈들의 목적은 자신.

오기 전에 처리하면 그만.

가소로운 놈들이다.

왜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할까?

이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똑똑히 가르쳐줘야 한다.

그런데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움찔움찔하는 최기병.

“제게 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APS 각성 플레이어들이 주도할 겁니다.”

“···진심입니까?”

“단순한 사안이 아닙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죠. 우리에겐 대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러다 희생이 생기면?”

“언젠가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미 청와대에 보고도 했고요.”

“···사도들이 그리 만만한 존재도 아닌데.”

“우리도 만만하진 않습니다.”

“···.”

단호한 의지를 표하는 최기병.

“그럼 전?”

“강찬웅 플레이어로서 작전에 합류해 주십시오.”

자신감이 넘쳐나는 건 좋지만.

이해는 간다.

우현수, 고유섭, 마태길, 봉춘섭, 민도연, 이필동, 최기병등, APS 핵심 맴버 또한 대신전에 방문해서 축복을 받은 플레이어.

그들 모두 진(眞) 아이템과 진(眞)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이들을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몇이나 될까?

‘일단 참여는 해야겠지? 강찬웅으로.’

하지만 돌발 상황이 생겨나면 손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럼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테고.

‘뭐, 상관있겠어?’

탄로 나면 어때?

최초 정체를 숨기려 했던 건 혹시라도 현실에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를 복용한 이상, 그리고 강기까지 배운 마당에, 정체가 드러난들 어쩌라고?

‘달라질 건 없어.’

최소한 동료들은 자신의 정체를 알 자격이 있다.

함께 게임 하면서 다져진 친분이 있는데.

그리고 하루가 지나, 오후 3시경,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출항했다.

동해항 예상 도착시간은 다음날 낮 12시.

※ ※ ※

바다를 가르며 항해하는 킹크랩 수송 선박, 정작 선창 안엔 킹크랩보다 다른 물건들이 더 많이 실렸다.

선상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가예프와 브로큰 코사츠.

“동해항에 내리자마자 작전을 실행합니다.”

“아직 놈의 정체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그건 알 필요 없습니다. 각성 플레이어든 군인이든 닥치는 대로 죽입니다. 그럼 나타날 테죠.”

“그건 맡겨두시오. 항구부터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아아, 폭탄은 자제하세요. 시체가 손상되면 안 되니까.”

동해시 인구 약 9만 명.

이들 대부분은 언데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계획은 세워졌다.

선창 아래엔 실린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무기.

시베리아 불곰과 호랑이를 조합해서 연성한 키메라 10마리, 야생 늑대와 멧돼지를 조합한 키메라 10마리, 그리고 무덤에서 빼내 온 싱싱한 좀비 100여 개체.

이놈들을 풀어서 사람들을 습격한다. 물론 그냥 죽여도 되고.

시체가 생겨나겠지.

그걸로 좀비를 만들어 동해시로 풀고, 다시 생겨난 시체로 언데드를 만들고, 또 죽이고 만들고···,

언데드의 군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터.

“한국 영해로 들어왔소.”

“이제 시작이군요.”

끔찍한 공포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줄 때.

한국의 작은 항구 도시에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위대한 네크로맨서 크자누이님의 영역에 얼씬도 못 하게.

그런데?

타타타타타타···,

저 하늘에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

“응?”

한국 군대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헬기 4대가 킹크랩 수송선 상공 위에 나타났다.

“이런!”

“어, 어떻게 알고?”

헬기가 그냥 나타날 리 있나?

게다가 언제 나타났는지 자신이 탄 배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한국의 이지스함.

“제기랄!”

설마 케이는 없겠지?

하지만 브로큰 코사츠의 머리에 그 유명한 말이 또 한 번 떠올랐다.

케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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