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25화 (125/204)

< 크자누이의 사도(2) >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민도연이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들에게 제압을 당하고, 딸기가 그걸 발견하기 약 30분 전.

경기도 과천, 한국 APS 캡슐 접속 센터.

APS 본부는 원래 연희동에 있었지만 진(眞) 마정석 개발 업무로 규모도 커지고 인원도 많아졌다.

그래서 일반 업무 공간과 게임 접속 센터와 분리하기로 결정, 기존 직원들은 연희동에 남았고, 플레이어들은 경기도 과천의 정부청사 부지에 새로운 접속 센터로 출근하고 있었다.

현재 용병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카시우스 제국 폴른스타에 있었다.

왜냐하면 케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망령의 침식지에서 자율 사냥과 신입 버스 태우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APS 플레이어들.

그런데 갑자기!

벌컥! 벌컥! 벌컥!

열리기 시작하는 캡슐들.

“어?”

“뭐야?”

“민도연 플레이어 파티원들인데?”

“어이쿠,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이거 동화율 하락은 어쩔 거야?”

접속 센터 관리 직원들이 캡슐 쪽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사망 원인 말씀해주세요.”

“···매복에 걸려서.”

“침식지 몬스터들이? 이상하네. 준보스급이라도 출현했어요?”

“데스나이트가 언데드 무리들을 이끌고 우릴 기습했습니다. 게다가 그 틈을 타 뒤치기하는 놈들도 있었고,”

“그 상황에서 PK까지? 그런데 파티장은?”

아직 열리지 않은 캡슐 하나, 바로 민도연의 것이었다.

“응? 아직 안 나오셨나? 분명 포위망에 걸린 것까지 확인했는데.”

“도망치셨을 수도 있죠.”

“그,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라,”

“확인해봐야겠네요. 민도연씨와 가까운 파티가 어디···,”

순간!

벌컥, 벌컥, 벌컥···.

연속적으로 열리는 캡슐 뚜껑.

“이런!”

“환장하겠군.”

“이분들은 딸기, 신여은 플레이어 파티원이잖아.”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팀장님은?”

“현재 접속 중입니다.”

“당장 보고드려.”

※ ※ ※

찬웅은 여전히 황궁에 있었다.

이황자의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정치는 젬병, 차라리 머리 따고 다니는 게 쉽지.

알폰소 카라카스 공작과 함께 매일매일 귀족들의 연회에 초대받아 먹고, 마시고···, 별다른 말 없이 따라만 다녔는데도 지친다.

이렇게 시간만 끌다 보면 장기전으로 접어들지 모르는 일.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이황자를 확실하고 빠르게 황위에 올리는 방법.

예를 들어 후원자인 케이의 주도로 폴른스타 망령의 침식지를 공략해 버린다면?

‘···이참에 도전해봐?’

물론 믿는 구석이 있다.

조금씩 흡수되고 있는 드래곤 하트.

처음 흡수율이 3%였던 것이 지금은,

[드래곤 하트 : 흡수율 5%]

또한 그에 따른 포스도 39,470에서,

[포스 : 59,893]

드래곤 하트 흡수 이전 고작 8,900에 머물던 포스가 무려 6배 이상 늘어났고, 강기(罡氣)도 숙련에 숙련을 거듭해 3단계.

‘포스가 10만 이상에 강기 5단계만 올라도···,’

지성체 침식지 보스에 비벼 볼 만하다.

카시우스 제국의 황위 계승전을 마무리 짓고 완전하게 발을 뺄 기회, 물론 그렇다고 무리하게 먼저 일을 벌일 생각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하고 울리는 친구 메시지.

[와치맨] : 흐음, 죄송합니다만 APS 플레이어들에게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케이] : 무슨 일요?

[와치맨] : 플레이어들이 망령의 침식지에서 사냥 중이었는데 속속 강제 로그아웃되고 있어서, 거의 전멸 수준이에요.

[케이] : 전멸? 보스라도 공략했어요?

[와치맨] : 외곽 지역에 데스나이트가 출현했다던데, 가끔씩 이런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하필 그때 타 플레이어에 의한 PK도 당해서.

[케이] : 그래요? 어느 팀이 피해를 입었는지?

[와치맨] : 민도연씨와 신여은 플레이어 팀입니다. 그런데 아직 두 분은 접속 중입니다.

그럼 아직 싸우고 있다는 말인데.

데스나이트라면 아무리 딸기와 민도연이라도 버거운 존재.

‘현재 딸기 위치는?’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플레이어 신여은의 아바타 상큼한 딸기는 폴른스타 망령의 침식지 남쪽 1.7km 지역에서 접속 중입니다. 좌표 전송 시행합니다.]

곧바로 찬웅은 이황자 별궁 정원 뜰로 나왔다.

스우웅!

땅바닥에 소환진을 생성시킨 후,

“히이이잉!”

나타난 유령마 부키의 등위에 올라타고,

펄럭펄럭,

“빨리!”

망령의 침식지를 향해 날아올랐다.

쐐애애액!

침식지까진 금방이었다.

여전히 NPC 부키는 침식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담에 보자.”

“히힝!”

부키는 역소환, 딸기가 있는 곳까진 바람길 산책으로.

팟! 팟! 팟! 팟···,

포스는 충분하다.

순간 가속을 종일 펼쳐도 될 만큼.

이윽고,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보인다.

저놈들이 PK 놈들인가?

데스나이트도···,

검정색 갑옷으로 무장하고, 음산한 아지랑이를 풍겨대며 커다란 대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인간형 언데드 마물.

그런데 플레이어들과 데스나이트가 함께 뒤섞여있었다.

‘어?’

전투 상황도 없었다.

심지어 플레이어들이 데스나이트에게 손짓으로 지시까지 내리는 모습.

“이런 개새끼들이!”

분명 사도들이다.

몬스터에게 지시를 내리는 플레이어, 사도 말고는 없다.

게다가 데스나이트 두 마리가 잡고 있는 플레이어는···,

“딸기?”

반사적으로 찬웅의 손에서 도끼가 날아올랐다.

츠피릿!

※ ※ ※

데스나이트.

죽음의 기사.

리치와 함께 네크로맨서가 소환할 수 있는 궁극의 언데드.

모든 언데드가 그렇듯, 소환하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

바로 시체, 혹은 망령화된 영혼.

살아생전 능력에 따라서 약한 존재는 좀비, 혹은 구울, 스켈레톤, 그보다 강한 존재들은 듀라한, 6서클 이상의 고위급 마법사들은 리치가 된다.

그렇다면 데스나이트들은?

당연히 익스퍼트 이상의 기사가 그 대상.

마물 주제에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언데드 마스터.

망령의 침식지엔 언데드가 될 수 있는 재료들이 풍부한 곳.

5백 년 전, 이곳에서 한창 대회전이 벌어졌을 때 침식을 당한 터라, 여길 벗어나지 못한 시체와 망령들이 수두룩했다.

약점도 있다.

침식의 기운이 뒤섞여 주신의 가호를 받은 플레이어와는 천적 관계.

그러나 아무리 천적이라도 좀비나 구울 정도에게나 적용되지, 리치나 데스나이트 급이라면 천적 관계는 별 상관이 없어진다.

그래서 네크로맨서 크자누이의 사도, 아바타 명 [빅샤크]를 포함한 세 명의 동료 사도들은 임무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디선가에서 도끼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거거거걱!

무시무시한 데스나이트가 도끼 한 자루에 갈려 나갔다.

“이런···,”

말이 되나?

고작 도끼에?

아니, 중요한 건 도끼가 아니라 그걸 사용하는 플레이어.

“설마?”

팟팟팟팟!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플레이어 한명.

그리고 그의 머리에 뜬 이름표.

“케, 케이?”

확실하다.

바로 그였다.

자신들이 데리고 온 데스나이트는 두 기.

하나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또 하나는···,

츠팟! 파바밧! 츠핏!

어느새 쌍도끼를 손에 든 케이.

우우우웅!

도끼 전체에 어려있는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

데스나이트의 육신이 잘려 나갔다.

콱! 콱! 콱! 콱! 콱···.

무자비한 도끼질에 데스나이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미, 미친!”

압도적이었다.

웬만한 NPC보다 훨씬 강하다.

순간, 아바타 [빅샤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와 마주했을 때 군주께서 내리신 명은···,

“도망가! 흩어져!”

“보고는?”

“도망가면서 하라고!”

찬웅은 놈들을 도망가게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개발자 엘리가 플레이어 킬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사도는 안 돼.’

침식의 기운이 느껴지는 세 명의 플레이어.

각기 세 갈래로 흩어져 도망치고 있지만.

팟!

플레이어 킬!

콱!

“아악!”

프스스스.

일단 한 놈.

또 한 놈은 플레이어 킬과 비열한 습격을 섞어 정확히 머리통에,

츠피릿!

콰직!

“크허억!”

프스스스,

이제 하나 남았다.

팟팟팟팟팟!

찬웅은 아바타 [빅샤크]의 다리를 먼저 잘랐다.

서걱!

“켁!”

볼썽사납게 데굴데굴 구르는 사도, 빅샤크.

“어딜 가려고? 갈 때 가더라도 인사는 해야지.”

“퍼, 퍼킹!”

“욕하지 말고, 말해봐. 왜 우리 플레이어들을 습격했지?”

“흐흐흐,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아?”

“···그렇군. 깜빡 잊었다. 말해 줄 놈들이 아니지.”

“빨리 죽여! 그리고 3일 후에 보자고.”

“아니! 보지 못해. 3일 후에도.”

“뭐···?”

찬웅은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웅!

짙게 어린 강기와,

츠피릿!

놈의 정수리에 작렬한 별빛 가르기.

콰악!

그리고 정성을 들인 플레이어 킬!

“끄아아아아악!”

아바타 [빅샤크]는 처음 느껴보는 격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나?

영혼마저 쪼개지는 느낌.

“넌 캡슐에서 일어나지 못할 거야.”

“자, 잠깐 그게 무슨 말?”

“잘 가라.”

“으헉, 으아아아···,”

프스스스스.

가루로 사라지는 [빅샤크].

‘딸기는?’

민도연과 함께 있었다.

데스나이트에게 풀려나자마자 쓰러진 민도연의 아바타를 끌어안고 치유 물약을 억지로 먹이려 하는 딸기.

“괜찮아요?”

“네, 하지만 언니가.”

“제가 볼게요.”

조금 늦었나?

이미 침식의 기운이 민도연 아바타 몸 안에 가득 퍼져있었다.

사망 판정도 받지 못한 듯 죽지도, 깨어나지도 않고 있고.

“치, 치유 물약이 효과가 없어요. 정신 방어의 물약도.”

아무리 침식에 강한 아바타라지만 너무 심하게 당한 것 같다.

이런 경우 방법은 한 가지.

“죽입시다.”

“···네?”

“리셋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아바타가 사망해서 사라지면 새로운 아바타를 받게 되니까.

그러나 찬웅 자신이 직접 하지는 못한다.

플레이어 킬을 발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딸기는 톱날검을 잡았다.

살짝 주저하다가 결심한 듯 입술을 꽉 물고 민도연 아바타 심장 부위에 검을 찔러 넣는 그녀.

푸욱!

프스스스스.

딸기는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APS 안에서 가장 친한 민도연을 직접 죽였는데,

“걱정 말아요.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하아,”

다행이다.

딸기는 죽지 않아서.

찬웅은 넓게 펼쳐진 침식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사도들이 스스로 움직였을까?

절대 아니다.

분명 침식지 보스 크자누이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터.

‘좋아, 넌 내가 직접 끝장내준다.’

최초의 지성체 침식지 보스 공략.

네크로맨서 크자누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바타 명 [빅샤크].

현실에서 이름은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28살 사이먼 피트.

시드니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던 연쇄 강간 살해 용의자 사이먼이 접속 캡슐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건 몇 시간 뒤였다.

사인은 급성 뇌경색.

시드니 경찰들은 재판까지 가지 않게 됐다며 매우 좋아했다.

※ ※ ※

폴른스타 황도.

사도 플레이어 [브로큰 코사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역시 실패했군.’

케이의 신분 확보 작업을 위해 침식지에 투입된 동료에게서 전해진 마지막 메시지.

‘···케이.’

놈이 개입한 이상 성공은 물 건너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게임 속 세상, 그리고 현실에서 비슷한 임무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도들, 각자 모시는 군주들은 다르지만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떠도는 사실 하나.

‘케이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든 나타난다.’

그곳이 게임이든 현실이든 말이다.

이번 경우에도 여지없이 증명됐다.

‘결국 정체를 알아내는 건 실패했단 말이지?’

결국 플랜 B로 가야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

‘조금만 천천히 했더라면···.’

크자누이의 사도들은 흑마법사.

무력이 아닌 다른 효율적인 수단들이 무수히 많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저주마법을 준비했었다면 이렇게 대놓고 싸우지 않아도 될 텐데.

‘후우, 하는 수 없지.’

군주께서 내리신 명이다.

자신들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

처음부터 이런 계획은 아니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질 정도로 다급해하시는 군주 크자누이.

이미 케이의 존재를 알고 있는바, 놈이 폴른스타에 나타났다는 걸 알았을 때도 이렇지 않았다.

문제는 놈이 황궁 대연회에 참석한 직후부터.

갑자기 군주 크자누이님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불경스러운 추측이긴 한데···,’

거의 확신했다.

군주께선 케이를 두려워하신다.

위대하신 네크로맨서 크자누이님이 말이다.

‘고작 플레이어 따위를 무서워하신다고?’

대체 황궁에서 케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하여 군주께서 내리신 지엄한 명.

- 네 세상에서 케이를 죽여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

두가예프에겐 이미 저주를 걸어뒀다.

인간 심성 깊숙한 곳에 내재하여 있는 욕망과 악(惡)의 기운을 증폭시키는 저주, 그리하여 케이를 철천지원수로 인식하고 있을 터.

크자누이의 사도들은 계획이 세워질 때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집결해 준비하고 있었고, 러시아 정보국 요원들도 곧 합류할 터.

‘정체를 몰라도 상관없어.’

스스로 나오게 하면 그만이다.

크게 한판 벌이면 한국 정부에서 각성 플레이어들을 보내 대응할 것이고, 그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 케이일 터.

‘나도 슬슬 가볼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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