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아바타의 재능으로 동화율 돌파-104화 (104/204)

< 빌런인지 아닌지 모호할 땐?(1) >

각성했다고 해서 모두가 빌런이 되는 건 아니다.

전체 각성 플레이어 중 빌런은 아주 소수, 그러나 그 소수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사도의 존재까지 합치면 어떻게 될까?

국가의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다.

소수의 빌런, 그리고 군주의 사도, 국가 대응 시스템 붕괴, 이 삼박자가 거의 동시에 합을 맞춘 나라가 있었다.

바로 일본.

현재 일본은 침식지 레이드를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

그럴 정신도 없다.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무차별 살인사건 발생>

<살인범, 흉기를 들고 경찰과 대치하다 탈출, 행방 묘연>

포스를 각성해버린 음습한 오타쿠의 습격.

<일본 최고검찰청 테러 미수>

<사망자 3명 발생, 테러범 추격>

한국 대검찰청 테러를 모방한 범죄시도.

<교토 한 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대규모 참살 사건>

<용의자로 보이는 학생, 죽여야 할 놈들을 죽였다는 말을 남기고 할복자살>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이 자신을 괴롭혀왔던 동급생들을 죽이고.

<야쿠자 대항쟁, 하타초 구미와 미츠이 구미 간의 전쟁 발발>

<빌런 각성 플레이어 대거 참여, 사상자 숫자 파악도 안 돼>

미친 듯 날뛰는 야쿠자들과.

<도쿄 도이치 은행 털려, 피해액 30억엔 이상>

<후쿠오카 시내 편의점 ATM기 50여 개 파손, 현금 도난>

각종 강력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급기야 일본 나카타 총리가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현재 경찰청과 자위대가 긴급 투입되어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정상화될 것이며 국민들께선 이전과 다름없이 생업에 종사하셔서···.”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이런 대혼란의 중심에 어떤 자들이 있는지 일본 경찰들도 잘 알고 있었다.

각성 플레이어들,

저들을 체포하라고?

아무리 실탄 사용이 전면적으로 허가되었다 하지만 권총 한 자루 들고 빌런 각성자들을 체포하라는 건 가서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일부러 천천히 가거나, 아니면 아예 현장에 접근도 하지 않거나.

자위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캡슐 파괴로 인해 자위대 소속 각성 플레이어들의 대거 이탈, 그나마 남아있던 자들도 현장 투입에 소극적이었다.

자위대가 투입되어도 총리 관저, 일본 의회, 현청이나 시청 같은 관공서가 주요 경비대상이었고.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다.

협박에 의한 것이라 하지만 자위대의 혼죠가 각성 플레이어를 제멋대로 관리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이유로 이미 일본의 치안 행정은 마비 상태.

빌런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범죄자들도 이에 편승해 난동을 부렸다.

이를 지켜보는 세계 각국 정부는 긴장했다.

한때 최고의 치안력을 자랑하던 일본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언제라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던 항모들과 미군들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유럽 연합은 회원국들끼리 국경 없는 수사 협력을 선언하고, 빌런 대응 유럽 연합 수사국 창설을 발표했다.

일본의 침몰을 가까이서 목격한 한국과 중국의 불안은 더 했다.

※ ※ ※

세상이 변화한 건 분명하다.

좋은 쪽, 나쁜 쪽 둘 다였다.

나쁜 쪽은 일본을 보면 되고, 그럼 좋은 쪽은?

미국에서 낭보가 울렸다.

게임 속에서 전체 메시지로 퍼진 또 한 번의 레이드 성공, 미국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침식지 보스 공략이 성공했다는 공지.

미국도 드디어 자력으로 침식지 보스를 격퇴했다.

이게 다 파워 스틱 밤 때문.

무려 110개의 마정석 폭탄으로 잡몹들을 처리하고 공격대 병력을 무사히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보스에게도 폭탄을 사용, 끝끝내 잡아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만.

이젠 폭탄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성공을 지켜본 다른 나라에서도 앞다투어 마정석 폭탄을 확보하고 있었고.

한국 APS도 바쁘다.

업무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최기병도 눈코 뜰 새 없고,

APS의 주요 업무는 두 가지.

첫째는 게임 안에서 침식지 보스를 공략해 진(眞) 아이템과 각성 플레이어의 숫자를 늘리는 것,

“거, 좀 쉬엄쉬엄하시지.”

이필동 과장이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내려온 최기병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각성하지 않았다면 벌써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을 터.

“나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이번에 새로 각성한 플레이어들 각 지역에 배치해야 하고, 진(眞) 아이템 현황도 정리와 거기에 진(眞) 마정석 에너지 발전 계획 수립까지···.”

누구 놀리냐는 듯 쏘아붙이는 최기병.

“···아, 아니 그냥 해본 말인데.”

“왜 왔어요? 할 일이 없으면 퇴근이나 하시지.”

“저도 할 일이 있어서, 정지혁 건에 대해 보고드리려고요.”

“정지혁? 화정 그룹 정규광 회장 아들 말입니까?”

APS의 두 번째 업무는 각성이 의심되는 플레이어 수색 및 감시.

특히 바로 옆 나라 일본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에 그 업무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정지혁이 왜요? 사고라도 쳤데요?”

“그건 아닌데, 다소 폭력적인 성향이 의심되어서.”

“후우···.”

하긴, 평소엔 가지지 못한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으니 달라질 수밖에.

이래서 인성이 중요한 거다.

재능은 다음 문제.

그런 이유에서 최기병도 다음 각성 예정자들의 성향을 면밀하게 조사해서 선발하고 있었고.

“정지혁 문제는 이과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러다 진짜 사고라도 치면요?”

“미리 경고라도 하죠.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고.”

“흐음, 정규광 회장 만나보겠습니다. 아들 간수 잘하라고.”

지능이란 것이 있으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도 봐왔을 테니까.

빌런 각성 플레이어에 대한 APS의 대응이 어땠는지.

※ ※ ※

찬웅은 자택 빌라 주변을 산책 중이었다.

요즘 들어 자신이 하는 걱정.

‘이 돈을 다 어떻게 쓰나.’

돈을 쓰는 게 무슨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좀 그렇다.

코인이 계속 들어온다.

APS 기본 연봉에, 사냥으로도 벌고, 파워 스틱 밤 소개장 수수료, 그리고 앞으로 마정석을 팔게 되면 들어올 코인까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잘 써야지. 후회 없도록.

‘기부라도 할까?’

좋은 생각이다.

고아 신분과 장애인으로 살아와서 그들의 아픔도 충분히 알고 있다.

‘코인으로도 기부가 가능하니까.’

아바타 명 케이로.

이왕이면 정직한 곳에, 통 크게 기부해보자.

‘최기병 팀장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기부도 기부지만 코인을 그냥 묵혀두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성상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일부는 현실 재산으로 바꿔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 예를 들어 부동산 같은 실물 투자.

‘진짜 실명으로 하면 위험하려나?’

순간!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강찬웅의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서 투자하는 걸 권유합니다.]

갑자기 답변하고 나오는 허리띠 에고 시스템.

‘페이퍼컴퍼니? 강찬웅으로? 가능하겠어?’

[지구상에서 강찬웅이라는 이름의 네임밸류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 될 경우는 희박합니다.]

‘···.’

틀린 말은 아니다.

케이라는 부캐가 훨씬 유명하지.

‘누군가 자금 흐름을 조사해서 케이의 계좌에서 강찬웅의 계좌로 코인이 대량으로 흘러가는 걸 포착해낸다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완벽하게 숨길 수 있습니다. 드러날 이유 또한 없습니다.]

‘그래?’

믿음이 간다.

에고 시스템의 주체가 어디인가?

무려 가상현실을 서비스하고 있는 강인공지능 아닌가.

‘그럼 적당히 만들어봐.’

[회사의 유형과 이름을 지정해 주십시오.]

‘투자회사가 좋겠지? 이름은···, CY 인베스트먼트.’

[CY 인베스트먼트로 투자회사 설립을 추진합니다.]

좋네.

이런 것도 다 해주고.

이제 건물도 사고, 땅도 사고, 주식도 사고···,

그런데 바로 그때!

‘음?’

뭐지?

전방에서 느껴지는 포스의 기운,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이상한 건 아니다.

이 빌라에 사는 각성 플레이어가 있으니까.

그런데 두 개라.

‘민도연 말고 한 명 더 있다는 의미인데···,’

찬웅은 포스가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워지자 들리는 대화 소리.

“저 그렇게 가벼운 놈 아닙니다.”

“그러시겠죠.”

“언론에서 제가 스캔들 났다는 기사 들어본 적 있으세요?”

“없어요.”

“하하하! 도연씨도 알고 계셨군요.”

“관심이 없으니까요. 제가 재벌들 연애 사정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고.”

“···.”

운동복 차림의 민도연.

또 한 사람은 남자.

‘각성 플레이어는 확실한 것 같은데···.’

또 APS 소속 각성 플레이어는 아니고.

그런데 재벌?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그저 같은 처지로서 대화나 나눌까 하고.”

“···같은 처지?”

“아! 모르셨구나. 저도 그겁니다. 각성.”

“그래요? 그런데 왜 APS에 안 들어오시고.”

“다, 다른 할 일이 많아서.”

“그럼 계속 다른 할 일 하세요.”

민도연은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러다 찬웅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 찬웅씨!”

“아,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 근데 어디 가요?”

“잠시 산책을···,”

“잘 됐다. 같이 가요.”

폴짝폴짝 뛰어와 찬웅에게 붙어 팔짱을 끼는 민도연.

‘···어,’

그 모습에 정지혁의 표정이 일순 굳어버렸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했다.

퉁명스러운 말투로 쌀쌀맞게 굴던 민도연이 갑자기 저렇게 살갑게 굴어?

그래도 정지혁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도연씨, 이분은 누구···?”

“왜요? 제가 그것까지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많이 친하신 것 같아서,”

“제가 이분과 친한 거 하고 정지혁 씨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찬웅은 민도연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알 것 같다.

‘HTS 이홍종도 재벌가였지.’

놈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고, 그 아버지에게도 협박을 당했으니.

재벌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있나.

하는 수 없이 찬웅이 나섰다.

“강찬웅입니다. 민도연 씨와는 한동네 살고, 그리고 직장도 같아요.”

“···아! 반갑습니다. 화정 그룹 정지혁입니다.”

화정 그룹이라,

그렇다면 포스가 느껴지는 이유를 알겠다.

대신전 갔다 와서 각성한 모양.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음부터 인사하고 지내죠.”

정지혁이 찬웅에게 손을 내밀었다.

찬웅도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음?’

뿌드득.

강하게 손을 쥐어오는 정지혁, 포스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거 봐라?’

힘겨루기하자는 건가?

하지만 찬웅은 반응하지 않았다.

한 줌도 안 되는 포스로 힘을 써봐야 그저 간지러운 수준.

“됐죠? 우리 이만 가요. 찬웅씨.”

“그럼 다음에 뵙죠.”

“네, 꼭 다시 만나요.”

민도연이 찬웅의 팔짱을 꽉 끼면서 잡아끌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

“어우, 마침 찬웅씨가 와서 다행이에요. 어찌나 치근덕대던지.”

“어, 그런데 이 팔 좀.”

솔직히 고역이다.

민도연의 가슴과 맞닿은 팔, 물컹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응? 왜요? 제가 싫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근데 찬웅씬 몇 살이에요?”

“32살입니다.”

“어머! 동갑이네. 그럼 오늘부터 말 놓을까···, 요?”

“···갑자기?”

“뭐 어때요? 한동네 살고, 같은 직장에, 나이까지 똑같은데.”

여신이다 뭐다 신비한 컨셉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민도연이지만 생각보다 털털하다.

좀 전에 정지혁을 대했던 까칠한 태도와는 정반대.

“으흠, 뭐, 그렇게 하자.”

“아싸! 친구 한 명 생겼다. 오늘 뭐 해?”

“출근해야지.”

“오! 나도 스케줄 하나 끝내고 출근할 건데, 그럼 APS에서 봐.”

“그래.”

손을 흔들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민도연.

찬웅도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묘하네.’

졸지에 연예인 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한류 스타.

‘출근 준비나 하자.’

하지만 그전에.

스르륵.

팟팟팟!

※ ※ ※

정지혁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를 기다리던 비서.

“사, 상무님 오셨습니까.”

“시끄럽고! APS에 꽂아둔 우리 플레이어 있지?”

“네.”

“연락해서 물어봐. 강찬웅이란 새끼가 누군지.”

“알겠습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정지혁.

“쌍년! 겨우 배우질이나 처하면서 도도하게 굴긴.”

게다가 강찬웅이란 놈도, 포스를 끌어올려 손을 꽉 쥐었지만 놈의 표정엔 미동조차 없었다.

“씨발, 각성 빼면 아무것도 아닌 천민 주제에, 하! 강찬웅입니다? 각성 아니었으면 감히 눈도 마주칠 자격도 없었을 새끼가.”

악수 청해오면 황송하게 여길 것이지, 건방지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면서.

그런 정지혁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입을 여는 비서.

“···회사로 모실까요?”

“하아, 씨발 새끼야! 분위기 파악 안 해? 짜증 나게 자꾸 말 걸고 지랄이야.”

“죄, 죄송합니다.”

“오늘 일정은 취소해. 게임이나 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찬웅은 은신막을 발현한 채 모조리 보고 듣고 있었다.

‘이거 애매하네.’

물론 아직 빌런은 아니다.

그러나 빌런으로 발전할 여지도 충분히 보이고.

‘빌런인지 아닌지 모호할 땐?’

다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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