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23화 (123/204)

< 드래곤, 그리고 드래곤 >

폴른스타의 황궁.

구름이 짙게 껴 달빛조차 가린 어두운 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까지 합쳐, 높게 세운 5개의 뾰족한 첨탑이 찬웅의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몰래 침입하는 건 안 되는 거였어.’

선택 잘했다.

황궁 첨탑.

마탑의 일부 기능을 모방해서 만든 감시탑.

만약 외부인이 침입했을 때 저 첨탑이 1차로 거른다.

탑의 영역하에선 그 어떤 투명화 마법도, 플라이 마법도, 은신 스킬도 사용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황궁 내성을 넘는다면 첨탑이 작동해 자동으로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게 되는 것.

동시에 캔슬레이션 마법으로 침입자의 정체를 까발려버린다. 그럼 근위 기사단과 궁정 마법사들이 출동해 제압하는 식이고.

그러나 언제나 사각지대는 있다.

첨탑 감시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 물론 극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거지만.

‘감시탑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찬웅은 이황자에게서 빌려온 ‘민심의 로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황제, 혹은 황자들이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내성 바깥으로 나가거나 다시 돌아올 때 착용하던 아티팩트, 첨탑의 인식 체계에서 자유롭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줘서 감사하긴 해.’

당연히 대가가 있는 거지만.

‘어디 보자, 열쇠가···,’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황금열쇠를 꺼냈다.

개발자 엘리가 준 아이템.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증표]

[등급 : 언노운]

[종류 : 열쇠]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길잡이 / 드래곤 레어 봉인 해제.]

길잡이 기능이 있어 드래곤 레어가 어디 있는지도 알려준다.

‘이쪽인가?’

찬웅의 눈에만 보이는 황금빛 선, 북쪽 내성 성벽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제대로 온 것 같은데···,’

확실히 여기다.

성벽 기초를 이루는 거대한 주춧돌 앞에 선 찬웅.

그런데 바로 그때!

철컥, 드득, 드드득, 덜컹!

주춧돌 중앙이 갈라지더니 이내 사람 한 명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후우,’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드래곤 하트 찾으러 간다.

‘안 문다고 했으니까.’

개발자 엘리를 믿어야 한다.

설마 거짓말을 했겠어?

찬웅이 통로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되는 주춧돌.

드득, 드드득, 철컥!

찌익!

라이트 마법 스크롤을 찢어서.

화악!

통로는 꽤 길었다.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이어진 길, 계속해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한 시간쯤 지났나?

‘흠···,’

통로의 끝은 거대한 흙벽으로 막혀있었다.

그러나 황금열쇠에서 솟아오르는 빛이 마치 레이저빔처럼 흙벽 중앙으로 쏘아졌다.

스르륵,

흙벽이 사라지고 드디어 드러난 내부의 모습.

“아!”

찬웅은 목격했다.

광대한 지하 공동 중앙에서 금빛 찬란한 비늘을 자랑하며 바닥에 엎드린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모습을.

‘···크긴 크구나.’

초록 도마뱀 레지키쓰론보다 더 거대하다.

‘자고 있는 거 맞나?’

최소한 죽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시작하자.’

고민할 필요 없다.

결과는 두 가지.

드래곤 하트를 취하거나, 아니면 깨어난 드래곤에게 물려 죽거나.

스윽, 팟팟!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쌍도끼를 꺼냈다. 자원 재생 물약 몇 병도 꺼내고, 드래곤 하트는 목 부분에,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만약 완전하게 잠들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첫 번째 공격이 가해질 때 깨어날지도.

그렇다면 원샷, 원킬.

처음부터 최강의 공격 스킬.

‘강기(罡氣).’

상태창에 표시된 강기의 레벨은 2단계.

자주 사용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몇 번 쓰다 보니 숙련이 올랐다.

지이이잉!

아바타 케이의 포스가 도끼로 집중된다.

하트가 있는 건 목 어디 부분일까?

몸통하고 연결된 하단? 아니면 머리와 연결된 상단? 적당하게 타협해서 중앙?

‘···이왕이면 대가리와 가까운 곳이 좋겠지?’

자원 재생 물약 미리 한 병 마시고.

지이이이잉!

도끼날에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는 강기.

‘한방에 목을 가른다고 생각해야 해.’

무릎을 굽힌 채 하체에 힘을 주면서,

타닥!

허공으로 도약해서 활처럼 몸을 젖히고,

휘릿!

드래곤의 모가지를 향해 벼락같이,

츠핏!

도끼를 내려찍었다.

‘별빛 가르기!’

과연 강기(罡氣)가 골드 드래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

콱!

쩌억!

그러자 순식간에 갈라지는 비늘,

“됐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깼나?’

목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여전히 잠에 빠진 채 꿈쩍도 안 하는 골드 드래곤.

‘···.’

이로써 확실해졌다.

개발자 엘리의 호언장담대로 드래곤은 깨어나지도, 물지도 않았다.

‘희한하네.’

이 정도 공격이라면 깨어날 법도 하지만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자고 있는 게 맞을까?

아무튼 계속 쳐보자.

몸체의 크기에 비례해 목의 굵기도 무척이나 두껍다.

한 번 더,

콱!

쩌억!

포스가 소진되면 물약을 먹도 잠시 쉬었다가, 차오르면 다시,

콱! 콰직! 콱!

골고루, 골고루,

쩍! 쩌억! 쩍!

점차 드러나는 속살.

그리고 너무 싱겁게도.

‘찾았어.’

드래곤의 목 정중앙에서 수줍게 드러나는 황금 보석,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찬웅은 조심스럽게 하트를 적출했다.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하트]

흔한 아이템 정보도 표시되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게다가 진(眞)도 아니고.

‘쯧, 조금 기대했는데.’

그냥 손에만 들고 있었는데도 느껴진다.

그 안에 응집된 어마어마한 기운을.

‘먹으라고는 했지만···,’

그러다 죽는 건 아닐까?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복용할까?

아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저지르자.

그렇게 결심한 찬웅은 어른 주먹만 한 황금 드래곤 하트를 입에다 억지로 우겨넣었다.

꿀꺽,

“음···,”

아직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그때였다.

“으윽!”

강대한 기운이 아바타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무, 무슨!”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

통각 제어는 소용이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픔, 처음 게임을 했을 때 멋모르고 접속 의자에 앉았을 때보다 더 미칠 지경, 혈관과 근육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 두 다리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허어억!”

결국 찬웅은 두 팔을 바닥에 짚고 개구리처럼 엎드렸다.

“···우욱! 욱!”

아니! 아프다면 아프다고 미리 말이나 해주지.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속이 미식거리며 헛구역질이 올라오고···,

“어?”

순간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아바타 케이의 육신.

‘이거 위험한데?’

그때였다.

[위험! 아바타가 포스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곧 육체가 붕괴의 붕괴가 진행됩니다.]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뭐?”

드래곤에 물려 죽는 것이 아니라, 하트 먹다가 죽게 생겼다.

정신 바짝 차리자.

지금 고통이 문제인가?

통제해야 한다.

“···방출 스킬로,”

포스를 운용.

현재 방출 스킬 숙련은 11단계, 최종 레벨이 12단계이니 거의 완숙단계라고 보면 된다.

몸 안에서 날뛰는 포스를 인도해서 내뱉고, 돌리고, 분배하고···, 하지만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위험! 아바타가 포스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곧 육체가 붕괴의 붕괴가 진행됩니다.]

“···제기랄.”

순간!

[시스템 권한으로 데이터 압축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프로그램이 아바타에 개입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연히!’

[데이터 압축 프로그램이 GD – H1PW, 드래곤 하트를 관리합니다.]

‘···관리?’

그러더니 점차 고통이 줄어든다.

날뛰던 포스가 조금씩 잠잠해지면서.

“후우,”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죽다 살았다.

그렇다면 다 끝났나?

상태창 변화는?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랭커)]

[포스 : 39,470]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10단계), 바람길 산책(11단계), 별빛 가르기(11단계), 강타(8단계), 슬립(2단계), 강기(2단계)]

[패시브 스킬 : 방출(MAX), 듀얼 스트라이크(10단계), 마법 저항(5서클), 약점 포착(9단계), 고무 신체(7단계)]

[동화율 : 181%]

[반영률 : 61%]

[드래곤 하트 : 흡수율 3%]

“미친!”

포스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리고 방출 스킬도 맥스, 제일 하단엔 드래곤 하트라는 새로운 스탯이 생겼다.

‘흡수율이 3%인데 포스가 무려 3만 이상 오른 거야?’

시험해보자.

지이이잉,

찬웅의 도끼에 어리는 강기.

빠른 속도로 소모되는 포스.

확실히 포스 조루 신세는 면한 것 같다.

또한 방출 스킬이 극성에 이르러 강기에 소모되는 포스량도 조절이 가능했고.

이리저리 도끼를 날렸다 다시 회수하는 찬웅.

지이잉,

츠피릿!

지이이잉!

휘릭!

‘할 만해.’

쉬워지긴 했다.

심지어 뭔가 아바타의 한계를 초월해버린 느낌.

진(眞) 드래곤 하트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반영률만큼 현실의 포스도 그만큼 늘어날 테니까.

‘음.’

찬웅은 만족했다.

벅차오르는 자신감.

‘이 정도면 지성체 침식지 보스도 공략할 수 있겠어.’

또 강기는 진(眞) 스킬.

택배로 온 스킬 구슬은 예전에 먹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사용할 엄두도 못 냈고.

그렇다면 이젠 어떨까?

가장 강력한 지상 병기인 전차.

포스만 충분하다면 철갑으로 무장한 흑표 전차도 갈라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으스스하다.

이렇게 강해지는 데 다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고작 빌런들을 처리하는 데 이런 힘이 필요할 리가?

쥐 잡는 데 미사일 갈기라는 말과 뭐가 달라?

‘혹시 현실에서도 강기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찬웅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하는 드래곤의 육체.

마법 처리를 하면 보존할 수 있지만 방법도 모르고.

그제서야 레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없나?’

예를 들면 보물 같은 거.

하지만 휑하다.

드래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비록 자고 있었다 하더라도 드래곤을 죽인 거나 다름없는데, 왜 동화율이 오르지 않았지?’

한 10% 이상 돌파해야 정상 아닌가?

혹시 인형 같은 빈 껍데기였나?

※ ※ ※

노을이 지는 카리브해 바닷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캠핑용 의자에 앉아 불멍을 때리던 게리 스탁턴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봤다.

“끝났구나.”

현실과 세상이 오늘에서야 완전하게 끊기고 말았다.

‘세상’에 존재했던 본체와 ‘지구’에 존재하는 영혼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이 말이다.

이제 듀플렉스의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의 게리 스탁턴만 남았다.

옆에 함께 앉아있던 엘리가,

“소원을 이루셨네요. 주인님, 이제 지구인이 되셨어요.”

“···그래, 껍데기가 사라졌어.”

“기분이 어때요?”

“글쎄, 좋다고는 말할 수 없네. 어쨌든 육체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왠지 처량한 표정의 게이 스탁턴.

“우리 건배나 해요.”

“뭘 위해서?”

“골드 드래곤 리스타리칸의 죽음과 지구인 게리 스탁턴의 자유를 위해.”

“···그래, 엘프의 눈물, 아니 그냥 위스키를 가지고 와. 온더록스로.”

챙!

부딪히는 유리잔.

세상으로서의 완전한 해방.

“그건 그렇고, 케이가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나?”

“완전히는 아니지만 받아들인 건 맞아요. 극히 일부지만.”

“···시스템이 허용했다는 말이지.”

게리 스탁턴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시스템이 드래곤 하트를 허용할지 반신반의했다.

솔직히 허용하지 않아 주길 기대했다.

종말의 위험이 아직 멀었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결과는 허용.

그리고 그건 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이제 곧···,”

게리 스탁턴은 지구를 사랑했다.

그래서 제발 악몽이 최대한 늦게 도래하길 기도했다.

※ ※ ※

아프리카 중서부.

가봉 공화국은 적도에 위치해 열대우림으로 유명한 나라.

가봉의 인구는 그리 많지 않고, 석유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해 여타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비교해서 제법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

그래서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을 플레이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피에르 운게마는 동화율 178%의 가봉 플레이어, 반영률도 이미 50%를 넘었다.

운게마는 돈도 많다.

재산으로 따지면 아마 세계 최고의 부자, 대충 300억 코인 정도?

원래 부유한 집안의 출신은 아니고 게임에서 돈을 벌었다.

아니, 벌었다기보다는 후원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랬다.

위대하신 후원자께서 그를 위해 친히 재화를 내려주셨다.

운게마는 그 돈의 일부를 환전해 열대우림 중심부에 자신만의 거처를 마련했다.

원래는 불법이지만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있나!

조용히 숨어 지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급격하게 변이되고 있는 자신의 육체.

피부의 90% 이상이 초록색 비늘로 뒤덮여 멀리서 보면 인간인지 도마뱀인지 모를 정도, 물론 폴리모프를 통해 정상적인 인간의 육체로 바꿀 수 있지만···,

“이 모습이 더 좋아.”

또한 푸르디푸른 숲을 벗 삼아 사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군주시여.”

[맞다. 숲은 곧 생명이지. 진짜 생명. 너무나도 좋구나.]

피에르 운게마의 육신엔 두 개의 영혼이 존재했다.

하나는 운게마 자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멀지 않았습니다. 군주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게 되실 날이.”

[고생이 많구나. 나의 충실한 종, 운게마야.]

듀플렉스 가상현실 게임, 로그드라실 침식지 보스, 그린 드래곤, 광룡 레지키쓰론이었다.

본체는 세상 안에 있다.

로그드라실 침식지 안에 있는 레어.

영혼만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

아직 완전하게 탈출한 건 아니다.

이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발각되면?

영혼을 잠식하고 들어가 육체의 완전한 주인이 되기까지 일정 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본체가 가진 힘을 최대한 옮겨야 하고.

그때까지는 진짜 현실 열대우림의 숲에서 조용하게, 더불어 생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진짜 세상이 어떤 곳인지 경험해봐야지.

레지키쓰론이 접속된 운게마가 숲으로 걸어갔다.

치직, 치지직.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진득한 침식의 기운의 열대우림의 숲을 잠식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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