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톤 포지 대혈전(4) >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게임 속 대규모 길드전, 현실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중국은 뜻하지 않은 거센 반격에 당황한 분위기,
└ 지금 우리가 밀리고 있어! 뭐해? 빨리 지원해줘!
└ 강호의 플레이어들이여! 모두 스톤 포지로!
└ 다른 나라는 정부 소속 플레이어까지 참가했는데 정부는 뭐 하는 거야?
└ 대국의 힘을 보여주자고!
일이 이렇게 되자 [대국혼] 진위앙도 결단을 내렸다.
“우리도 참전한다. 관리청 소속 용병 플레이어들 스톤 포지로 투입해!”
어차피 엎질러진 물.
밀려서는 안 될 총력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스톤 포지 방어 진영도 다급했다.
└ 씨발, 중국 놈들 많아도 너무 많아!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타나!
└ 근데 넌 왜 밖에 나와 있어?
└ 음? 죽었으니까.
└ ···길드는? 탈퇴했어? 빨리 탈퇴해! 여기 가입하려고 줄 서 있는 플레이어들 안 보여?
└ 이미 됐어. 자동으로 탈퇴 되던데···,
└ 으아아아! 자리 났다. 가입하러 가자!
스톤 포지 대혈전.
좀처럼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국면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릴라전, 그로 인한 장기전.
넓은 지하 도시.
여기저기에서 중소규모의 각개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게임 속에서 일어나 실제 인명피해도 없고, 파괴 행위도 없지만 참가국 면면을 보면 가히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불러도 무방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끝난 뒤 생겨날 결과를 따져보면 간단하게 끝낼 수준도 아니다.
막대한 이권이 걸린 전쟁.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전쟁.
그래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한국 청와대의 공식 논평이 나왔다.
“스톤 포지 진(眞) 마정석 광산을 중국이 먼저 공략하려 했다는 주장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중국은 치졸한 침략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외교적 해결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배후에서 플레이어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대변인도 즉각 반발에 나서면서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침략행위를 조장하고 있다고요? 오히려 한국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배후라는 증거부터 제시하는 것이 맞는 순서 같습니다.”
“이것 또한 컨텐츠일 뿐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사태에 대해 운영자는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게임 플레이며, 앞으로도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중국 정부는 절대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안팎으로 시끄럽다.
전쟁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론과 방송에서도 난리가 났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슈인가?
케이 길드 가입과 스톤 포지 방어전 참전.
플레이어들에겐 일종의 훈장 같은 거였다.
참가자 인터뷰뿐만 아니라 동영상도 확보했다.
뉴스, 게임 관련 프로그램, 종일 스톤 포지 전투 장면만 틀어댔다.
그래도 하늘을 찌르는 시청률.
직접 구경하고 싶어서 스톤 포지에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플레이어도 많았다.
무차별 공격이 원칙인지라 스톤 포지엔 ☆케이&스톤포지☆ 길드원이 아닌 플레이어는 들어가자마자 사망.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도 이어지는 전투.
원래 듀플렉스 스페이스 게임엔 적정 게임 시간이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게임을 중단하라는 메시지가 들려온다.
그러나 유독 케이는 한 번도 로그아웃하지 않았다.
이미 접속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됐다.
‘이쯤에서 슬슬 정리해볼까?’
자동 가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드.
그러다 보니 가입만 하고 아예 접속도 하지 않는다든지,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플레이어도 있었고.
사망한 사람들은 자동으로 탈퇴가 되도록 만들어뒀지만.
“접속 안 하는 길드원 강제 탈퇴시켜! 그리고 전투 기록 없는 길드원들도.그 사람들은 다시 가입 못 하게 하고.”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총 2,187명의 플레이어들을 길드에서 추방합니다.]
그랬더니.
└ 오오! 자리 났다. 나 접속한다.
└ 헉! 정말?
└ 나도···,
└ 어? 안 되잖아! 벌써 다 찼어?
강제 추방을 해도 눈 깜짝할 새 다시 풀로 채워지는 인원, 언제 자리가 날까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고침만 하는 용병 플레이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중국 플레이어들은 뭔가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게임 출시 초기부터 플레이어 숫자들이 제일 많은 국가가 바로 중국, 이후 용병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급증했을 때 전직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도 중국.
혹자는 말한다.
대충 따져봐도 중국 내 용병 플레이어의 수는 백만이 넘을 거라고, 이백만이 넘을 거라고 말하는 통계 전문가도 있었다.
처음엔 자신했다.
중국 플레이어들이 동시 접속하는 즉시 스톤 포지의 드워프들과 방어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전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뭔가?
중국 측 플레이어들이 밀리고 있었다.
전세를 역전시킬 여지도 안 보이고.
결국 중국은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 ※ ※
올해 31살의 덩차오는 상하이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 소속, 중국 용병 플레이어이자 각성 플레이어다.
덩차오의 아바타 명은 [중화영웅]
동화율이 172%에 반영률은 41%.
적어도 중국 안에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플레이어.
그러나 내부에서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그가 성장해온 방식에 대한 의문이었다.
덩차오의 아버지는 중국 내 권력 서열 10위 안에 드는 공산당 당간부.
그래서 최상품 영웅급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등급이 다소 떨어지는 사냥터에서 경험치 몰아주기로 안전하게 동화율을 돌파해 왔다는 평가가 있었다.
어쩌라고?
아버지의 후광과는 별개로 재능이 있는 덩차오였다.
그러니까 각성까지 해냈지.
사실 덩차오는 이 임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리청 플레이어가 천명이나 동원된 작전, 그중에 각성 플레이어들도 수두룩하다.
‘이건 레이드나 다름없잖아.’
단 한 명의 플레이어를 잡기 위해 천명이나 동원한다니.
너무 과민하게 대응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튼 놈은 여기서 죽는다.
자신이 여기 온 이상 그렇게 결정됐다.
“관리청 플레이어들은 다 모였나?”
“네,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케이, 그놈의 위치는?”
“드워프 기차역 안입니다. 플레이어들이 광산 안으로 진입하는 걸 홀로 막고 있다고. ”
이게 무슨 소리?
“이동도 하지 않고 기차역 안에서만 붙박이로? 그것도 혼자서?”
“네.”
“···그런데 아직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덩차오는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게릴라 전술을 펼치면 모를까, 위치를 고정하며 들어오는 플레이어를 혼자 상대한다니,
‘대체 뭐지? 폭탄이라도 던져대는 건가? 아니면 광역 마법 스크롤을 쓰나?’
이제야 이해가 간다.
진위앙이 신신당부했었다.
케이를 먼저 죽여야 한다고,
아니면 절대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그러나 위치가 고정됐다면 오히려 쉽다.
[중화영웅] 덩차오는 인벤토리에서 파워 스틱 밤을 꺼냈다.
“하나씩 나눠 가져. 목표는 기차역, 한 번에 모조리 터뜨린다.”
“···아! 좋은 생각입니다.”
작전의 시작은 기차역 붕괴.
케이를 기차역 건물과 함께 순장을 시키든지, 아니면 폭탄으로 걸레를 만들든지, 아무튼 놈이 죽는 건 확실하다.
얼마나 깔끔한가?
표면적으로 중국은 파워 스틱 밤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케이, 그놈이 팔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거지.’
※ ※ ※
도끼로 죽이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쩔 수 없다.
쓸만한 광역기를 배워두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폭탄을 쓸 수도 없다.
스톤 포지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놈 한놈씩, 차근차근.
십만 킬도 퍼스트 킬부터.
티끌 킬 모아 태산 킬.
‘한 5백 명까진 센 것 같은데, ···천명은 충분히 넘었겠고.’
자꾸만 몰려온다.
팟! 팟! 팟!
콱! 콰직! 콱!
“으아아, 케이가 왜 여기에···,”
“누, 누가 여기로 오자고 했어?”
“튀어!!!”
가긴 어딜 가?
츠리릿!
콱! 콰직! 콱!
마음 같아선 스톤포지를 누비며 아군 플레이어들을 돕고 싶지만,
‘여기 있어도 똑같네. 알아서 와주니까.’
그때였다.
툭!
데구르르···,
“음?”
기차역 안으로 떨어져 굴러오는 금속 막대기.
많이 보던 거다.
‘이건···,’
파워 스틱 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쪽에서 툭, 데구르르,
저쪽에서 툭, 데구르르,
투둑, 툭, 투두둑, 툭···,
“미친!”
우리 측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리는 없고.
‘···중국?’
중국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파워 스틱 밤을 손에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거야 나중에 밝혀내서 처리하면 그만, 지금은···,
“제기랄!”
팟팟팟팟!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바람길 산책.
콰콰콰쾅!
응축된 마력의 대폭발이 등 뒤에서 휘몰아쳤다.
쿠궁, 쿠구구구궁, 우지끈, 와르르르르,
무너지는 기차역.
철로가 놓인 터널도 무너진다.
돌 더미에 깔려 정차된 기차들도 부서졌다.
그리고 처참하게 파괴된 기차역 앞으로 [중화영웅] 덩차오를 비롯한 중국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낄낄낄, 맘에 들어. 이래서 파워 스틱 밤 하는군.”
“절대 살아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쯤 캡슐 밖으로 나와 눈물이나 찔찔 짜고 있겠죠.”
“턱없이 부족하지. 현실에서도 똑같이 당해야 해.”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한다?
터널이 무너져서 진(眞) 마정석을 캐러 갈 수도 없고,
하지만 상관없다.
도시를 점령하고 나서 플레이어들을 동원해 다시 걷어내면 그만.
“우리가 이겼어. 전체 메시지를 날려! 케이가 죽었다고···,”
그런데.
스윽,
무너진 잔해 위로 나타난 플레이어 한 명,
“씨발새끼들, 니들이냐?”
덩차오는 흠칫 놀랐다.
“넌?”
아바타 머리 위에 뜬 이름표.
케이, 플레이어 케이였다.
“···어떻게 살았지?”
파워 스틱 밤이 30개나 터졌는데.
어리둥절 영문을 몰라 하는 중화영웅.
반면 찬웅은 분노했다.
자신이 죽을 뻔했기 때문이 아니다.
드워프들이 공을 들여 건설한 기차역과 터널이, 오로지 침식지 레이드만을 위해 판매한 폭탄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기대해라. 모조리 삭제시켜줄게.”
놈이 살아난 건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덩차오는 비릿하게 웃었다.
여전히 관리청 플레이어들은 천여 명이 넘었다.
“넌 눈이 먼 모양이구나. 주위를 둘러봐! 어디 병력이 더 많나?”
확실히 그랬다.
폭발 소리를 듣고 달려온 플레이어들.
케이의 길드원들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더 많다.
“결국 니들이 믿는 건 숫자구나.”
“그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지?”
하찮은 놈들.
현실이나 게임이나, 언제나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인구수.
찬웅은 왼발을 살짝 앞으로 옮기며 말했다.
“넌 내 소문 못 들었어?”
“···뭐?”
“무슨 담력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거지? 날 감당할 수 있다고?”
“이 새끼가 감히···,”
팟! 팟! 팟!
단 3번의 움직임.
찬웅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중화영웅]의 전면에 도달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우우웅!
짙은 쉴드로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육중한 방패로 앞을 막는 중화영웅.
“그럴 줄 알았다. 애송아! 넌 죽었어.”
중화영웅, 덩차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3서클 쉴드 마법 반지에, 5서클 배리어 마법 문양이 새겨진 갑옷, 그리고 어렵게 구한 7서클 쉴드 마법 스크롤.
무려 3중첩의 보호막,
그리고 아다만타이트 합금으로 제작한 드워프제 방패까지.
이건 드래곤의 브레스에도 한번은 견디는 방어 체계.
동시에 자신의 친위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궁극 스킬을 시전할 준비를 마친 채.
방어와 반격이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원래 침식지 준보스급을 상대할 때 사용하던 전법.
놈의 공격은 반드시 막힌다.
‘막힐 수밖에 없어.’
그런 후 친위대 플레이어의 무수한 필살기를 온몸으로 받아야 할 터, 케이는 죽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썩둑!
놈의 도끼가 아다만타이트 방패를 갈랐다.
‘···어?’
째앵! 쨍! 쩡!
3서클 쉴드, 5서클 쉴드, 7서클 쉴드도 순식간에 깨어졌다.
“헉!”
심지어 가슴에 곧추세운 영웅급의 장검과 갑옷마저,
싹둑! 서거거걱!
장검과 갑옷마저 베어지면 뭐가 남지?
바로 아바타의 맨몸.
“이, 이런···,”
중화영웅의 상체가 비스듬히 잘렸다.
스르륵,
사선으로 갈라져 분리되는 육신.
“어, 어떻게?”
덩차오는 경악했다.
빠르기는 둘째치고라도, 위력은 대체 뭔가?
침식지 보스의 공격도 한방은 버틴다는 7서클 쉴드가 유리 와인 잔처럼 허무하게 깨어졌다.
게다가 이 뼈를 깎는 아픔은?
통각을 줄인 시스템 아닌가?
그런데 왜 아파?
프스스스스,
가루가 흩날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화영웅의 옆에 서 있던 다른 중국 플레이어 십수 명도 함께 썰렸다.
“큭!”
“어헉!”
“이, 이런!”
.
.
.
강기(罡氣).
일단 발현되면 일정 범위 내, 모든 걸 잘라버리는 압도적인 스킬.
강기를 막을 수 있는 건 강기 말고 없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벌컥벌컥,
포스 소모가 극심한 수준이라는 것.
‘···속이 미식거리네.’
어쩔 수 없다.
먹으면서 싸워야지.
단 한방에 [중화영웅]이 가루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중국 플레이어들.
“마, 말도 안 돼!”
“···7서클 쉴드를 잘라? 방패도?”
“이, 이건 사기야!”
맞는 말이다.
원래 찬웅, 아니 케이의 존재 자체가 사기.
벌컥벌컥!
한 병 더 까서 마시고.
“자, 이제 가보자.”
지이이잉!
강기(罡氣)의 앙증맞은 쌍도끼.
츠리리릿!
도끼가 케이의 손을 떠났다.
서걱, 서거거거거거거···,
도끼가 지나가는 경로의 모든 플레이어 아바타들이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말이다.
이젠 한방에 한 놈이 아니라 최소 30명씩.
아니, 도끼가 두 개니까 한방에 50명은 넘겠네.
기차역이 무너진 건 안타깝지만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갱도와 터널이 막혔다.
플레이어들은 광산 침식지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 의미는 더 이상 기차역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
케이가 자유롭게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