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眞) 마정석 생산 준비 >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케이의 솔로잉에 의한 일본 유흥가 침식지 공략?
빌런들이 몬스터라고 치면 게임 속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팟팟! 거리며 콱콱! 찍으니 털썩, 털썩 쓰러진다.
가부키쵸, 롯폰기, 긴자 합쳐도 2시간이 안 된다.
일본 도쿄 수상관저는 한동안 침묵 속에 빠졌다.
사실 케이를 초빙하기 위해 쓴 금액 1억 코인, 선뜻 내어준 속내가 따로 있었다.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케이의 물리적인 강함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
실패까지는 아니더라도 난관에 부닥치거나, 억울한 사람을 잡거나, 민간에 피해를 끼치거나, 아무튼 실수 하나쯤은 분명히 할 거라 여겼다.
그럼 그걸 빌미로 압박을 가한다.
마음의 빚을 지우는 것.
차후 있을지도 모르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든지, 진(眞) 아이템을 싸게 매입한다든지, 레이드 공략에 참여시킨다든지.
그런데 1억 코인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눈부신 활약, 아니 2억 코인을 준다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
도쿄 경시청도, 내각 정보실도 파악하지 못했던 빌런의 본거지를 저렇게 쉽게 찾아낸다고?
그리고 깔끔하게,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심지어 지하 하수구를 통해 탈출하려던 미츠이 구미의 오야붕까지 죽여버렸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잡아떼지도 못한다.
활약에 대한 증거가 낱낱이 녹화되었을 테니까.
“이제···, 입장을 정할 때가 됐군.”
조용히 입을 여는 나카타 총리.
“무슨 말씀이십니까? ···입장이라면?”
“앞으로 한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말이네. 대(對) 한국 외교 원칙이 달라질 수도 있어. 어차피 케이는 한국인 아닌가?”
그랬다.
일본에게 있어 케이의 최고 단점, 바로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
외교적으로 눈치를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강경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냐.
“관계 개선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
“안 됩니다. 전 부정적입니다. 한국은 믿지 못할 나라라서, 일이 해결된 건 좋지만 이젠 우리가 거꾸로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그렇지.”
“언젠가 놈의 도끼날이 우릴 향할 수도 있어요.”
한국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 그러나 누구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 이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에 나카타 총리는 마냥 속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케이는 단순히 국적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할 인물이에요. 당장 침식지 레이드만 해도 그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끄응, 그것도 그렇지만···.”
일본으로서도 침식지 레이드는 반드시 공략해야 한다.
하다못해 파워 스틱 밤을 살 수 있는 소개장 정도는 받아야 하고.
“후우, 하필이면 한국인이라니.”
“그래도 공식적인 감사 표시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훗날을 생각한다면···.”
“안 돼!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커.”
그렇지 않아도 1억 코인을 들여 한국의 플레이어를 일본에 들인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는 상황.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할 터.
“정 그렇다면 APS로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
“···수위는 어느 정도로?”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두리뭉실하게 립서비스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리한 요구를 해온다면?”
그게 가장 큰 문제.
항상 한국은 그래왔다.
일본의 은혜를 잊은 채 과거의 문제만 들쑤시면서 사과만 요구하는 가증스러운 민족이 바로 조센징 아니던가.
이를테면 강제 징용 문제, 위안부 등등,
“확답은 피하고 노력하겠다고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정 어렵다면 한국 내 친일 세력도 동원해 보고요.”
“좋군. 그렇게 결정하지.”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나중에 잡아떼기도 편하다.
※ ※ ※
드워프 왕국 스톤포지.
113번 침식지 레이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도 대형 수조 위쪽에 성배 거치대를 마련해서 자동으로 수도꼭지처럼 성수가 채워지고, 또 동시에 광산 안쪽으로 흘려보내는 중.
그러나 숙성이 필요하다.
되도록 푹 묵혀두는 것이 좋다.
그래서 113번 광산 침식지는 마지막에 공략하는 걸로 정하고.
찬웅이 최기병에게 말했다.
“예행 연습으로 광산 침식지 몇 개 공략해보죠.”
“그럴까요?”
“네, 비슷한 패턴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고.”
“알겠습니다. 참!”
뭔가 생각났다는 듯 찬웅에게 말하는 최기병.
“일본 정부에서 특사를 보내겠답니다.”
“왜죠?”
“의뢰 완수에 대한 감사 표시랍니다.”
“코인이라도 더 주겠데요?”
“그거야 만나봐야 알겠죠. 우리와 계속 연을 유지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나 직접 만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땐 떠넘기는 것이 편하다.
항상 귀찮은 일은 최기병에게, 솔직히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팀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일본이 또 도움을 요청하면요.”
“흐음, 전 별로, 이번엔 1억 코인이 필요해서 갔지만 두 번은 도와주고 싶지 않네요.”
“파워 스틱 밤 소개장도?”
“주지 말아요. 일본 없어도 침식지 공략해 줄 나라들은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결정된 공략.
그 와중에 민도연은 드디어 대신전에 다녀왔다.
“와! 갔다 와 보면 안다더니, 진짜 신세계네. 그치, 찬웅아?”
“어, 그래.”
APS 플레이어들도 알고 있다.
찬웅이 최기병과 함께 대신전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물론 주요 사실을 비밀, 초대권은 케이가 APS에 기부한 걸로 해서.
“찬웅이, 넌 진(眞) 아이템 받았어? 난 받았는데, 내가 쓰던 창으로.”
“아니, 그냥 스킬만,”
“뭔데?”
“으흠, 방출하고 강타.”
“어머? 나도 방출 진(眞) 스킬 얻었어.”
생각보다 민도연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대꾸를 안 해줄 수가 없고.
대충 이야기를 끝내고 찬웅은 게임에 접속해 드워프 국왕과 만나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목표는 158번 광산 침식지.
드워프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개발한 광산, 브론즈, 즉 구리가 대거 매장됐다고 알려진 침식 광산이었다.
여길 공략하겠다고 말하자 마음이 급했는지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리며 말하는 국왕 썬더 스틸해머.
“어, 어떻게 우리가 도와드릴 건?”
“우리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만 주세요.”
“걱정 마시오. 다른 이방인들은 얼씬도 못 하게 하겠소.”
드워프 국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식 아래 기차를 타고 158번 침식지로 떠나는 한국 APS 공격대.
인원이 조금 늘어 모두 25명이다.
어느덧 158번 침식지.
25명의 공격대가 광산 안으로 진입했다.
“나온다! 박쥐부터 처리해.”
“동굴 슬라임도!”
“바닥 조심하고.”
패턴은 비슷했다.
동굴 박쥐와 슬라임, 살짝 다른 점이 있다면 갑자기 벽에서 발사되는 화살 같은 함정이 존재했고, 금속이 섞인 묵직한 바윗돌이 굴러온다는 거지만.
이 쉬운 침식지를 왜 그동안 공략하지 않았을까?
이해는 간다.
투입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한정적이었으니까.
좁은 통로에 수백 명씩 꾸역꾸역 밀어 넣어봐야 박쥐에게 당하고, 슬라임에게 먹히고, 급기야 굴러오는 바윗돌 한방에 모조리 가루로 변해 쓸려나갈 터.
거대 바윗돌을 막고 한방에 쪼갤 수 있는 능력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플레이어는 딸기와 케이 말고 없었다.
결국,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스톤 포지 158번 침식지 보스 길잃은 침식 드워프 158이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스톤 포지의 브론즈 생산량이 대폭 늘어납니다.]
[공략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정화된 지역에 30초 동안 주신의 축복이 내립니다.]
여세를 몰아 바로 옆에 붙어있는 157번 광산 침식지까지.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스톤 포지 157번 침식지 보스 길잃은 침식 드워프 157이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상점에 영웅급 장비의 등장이 빈번해집니다.]
하루 정도 쉬었다가.
[스톤 포지 14번 침식지 보스 길잃은 침식 드워프 14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스톤 포지 22번 침식지 보스 길잃은 침식 드워프 22가 현 시간부로 소멸했습니다.]
계속되는 침식지 공략, 케이의 활약으로 플레이어들이 점점 강해졌다.
새로 각성한 플레이어, 또한 초대권의 보유 장수도 늘어났고, 또한 찬웅도 그동안 미진했던 동화율과 반영률을 각각 2번 달성해냈다.
‘상태창!’
[이름 : 케이]
[직업 : 용병(랭커)]
[포스 : 8800]
[액티브 스킬 : 비열한 습격(10단계), 바람길 산책(11단계), 별빛 가르기(11단계), 강타(8단계), 슬립(2단계)]
[패시브 스킬 : 방출(11단계), 듀얼 스트라이크(10단계), 마법 저항(5서클), 약점 포착(9단계), 고무 신체(7단계)]
[동화율 : 180%]
[반영률 : 60%]
그뿐만이 아니다.
드워프 국왕과 약속했던 10번의 침식지 공략이 마지막 한 번 남은 시점에서.
[D박스에서 ‘진(眞) 스킬 구슬 : 강기(罡氣)’를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킬 구슬 하나를 습득했다.
‘이건 뭐지?’
※ ※ ※
듀플렉스 스페이스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침식지가 한 번씩 공략될 때마다 전체 공지가 날아온다.
이건 숨길 수가 없다.
공략 성공하면 모두가 알게 된다.
그런데 한번이 아니라 이틀 동안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전체 공지.
[듀플렉스 전 대륙에 공지합니다.]
[스톤 포지 158번 침식지···.]
[스톤 포지 157번 침식지···.]
[스톤 포지 14번 침식지···.]
.
.
.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이거 뭐야? 스톤 포지? 저 동네 왜 저래? 이벤트라도 열렸나?
└ 거기 원래 작은 침식지가 모여있는 곳이긴 해.
└ 작아도 되게 어려운 곳이잖아. 아니 작아서 어렵지.
└ 아, 바윗돌에 깔려 죽은 기억이 생생하다.
└ 그래도 거기까진 갔구나. 난 동굴 슬라임에게 먹혔는데.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스톤 포지도 플레이어들이 왕래하는 곳.
전체 메시지 때문에 찾아오는 플레이어들도 많았고,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있나?
└ 나 거기서 케이하고 상큼한 딸기 본 것 같은데···.
└ ···정말?
└ 한국인들이 스톤 포지에서 플레이하고 있다고?
└ 오우! 당장 가자.
플레이어들이 스톤 포지로 줄줄이 몰려들었다.
세상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됐다.
최기병은 백악관 빌런 대응 안보 참모 마이클 피트의 전화를 받았다.
- 이거 섭섭하네요. 스톤 포지에서 알 박고 계셨을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슬쩍 언질이라도 주시지.
“우리가 왜 미국에다가 이야기를 해야 하죠?”
- 하하하, 국가 간 사이가 아니라 우리끼리 하는 얘깁니다.
“이거나 그거나···.”
- 그런데 뭐 좀 나왔습니까? 초대권이 많이 쌓여있겠네요.
“침식지가 작아서 몇 장 안 주던데요?”
- ···몇 장요?
“침식지 하나당 초대권 한 장 받았습니다. 그럼 이만,”
- 어어, 여, 여보세요?
뚝!
전화를 끊고.
미국 마이클 피트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전화기에 불이 날 만큼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왜 투자를 안 받나? 초대권 분양을 해달라. 어떤 진(眞) 아이템이 나왔는지 정보 공개를 해라.
또한 언론이나 방송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APS 본부 건물 앞은 기자들로 장사진.
<전 세계가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10년 후, 초강대국은 바로 한국>
<유럽인이 한국을 무시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통곡한 이유는?>
<전 세계 용병 플레이어들 한국으로 이민 신청 쇄도, 한국 국격 클래스 여기까지 왔다.>
<케이, 상큼한 딸기, 왜 한국인은 게임을 잘할까? 세계 멘사 본부에서도 인정한 한국인의 두뇌>
놀랍게도 위 타이틀은 국뽕 너튜브 썸네일이 결코 아니다.
기존 메이저 언론들이 신문에 쓰는 기사의 제목.
국뽕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희망하는 미래 직업 1위가 너튜브 크리에이터에서 용병 플레이어로 변했다.
그 결과 바글바글한 스톤 포지.
다양한 국적의 플레이어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왔다.
오늘은 성수에 절여놨던 113번 침식지를 공략하는 날.
“후우, 이거 미치겠네. 뭘 주워 먹을 것이 있다고 다 몰려왔는지.”
“어떻게 해서든 우릴 따라오려 하겠죠.”
“플레이어들을 따돌리는 것이 공략보다 더 힘들겠네.”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스톤 포지 경비대장 매톡 브론즈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치며 말했다.
“이방인 케이. 우리가 침식지까지 보호해 주겠소. 도시 내 제법 강하다 싶은 드워프들은 모조리 소집했으니까, 지금도 그대 소유의 마정석 광산도 개미 한 마리 못 들어가게 막고 있소.”
“부탁드릴게요. 참! 그리고 곧 조력자들도 올 겁니다.”
“조력자? 이방인들 말이오?”
“보면 알아요.”
NPC들은 도시 안에선 능히 일당백.
따라서 걱정할 필요 없다.
“빨리 공략하고 진(眞) 마정석 캐냅시다.”
“그래야죠.”
만약 진(眞) 마정석이 대량으로 생산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그때는 반응이 지금보다 훨씬 더 폭발적일 터.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