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엘리의 보상 >
전쟁의 패배.
그냥 게임 속 전쟁에서 진 것뿐이지만 중국이 감내해야 할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최강의 각성 플레이어라고 자부하던 [중화영웅] 덩차오는 포스를 잃고 폐인이 된 채 여전히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덩차오의 아버지이자 국무원 부총리 덩샨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들의 병상 옆에 서 있었다.
“깨어날 가망이라도 있나?”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습니다.”
“흥! 입에 발린 소리는 집어치워!”
“죄, 죄송합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지?
물론 아들을 이렇게 만든 놈은 알고 있다.
게임 안에서 케이에게 죽었다고 들었다.
아마 그것이 충격이 되어 이 지경까지 왔겠지.
아들의 복수를 해야 하지만 당장 놈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다.
외교적인 문제도 있고, 전쟁의 패배로 중국의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
그러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진위앙, 그놈은?”
“사직서를 제출해서 수리를 했습니다.”
“그걸로는 모자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처리하겠습니다.”
며칠 후, 진위앙은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중국 공안이 수사에 나섰지만 금방 종결됐다.
압박과 죄책감에 못 이겨 타국으로 도망친 걸로 결론.
그리고 중국 베이징 박물관에서 상시적으로 열리던 인체의 신비전에 표본 하나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후폭풍이 매우 컸다.
꽤 오래 갈 터.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중국은 인구가 많다.
따라서 숨어있던 빌런 각성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지금까지는 강력한 권력과 공안, 그리고 정부 소속의 각성 플레이어들이 빌런의 난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해왔지만 이번 전쟁의 패배로 균열이 생긴 것.
현재는 아주 작은 균열이지만 그것이 언제 크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
반면 한국은 조용했다.
어쨌든 전쟁은 승리했고, 중국도 별말 안 하니 괜히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일이 많다.
갱도 복구 작업이 끝나면 진(眞) 마정석을 본격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찬웅은 APS 본부에 출근했다.
파워 스틱 밤 유출 문제를 해결해야지.
“출처는 밝혀졌나요?”
“매우 까다롭습니다. 코인으로 거래한 거라 현금 추적도 못 하고, 아이템이라 게임 속에서 주고받았을 테니까요.”
“하긴, 파워 스틱 밤이 현물도 아니고,”
“웬만해선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판매를 중단하는 수밖에···,”
판매 중단은 곤란하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 없다.
파워 스틱 밤은 침식지 공략에 엄청 유용한 아이템, 데우스칩도 오직 그 목적 때문에 대량 생산하고 있고.
시스템은 알고 있을까?
‘알아내기 힘들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플레이어 간 아이템 거래에 관해선 시스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어떡할까?
하는 수 없다.
제한을 걸어두는 수밖에.
“앞으로 두 번째 소개장 줄 때 그전에 침식지 공략 증거를 가지고 오면 주는 걸로 합시다.”
“증거라면?”
“폭탄을 올바르게 사용했다는 증거라도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영상이든 뭐든.”
“아! 알겠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어둠이 무섭다고 밝은 곳으로만 가려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참, 길드는 언제 해산하실 건지.”
“아! 맞다. 생각난 김에 접속해서 해산해야겠네요.”
“흐음, 제 생각엔 조금 미루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왜요?”
“워낙 반응이 좋아서요. 그게···,”
최기병의 설명.
이제껏 없었던 대형 길드가 만들어지니 게임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아바타 명 앞에 ☆케이&스톤포지☆라는 길드 명을 달고 있는 사람들, 함께 게임도 즐기고, 사냥도 하면서 동질감과 전우애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는데.
“길드 제한 인원이 10만 명이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요.”
“그 정도예요?”
“네, 심지어 길드원 중심으로 침식지 공략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그렇습니다.”
민간 주도의 침식지 공략이라,
성공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이벤트니까.
“그럼 뭐 해체는 천천히 할게요.”
“네!”
찬웅은 최기병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게임에 접속.
스톤 포지로 가서 복구 작업이나 도와야지.
무너진 기차역을 재건하려면 아무리 드워프라도 시간이 걸릴 터, 미안한 마음에 돌덩이라도 날라 주고 싶다.
찬웅은 스톤 포지로 통하는 강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왜애애앵! 왱! 왱!
또 모기 날갯짓 소리.
‘···또?’
게임 개발자인 엘리가 틀림없다.
왜 왔지?
‘설마···,’
그러고 보니 짚이는 것이 있다.
분명하다.
그것 때문일 것이다.
플레이어 킬.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케이. 우리 구면이죠?]
“오, 오랜만이네요. 엘리.”
[제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계시죠?]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무조건 잡아떼자.
[하아, 저 요즘 너무 힘들어서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뭐, 뜻밖에 공짜 다이어트라 불만은 없지만.]
저 몸에 살을 뺄 데가 어디 있다고,
“저런! 많이 힘드시구나. 제가 도와드릴 거라도?”
[넵!]
“어떤 걸?”
[제발···, 제발 아바타 삭제를 멈춰주세요.]
“···.”
그럴 줄 알았다.
전에 캡슐 파괴를 이유로 한번 찾아왔던 엘리.
캡슐이 없으면 플레이어들이 게임 플레이에 차질이 생기고, 그럼 침식지 공략도 힘들어지고.
[아바타가 없으면 플레이어가 어떻게 게임에 접속해요?]
“···다시 만들어 키우면 안 될까요? 아바타만 사라지는 거 아니었나? 계정은 살아있잖아요.”
[어느 세월에 다시 키워요? 1년을 키워도 동화율 150%가 안 되는 플레이어가 수두룩한데.]
결국 캡슐 파괴와 똑같은 이유다.
다만 전엔 3천 개였지만 지금은 최소 만 단위.
‘약하게 할 걸 그랬어.’
그러나 중국이 너무 괘씸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이제라도 그만두면 되고.
하긴, 공들여 키운 아바타를 삭제하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그래서 그만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보상할게요.]
“···네?”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씀만 해주세요. 제가 최대한 맞춰볼 테니.]
이거 봐라?
보상을 또 준다고?
[저 그렇게 염치없는 사람, 아니, 요정 아닙니다.]
“음.”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마침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 충분하지 않아서 많이 있었으면 하는 것,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필요한 것이 있긴 해요. ···혹시 포스량을 늘릴 방법은 없습니까?”
[아하! 포스량이 부족하시구나. ···그럼 힘의 영약은 드셨는지?]
“네, 상급으로.”
[그러시군요. 그럼 한 병 더 마셔도 효과가 없을 테고···,]
애애애애앵! 애앵, 앵! 앵! 앵!
찬웅의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고민하는 요정 엘리.
그러더니.
[하루만 기다려주실래요? 의논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의논?
“네, 기다릴게요.”
핏! 하고 사라진 엘리.
의논하러 갔나 보다.
이제 기다리는 일뿐.
포스가 늘어나면 강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
※ ※ ※
카리브해 리조트.
게리 스탁턴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게임에 접속해서 케이를 만나고 온 엘리, 그가 원하는 보상이 무엇인지 말해주자.
“포스량이라···, 그 정도 동화율이면 부족하지 않을 텐데.”
“혹시 또 모르죠. 포스가 엄청나게 드는 스킬을 배웠을 수도 있잖아요.”
“뭐, 브레스라도 배웠나?”
아무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량의 아바타 삭제 사태가 또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쯧, 시스템은 도통 생각이 없어! 어쩌자고 벌써 그런 스킬을···,”
“하지만 언젠가는 주어졌어야 할 스킬이죠.”
맞는 말이다.
각성 플레이어의 힘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기술이 그거 말고 또 있을까?
‘가만있자, 포스, 포스라···, 아이템으로 늘리는 건 한계가 있고.’
사실 하나가 있긴 하다.
마력, 오러, 포스, 모든 것에 적용되는 순수한 에너지의 원천.
하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냥 통 크게 질러 봐?’
어쩌면 때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스템도 아바타 삭제 스킬을 부여했을 터.
“뭐, 원하면 줘야지.”
“어떤 거요? 줄 게 있어요?”
“어, 있어. 그것도 엄청 많이 늘릴 수 있는.”
“빨리 말씀해주세요.”
“그거 있잖아. 레어, 둥지의 봉인을 푸는 열쇠, 그거 갖다줘.”
“···네?”
엘리는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어, 둥지···, 포스량을 엄청 많이 늘리는 물건.
“주, 주인님, 혹시 미치셨어요?”
“겨우 그거 가지고 미쳤다 그래. 어차피 쓸모도 없는 거잖아.”
“아, 아니, 지금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자살은 무슨, 전에도 말했지. 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아.”
“난 ‘지구인’이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솔직히 미친놈 맞다.
엘리는 거의 확신했다.
“후손들에게 넘겨줄 거 아니었어요?”
“피가 눈곱만큼 섞인 애들이 무슨 후손, 케이에게 줘버리는 게 낫지.”
“근데 어떻게 케이에게 넘겨요? 내가 가져다주기엔 너무···,”
“직접 모가지를 잘라서 가져가라고 하면 되지.”
“···.”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진짜 미친 주인이다.
이래서 오래 살면 안 된다.
적당히 살다 죽어야지.
그러나 엘리도 사실, 오래 사는 존재였다.
※ ※ ※
찬웅은 매일매일 스톤 포지로 출근했다.
복구 작업을 도와주려는 목적에서.
하지만.
“어허, 걸리적거린다니까, 제발 저기서 맥주나 마시면서 놀아.”
“쯧쯧, 도끼질은 잘하면서 곡괭이질은 영 잼병이야.”
“내 형제 케이, 걱정 말게. 이전 기차역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 거야.”
이러다 보니 할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중국 플레이어들의 재차 침입이 있을까 스톤 포지를 정찰하는 것 말고는.
그러나 이것도 문제.
“어! 케이님!”
“손 좀 잡아주세요.”
“길드장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 GNN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를···,”
“우리 같이 사냥해요.”
벌떼처럼 몰려오는 플레이어들.
···도망가자.
팟! 팟! 팟!
스톤 포지는 플레이어들의 성지가 됐다.
하루에도 수천 명씩 도시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너무 쉽게 마주치고.
‘하아, 길거리 걷기도 힘들어.’
인상착의야 아이템 효과로 습득한 폴리모프 주문으로 바꾸면 된다지만, 머리 위에 뜬 아바타 명은 가릴 수 없는 것.
‘이거 어째 안 되나?’
너무 유명해졌다.
굳이 스톤 포지가 아닌 타도시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저기! 케이다. 이름표 봐!”
“정말이네?”
“만나러 가보자. 촬영용 수정구 있지?”
스르륵,
은신막 발현.
“어? 어디 갔지?”
“여기 방금 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로그아웃해야겠다.
대기실로 귀환.
그런데 찬웅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었다.
애애애앵,
엘리였다.
누군가와 의논하고 온 모양.
[오래 기다리셨죠?]
“괜찮습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아왔답니다.]
“방법이라면···, 포스량 증가 말인가요?”
[넵!]
유형이 뭐지? 아이템인가, 아니면 스킬인가.
엘리는 허공에서 제 몸보다 더 큰 금빛 물건 하나를 꺼내 찬웅에게 줬다.
아이템이구나.
“열쇠?”
[네, 드래곤 레어의 봉인 마법진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네?”
이게 무슨 소린가?
뜬금없이 드래곤 레어라고?
[카시우스 제국 황궁 지하에, 숨겨진 드래곤 레어가 있거든요. 열쇠로 봉인을 풀고 들어가면 골드 드래곤 한 마리가 자고 있을 건데, 날붙이로 목 부분을 갈라서 드래곤 하트를 빼내세요.]
“···.”
이거 차도살인인가?
잠자고 있는 골드 드래곤의 목을 잘라서 하트를 가져가란다.
그것도 카시우스 제국의 황궁 지하에서.
“무슨 소리인지 잘···, 카시우스 제국 황궁은 그렇다 치고, 자고 있는 골드 드래곤을 죽이라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골뎅이 드래곤은 안 물어요. 절대!]
많이 들어본 말.
우리 개는 안 물어요!
그러나 문다.
물론 개가 아닌 드래곤이지만.
드래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물인가?
로그드라실 침식지 보스 레지키쓰론을 봐도 충분히 안다.
“···입마개라도 하고 있습니까?”
[진짜 안 문다니까요? 자고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러니 절 믿고 한번 다녀오세요.]
“···드래곤 하트를 꺼낸다고 쳐요. 그리고 나선?”
[드셔야죠. 한 번에 소화하기는 힘들겠지만 포스량 증가엔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하아,”
갈수록 태산.
보상이고 뭐고···,
찬웅은 일단 황금 열쇠를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아바타 삭제는?]
“자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한 몇 명 정도는 하셔도 돼요. 이번처럼 이만 명씩 막 하는 건···.]
“그럴 일이 또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넵! 그럼 믿고 가겠습니다.]
“참!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머리 위 이름표 좀 어떻게 할 수 없나요? 이름을 변경한다거나, 안 보이게 한다거나.”
[아하! 너무 유명해지셨구나! 그래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정확합니다.”
[마침 괜찮은 아이템이 있어요. 여기,]
따끔!
엘리가 팔랑팔랑 날아와 찬웅의 귓불에 무언가를 찔러넣었다.
[아이숨 귀걸이랍니다. 이거면 고민 해결이 가능해요. 한 손으로 귀걸이를 잡고 주문을 시전하세요.]
“아이숨?”
[네, 그럼 전 이만!]
스스슥, 순식간에 사라지는 엘리.
귀걸이는 뭐지?
[개발자 엘리의 아이숨 귀걸이]
진(眞)은 아니다.
세부 정보는···,
[등급 : 전설]
[장비 종류 : 귀걸이]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효과 : 아바타가 이름을 숨김]
“···참나!”
아이숨이 아바타의 이름을 숨긴다는 거였어?
작명이 유치하긴 해도 꼭 필요한 아이템이긴 했다.
등급만 봐도 전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