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22화 (122/204)

< 황위 계승전(3) >

길고 긴 광산 복구 작업이 드디어 끝이 났다.

터널과 갱도 또한 복구되면서 다시금 재개된 진(眞) 마정석 생산.

APS 본부 직원들에게 지옥 같은 야근의 시작이었다.

“전화 받지 마, 아니 아예 선을 끊어버려.”

“스마트폰은요? 지금 하도 연락이 많이 와서.”

“전원 끄고 여기 상자에 넣어.”

직원들이 하는 일은 마정석을 우선 판매할 국내 기업 선정, 기술력이 높은 곳을 위주로.

아무 데나 팔면 안 된다.

파워 스틱 밤처럼 2차 판매의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구매한 마정석에 프리미엄을 붙여 되판다든지, 되팔이는 처음부터 규제해야 한다.

모든 국내 기업들이 다 달려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APS에 접촉하는 기업들.

대현 그룹 표창주 회장은 회의실에서 임원진을 모아 놓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러다간 회사가 망할 판이야. 안 보이나? 앞으로 진(眞) 아이템 관련 산업이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된다는 걸?”

누가 그걸 모르나?

대현도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선두에 있지 못할 뿐이지.

“뭐든 해도 좋아. 사내 유보금을 모조리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물량 확보해.”

국내 기업 중 진(眞) 아이템 연구 분야에 선두를 달리는 회사가 있었다.

바로 화정 그룹.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최소한 국내에선 우릴 따라올 기업이 없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건 맞다.

바이오와 철강, 그리고 전자 산업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화정 연구소, 실제로 마정석 물량만 충족되면 당장이라도 제품 양산에 들어갈 수 있는 분야도 있었다.

그러나 정규광 회장도 마냥 속이 편한 건 아니다.

“지은아.”

“네, 아버지.”

“APS에서 먼저 가입을 거절한 것 확실하냐?”

“거짓말 안 해요. 아무런 조건 없이 가입하겠다고 했지만 최기병 팀장이 거절했어요.”

“그 후로 계속 접촉은 해보고 있고?”

“해보고는 있지만 아예 전화도 안 받아서.”

“허허,”

물론 짐작은 간다.

마정석 상업 판매를 전담하는 곳이 APS, 그런데 화정 그룹의 자식이 APS에 소속된다고 생각해보라.

정상적인 판매가 이루어져도 특혜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자식 둘이 각성하자마자 하나를 APS에 밀어 넣었어야 했다.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케이.

아들 잘못 둔 죄로 그와의 관계가 살짝 어긋난 것, 그것 때문에 마정석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

중국이 주제도 모르고 덤비다가 무슨 꼴을 당했나?

정규광은 비서 김철진에게 물었다.

“지혁이는 잘 있지?”

“네, 미국에서 조용히 자숙 중입니다.”

“철저하게 감시해. 절대 게임 시키지 말고.”

얼마 전에 통화도 했다.

아바타가 사라져서 게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나?

‘못난 놈,’

지금까지 어떻게 게임하고 돌아다녔길래 시스템에 의해 제재까지 당했나?

지금 중국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대량의 아바타 삭제 사태.

거의 시스템의 개입에 의한 제재로 굳어지는 분위기.

중국 플레이어들은 스톤 포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의 아바타가 삭제될까 봐.

※ ※ ※

러시아 모스크바 플레이어 정보국.

두가예프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빨리 접속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곧 열리는 황궁 연회.

연회의 성격보다는 황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정치 투쟁의 장.

자신도 사황자의 후원 세력으로서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은 세력이 많이 모자란다.

대륙 최고의 포밀턴 상회가 사황자의 외가라서 자금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역시 귀족들이 문제.

삼황자 세력인 루카스 몬테규 후작가에게 일격을 가한 후, 순식간에 무시 못 할 위치에 올라왔지만, 아직은 그뿐.

중립의 입장에 서서 눈치를 보고 있는 귀족들이 많다.

그들을 흡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열리는 황궁 연회가 더없이 중요했다.

‘10분 남았군.’

사망 페널티가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

‘대체 날 죽인 놈은 누구지? 분명 NPC였어. 은신 스킬을 보면 암살자가 분명하고.’

그렇다면 일황자, 이황자, 그리고 삼황자, 모두에게 혐의가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죽을 거라 생각했지만.’

황위 계승 분쟁이 장난인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실제 전투, 선전과 선동, 세력 불리기, 그리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치 다툼.

허나 아바타 슬라브 전사가 가진 자산은 무력이 아니다.

러시아 정보국의 노하우와 정치력, 그래서 동화율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접속 가능 시간이 다 됐다.

캡슐로 들어가는 두가예프, 그래서 대기실로 접속했는데.

“···어?”

어디 갔지?

아바타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대기실엔 너절하게 널려있는 아이템뿐.

“내 아바타가···,”

두가예프도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있었단 아바타 대량 삭제 사태.

혹시 몰라 듀플렉스 스페이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했다.

자신의 아바타가 그대로 살아 있는걸.

“그럴 리 없어. 오류가 생겼을 거야.”

서둘러 캡슐 바깥으로 나와 노트북을 열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런!”

갱신된 홈페이지 개인 정보란.

그곳에서도 자신의 아바타 정보가 삭제됐다.

“···지, 진짜 시스템 제재? 맙소사! 이러면 안 돼. 저, 절대 안 돼”

폭탄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었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대량 아바타 삭제 사건이 발생한 중국과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파워 스틱 밤을 사용했다는 것.

망연자실한 표정의 두가예프.

모두가 사라졌다.

아바타 슬라브 전사의 계좌에 들어 있던 코인과 아이템, 심지어 파워 스틱 밤도 아직 100개도.

‘사라진 건 둘째치고, 귀족 신분은? 그마저 사라지면 난···,’

아바타를 다시 생성해보자.

똑같은 이름과 외모로.

남작 작위만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

그래서 캡슐로 들어가서 아바타 생성을 시도했는데.

[아바타 생성을 시작합니다.]

“성별은 남자로,”

커스터마이징으로 최대한 이전 아바타와 비슷하게 꾸미고는.

“아바타 이름은 슬라브 전사.”

하지만,

[이미 삭제한 아바타 이름은 재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망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게임에서도, 또한 현실에서도,

※ ※ ※

그 시각.

카시우스 제국 황도 폴른스타.

황궁 연회 개최가 1시간 남았다.

알폰소 카라카스 공작과 만난 찬웅.

“어서 오시오. 이방인 케이.”

“늦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죠.”

“아니, 우린 조금 늦게 갑시다.”

“그럼?”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봅시다. 재미있지 않겠소? 연회장에서 그대가 정체를 드러낼 때 귀족들의 표정이 어떨지.”

“···.”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공작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철저한 신분제 계급 사회에서 이방인에 불과한 자신의 이름이 어디까지 통할까?

※ ※ ※

황궁 대연회장.

화려한 마법 조명과 푸짐한 음식과 술, 잔잔히 흐르는 음악.

제국의 난다 긴다 하는 귀족들이 전부 모였다.

군데군데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듯 보이지만 물밑에선 격한 눈치 전쟁과 정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현재 카시우스 제국엔 두 개의 공작 가문이 있다.

카라카스 공작가와 에일워스 공작가.

이 두 가문이 제국을 떠받치는 최고위 귀족가.

리처드 에일워스 공작이 일황자 올리버 스타리아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정치는 대세입니다. 그 대세에 올라타신 분이 바로 황자님이고요.”

“아직 멍청한 장님들이 너무 많아. 아무리 귀족이라도 눈먼 놈들에게 제국을 맡길 순 없지, 안 그래?”

“그렇습니다.”

비릿한 표정의 일황자 올리버 스타리아.

조금 전 삼황자측, 후작 및 백작 연합세력 중 하나가 자신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그동안 가장 눈엣가시 같았던 놈이 삼황자 웨스 스타리아.

하지만 고작 이방인에게 일격을 얻어맞고 세력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웨스, 그놈만 제끼면 돼.’

물러터진 둘째 놈이야 신경도 안 쓰이고.

연회장에서 각 황자들 계파와 중립 귀족들 간 벌어지는 의중 떠보기, 눈도장 찍기.

“하하하, 고든 백작, 오랜만이오. 요즘 얼굴이 좋아 보이오.”

“홀트 후작님께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그쪽 공기는 마실만 합니까?”

“묻기 전에 직접 경험해보시는 게 어떤지.”

“그럼 그쪽으로 한 발만 걸쳐 볼까요?”

“너무 조심스러운 것도 별로, 과감하게 들어오시오.”

그러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별 움직임이 없는 계파가 둘 있었다.

하나는 사황자 크리스 스타리아.

그의 세력이라 해봐야 비천한 상인들과 이방인들.

‘이방인 남작 슬라브 전사가 행방불명이라더니···,’

아마 삼황자가 보낸 자객에게 목숨을 잃었을 터.

부활이 주특기인 놈인지라 곧 다시 나타나겠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콧대 높은 제국의 귀족들이 근본 없는 이방인들과 뜻을 같이할 리가···, 다만 포밀턴 상단의 막대한 금력이 위협이라면 위협.

그리고 이황자 브랜든 스타리아.

놈을 후원하는 세력은 카라카스 공작가.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 에일워스 공작가에 비해 무력과 권력, 금력 모든 것이 뒤처지는 퇴물 가문이다.

‘카라카스 공작은 아직 오지도 않았군.’

포기했나?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모양.

올리버는 브랜든이 제일 싫었다.

어릴 적부터 비교되던 놈, 검술이며, 학문이며, 성품이며, 모든 것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제국 전체에 소문났던 브랜든이다.

하지만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하는 법.

‘넌 결국 나한테 죽게 되어 있어.’

당연히 카라카스 공작 가문도.

‘감히 나 말고 브랜든을 선택해?’

황제가 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로 침식지 정벌군을 조직해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그때였다.

“카시우스 제국의 검, 알폰소 카라카스 공작님이 입장하십니다.”

이제 왔나?

저벅저벅,

푸른색 망토를 휘날리며 자신 있는 걸음으로 연회장에 들어오는 공작.

‘응?’

그런데 옆에 누군가가 있다.

공작이 직접 안내를 도맡아 하는 걸 보니, 제법 친한 사이 같은데···,

‘누구지?’

순간 올리브 스타리아는 목격했다.

카라카스 공작 바로 옆에서 걸어오는 남자의 머리를.

마치 후광처럼 떠오른 표식.

이방인의 이름표였다.

‘하!’

그러나 일황자 올리버는 조소했다.

‘웃기는군.’

아무리 세력이 후달려도 그렇지, 제국의 공작이 이방인에게 손을 뻗어? 천하디천한 포밀턴 상단주 놈과 뭐가 달라?

카라카스는 악수를 뒀다.

이건 뼈아픈 패착이다.

제국의 콧대 높은 귀족들이 가만히 두고 볼까?

이황자 브랜든도 여기서 끝.

‘황좌가 눈앞에 있어.’

그런데?

웅성웅성.

갑자기 동요하기 시작하는 제국의 귀족들.

그들의 눈이 카라카스와 함께 온 이방인에게 꽂혀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동시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케이? 이방인 케이?”

“이런! 저, 정말이구나.”

“케이가 여길···,”

“오오오,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엘프 장로의 제자, 테라퓨타 마탑주의 후견인, 마키나 공화국의 명예 연구원, 드워프들의 친구, 그 케이가 맞아?”

“틀림없어. 이황자님께 붙은 거구나.”

일황자 올리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방인 케이가 왜 여길, 드, 듣기로는 스톤 포지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에일워스 공작도 마찬가지.

“알폰소, 이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상상이나 했을까?

황위 계승 전쟁에 케이를 끌고와?

대체 어떻게?

상황이 역전됐다.

이황자 브랜든과 친근하게 손을 맞잡은 케이,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카라카스 공작.

중립파 귀족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심지어 삼황자 계파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귀족들마저도.

※ ※ ※

침식지 정화는 모든 대륙민의 숙원.

그건 카시우스 제국민들도 다르지 않았다.

2년 전, 주신의 계시로 처음 이 듀플렉스 대륙에 나타난 이방인들, 사람들은 그들을 환영했다.

제발 오백 년 이상 묵은 숙원을 해결해 주길.

그러다 코네타 왕국의 토끼굴 침식지가 정화된 걸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이제 대륙의 침식지들이 차례대로 공략될 것이다.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가 무너졌다.

최초 토끼굴 침식지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정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게다가 접하면 접할수록 실망스러운 이방인들, 침식지 보스 공략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그저 돈에 눈이 멀어 온갖 추잡한 짓을 다 저지르고 다녔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승전보.

카쟌을 시작으로, 위트리아 침식지 공략, 드워프 광산 침식지 공략, 그 중심에 있는 이방인 케이.

제국민들도 열광했다.

평민, 귀족 가릴 것 없었다.

“영광이오. 케이. 난 블랑체 백작이오.”

“이제야 얼굴을 봅니다. 전 하멜른 자작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

.

.

귀족들의 인사가 줄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각 가문의 하인들이 와서 슬며시 초대장을 손에 쥐어 줬고.

솔직히 이런 환대는 처음.

이황자 브랜든 스타리아도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전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공작님에게 듣긴 했지만 정말 여기까지 와주실 줄이야.”

“···천만에요.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브랜든 이황자가 은근한 눈빛으로 찬웅에게 말했다.

“오늘은 제 별궁에서 주무시고 가시길.”

“네?”

뭐야? 이 사람···,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오해하지 마세요. 황궁에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한밤중이 좋겠지요.”

“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천만의 말씀, 다른 도와줄 것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뭐든 준비해놓겠습니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는 황궁 대연회.

연회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이방인 케이.

덕분에 주도권은 이미 이황자에게 있었다.

다른 황자들은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케이와 만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히 띄워주기만 하고 헛물켤 것이 분명하니까.

그럼 이걸로 포기?

웃기는 소리.

황위 계승 분쟁은 승리하는 세력이 모든 걸 독차지하는 구조.

절대 두고만 보진 않을 터.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 ※ ※

황궁 내부 이황자의 별궁.

팟!

찬웅의 아바타 케이가 황궁 중심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드래곤 하트를 취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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