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18화 (118/204)

< 카시우스 제국으로 >

찬웅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듀플렉스 스페이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시나리오 설정집을 검토하고 있었다.

‘진짜 구현되어 있구나.’

드래곤 하트.

포스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수단.

웹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영약 중 하나, 무협 소설로 따지면 만년 설삼이나 용의 여의주 같은 보물.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 시나리오에서 드래곤 하트가 등장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단 서술만 되어 있을 뿐, 나타난 적도 없고 목격한 플레이어도 전무(全無).

드래곤이 수명을 다해 자연사하면 모든 육신이 허공으로 천천히 흩어진다.

하트도 마찬가지.

드래곤 부산물, 즉 비늘이나, 발톱, 수염, 힘줄, 그리고 하트, 이런 등등을 얻으려면 사냥을 해서 가공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사냥? 드래곤을?

개발자 엘리가 그렇게 하라는 건데.

‘말이 돼?’

잠자는 드래곤의 목을 가르라니,

또한 드래곤 레어까지 가는 것도 문제.

레어가 어디 있다고 했나?

카시우스 제국 황궁이란다.

‘은신막이 통할까?’

결정해야 한다.

드래곤 하트를 먹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아니면 포기하고 안전하게 동화율 돌파로 포스를 늘릴 것인가.

사실 결정은 이미 나 있었다.

‘내가 포스가 없지 가오가 없나?’

설령 드래곤에게 물려도 죽기밖에 더 해?

완전히 죽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먼저 정보 탐색부터.

카시우스 제국은 대륙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국가, 따라서 침식지도 방대하다.

카시우스 제국의 황도는 폴른스타.

그리고 폴른스타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듀플렉스 대륙에서 가장 큰 침식지가 존재했다.

명칭은 ‘망령의 침식지’.

‘침식지 보스가···, 인간이네?’

보스의 이름도 있다.

사상 최흉의 네크로맨서.

‘멸망의 크자누이’

‘네크로맨서와 침식의 결합이라.’

그럼 침식지 몬스터가 언데드라는 말.

하지만 생각보다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많은 침식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상성이 너무 좋다.

포스의 위력이 엄청 잘 먹히는 몬스터들, 한 마디로 사냥이 쉽다는 말이다.

죽음의 몬스터 언데드의 공포만 극복할 수 있다면 코인 벌이로 이보다 더 좋은 침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제국의 황가는 골드 드래곤의 혈통이고···.’

골드 드래곤의 진명(眞名)은 리스타리칸, 일명 ‘별의 드래곤’

그 피를 이었다는 황제의 이름은 카인 스타리아, 몇 년째 병중이라 오늘내일한단다.

흔한 스토리다.

골드 드래곤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유희를 즐기다가 인간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후손도 낳고, 나라도 만들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짧은 수명의 반려자와 이별한 뒤, 자신이 만든 제국을 버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는 내용.

‘그 골드 드래곤의 레어가 사실은 황궁 땅속에 있단 말이지.’

이건 게임 시나리오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긴 드래곤 레어의 위치가 특정되면 플레이어들이 가만히 놔둘까?

카시우스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따로 있었다.

오백 년 전 활동했던 전설의 NPC, 그랜드 마스터 롤랑 카라카스, 그리고 그의 가문인 카라카스 공작가, 현 가주의 이름은 알폰소 카라카스이다.

어느 정도 정보 취합은 끝났고.

‘그냥 한번 가보자.’

현지 분위기를 알아볼 겸.

찬웅은 대기실에 게이트를 설치했다.

[게이트와 연결된 장소가 없습니다.]

[도시를 설정해 주세요.]

“카시우스 제국 폴른스타.”

[한번 설정하면 한 달간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설정!”

[게이트 통로가 카시우스 제국 폴른스타로 설정되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귀걸이가 잘 작동할까?

‘아이숨!’

[아바타 케이가 이름을 숨깁니다.]

‘···잘 숨겨졌나?’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아무 물약 한 병을 꺼냈다.

유리병에 얼굴을 비쳐 보니.

‘진짜 이름표가 사라졌어.’

NPC와 플레이어를 어떻게 구별할까?

행동이나 말투, 이런 걸 보면 유추가 되지만 그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이름표의 유무.

이름표를 숨기고 행동과 말투만 조심하면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NPC인지, 플레이어인지.

‘NPC 행세하고 다녀도 되겠네.’

찬웅은 폴른스타로 통하는 강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화아아악!

※ ※ ※

듀플렉스 대륙에서 제국이라 이름 붙여진 국가는 단 한 곳, 바로 카시우스 제국이다.

폴른스타, 떨어진 별이라 이름 붙여진 제국의 황도도 가장 큰 도시로 통한다.

수많은 이종족과 각국의 대사관, 대륙에서 난다긴다하는 상인들, 기술자들, 그리고 플레이어, 다양한 세력들이 바로 여기 폴른스타에 진출해있었다.

워낙에 넓어 황궁이 어디 있는지 찾기 힘들 것 같았지만 의외로 매우 잘 보인다.

외성으로 둘러싸인 폴른스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거대한 내성 성벽, 곳곳에 보이는 첨탑, 저곳이 바로 카시우스 황성이다.

‘대단하네.’

어떻게 저길 들어가지?

몰래 들어가는 건 리스크가 매우 크다.

황제가 사는 곳인데 경계가 만만할 리 있나.

몰래 침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은신?

그 정도 방비도 해놓지 않았을까? 제국에서 가장 방어가 삼엄한 곳.

멋모르고 시도하다가는 금세 발각되어 황궁 근위대 기사와 궁정 마법사들에게 처참하게 도륙당할 터.

NPC가 침식에 취약할 뿐, 플레이어들보다 강한 존재들은 수두룩하다.

‘그냥 아바타 명 밝히고 들어가 봐?’

나름 유명해졌다.

전 대륙에 케이의 이름이 퍼졌다고 들었으니.

카시우스 황궁에서도 알고 있을 터, 침식지 정화 위업이 장난도 아니고, 최소한 문전박대는 안 하겠지, 오히려 환영해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 레어 출입을 허가할지 미지수,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황가였다.

그런데 이방인이 자신의 조상이나 다름없는 드래곤의 레어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둘까?

아니, 애초에 자신들의 발밑에 드래곤 레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천천히 시간을 두고 판단하자.’

게임 속에서 처음 경험하는 대도시의 분위기.

마키나 공화국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

현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황도 폴른스타의 번화가, 눈에 확 띌 정도로 화려한 간판이 걸려있는 식당,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 이방인이 요리하는 고기구이 전문점 -

‘식당이네.’

그것도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식당.

실제로 요리사 직업은 꽤 인기가 있다. 높은 동화율과 쓸만한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코인을 갈퀴로 쓸어 담는다.

‘무려 제국의 황도에서 식당을 낸 플레이어라고?’

가상현실 게임은 생생한 현실감을 자랑한다.

따라서 술도 마실 수 있고 음식 섭취도 가능하다.

당연히 맛도 느낄 수 있고.

‘맛 좀 보고 갈까?’

또한 판타지에서 식당이라면 곧잘 이벤트가 발생하는 장소, 무협이든 판타지든 사건의 발단은 주로 식당에서 생겨난다.

“어서 오세요. 손님,”

점원은 NPC와 플레이어들로 섞여 있고,

엄청나게 넓은 홀.

사람이 거의 꽉 찼다.

남은 건 1인석 몇 개.

‘2층도 있네.’

2층은 특별석인 것 같다.

비쌀 것이 분명하겠지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잠시만, 이쪽으론 가시면 안 됩니다.”

“···왜요?”

“VIP와 귀빈만을 위한 공간이라서.”

더러운 신분제 사회.

“혼자 오셨어요?”

“네.”

“이쪽으로···.”

별수 없이 1인석에 착석.

“주문하시겠어요?”

“여기서 제일 인기 있는 걸로.”

“그럼, 새우를 곁들인 삼겹살 구이는 어떠십니까?”

“그걸로 주세요.”

“가격은 선불입니다.”

“···.”

겉모습이 궁해 보이나?

요리 품목이 체크된 영수증을 내미는 종업원.

찬웅은 영수증을 손으로 받았다.

띠링!

[음식 가격 100 D코인이 결제됩니다.]

잠시 기다리니 식탁 위로 먹음직한 요리가 놓여졌다.

새우 껍질을 까서 속살을 소스에 콕 찍어 입에 넣으니.

“으흠!”

맛있다.

동화율이 높은 요리사 플레이어인가 보다.

삼겹살은?

바삭!

겉바속촉, 현실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렇게 식도락을 즐기고 있는데.

벌컥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무리, 이름표가 달린 걸 보니 플레이어들.

‘음?’

플레이어들이야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귀족?’

선두에 선 아바타의 이름이 [남작 슬라브 전사]

이름표에 귀족 작위가 붙어있다.

‘처음 보네.’

흔하진 않지만 작위를 받은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바타 이름으로 보아 국적도 예상이 되고.

저 플레이어는 무슨 일을 했기에 작위를 받았을까?

같이 온 플레이어들도 죄다 동유럽 계통의 아바타 명들.

종업원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는 [남작 슬라브 전사] 일행.

‘안 막네. 귀족이란 말이지?’

그때였다.

슬금슬금.

‘···뭐야?’

누군가 또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 누군가가 아지랑이처럼 투명한 은신 상태라는 것, 남작 무리 뒤를 따라왔다는 것.

식당 안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오직 찬웅만 인식할 수 있었다.

‘슬라브 전사를 따라온 모양인데.’

갑자기 상황이 궁금해졌다.

설마 했는데 식당 이벤트 발동?

이때쯤 퀘스트가 떠주면 좋으련만···,

‘안 뜨는구나.’

물어보자.

먼저 [남작 슬라브 전사]부터.

이럴 땐 시스템보다 최기병 팀장이 더 낫다.

귀족 작위의 플레이어, 당연히 APS에서 파악하고 있을 터.

‘마침 접속 중이구나.’

친구 메시지를 날려서.

[케이] : 바쁘세요?

[와치맨] : 아! 아닙니다. 마정석 광산에서 복구 작업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일손이 모자라서.

[케이] : 그럼 하나 물어볼게요. 혹시 슬라브 전사라는 플레이어 아세요? 남작 작위를 달고 다니던데.

[와치맨] : 아! 그 슬라브 전사 말입니까? 러시아 출신으로서 카시우스 제국 귀족으로 활동하는 플레이어입니다. 한때 꽤 유명했죠. 그런데 갑자기 왜?

[케이] : 우연히 마주쳐서요.

[와치맨] : 흐음, 사실 러시아를 대표해 파워 스틱 밤 소개장을 거래한 플레이어가 바로 슬라브 전사입니다. 무려 두 장이나 사 갔습니다.

[케이] : 그래요?

아무래도 이상한데?

설마 망령의 침식지를 공략하려고?

제국의 귀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공적을 쌓아 더 높은 작위를 얻고자 하는 의도라면.

그러나,

‘힘들 텐데,’

러시아 공격대가 아무리 폭탄을 많이 보유했다 하더라고 절대 불가능.

‘그건 그렇고 은신으로 따라간 사람은?’

플레이어일까, NPC일까?

여긴 평범한 식당, 황궁처럼 경계가 삼엄한 곳이 아니다.

“여기 화장실이···,”

“저쪽입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스르륵, 찬웅은 은신막을 발현했다.

바람길 산책은 순간 가속만 있는 게 아니다. 미풍이 불 듯, 은밀하고 조용하게 2층 계단으로.

‘음?’

2층도 넓은 홀인 줄 알았는데, 미로 같은 복도에 옆쪽으로 나 있는 비밀 방들,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

‘물건은···, 준비···,’

치지직,

‘···효과, 증명···,’

치직, 치지직!

왜 이렇게 치직거려?

사일런스 마법?

그래도 마법 저항 패시브 스킬 때문에 몇 마디 정도는 들리지만,

‘물량 확보가···, 최대한 관계를 유지···,’

‘···정부도···, 노력을···,’

‘···걱정하지···, 이미 접촉···,’

찬웅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은신한 존재는 어디 있을까?

순간!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흐음,’

두피가 간질간질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복도 천정을 올려다보는 찬웅.

언뜻 보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천장 벽지 무늬가 살짝 어긋난 느낌, 천정에 스파이더맨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진짜 은신막 같아.’

데우스칩이 제작한, 엘프 장로 에루인에게서 받은 야행복과 비슷한, 그러나 찬웅에게 발각될 정도로 효과는 조금 떨어지는 다운그레이드 버전.

그래서 저쪽은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확실히 그랬다.

은신하고 있던 이가 갑자기 천정에서 내려와 바닥으로 내려서려고 했기 때문에, 바로 밑에 찬웅이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어!’

둥글둥글한 투명한 무언가가 찬웅의 얼굴로 다가왔다.

너무 뜻밖이라 피하지도 못하고 두 손을 위로 뻗었는데.

물컹! 왈칵!

손안에서 느껴지는 촉감, 마치 부드러운 살덩이를 움켜잡은 느낌.

‘헛!’

스르륵!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

맨살과 다름없는 야행복을 입고 굴곡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여인의 몸, 찬웅이 잡은 건 그 여자의 엉덩이.

무척 당혹스러워하는 기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건 찬웅도 마찬가지.

여자의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있는 상태.

꿀꺽,

침 삼키는 소리.

“누구냐!!!”

방안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결국 들켰다.

핏! 핏! 핏!

사라지는 여인.

찬웅도 움직였다.

팟! 팟! 팟!

동시에 문을 열고 나온 [남작 슬라브 전사]와 일행들.

“흐음, 분명히 인기척이 들린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도 없다.

기분 탓인가?

찬웅은 열려진 2층 창문을 통해 건너편 건물 지붕으로 빠르게 뛰었다.

마침 저 앞쪽에 도망가는 여인의 모습.

뜻하지 않게 같은 방향.

은신도 풀린 것 같다.

복면도 썼고, 몸매가 완벽하게 드러나는 전신 타이즈 같은 옷, 뒤태가 확실하게 보였다.

은신 능력이야 도둑 길드나 암살 정보 길드의 NPC도 사용하는 기술, 원활한 움직임을 위해 저런 옷을 입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확실히 내 야행복과 비슷해.’

순간!

핏핏핏핏!

‘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더니 쭉쭉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매우 익숙하다.

‘···저거, 바람길 산책 순간 가속이잖아.’

그러다가,

타닥! 타다다다다···,

지금은 달리고 있고,

잘못 봤나?

‘아니야,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였어.’

은신이 발각되어 2층 복도를 도망칠 때도 순간 가속이었던 것 같다.

바람길 산책을 가르쳐 준 엘프 장로 에루인도 암살자, 이 계통의 NPC들은 모두 이런 형식의 스킬을 사용하나?

‘따라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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