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12화 (112/204)

< 스톤 포지 대혈전(1) >

찬웅은 금박이 화려하게 박힌 편지지를 책상 위에 던졌다.

‘살다 살다 미국 대통령에게 자필 편지도 받아보네.’

웃기는 건 영어가 아닌 한글.

보좌관이 번역한 글을 옮겨적었나 보다.

삐뚤빼뚤, 유치원생 수준의 글씨체지만 꼭꼭 눌러 쓴 것이 그래도 진심은 느껴졌다.

마정석 수출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진(眞) 마정석 대량 생산과 판매 선언, 이로 인해 한국, 아니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소유자인 찬웅은 편안했다.

그저 자신을 대신해 고초를 겪고 있을 최기병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뿐.

‘게임이나 하자.’

이젠 접속 시 고통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동화율이 높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각성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되어서 그만한 고통쯤은 이겨낼 수 있게 되었는지 몰라도.

드워프 왕국 스톤 포지로.

먼저 개인소유가 된 광산부터 들리기로 했다.

“어서 오시오. 케이!”

친근하게 인사를 해오는 광산 경비 드워프.

이젠 이방인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거의 같은 종족처럼 케이를 대하고 있었다.

찬웅도 같은 마음.

그들은 엘프처럼 까칠하지도 않고, 마법사들처럼 계산적이지도 않고, 호탕하고 털털했으며 순수했다.

“고맙습니다. 경비를 서주셔서.”

“별소릴 다하는군. 내가 자원해서 하는 일인데,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아야지.”

찬웅은 경비병 드워프들 모두와 인사를 하고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새롭게 얻은 진(眞) 마정석 광산.

들어서자마자 툭, 발에 채이는 돌멩이···,

‘음? 아, 마정석이구나.’

엄청나다.

굴러다닌다.

벽과 바닥, 천장에도 촘촘히 박혀있다.

‘기념으로 몇 개 주워갈까?’

안쪽까지 들어가니 더 많이 보인다.

‘매장량은 걱정 없겠어.’

그러고 나서 찬웅은 다시 드워프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궁 대전 중앙, 그 앞에서 웃통을 벗은 상태로 화로 앞에 선 드워프, 국왕 썬더 스틸해머였다.

찬웅은 방해되지 않게 그냥 옆에서 조용히 구경만 했다.

화르르르르!!!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불꽃.

‘제련 작업 중인가?’

광석을 녹여 금속을 추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뻘겋게 달아오른 쇳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열기가 닿아 뜨거울 정도.

순간!

“이런, 마정석이 다 떨어졌군. 어디에 뒀더···, 어이쿠! 깜짝이야!”

옆에서 지켜보던 찬웅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스틸해머 국왕.

“아, 아니, 내 형제 케이, 자네 언제 왔나? 기척도 없이.”

“방금 왔습니다.”

“그래? 허허허, 미리 이야기했으면 마실것이라도 준비했을 텐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마정석은 왜?”

“아! 주물 작업 전에 이 쇳물에다 마정석을 넣어야 하거든, 그럼 전도율도 높아지고, 인챈트 마법 문양도 효과가 좋아져서.”

“···그렇구나. 그럼 이걸 사용하세요.”

찬웅은 인벤토리에서 진(眞) 마정석 몇 개를 꺼내 스틸해머에게 줬다.

“이거면 되죠?”

“하나면 충분하네. 이따가 갚지.”

“그럴 필요는 없고, ···혹시 그 마정석 느낌 어때요? 다른 것과 비교해서.”

“음? 어디 보자. 별 느낌 없는데···,”

“신성력은 안 느껴지시나?”

“하하하, 신성력이라, 자네도 느껴지는가 보군. 하지만 신성력은 마정석 때문이 아닐 거야.”

스틸해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손으로 소형 용광로를 가리켰다.

“신성력은 이 화로 덕분이지. 헤스티아의 화로, 신성한 불꽃을 일으키는 보물 중의 보물이야.”

“···아!”

“이것은 오직 드워프 국왕만이 다룰 수 있는 성물, 내가 이것 때문에 국왕 됐지, 안 그럼 그냥 평범한 대장장이로 남았을 거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왜 화로가 왕궁 안에 있나 했더니 이것도 보물.

아마 성배와 같은 신화 등급일 터.

“미안한데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어서.”

“아! 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계속 만들어볼까?”

부스럭, 부스럭,

지글지글, 치지지지직!

스틸해머는 찬웅에게서 받은 마정석을 쇳물과 함께 녹였다.

그리고 그걸 거푸집에 붓고 굳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나도 자네가 가진 도끼 같은 명품 장비를 만드는 게 꿈인데 말이야. 우리 드워프들의 숙원이지.”

“곧 이루어지겠죠. ···그런데 매일매일 이렇게 장비를 만들어요? 쉬지도 않고?”

“그렇게 해도 모자라. 상인들에게 공급도 해야 하고, 제국이나 왕국의 군대에 납품도 들어가고, 또 대신전에 제물도···,”

“제물? 대신전에도 무기가 들어가요?”

“당연하지.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야. 마탑이나 로그드라실 엘프, 마키나 공화국 놈들도 생산품의 일정 부분을 대신전에 제물로 바쳐야 해.”

“···.”

대신전?

제물을 바친다니,

거긴 삥 뜯는 집단인가?

헌금도 넙죽넙죽 받아먹고.

아무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쇳물이 굳었다.

거푸집에서 막대기처럼 생긴 철 덩어리를 꺼내 망치를 두드리는 스틸해머.

“이건 검이 될 거야.”

“네.”

깡깡깡깡!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다.

대장장이가 검을 만드는 걸 또 언제 보겠나?

깡! 깡! 깡!

웃통을 벗은 드워프의 몸에서 비 오듯 흐르는 땀, 꿈틀거리는 근육, 그리고 어느새 형체를 갖춰가는 검.

“구경하는 게 재미있나 보군.”

“네. 신기해서.”

“그럼 확인해볼 텐가? 잘 만들어졌는지.”

“봐도 되나요?”

“당연하지.”

찬웅은 스틸해머가 건네주는 집게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을 집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떠오르는 아이템 정보.

[진(眞) 드워프 스틸해머의 오리하르콘 장검(미완성)]

[등급 : 영웅]

[무기 종류 : 장검]

[귀속 여부 : 거래 가능]

[무기 기술 : 출혈 / 연속 찌르기]

‘···뭐?’

진(眞)이라니!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국왕이 직접 만들어서 그런가?

“이 검···, 어떻게 만드신 거죠?”

“응? 그야 평소처럼 만들었지. 왜? 마음에 드는가?”

제작자도 모르는 것 같다.

이미 스틸해머가 만든 장비들을 많이 만져봤다.

죄다 평범한 장비들.

그런데 왜?

‘···혹시? 진(眞) 마정석 때문에?’

가능성 있다.

진(眞) 마정석, 그리고 신성한 불꽃을 일으킨다는 이 화로.

이전까지는 전부 일반 마정석으로만 작업을 해왔을 터.

‘이것도 상승작용?’

마치 광산 침식지를 정화했을 때 일어났던 성수와 축복의 시너지처럼.

‘가만있자. 그럼 진(眞) 마정석과 이 신성한 화로로 장비를 만들면 다 진(眞) 아이템이 되는 거야?’

확인해보면 되겠지만,

‘첨엔 그저 각성 플레이어 만들어보려고 침식지 공략하러 왔는데···,’

마정석 광산도 그렇고, 이 신성한 화로도 그렇고, 드워프도 그렇고.

이젠 너무나도 중요해진 스톤 포지였다.

※ ※ ※

기자회견은 세계를 강타했다.

한국과 사이가 좋은 나라는 서둘러 관계자들을 파견해 협상에 나섰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일본 도쿄 수상 관저.

구로다 코하루 중의원이 나카타 총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며, 면목이 없습니다.”

“특사라고 보냈더니, 일을 망치고 왔군.”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구로다도 억울했다.

강하게 나간 건 맞지만 그도 계획이 있었다.

협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처음부터 속내를 모두 보여주면 가진 것 모두 내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밀당이 필요한 것, 슬슬 밀고 당기다가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려고 했는데,

“파고들 여지는 없나? 한 번 더 안 만나봤어?”

“기, 기자회견 후에 직접 찾아가서 만남을 요청했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아, 총체적 난국이구만.”

나카타 총리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

자신도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에 한국 정부에 접촉해봤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우리 일본이 진(眞) 마정석 불법 이용국이라니!’

인체실험을 빌미로 삼은 모양.

그래서 향후 있을 진(眞) 마정석 수출국에서 제외되었단다.

한마디로 일본은 수출 규제 국가 취급을 당한 것.

그러나 그건 자위대가 한 일이 아닌가.

이러다간 일본 경제가 위태해진다.

‘괜히 구로다를 보냈어.’

우익 출신 정치인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 그것이 최기병이란 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영영 끝이다.

만약 한국에서 진(眞) 아이템으로 만들어진 마공학 물건들이 생산되기 시작하면···.

‘절대 안 돼!’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꼭 마정석 수출국에 포함되어야 한다.

‘누가 좋을까?’

멍청한 구로다 대신 한국으로 가서 이 사태를 해결할 인물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 ※ ※

중국도 다를 바 없었다.

베이징 중난하이 국무원에서 열린 국무위원 회의.

중국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을 책임지는 [대국혼] 진위앙도 참석했다.

“진(眞) 마정석 광산이 확실한 거 맞나?”

“스톤 포지로 우리 측 용병 플레이어들을 급파했습니다. 공략 성공한 침식지 중에 69번과 113번 광산이 있는데, 입구부터 드워프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허허.”

도통 원인을 모르겠다.

어떻게 그 조그만 나라에서 그런 플레이어가 나왔지?

진(眞) 마정석 대량 생산.

그것도 모르고 희토류 수출제한 운운해 버렸으니···, 되돌리지도 못한다.

공산당 대변인이 직접 말했고 중국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어 기사로 나갔다.

당연히 한국이 중국에게 진(眞) 마정석을 수출할 리 없다.

“대책은?”

“한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이 가장 상책입니다. 한한령을 완전하게 풀고 그동안 있었던 악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사과···,”

“그만! 우리가 사과라도 하자는 말인가? 한국 따위에게 머리를 숙여?”

“···그, 그게.”

진위앙은 난감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의 말빨이 제법 먹혔지만 현재는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해 이 자리가 위태위태한 상황까지 왔다.

사실 중국 정부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

현재 공산당 지도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 중국의 2030세대.

그 중국의 젊은이들을 소분홍(小粉紅) 세대라고 부른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인한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소황제(小皇帝)라고 불리기도 해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성장하면서부터 중국의 경제 성장, 미국과 더불어 G2 국가의 지위까지 오른 현실을 눈으로 목격한 계층.

그리고 학교나 미디어에서도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라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치솟았다.

과거 한족 중심이었던 중화사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 ‘중국’을 아이돌처럼 사랑한다는 내용의 노래가 대히트를 치는 판국인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지도부가 한국의 일개 플레이어에게 항복 의사를 표명한다?

그건 자폭이나 다름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퇴양난의 늪에 빠진 중국.

그러나 대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파워 스틱 밤, 폭탄 말이야.”

“네.”

“현재 몇 개나 확보했지?”

“30개 정도···.”

“그래?”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과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한 국가들에게 접근해서 정상가 3배의 금액으로 조금씩 사들였다.

“하, 하지만 30개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지. 침식지 공략 용도로는 모자란 게 맞아.”

마키나 공화국산(産), 마정석 폭탄의 위력은 위트리아 침식지 공략에서 이미 증명된바, 각국 공격대는 폭탄을 구입해 독자적인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 80개, 넉넉하게 100개는 있어야 작은 침식지 하나를 공략할 수 있다.

“그 폭탄을 침식지 말고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

“···무, 무슨?”

진위앙의 의문에 중국 국무위원이 답했다.

“나도 소싯적엔 게임 열심히 한 몸이야.”

“그, 그러셨습니까?”

“내가 했던 게임은 유저들의 진영이 둘로 나뉘어 있었어. 새벽에 접속이 뜸한 틈을 타서 상대방 적 진영에 침입해 들어가 NPC들을 죽이고 국왕도 처치하고, 그렇게 낄낄거리며 놀았던 기억이 나.”

“···아!”

그가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다.

“···스톤 포지를 점령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NPC들이 강하다 해도 수적 우세엔 한계가 있는 법이야.”

“하지만 관리청 소속 용병 플레이어로는 부족합니다. 1만 명 겨우 넘는 수준이라. 드워프들은 그보다 많습니다.”

“정부 소속 각성 플레이어 관리청은 절대 개입하지 않을 거네.”

그럼 누가 한다는 거지?

다른 세력에 청부라도 하자는 건가?

“중국에 한정해서 듀플렉스 스페이스의 플레이어 인구는 몇 명이지? 타직업 제외하고 용병만.”

“흐음, 약 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그렇게 많았나? 내가 알기론 플레이어 중 99%가 일반 직업이었는데,”

“진(眞) 아이템 존재가 알려지고 코인 가격이 상승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래? 잘 됐군. 그 중에 소분홍 세대들의 비율도 높을 테고,”

맞는 말이다.

게임의 특성상 젊은이들이 주로 즐기고 있으니까.

현시점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바로 중국, 인구로 따지면 인도도 만만치 않지만 플레이어 숫자는 상대가 안 된다.

이 게임도 돈이 넉넉해야 할 수 있는 게임.

“그들을 충동질해봐. 물론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이를테면 원래 침식지 공략을 중국이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플레이어와 케이가 가로챘다. 라고 하든가.”

“하, 하지만 그건 근거도 없고, 너무 무리한 주장이라 씨알도 먹히지 않을···,”

진위앙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국무위원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근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사람들을 믿게끔 만드는 거지, 진실이 뭐가 중요한가?”

“아···,”

잠시 고민하다가 눈빛을 반짝 빛내는 진위앙.

이제야 국무위원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이거 괜찮은데?’

중국 소분홍 세대.

선동이 잘 먹히는 20대들.

아무리 NPC가 강하다 한들, 백만 명의 용병 플레이어 중 30%만 참가한다 쳐도···.

‘스톤 포지는 그냥 무너져.’

거기에 마정석 폭탄까지 쥐여 주면 승률은 더더욱 높아진다.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가능성 있다.

스톤 포지 점령.

그럼 진(眞) 마정석 광산은 중국 소유.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점 하나.

절대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

그것도 문제없다.

이챗, 파이두, 틱틱 같은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 조금만 선동질 해도 활활 타오를 터.

케이?

현실에서나 무섭지, 게임이라면?

이로써 정해졌다.

스톤 포지는 중국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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